위안부 스타 문옥주 해방후 신데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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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0-13 23:18 조회3,7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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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스타 문옥주
빨갱이들은 일본 헌병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숫자가 20만 명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위안부는 1937년 일중전쟁으로부터 시작되어 8년 동안만 존재했으며, 1945년 8월 15일까지 많아야 연 인원 3,500 명 정도라고 한다.
일본군위안부 중, 숫자가 가장 많은 존재는 일본여성이었고, 그 다음이 중국여성, 또 그 다음으로는 조선여성을 포함한 10개국에 이르는 피점령국 여성들의 순이라 한다. 그런데 빨갱이들은 일본군위안부는 오로지 조선여성으로만 채워져 있고 그 숫자가 20만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무관심한 한국인들은 이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다.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위안부에 대한 키워드는 1) 강제연행, 2) 무리한 성폭행 3) 조롱과 학대 4) 대가없는 착취 등이다. 그러나 연구들에 의하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위안부 중 유명한 한 사람인 문옥주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일본과 한국에서 일종의 자서전을 냈다. 1996년에는 일본어판을 냈고, 2005년에는 한국어판을 냈다. 제목은 ‘버마전선의 일본군 위안부’. 아래는 그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문옥주는 1924년 대구 대명동에서 출생하여 12세에 일본으로 팔려가 17세가 될 때까지 요정 등에서 심부름을 했다. 당시 일본은 기율이 엄격해 17세 미만의 여아들을 성접대 현장에 내보내는 것을 금했다. 17세가 되어서야 문옥주는 비로소 ‘권번’(조선 관에서 운영하는 기생협회)에서 기생수업을 받고 버마 유곽으로 갈 수 있었다. 기생이 되려면 ‘권번’ 즉 기생협회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1942년 7월 그녀는 대구여성 일행 20명 중의 일원으로 부산-사이공-싱가포르를 거쳐 버마의 랑군에 갔고, 랑군 주재 일본군 방패사단 장병들의 파트너 개념으로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의 회고록에 의하면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상냥하고 남을 잘 배려하고 노래를 잘해 인기인이 되어 있었다. 성행위 이외에도 노래도 불러주고 친구처럼 따뜻한 언행으로 인해 인기 짱이었다고 한다. 얼굴도 예쁘고 정이 많고 재기가 넘쳤다는 것이다.
그러다 일본군 병사 ‘야마다 이치로’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 사랑이 너무나 깊어 그와 헤어진 지 51년 후인 1993년에도 그를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당시 그녀와 함께 위안부 생활을 했던 대구 여성들 거의 모두가 일본 병사를 애인으로 갖고 있었고, 그 중 한 여인 ‘히토미’는 일본군 병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의 아이를 잉태한 채 귀국해, 대구에서 귀하게 키웠다고 한다. 이런 여성들의 눈에 상투 속에서 이가 자라고 냄새나는 조선 남자들이 눈에 찼겠는가?
문옥주는 한마디로 끼가 있었던 모양이다. 노래 솜씨가 출중하고 사교적이고 배려심이 깊어 그 부대 장병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그 결과 팁을 많이 받아 악어백도 사고, 다이아몬드도 사고 화려한 레인코트도 사는 등 쇼핑을 즐겼다고 한다.
버마로 간 위안부들은 일본군으로부터 규정돼 있는 화대를 받았고, 그 이외에도 두툼한 팁까지 받은 것이다. 특히 문옥주는 20세로부터 22세까지 불과 2년 만에 31,000엔 이상을 벌어가지고 고향인 대구에 돌아와 가세를 일으켜 세웠고, 그 돈으로 사업을 하여 22세로부터 또 다른 28년 동안 대구 화류계의 신데렐라가 되어 생을 즐겼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최소한 버마 위안부들은 나무 등걸도 아니었고, 조선인 일반의 고통을 대신한 나이팅게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는 일제라는 풍성한 물을 만난 생동감 넘치는 물고기였을지 모른다.
문옥주는 그가 손에 쥔 31,000엔과 다이어 반지 악어백 등의 사치품 말고도 일본 본토 우체국에 50,108 엔에 해당하는 저축을 따로 했다. 그녀가 간직한 우체국 통장에 의하면 화대와 팁을 합한 금액이 80,000여 엔이었던 것으로 집계된다. 일본군에는 위안소를 사용하는 장명들이 지켜야 할 엄격한 준수기율이 있었다.
위안소 준수사항
1) 이용 시 연대본부가 발생한 허가증을 영업자에게 제출해야 한다.
2) 위안소 내에서는 음식을 들일 수 없다.
3) 위안부 및 영업자에 대해 난폭한 행동을 금한다.
4) 이용시간을 엄수하고 타인에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5) 영업자 기타 위안부 여급 등에 대한 일체의 대차 관계를 엄금한다.
6) 위안부들은 정기적으로 성병 검진을 받아야한다
이용시간과 요금
1) 병은 10시부터 17시까지, 30분에 1원, 1시간에 2원.
2) 하사관은 17시부터 22시까지, 30분에 1원 20전, 1시간에 2원 40전
3) 준사관 이상은 22시부터, 1시간 3원, 24시 이후는 10원.
4) 사쿠(콘돔)는 영업자가 부담한다.
5) 황군 이외의 자는 접객을 금한다.
6) 영업자는 매월 초 5일까지 위안부별 영업 상황을 보고한다.
일본군 당국은 위안부와 일본군병을 보호하기 위해 위안부들에 대한 건강검진을 했다. 이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적 행정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각 여성의 이름을 대외적으로는 적시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누구는 월경이라 접촉을 금하고 누구는 임질병이 걸려 접촉하면 안 된다는 등의 구체적 내용을 각 위안소에 통보해주었다. 이를 놓고 비난하면 그 비난 자들은 오로지 비난을 위해 태어난 종족들일 것이다.
문옥주는 하루에 30~40원을, 때로는 그 2배를 넘는 70~80원을 벌기도 했다. 이는 당시 위안부들이 요금표대로만 받은 것이 아니라 넉넉한 팁을 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해방 이후 대구 화류계의 프리마돈나가 된 그녀는 차례로 남성들과 동거를 하기도 하고 복잡한 인연으로 재산을 탕진한 상태에 있다가 정대협 측의 강력한 권유로 위안부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가 그녀의 과거를 공개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녀와 인연이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창피하다며 그녀로부터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한다.
2022.10.1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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