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탐구 [2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24 23:40 조회3,196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전두환 탐구 [26]
전두환과 노태우
세상에는 경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앞만 보고 자기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있다. 경쟁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열심히 공부하고 도를 닦아 앞서가려는 마음을 지닌게 아니라 자기보다 앞서 가는 사람을 끌어내리기 위해 질투하고 모략하고 음해하는 옹졸한 인간성을 기르게 된다.
전두환은 경쟁의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늘 개척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전두환이 다녔던 육사는 진해에서 창설됐다. 당시의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내무반 건물 밖에 지어져 있었다. 밤10시는 누구나 침대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전두환은 독서를 하기 위해 옆 생도들이 잠든 시각에 살며시 빠져나와 책과 플래시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악취가 진동하자 네모난 구멍을 신문지로 덮고 그 위에 판초우의를 깔았다. 때로는 기상 시간 직전까지 책을 읽기도 했다. 중령과 대령 때에는 청와대 각 사무실을 다니면서 그 부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고 경청하며 다녔다. 국가경영 메커니즘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터득한 국가경영 지식은 그가 합수부장이 되었을 때 두뇌 뱅크로 역할했던 ‘국보위’를 설치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성 장군으로 보안사령관이 되었을 때에는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진 경제 전문가들을 골고루 초청해 아침 학습을 했다.
반면 노태우는 늘 전두환을 따라다녔고, 전두환으로부터 출세한다는 자리들을 후임으로 이어받아 성장했지만 독서가 별로 없었다. 노태우가 대통령 시절, 육사 15기 민병돈 장군이 육사 교장을 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육사 교장의 졸업식 연설문을 만들어 교장으로 하여금 그대로 낭독하라고 강요한 적이 있었다. 이에 민병돈 육사 교장이 반발하자 제대를 시킨 적이 있었고, 이 불미스러운 내용은 지금까지도 세간에 '민병돈 스토리'로 회자되어 오고 있다. 이런 행위는 전두환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전두환이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특별한 호의를 받아 한국에는 팔 수 없는 F-16기를 구매하기로 했는데, 노태우는 미 공군 주력기인 F-16을 배척하고, 2배나 더 비싼 미 해군 주력기인 F/A-18을 구입하는 결정을 내렸다가 종내에는 이를 번복해 다시 F-16으로 변경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노태우의 인간적 배신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6.29는 전두환이 만들어 노태우에게 선사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노태우는 그것에 감사하기는커녕 전두환의 인격 학살을 통해서만 자기가 빛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두환에 막무가내식 어리광을 부렸다. 전두환이 여러 차례 양보하고 논리적 이치로 타일렀어도 노태우의 인간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1987년 12월 16일은 제13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그 12일 전인 12월 4일, 노태우는 KBS를 통해 전두환을 짓밟는 노골적인 내용으로 연설을 했다.
①“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 있어서는 국가원수를 포함한 그 어느 누구도. .” ②“저의 집사람 역시 집안일을 살피는 전통적인 한국의 조용한 아내와 어머니로 있게 하겠다”, ➂“나는 보통사람이다.” ①은 전두환 주변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②는 이순자 여사가 조용하지 못한 아내라는 메시지였고 ➂은 전두환이 ‘권위주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5공 말살 작전, 6공은 5공의 후신이 아니다.
노태우가 당선자 신분이 되자, 노태우는 단순히 자기와 전두환을 차별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6공은 5공의 연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5공은 소멸돼야 할 역사라며 야당과 합세하여 ‘전두환 죽이기’ 작전에 나섰다. 노태우와 그의 부인 김옥숙이 전두환에 대해 품었던 열등의식이 보복이라는 못난 행태로 분출된 것이다. 그가 당선된 날, 대통령 신분인 전두환은 육사 11기 동기생들과 함께 노태우를 축하하러 찾아갔다. 이때 노태우는 시쳇말로 싸가지 없는 말을 했다. 인간 수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빌어먹을 말이었다. “내가 승리한 것은 순전히 내가 훌륭해서였고, 국민적 인기가 높아서였다. 각하와 민정당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거리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국민이 직접 뽑아준 대통령이다. 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이 된 각하와는 격이 다르다”
사사건건 문제 삼아
퇴임을 2개월 앞둔 전두환은 고위급 장성의 인사를 했다. 만기가 도래한 장군들의 뒤를 이어야 하는 장군들에 대한 당연한 인사였다. 합참의장에 최세창, 3군사령관에 고명승, 보안사령관에 최평욱, 수방사령관에 김진영. 이를 두고 노태우 당선자는 매우 불쾌한 말을 했다. 전두환이 퇴임 후에도 군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자기 사람을 심었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들은 전두환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런 야당에 극비 정보까지 제공한 사람이 바로 노태우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야당에게 총대를 메게 한 것이다. 노태우가 전두환 죽이기 최일선에 나선 것이다. 노태우가 전두환을 때려잡기 위한 첫 샅바는 ‘국가원로자문회의’였다. 이 기구는 여야합의로 법제화되었고, 시행령이 막 작성되고 있었던 대통령 자문기구였다. 이 기구는 대통령을 자문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들을 수용해 대통령을 자문함으로써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국정이 널뛰듯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완충시켜 보자는 좋은 의미에서 그 앙칼진 야당들도 순순히 합의한 기구였다. 노태우가 이 기구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전두환은 그 기구의 의장직을 사임했고, 그 기구는 공중으로 분해됐다.
이어서 노태우가 뽑아든 전두환 죽이기 카드는 전경환 새마을 본부장에 대한 비리를 시발로 한 친인척 비리였다. 전두환의 형, 동생, 친척 그리고 이순자 여사의 친인척까지 모두 감옥에 넣었다. 이렇게 시작한 ‘5공 비리 청산’은 ‘5공청산’으로 올라탔다. 5공을 헌정역사에서 말살시킴으로써 노태우를 빛나게 하자는 전략이었다. 노태우는 이를 위해 언론플레이를 주도했다.
노태우가 앞장 선 전두환 비리 조사
언론은 전두환이 미국에 호텔, 골프장, 목장 등 10여 건을 통해 재산을 빼돌렸고, 스위스 은행과 호주에도 재산을 숨겨놓았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렸고, 이 유언비어의 상당 부분은 노태우가 배후에서 주도했다. 노태우가 모략꾼이 됐다. 이 와중에 노태우가 호주를 방문했다. 노태우는 어김없이 호주 정부 당국에 “호주에 전두환이 숨겨놓은 재산이 있는지 조사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호주 정부는 조사한 결과를 노태우에 통보했다. “아무 것도 없다.”
노태우가 호주 정부에 요청한 사실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지만, 호주 정부에서 노태우에 보낸 조사결과는 언론에 없었다. 전두환의 그늘과 도움으로 대통령에 오른 노태우는 욕심에 눈이 멀어 국가의 위신이고 대통령의 체면이고 안중에 없었다. 끝이 없는 노태우의 열등감, 드디어 '레만호 계획'이라 불리는 ‘전두환 강제 망명 공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전두환을 망명시켜야 노태우가 근사한 사람이 되고, 노태우가 임기를 마친 후에라도 전두환 세력으로부터 보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엽기적 발상이 자아낸 '열등의식'이라는 정신병의 발로였다.
2022.8.24. 지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