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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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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31 22:26 조회5,4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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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탐험 [43]

 

노태우와의 갈등

 

노태우가 이제까지 전두환에게 가한 박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과정을 살피는 독자들에게도 마음에 응어리가 질 정도이면 전두환 본인인들 어떠했겠는가. 전두환은 1988.11.23.일부터 19901230일 연희동 자택으로 복귀할 때까지 21개월 8일간 혹독한 유배생활을 했다. 전두환을 백담사로 귀양보낸 사람은 노태우였다. 전두환에게 가장 열악한 거소를 지정해준 사람도 아마 노태우일 것이다. 2-3개월만 가 있으라며 보내놓고, 노태우는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전두환의 연희동 귀가를 방해했다. 전두환이 귀가한 시점에서 보면 노태우의 잔여 임기는 1991-92, 불과 2년여 남아있었다.

 

전두환에게는 만감이 교차했다. 노태우는 전두환에 대한 가혹행위에 대해 점차 여론에 몰리기 시작했다. 전두환은 노태우가 곧 주위의 이목을 의식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행위를 전개할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노태우가 그에 가했던 정치적 배신인간적 배신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노태우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가 5공의 2인자 답게 처신한다면 용서할 것이지만, 계속해서 6공이 하늘에서 떨어진 양 처신한다면 노태우를 가슴에서 영원히 지우겠다고 다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태우는 구렁이 담을 넘으려는 듯 얼렁뚱땅 남에게 보이기 위한 제스쳐들을 썼다. 전두환을 설득할 사람들을 계속 보냈다. 안교덕, 정원식, 김정렬, 노신영, 김정례, 조계종 총무원장 서의현, 김장환 목사 등 등. 이 모든 전령들에게 전두환은 이 문제는 전두환과 노태우 사이에 직접 해결할 문제이지 제3자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었다. 이런 전두환의 뜻을 전달받고도 노태우는 수도 없이 사람들을 보냈다. 이는 주위에 노태우가 전두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한 술책이었다. 199194일에는 신축한 본관 준공식을 치른다며 전두환에 초청장을 보냈다. 이에 응하지 않자 914일에는 육사 11기 동기들 모두를 부부동반하여 청와대 만찬에 초청했다. 이런 경우는 선례도 없었거니와 해서는 안 될 상식 밖의 행사였다. 924일 또 전두환, 최규하, 노태우가 한 자리에 모여 오찬을 하면서 시국에 대한 의견을 나누자는 초청장을 보냈다. 이 모두가 주위에 보여주기 위한 의식이었다. 전두환은 노태우의 잔꾀임을 알면서도 계속적인 거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격식을 갖추자는 의미에서 장장 A413쪽 분량의 편지를 썼다. 편지 제목은 '노태우 대통령 각하', 이에 노태우가 즉시 1쪽 반 분량의 답장을 보냈다. 제목은 전임 대통령 귀하“. 제목 자체에서 냉기가 흐른다. 전두환으로부터는 각하라는 존칭을 받고서, 답신은 귀하였다. 옹졸하다. 이 두 개의 편지에서 두 사람의 인간 됨됨이와 학식이 흑과 백으로 갈린다. 아래에 양쪽 편지들을 일부씩 발췌하여 소개한다. 이 편지는 두 전직 대통령 사이에 오고간 편지의 의미를 넘어 후대에 많은 것을 남겨주는 역사기록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두 개의 편지 전문은 [전두환 회고록] 3261-276쪽에 실려있다.

 

노태우 대통령 각하

 

청와대를 떠난 지 햇수로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안 수석을 통해 주신 초대에 정중히 답을 하기 위해 붓을 들고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1988225, 새 지도자가 된 노 대통령께 전임자로서 나라의 일을 부탁하고 그곳을 떠난 그날보다 내 생애에서 더 기쁘고 행복한 날은 없었습니다. 나는 그날 국민들과의 단임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내 평생을 통해 믿어왔고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왔던, 둘도 없는 친구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떠나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

 

또한 재임기간 중 내가 애정과 집념을 가지고 애쓰던 일들도 후임자인 노 대통령에 의해 더 훌륭하게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를 즐겁게 했습니다. 뜨겁게 악수하면서 그날 우리 내외는 대통령 내외분에게 신의 가호와 국운융성이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소망했었습니다. .

