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환이 요덕출신 아니라는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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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9-20 19:04 조회4,59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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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환이 요덕출신 아니라는 이유들
지난 9월 15일, 탈북자 강철환이 필자를 고소한 고소인 자격으로 형사법정에 나와 피고인인 필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질문과정에서 자기의 거짓말과 그 거짓으로 인한 치부가 드러나자 “왜 탈북자들의 아픔을 건드리느냐”며 엉구렁을 쓰고 판사에게 질문을 멈추게 해달라고 호통 쳤다. 하지만 필자가 그에게 한 질문은 필자가 조사한 내용이 아니라 그가 여러 매체를 통해 무용담으로 자랑한 내용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에 갇힌 표범처럼 큰소리치고, 필자를 향해 정신병자라 했다. 장신성과 똑같은 매너를 보였다.
그래도 그가 대답한 것 중 중요한 것 하나가 있다. 강철환(9), 여동생(8), 할머니, 아버지가 보위부원들에게 반동분자라며 요덕 행 트럭에 강제로 실렸을 때, 트럭에 포장이 처져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군용 포장이 처져 있어서 일체 밖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2003년에 발행한 [수용소의 노래] 제28쪽에는 아래 글이 있다.
“도착한 곳의 간판을 보니까 함경남도 요덕군 구읍리라고 돼 있고, 수용소 간판은 조선인민경비대 제2915군부대, 그러니까 2915를 안 돼가지고 15관리소라고 불러요, . . 1반 마을에서 10반 마을까지 가는 거리가 한 40분 정도 걸렸어요”
한마디로 밖을 다 보았다는 뜻이다. 2002.12.13. RFA 인터뷰에서 그는 1977년 5월에 어항에 20마리의 금붕어를 가지고 수용소에 갔는데 거의가 다 죽고, 3마리 남았는데 그 3마리마저 겨울이 되어 어항이 얼어버리자 죽었다고 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10시간이나 포장이 처져 캄캄한 공간에서 9살짜리가 20마리나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어항을 안고 갔는데 물도 흘리지 않고, 깨어지지도 않고, 고기가 튀어나오지도 않게 잘 보관했다가 수용소에서 물도 잘 갈아주고 먹이도 구해다 주면서 12월 겨울까지 7개월이나 키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금붕어는 우리 사회에서도 시간적 금전적 공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야 키울 수 있고, 가장 어려운 것이 물을 자주 갈아주고 먹이를 주는 것인데 역적 자식으로 사지로 끌려가는 처지에 보위부원들이 그 어항을 가져가게 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들어가면 영양실조와 중노동으로 해골이 되어 죽어나온다는 요덕수용소에서 9살짜리 아이가 1급수의 물을 자주 갈아주고, 서울에서도 특수 가게에 가야 살 수 있는 금붕어 먹이를 7개월 동안이나 구해서 키웠다는 강철환의 이야기, 글자 그대로 허풍으로 들린다.
또 있다. 2002.12.13. RFA 인터뷰에서 그는 사나운 보위부원들이 들이닥치더니 세간을 부수는 바람에 어항이 산산조각 났고 고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팔딱팔딱 뛰고 있었는데 자기와 8살 난 여동생이 그 죽은 고기를 가지고 놀았다는 말을 했다. 요덕으로 어항을 가져갔다는 내용과 정반대다. 그의 [요덕스토리]는 [평양의 어항]으로 번역되었고, 그로 인해 강철환이 부시 전 대통령을 30분 동안이나 만났다고 한다. 부시가 선전의 도구가 되어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20만 명이라는 구독자를 달고 유튜브 방송을 한다. “평양의 어항 강철환tv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1987년에 요덕에서 출소했는데, 일본 교포 친척들이 몰려와 돈을 뿌리는 바람에 보위부원들도 찾아와 인사를 할 정도의 상류 생활을 했고, 20살 에 출소해 1년 동안 매월 개 한 마리씩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170cm가 넘었던 키가 1년에 10cm 이상 자라 180cm이 훨씬 넘는다고 했다. 그런데 과학뉴스를 보니 남자는 17세에 성장판이 닫힌다고 한다. 요덕에 10년 갇혀 있으면 영양실조에 중노동으로 영양실조가 걸리고 해골이 된다고 하는데 강철환은 10살부터 20세까지 요덕에 있으면서 키도 커지고 영양실조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강철환은 법정에서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20살에도 1년에 10cm 이상 자랄 수 있다고 했다.
