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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역사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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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9-27 00:09 조회6,4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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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의 역사반역

                             5.18에 대한 김영삼의 정치재판 정당한가?

                                                  YS의 객기

1993년 대통령이 되자 김영삼은 노태우가 이끄는 민정당에 들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소위 민주화세력으로부터 군부와 결탁하여 대통령이 됐다며 조롱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불명예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그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습니다. 하나회를 정리하였습니다. 예상 외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인기의 요체를 실감한 김영삼은 군사정권의 핵심인 전두환과 노태우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인기는 더욱 올랐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막연한 열기가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김영삼은 자신이 민주화의 화신으로 등장하려 했습니다. 그의 주위에 득실거리는 좌익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1993년 5월 13일, 그는 느닷없이 “12.12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지만 역사 평가는 후대에 맡겨야 한다”는 매우 자극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이는 아무런 명분 없이 내 던진 객기에 불과했지만 이 발언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12.12에 관련된 정승화 일파와 5.18에 관련된 광주사람들이 동시에 일어섰습니다. 1993년 7월 19일 정승화, 장태완 등 22명이 전두환-노태우 등 34명을 반란 및 내란죄 등 혐의로 대검에 고소장을 냈습니다. 12.12사태는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정권찬탈을 목적으로 일으킨 군사반란이라는 것이 고소 고발의 요지였습니다.


                                       검찰은 언제나 정권의 시녀

이로부터 1년 3개월 10일 후인 1994년 10월 29일, 검찰은 12.12고소-고발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2.12를 “군형법상의 군사반란사건”으로 규정했고, 피고소-피고발인 전원에 대해 반란죄를 인정했습니다. "12.12사건은 소장파 군부세력의 리더인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군권을 탈취하기위해 치밀한 사전계획 하에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승인 없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연행하고, 병력을 불법동원 해 군 지휘체계를 무력화시킨 명백한 군사반란 사건이다." 이렇게 막중한 범죄는 저질렀지만, 검찰은 이들 모두를 법정에는 세우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38명중 전두환-노태우 등 34명에 대해서는 14년간 국가발전에 기여한 점을 평가하고, 법정에 세울 경우 국가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를, 공소시효가 지난 정호용 등 4명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서울지검 조준웅 1차장검사는 12.12가 군사반란죄에는 해당하지만 내란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등 헌법기관이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에 정권 탈취를 목적으로 한 내란죄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제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후세에 맡기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번 검찰의 결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상은 ‘죄는 있지만 역사평가는 후대에 맡기자’는 김영삼의 발언에 검찰이 법적 고무도장을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5.18 시위를 획책했던 정동년 등 구속자-부상자-사망자가족 등 322명이 주동이 되어 1994.5.13일 오후3시 전두환-노태우 등 5.18 당시 대대장급 이상 신군부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죄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고소장이 접수 된지 1년 2개월만인 95년 7월 18일,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장윤석)는 피고소-피고발인 58명 전원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이들을 불기소 처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고소인과 피고소인, 참고인 등 모두 269명의 진술과 관련 자료를 종합해 본 결과 신군부가 취한 행위들은 10.26으로 야기된 권력공백기에 12.12를 통해 군을 장악하여 제5공화국이라는 새 정권을 창출해내기까지의 전형적인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내란죄 등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마디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역시 죄는 인정하지만 처벌은 하지 않겠다는 김영삼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이 철저한 김영삼의 시녀였던 것입니다.


                     정치적 코너에 몰린 YS, 국면전환으로 전두환에 돌 던져

당시 여론은 이런 결론들을 별 무리 없이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민주화세력에 의한 역사뒤집기 노력은 일단 서리를 맞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1995년 10월 19일 박계동 의원이 2,300억 원 대에 이르는 노태우의 비자금을 폭로한 것입니다. 국민은 충격과 배신감에 노태우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전체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이런 분위기가 역사를 뒤집기하려는 소위 민주화세력에게 절호의 찬스가 되어 주었습니다. 국민적 분노가 열화와 같이 일자 1995년 10월 27일, 노태우는 조기진화를 위해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역시 또 다른 뜻밖의 변수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1995년 10월 25일부터 중국 ‘조어대’(영빈관)에 1주일간 가있던 김대중이 동행했던 참모들과 한마디 의논도 없이 그가 노태우로부터 20억 원을 받았다고 폭로한 것입니다. 그가 그런 폭로를 한 것은 광장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검찰이 노태우 비자금의 향방을 추적하게 될 경우, 그가 노태우로부터 받은 비자금 전모가 노출될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양심선언을 해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영삼을 코너로 몰아넣어 자기의 안전을 꾀하자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김대중이 노태우로부터 이 정도를 받았다면 당시 민정당에 들어가 노태우 밑에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더 큰 규모의 비자금을 받았을 것이라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조사하면 김대중 혼자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김영삼이 더 많이 다칠 것이니 알아서 막으라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김대중의 이 의도는 적중했습니다. 김대중의 폭로로 당황한 쪽은 김영삼 정부와 여당이었습니다. 여당은 김대중의 정치자금 수수를 비난하며 ‘20억+a’ 설까지 제기했지만 대다수 국민은 노태우로부터 검은 돈을 받았다면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이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니 고백하라 다그쳤습니다. 막다른 코너에 몰리자 김영삼은 특유의 승부수를 띄워 국면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전두환 등 군부세력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을 존중한다던 종전의 입장을 갑자기 바꿔 1995년 11월 16일. 노태우를 2,358억 9,6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전격 구속하고, 11월 24일. 김영삼이 5.18특별법을 제정하라 지시함으로써 11월 30일에 특별수사본부가 발족되었고, 정당과 국회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습니다. 검찰은 12월 13일, 그의 고향인 합천에서 검거하여 안양교도소에 수감시켰습니다. 김영삼은 결국 그를 향해 집중돼 있는 검은돈의 의혹을 피해가기 위해 노태우와 전두환을 희생양으로 삼아 그에게 집중됐던 국민적 관심을 전두환과 노태우에게로 돌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런 약사가 말해주듯이 5.18에 대한 재판은 순전히 김영삼의 상황 돌파 필요성에 의해 시동되었고, 좌익 검사들과 좌익 법관들이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에 영합하여 판결문을 쓴 정치재판이요, 역사를 뒤집는 역사쿠데타였습니다. 역사는 학문입니다. 분석에 훈련된 학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신중하게 써야 하는 대상의 것이지, 법을 다루는 법관들이 단기에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1996-97년의 법관들은 12.12 및 5.18에 대한 역사를 권력에 아부하면서 이념적 잣대를 가지고 판결문을 썼습니다.


2014.9.27.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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