 

우리의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어떤 이유로든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지난 4년은 서로에게 똑같이 불행하고 부끄러운 세월이었습니다. 정치권력의 세계에서 사람의 의리나 도리를 따지고 사람 간의 언약과 신의를 논하는 것이 어리석고 소용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토록 오랜 세월을 두고 나누어온 노 대통령과 나 사이의 자랑스럽고 견고했던 우정도 결국 정치권력이라는 현실 앞에선 단 한 계절도 견디지 못한 채 무참하고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느꼈던 통한과 허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내가 청와대를 나오자마자 제 6공화국은 ‘5공 단절을 외치기 시작했고 ‘5공 청산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결국 나와 노 대통령과의 단절과 청산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5공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5공이 길러낸 5공의 인물이 바로 노 대통령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자신의 모태이며 뿌리인 5공과의 청산과 단절을 부르짖는 그런 식의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전국의 모든 언론들이 나를 비판하고 비난하기 시작했고 상상을 초월한 보도 중 많은 부분은 사실의 근원을 알 길 없는 유언비어들과 무책임한 폭로성 기사들이었습니다. 잔인한 여론재판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유도해나간 것이 노 대통령 자신이며 6공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라고 주변에서 말해주었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40년간 지니고 있던 노 대통령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

 

성난 파도와 같았던 그때의 일에서 그 절정은 우리 내외의 백담사 유배일 것입니다. 그 일을 유도한 것이 노 대통령 자신이고 보면 차라리 백담사 추방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옳은 것입니다. 엄동설한인 동짓달에 졸지에 집을 떠나 삼팔선 너머 오지의 낡은 절로 들어갈 때의 심정을 누구라 헤아리겠습니까. 그때 내가 승복할 수밖에 없도록 노 대통령이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사과, 헌납, 연희동 집만 떠나주면 나의 보좌관들을 구속시키지 않겠다. 그리고 5공문제를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결 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이후 내 보좌관들은 곤욕을 치르거나 구속되었습니다. 또한 백담사 떠날 때 늦어도 이삼 개월 내에 반드시 다시 연희동으로 모시겠습니다한 약속이 백담사에서 두 해 하고도 한 달 8일을 견뎌야 했습니다. .

 

설사 내가 열 번 귀양을 가도 마땅한 죄를 지은 대역죄인이라고 합시다. 그래도 40년 친구라면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깊은 산골 절집으로 쫒겨간 내가 걱정이 되어서라도 겨울을 무사히 지냈는지 사람을 보내 알아보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일 년이 다 되도록 사람을 보내기는커녕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해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주었고 때로는 강제로 돌려보내는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일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의도 아래 이루어진 ‘5공 청산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우선 노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나는 이제 한 사람의 필부에게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참담한 모습으로 전락해버렸고 내가 이끌던 제5공화국은 집권 동안 부정과 비리만을 저질러온 반국가적 반역사적 집단으로 되어버렸습니다. 40년 친구였던 내 명예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내가 개인적 분노나 울분을 가지고 이런 얘기를 할 만큼 옹졸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게 나라 발전을 위해 노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면, 아니 내가 악의 상징이 되고 노 대통령이 선의 상징이 되는 것이 나라의 융성과 국가 이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면 나는 기꺼이 그 배역을 받아들이고 견뎌낼 용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우리 두 사람은 국민들에게 십여 년 전 박 대통령과 김재규가 보여준 것과 똑같은 정치권력의 나쁜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이 정치 권력자에게 환멸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 이젠 한스럽고 소용없는 바람이 돼버렸지만 나는 솔직히 나와 노 대통령에 의해 이 나라의 대통령 문화가 올바르고 건강하게 창조되길 고대했습니다. 약속된 임기를 끝내고 새 대통령에게 자리를 물려준 뒤 제 발로 청와대를 걸어 나와 국민들의 축복 속에서 진실한 시민으로 복귀하는, 당연하지만 어려웠던 그 일을 성취해내고자 재임기간 동안 그토록 누누이 나의 단임 의지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내가 단임 약속을 지키고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실천하는 것이 그 시대 그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내가 우리 정치사에 헌신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습니다. .

 

다른 사람들이 다 그랬다 하더라도 노 대통령과 나만은 이런 식으로 정권을 주고받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만은 좀 더 멋지고 명예롭게 후세에 남을 전통을 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바치겠다던 우리 두 사람의 군인 정신과 인생관에 알맞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두 사람이 비록 정치가로서는 미숙했다 할지라도 우리의 일생을 지배해온 올바른 군인 정신만 살아 있었더라도 이토록 추하고 못난 모습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역사에 오류를 반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결과가 노 대통령을 후계자로 지명한 나의 한계이며 노 대통령의 한계였다는 자괴감 이외엔 별다른 결론이 없습니다. .

