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전의 불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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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0-17 21:50 조회3,7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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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의 불씨 [5]
남민전 구성원들은 사회적 무녀리들 집합소
남민전 일당 73명이 재판을 받았다. 이재문과 신향식은 사형, 안재구, 이해경, 최석진(법륜 최석호의 형, 이재오가 포섭)은 무기, 그다음부터는 15년 형, 7년형, 5년형 . . 집행유예로 모두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재문은 1964년 인혁당 사건으로 복역했다. 교도소 출감 후 세 차례에 걸쳐 경북대 학생데모를 선동했으며,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 주모자 여정남(사형)을 배후 조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들 73명의 프로필을 조사해 보니 무직이 19명이고, 직업이 있다 해도 좌익계 단체를 전전하거나, 사회적 저변직업들을 전전하거나, 문인협회, 역술가, 위안부, 가정부, 행상, 노동, 강도. 학원강사, 교원, 대학생(9명), 목공, 정비공, 미싱공, 용접공 등 그야말로 사회에 불만을 가진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에 일망타진된 국가전복을 목적으로 한 조직이었다. 사형이 집행된 자들만 해도 8명이나 된다. 여정남(인혁당 학원담당책), 도예종(인혁당재건위 지도위원), 서도원(인혁당재건위 지도위원), 하재완(인혁당재건위 경북지도부 지도책), 이수병(인혁당재건위 서울지도부 지도책), 김용원(인혁당재건위 서울지도부 지도책), 우홍선(인혁당재건위 서울지도부 지도책), 송상진(인혁당재건위 서울지도책)이었다.
현재까지 빨갱이들이 가장 열불 내는 사건이 바로 이 8명이 사형당한 민청학련 사건이다. 참고로 김동길 교수는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얼마 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남민전 73명의 피고인들 중 60번을 달고 있는 이재오는 5년형을 받았다. 그는 당시 중앙대학 경상대학 농촌사회개발과에 다니다가 6.3 데모로 제적되고, 군복무 기간에 국민대학도 다니고 일동에서 중학교 교사도 하는 등 불가사의한 경력을 가졌다.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되어 교사직을 사직하고 ‘상황극단’에서 연출생활을 하다가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고, 1979년 6월부터 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으로 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나서, 다시 긴급조치9호를 위반하여 1년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은 후 남민전에 가담했다.
남민전 73명의 본적을 보니, 경북 17, 전남 17, 서울 14, 경남 10, 경기 6, 전북 4, 충북 2, 충남2, 강원 1로 분포돼 있다. 총 주모자 이재문은 1934년생으로 경북 의성군 옥산면이고, 이재오는 경북 영양군 성보면이다.
2022.10.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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