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탐험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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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28 21:52 조회3,4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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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험 [37]
전두환은 직무상 그리고 환경 여건상 5.18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던 존재였다. 이는 전두환 자신도 인터뷰와 회고록에서 수차례 밝혔다. 이를 뒤집을 만한 증거는 수사기록을 포함해 그 어디에도 없다. 당시 계엄사령관으로 5.18시위를 진압했던 총사령관은 이희성 계엄사령관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국방부장관과 대통령이 있었다. 전두환은 여기에 끼어들 처지에 있지 않았다.
2021년 5월 18일, ‘최보식의 언론’에는 이희성과의 인터뷰 기사가 있다. 이 기사는 2016년 5월 16일 조선일보 가판대에는 나갔지만 조간신문에서 삭제되었던 기사였다. 최보식 기자는 '조선일보에 게재되지 못했던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5년 전에 조선일보 데스크에서 막혔던 그 기사를 그대로 전재했다. 아래에 그 일부를 발췌한다. 최보식 기자는 군을 전혀 알지 못하는 세간의 소설과 억지들을 이희성에게 전했고, 이희성은 위관장교 이상이면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을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그 세간의 억지와 소설은 전두환을 재판한 전라도 세력과 군 미필자 판검사들에 의해 가공됐다.
최보식: 도의적 책임은 그렇고, 실제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5·18 당시부터 대학가에서는 '광주 학살 주범'으로 전두환을 특정했습니다.
이희성: '그건 군의 작전 지휘 계통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요.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5·18과는 무관하오. 그는 12·12(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를 이유로 정승화 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한 사건)와는 상관있지만 5·18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소.'
최보식: 계엄군 출동과 발포 명령을 그가 배후 조종했다는 게 통설입니다.
이희성: "법정에서도 '지휘 체계가 이원화됐다'는 말들이 있었소.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나 몰래 따로 보고받고 지시했다는 소리인데, 그건 범죄요. 그러면 내가 그냥 두고 볼 것 같소. 내가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최보식: 계엄사령관이 위계상 높지만 당시 모든 힘이 전두환에게 쏠리지 않았습니까?
이희성: "전두환은 새카만 후배였고 내게 '형님, 형님' 하며 어려워했소. 나를 뛰어넘어 감히 월권해? 내 성격을 알고 이런 관계만 알아도, 그런 소리가 안 나옵니다. 전두환은 밝은 사람이지, 음습하지 않아요. 몰래 그렇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오. 내 단호히 얘기하오. 광주에 관한 한 전두환 책임은 없소."
최보식: 그렇다면 5·18에 전두환을 지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봅니까?
이희성: "광주가 수습되고 3개월 뒤 그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오. 대통령만 안 됐으면 전두환 이름이 그 뒤로 나오지 않았을 거요."
최보식: 전두환이 아니라면, 누가 5·18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겁니까?
이희성: "지휘 계통의 최고위에 있는 계엄사령관인 나와 국방장관(周永福)이오. 그래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소. 전두환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그는 보안사령관이었고, 내 참모에 불과했소. 참모로서 내게 건의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는 작전 지휘 체계에 있지 않았소. 진압 작전에 개입할 수 없었소. 그는 광주에도 내려간 적이 없소."
최보식: 적극적인 스타일인 전두환이라면 광주에서 그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오히려 한번 내려갈 만하지 않았습니까?
이희성: "현지 보안 부대를 통해 보고가 올라오니까 그도 광주 상황을 알고 있었소. 내려가 본들 뭘 하겠소. 부대장에게 격려금이나 건네주는 게 고작이잖소. 당시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내게 보고하고 광주에 내려간 적 있소. 광주 현지 부대에 배속시킨 공수여단 격려차 간 것이오."
최보식: 전두환이 육사 동기생 정호용을 통해 작전 지시를 했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이희성: "재판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데, 정말 군대 체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요. 특전사령관도 광주에 파견된 자기 부하들을 지휘할 수가 없소. 작전 책임과 지휘권은 배속된 부대 지휘관에게 있소. 조언은 할 수 있겠지만, 이래라저래라 작전 지휘를 하는 것은 군법에 어긋나는 거요."
아니라는데 왜 전두환만 증오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참으로 중요하다. 5.18이 반드시 민주화운동이라야 존재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 공산당 세력과 전라도 세력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닌 것으로 여론화되면, 저들은 이제까지 국민을 사기쳐먹고 등쳐먹은 반역집단이 된다. 노태우의 민주화운동 보상조치로 1991년부터 저들이 부당하게 가져간 국민 세금이 얼마인가? 국민여론은 이 돈을 다 물어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저들은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이는 한국 내 이념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래서 저들에게 5.18은 죽어도 민주화운동이라야 하는 것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한 것은 전두환의 헌정질서 파괴행위를 전제로 한 것이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판결이 밝혔듯이 광주시위는 전두환이 헌법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의롭게 나선 저항운동이라는 것이다. 전두환에게 씌운 죄는 내란죄다. 이 내란죄는 ① 전두환이 헌법질서를 파괴하려는 것을 광주시위대가 저지하기 위해 시위대를 결집했는데, ② 전두환 등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는 이유로 씌워진 범죄다. 띠라서 전두환을 내란범에서 해방시키면, 5.18이 더 이상 민주화운동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전두환이 주사파 사냥을 철저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빨들은 이승만과 박정희는 물론 미국과 맥아더까지 증오하고 있다.
세번째 이유는 전두환이 경제를 부흥시켜 남북간의 격차를 판이하게 벌려놓았고, 86년 아세안 올림픽과 88 국제올림픽을 유치하여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고, 북한이 외교적으로 확보해놓고 있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비동맹 국가들을 우리 편으로 돌려놓는 등 북한을 멀리 멀리 따돌려놓았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은 전두환을 증오하는 노태우와 김영삼이 야합한 흥정물
위 최보식 기사에서 최보식은 이희성에게 전두환이 5.18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왜 세간에서는 자꾸만 전두환을 5.18의 원흉으로 지목하는가를 물었다. 이에 이희성은 “광주가 수습되고 3개월 뒤 그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오. 대통령만 안 됐으면 전두환 이름이 그 뒤로 나오지 않았을 거요” 이렇게 대답했다. 전두환이 5.18진압 후 3개월 만에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이 나라의 공산세력이 전두환을 지목해 그가 파괴하지도 않은 헌정질서를 파괴했다고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확실히 해둘 것은 전두환은 10.26 이후 대통령이 될 때까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내려고 동분서주했지,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5.18이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탈바꿈한 것은 연구나 분석에 의해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 1990년 2월 22일, 노태우가 3당 합당을 추진하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야합한 흥정물에 불과하다.
2022.8.2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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