요덕으로 출발하기 직전인 평양아파트에서는 보위부원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죽은 금붕어를 집어 들고 침대에 올라가 깡충깡충 뛰고 놀았던 철부지가, 비포장도로를 10시간 동안 이동하자마자 20대에서도 관심 갖기 어려운 경험을 기록해놓았다. “도착한 곳의 간판을 보니까 함경남도 요덕군 구읍리라고 돼 있고, 수용소 간판은 조선인민경비대 제2915군부대, 그러니까 2915를 안 돼가지고 15관리소라고 불러요, . . 1반 마을에서 10반 마을까지 가는 거리가 한 40분 정도 걸렸어요”.철부지 9살 난 아이가 10시간 만에 일류 정보원으로 성장한 것이다.
중요한 대목 모두가 허황된 거짓말이었다. 이 몇 개의 사실만 보아도 강철환을 요덕출신이라 믿기 어려운 것이다. 말할 때마다 내용이 다르고, 말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그의 ‘구라’는 지나치도록 허황돼 있다.
탈북하기 전까지 북한에서 그가 보위부 요원들을 가지고 놀았다는 이야기,
압록강 경비병을 구워삶아 술을 잔뜩 먹인 후 유유히 강을 건너가 중국에서 곧바로 경험 삼아 캬바레에 놀러갔다는 이야기,
중국에서는 누나를 사귀어 여권 없이 다녀도 누나가 다 커버해주었다는 이야기,
공안에 걸리면 한국노래를 불렀고, 부르고 나면 “아, 한국인이로구나” 하고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압록강을 건너기 전 혜산에서도 깡패두목과 사귀었고, 중국에서도 한국인 행세를 하면서 깡패두목들과 친구로 사귀면서 즐겼다는 이야기,
한국행 선박을 탈 때에는 한국정보기관이 북으로 보낸 정보원이었다고 거짓말 쳐서 승선했다는 이야기
등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소설들이다. 이런 것들을 질문하자 그는 “왜 나의 아픈 트라우마를 건드리느냐”며 판사에 호소했다. 그리고 혼자 언성을 높이며 식식댔다. 나는 자세한 내용들은 더 질문하지 않고 생략했다. 다음 재판일은 10월 20일 오후 4시 30분, 김성민이 나오기로 했다.
2019년 2월, 필자가 국회의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5.18진상규명대국민공청회]에 필자가 발제자로 나가 4시간 반 동안 발표를 하자 하태경이 눈이 뒤집혀 12명의 탈북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집단고소에 동참시켰다. 이 12명 중 가장 먼저 증인으로 출두한 사람이 채널A를 주름잡고 있던 이순실이었다. 입장 전에는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위풍당당했던 그녀는 필자로부터 2시간 반 동안 질문을 받자 그로기 상태에 몰렸다, 그리그 결국 고백했다. “제가 방송하는 것을 북한이 다 체크하기 때문에 모든 방송을 그때그때 지어내 거짓으로 방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거짓 방송에 순진한 국민들이 놀아났던 것이다. 그녀는 탈북자들의 말이면 그대로 믿어주는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금전적 성원을 꽃다발처럼 받아왔다. 두 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한의사 3형제 중 막내인 박세현은 “탈북자로서 대한민국의 애국자를 고소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는 말로 고소를 취하했다. 이번 9월 15일에는 세 번째 타자로 강철환이 나와서 깽판을 친 것이다. 강철환은 7월에 출두하기로 통보되었는데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바람 맞췄다. 장진성과 똑같이 예의 없는 살쾡이족이다. 남한 사회에 내려와 남한 국민들이 일구어놓은 것을 누리면서도 고마움을 느끼기는커녕 적대시하고, 감히 법정을 우습게 보고 고성까지 지르는 이런 행위자를 방치하는 것은 애국의 길이 아니다.
2016년 9월 27일자 조선일보는 2012-2016년 동안 군에 침투한 남파간첩 13명 중 12명이 탈북자 신분이었다는 기사를 냈다. 군 장교를 상대로 한 미녀간첩 간첩 원정화 역시 이 케이스에 속할 것이다. 더 이상 탈북자들에게 놀아나지 말고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2022.9. 2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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