 

이제 나를 만나 화해를 하시겠다니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멋대로 5공을 단절하고 멋대로 5공과 화해하겠다는 두 개의 상반된 논리 앞에서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이런 식의 치졸한 얘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 비참한 일이긴 하지만 청와대를 떠난 후 지금까지 내 집 주변에서는 전화 도청, 출입자 감시, 출입자에 대한 세무조사 등 압력이 공공연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방문자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드러나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불이익을 당한 사람의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

 

언급할 가치도 없는 이런 상황은 조금의 변화도 없는데 노 대통령께서는 다시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전임 대통령과의 회동이니, 5공과의 화해니 하는 의도적인 기사를 흘리고 있으니 당사자인 나로서는 그 의도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노 대통령께서 우리 두 사람과 5공 동지들 사이에 있었던 그 불행한 과거에 대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하고 진실한 해명과 뉘우침이 있다면 나 전두환이 노 대통령과 만나 손을 잡는 데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화해를 요구해오는 사람이 이만한 도리나 반성도 없이 그저 만나 악수나 하고 밥이나 먹고 사진이나 찍는다면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에게 다시 새 상처와 새 배신감만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

 

노 대통령! 우리 두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지금의 모습이 아닌 그 옛날 내가 알고 좋아했던 본래의 노태우로 돌아온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내 최고의 소원입니다. 나의 손으로 탄생시킨 제6공화국에 의해 내가 지금의 이러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도 역사의 한 아이러니이기도 하겠지만 이 모든 것이 내 개인이 타고난 업장을 소멸시켜가는 고행의 여정 속에서 극복해야만 할 수많은 시련 중의 하나일 뿐이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나는 천성적으로 변명이나 능변에는 재간이 없는 사람이나 그래도 진실은 생명력이 있는 것이니 언젠가 앞으로 전개될 역사 속에 그 모습을 훤히 드러낼 날이 꼭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나의 모든 잘잘못에 대한 진정한 평가와 심판이 있게 될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이 명예회복에 대한 나의 자세입니다. 노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서 나는 그것을 서두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권력이라는 무서운 속물이 노 대통령의 곁을 떠나기 전까지는 우리 두 사람의 만남이 어떤 의미도 없으리라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

 

노 대통령! 백담사에서 자주 듣던 말 중에 탐심(貪心)을 버리면 대도(大道)를 볼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기나 공명심에 영합하지 말고 남은 임기 동안 나라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조국의 선진화에 헌신하시는 대통령이 되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건승을 빕니다.

 

1991.10. 일해

 

전임 대통령 귀하

 

주신 글월 착잡한 심중으로 읽었습니다. 지적하셨듯이 우리들의 기구한 운명 만감이 교차됩니다. 무엇보다 전임 대통령을 명예롭지 못한 고통을 안게 하게 된 일에 대해서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후임자로서 송구스러운 일이요, 누구보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적하신 일들을 일일이 이것은 죄송하고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변명을 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고 지금 전임 대통령께서 가지신 심중으로는 해명한들 소용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

 

그러나 역사 앞에 분명히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노태우 권력 잡았다 하여 천리와 인륜을 배신하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상상치도 못한 불행을 당했으니까 그렇게 생각, 단정할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 6공초부터 전임 대통령을 보호하는 길이 무엇인가에 전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주위 친척들의 저지른 일을 극소화시키는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전임 대통령께서 아끼시던 부하들입니다. 전임 대통령 그리고 주변 인물을 보호하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렵습니다. 역사를 보는 시각, 사리를 판단하는 여건과 기준에 따라 우리 둘 사이에는 무서운 오해와 틈이 생겼군요. .

 

나는 대통령으로 있을 때까지는 비록 전임 대통령께서 더 이상의 오해가 생기시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보호해드릴 것입니다. . 기나긴 사연을 쓰자면 한없습니다. UN 가입을 계기로 국내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산적되어 있습니다. 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공적 그리고 공개적 입장에서 전임 대통령을 모셔서 이 큰 국가 대사를 설명드리고 훌룽한 자문을 얻는 것이 당연하고 또 우리 모두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손상된 명예도 국민 앞에 회복되는 좋은 길이기에 정중히 초정하는 것이지 이것을 어떻게 정치적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소행으로 보실 수 있습니까? 진정 뜻이 이러하오니 금 토요일 모시는 일 승낙하실 것을 앙망합니다.

 

대통령 노태우 

 

2022.8.3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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