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탐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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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06 22:55 조회3,7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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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험[4]
서울올림픽 쿠데타 성공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즉위한 1980년, 당시의 경제 사정은 40%대의 고 인플레에 시달리고, 우후죽순으로 들여온 고금리 외채를 갚아야 하는 처지를 맞이하고 있었다. IMF에 버금가는 위기로 민심이 폭발할 정도의 위기였다. 바로 이런 시기에 즉위한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의 꿈이었던 1988년의 올림픽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시 서울은 그 어느 올림픽 위원들의 안중에도 국내의 그 어느 인물들의 안중에도 없었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상상 밖의 사업을 추진하는 전두환 자체가 돈키호테였다. 그러나 전두환은 정주영 등을 내세워 불도저식으로 독려했다. 최종적인 개최 대상지가 서울과 나고야 시로 압축됐다. 당시의 국내외 분위기는 나고야 개최가 압도적이었다.
서독의 작은 도시 바덴바덴을 무대로 한 유치전에서 전두환은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지게, 부채, 인형 등 문화 소품들을 열심히 돌리며 존재감을 돋보이게 하라고 지시했다. 일본은 한국 정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며 느긋해 했고, 한국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의 현지 시간은 오후 3시45분, 한국에서는 오후 11시 45분, 온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서울 52, 나고야 27.” 서울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이 쾌거는 쿠데타에 버금가는 이변중의 이변으로 평가됐다.
한강 개발 불도저
올림픽 수상게임장을 만들고, 올림픽촌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강 현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당시의 한강은 그야말로 냄새나는 시궁창이었다. 가뭄이 들면 바닥이 드러나고 똥오줌과 폐기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1982년, 전두환은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한강을 살리려면 한강 상류 지역에서 오폐수를 방류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과 가축의 인분을 정화시켜야만 했다. 엄청난 투자였다. 댐과 보를 만들었다. 한강 다리도 증가시켰다. 88올림픽 도로도 건설하고, 지하철 공사를 설치하여 제3~4호선을 초고속으로 건설했다. 오늘의 한강은 전두환이 새로 제조한 국가적 유산으로 도시의 미관과 홍수조절 기능을 갖춘 아름다운 세계의 강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한강이 곧 전두환인 것이다.
김일성에 대한 압승
서울이 88올림픽 개최지로 선택될 줄은 남한의 아무도 몰랐고, 김일성도 몰랐다. 세계인들의 평가 그대로 올림픽 쿠데타였다. 모든 한국인들, 세계인들, 김일성 등 모두의 의표를 찌른 돌연변이적 쿠데타였다. 김일성의 눈에서 시퍼런 레이저 광선이 발산됐다.
김일성은 KAL기 폭파로 방해
김일성은 1987년 11월 29일, 김현희를 도구로 하여 중동에서 땀 흘리며 달러를 벌고 귀국하는 중동근로자들을 태운 KAL858 여객기를 폭파시켰다. 서울로 가는 모든 여객기를 폭파시킬 것이니 세계 각국은 서울 올림픽에 가지 말라는 공갈작전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인륜적인 김일성의 공작은 서울 올림픽의 성공을 저지하지 못했다. 서울 올림픽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국위 선양 차원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대한민국이 국제적 위상을 단번에 선진국 수준으로 제고시키는 동시에 남북한 격차를 천지 차이로 벌려 놓는 엄청난 쾌거였다.
임종석은 임수경으로 물타기
이에 눈이 나온 김일성은 서울 올림픽으로 인한 남한의 국제적 위상을 물타기하기 위해 1989년 7월 1일에서 7월 8일까지 대대적인 평양 축전을 개최했다.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으로 일컬어지는 이 축전에는 177개 국가, 22,000명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고, 당시로서는 역대 축전 가운데 가장 많은 나라가 참가한 축전이었다.
김일성은 이 행사가 서울 올림픽보다 규모가 큰 행사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여기에 골수 주사파 임종석이 적극적인 홍보전을 벌였고, 평양 축전을 국제적으로 극화하기 위해 임수경을 북으로 보냈다. 하지만, 세계에서 88서울올림픽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평양 축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서울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 올렸지만 평양 축전이 북한의 위상을 높이 올렸다는 평가는 없다.
2022.8.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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