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탐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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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09 12:30 조회3,6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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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험 [9]
라디오 시대에서 TV 시대로
국산 최초의 TV는 1963년에 생산됐다. 옛 이름으로는 금성사, 지금은 현 LG전자가 일본 히타치로부터 생산 기술과 시설을 도입해서 부산 온천동 공장에서 시운전을 마쳤다. 하지만 당시 외환 위기가 닥친 데다 전력사정이 어려워 정부는 TV생산을 허용하지 않았다. 부품 수입도 허가하지 않았다. 1965년 말, 금성사의 거듭된 건의서에 의해 정부는 마지못해 조건부 TV생산을 허용했다. 1966년 8월, 금성사 흑백TV ‘VD-191’이 최초로 탄생한 것이다. VD-191은 진공관을 사용하는 19인치 TV였다. 첫 생산량은 500대로 한정했고, 가격은 63,510원으로, 당시 쌀 26가마에 해당하는 고액이었다. 하지만 인기가 폭발해 공개 추첨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흑백 문화에서 컬러 문화로
흑백TV시대가 열린지 8년이 지난 1973년, 아남산업이 일본 마쓰시타 전기와 50:50으로 합작해서 컬러TV를 생산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국내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오직 수출만 했다. 근검절약 문화에 저촉되고, 위화감을 조성하고, 전기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기가 매우 귀한 당시에는 조명을 요하는 야간 경기까지 금지돼 있었다. 1974년 당시 세계의 80여 개 나라가 컬러 방송을 하고 있었지만, 박정희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는 돼야 컬러 방송을 할 수 있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1980년이면 전두환이 50세였다. 젊은 세대의 생각은 박정희와 달랐다. 당시 흑백TV의 판매량은 600만대에서 정체돼 있었고, 아남전자 등 컬러 TV를 수출하는 기업들은 오일 쇼크가 덮쳐있는데다 미국이 무역 장벽을 한층 높였기 때문에 부도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전두환은 국내 업체가 생산해내는 TV가 100만대가 넘고 있는 데, 수출만 하고 국내 시판을 하지 말라는 것은 자율도 아니고 개방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업들을 향해 정부가 나서서 수출만 하고 내수 시장에는 접근하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은 시장 경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입으로는 ‘개방’과 ‘자율’을 외치면서 내면적으로는 국가가 기업을 통제하는 통제 경제는 전두환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두환은 따져보았다. 14인치 컬러TV를 소비하는 전력 소비량은 흑백TV에 비해 20W 형광등 한 개의 차이밖에 없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100만대가 보급되었을 경우 전기가 0.12% 밖에 증가하지 않는다는 결론도 얻었다. 전력을 이유로 컬러TV 국내 시판을 제한한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컬러TV는 진공관이 아니라 반도체를 사용한다. 컬러TV의 부품 수는 흑백TV의 3배나 된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다. 컬러TV는 전자 기술이 집약돼 있는 부가 가치가 매우 높은 상품이다. 반도체와 컴퓨터, 국가전산망을 출발점으로 하여 전자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팔을 걷은 전두환으로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1980년 12월 1일 오전 10시 30분, KBS가 수출의 날 기념행사를 컬러로 방송한 것이다. 1981년의 컬러TV 수출액이 전년에 비해 30%나 증가했다.
컬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고생의 의복에도 컬러, 자동차 색깔도 컬러, 생각도 컬러, 문화도 컬러, 컬러의 혁명, 색의 혁명을 불러온 것이다. 물꼬가 트이자 국내 TV업체들이 도약을 했다. 최근의 통계를 보면 2021년, 삼성과 LG가 세계 시장의 48%를 점하고 있다. 이는 전두환이 열어제친 자율과 개방의 결과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2022.8.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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