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탐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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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14 19:07 조회3,9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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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험 [17]
가짜 김현희 조작설
사건 발생 이후 재판이 시작되기까지 460여 일, 북한은 남한의 추종자들의 입을 통해 벼라별 의혹들을 확산시켜 우리 사회를 어지럽혔다. 사건 발생 6일 만인 1987년 12월 5일, 조선중앙통신사는 사고는 북한과 무관한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사고의 원인이 기상 악화나 기계 고장일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조총련과 종북자들은 소설도 쓰고 TV 특집들을 제작해 여론 몰이를 했다. 20~40 가지의 의혹들을 나열했지만 모두가 북한이 제기한 의혹들에 덧칠을 한 것들이었다. 북한의 앞잡이들이라는 뜻이다. 이 모든 의혹들이 사회 일각에 선동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진실이 담긴 블랙박스를 수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정부는 각기 고도로 훈련된 조사관들을 보내 독자적으로 조사를 했다. 그리고 KAL858기는 북괴가 폭발시켰다는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1988년 1월 21일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하고 북한인들에 대한 입국 비자 발급을 극도로 제한하고, 무역, 투자, 원조, 차관, 금융 거래 등에서 엄중한 제재를 받도록 했다. 이어서 동년 1월 26일에는 일본이 제재를 강화하기 시작했고, UN 차원의 규탄으로 이어져 북한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종북주의자들은 이것을 참을 수 없어 했다. 잘살아 보겠다고 세찬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폭풍을 얼굴에 맞아가면서 고생하고 새까만 얼굴로 돌아오는 근로자들을 공중에서 폭발시킨 김일성의 만행을 감싸주는 짓거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김현희가 폭로한 노무현 횡포
2012년 6월 김현희는 노무현 시절에 그에게 가해졌던 국가 차원의 범죄 행위들을 폭로했다. 경찰청, 방송3사, 좌파 매체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인권위 심지어 국정원까지 합심해서 자신을 가짜로 몰아갔고, 김현희를 해외로 추방하려는 집요한 만행들을 정부 차원에서 감행했으며, 1급 비밀로 지켜왔던 김현희의 거주지를 TV 화면을 통해 널리 보도하는 등의 불법 행위들을 감행함으로써, KAL858 참사는 당시 한국 정부가 조작한 것이라는 결론을 만들어 한국 정부를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는 반면 북한 정권에는 깨끗한 면죄부를 선물하려는 일련의 반역 행위들을 카르텔 형태로 저질러왔다고 폭로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 정보원이 나를 해외로 이민 보내 못 들어오게 한 뒤 가짜 범인이라서 도망갔다고 몰고 가려 했다. 내가 이민을 거부하니까 국정원이 1급 보안 사항인 나의 주거지를 방송에 노출했고 그래서 5년 동안 피신 생활을 해야 했다”
“남편 정모씨는 월간조선(2009년 2월호) 인터뷰에서도 2003년 여름 잘 아는 국정원 간부가 오더니 내부가 시끄러운데 이민을 가줄 수 없느냐는 권고 아닌 경고를 했다.”
“당시 국정원장은 민변 초대 회장 출신의 고영구씨, 2차장(국내 담당)은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박정삼씨였다.”
“국정원만이 김씨를 압박한 것이 아니다. 김씨는 2008년 10월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에게 보낸 편지에서 ‘담당 경찰 간부로부터 2년 정도 타 지역에 거주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고 했다. 이 역시 상부의 지시 없이는 있기 힘든 일이다. 당시 경찰 총수는 최기문 경찰청장이었다.”
“KAL기 사건을 조사하는 핵심은 김정일이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렇게 협박한 당시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위원장은 오충일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김씨를 껄끄럽게 여긴 이유는 김씨가 활동할수록 북한의 소행이 반복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현희씨는 노 정권의 일부 세력이 '김현희 가짜 만들기'에 나선 이유에 대해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오충일 위원장은 'KAL기 사건을 조사하는 핵심은 김정일이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다'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KAL기 폭파 사건으로 미국 정부의 '테러 지원국' 명단에 올라 오랜 제재를 당하고 있었고, 노무현 정부는 미국 측에 북한의 테러 지원국 지정 해제를 요구하고 있었다.”
“김씨는 TV조선 인터뷰에서 "목사 출신인 오충일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위원장은 'KAL기 사건을 조사하는 핵심 이유는 김정일이 하지 않았다는 걸 밝혀내려는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2003년 11월 3일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115명은 기자 회견을 열고 ‘정부가 폭파범이라고 발표한 김현희는 가짜이고 KAL기가 폭파됐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며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보름 뒤인 11월 18일 MBC 'PD수첩'은 천주교 신부들의 기자 회견문을 인용하면서 ‘김현희가 북한에 있을 때 찍었다는 사진이 그가 북한 사람이라는 유일한 증거로 제시됐지만 확인 결과 그 사진은 가짜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같은 프로에 KAL기 진상규명대책위원회 소속 심재환 변호사를 등장시켜 "김현희는 완전히 가짜다. 이건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우리는 단정한다"고 했다. 심 변호사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의 남편이고 이석기 진보당 의원이 연루된 '민혁당 사건' 변호를 맡았었다. MBC에 이어 11월 29일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가, 이듬해 5월엔 KBS '일요 스페셜'이 2부작으로 PD수첩과 같은 내용을 다뤘다.”
“2003.11.18. 방송을 통해 김현희의 아파트 전모를 영상으로 공개한 자들은 MBC PD수첩 이긍희, 최진용 등이다. PD수첩은 '16년간의 의혹,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이란 프로그램에서 김씨가 사는 아파트 전경, 불이 켜진 김씨 집 창문, 김씨 집의 현관문을 두드리는 장면 등을 방송했다. 당시 MBC 사장은 이긍희씨, PD수첩 책임PD는 최진용씨였다.”
기자들 피해 임시 거처로 전전
김현희 부부는 붉은 세력의 표적이 되어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늘 임시 거처였다. 그러던 중 2021년 2월, 김현희의 유일한 보호자 정 모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97년 12월, 김현희와 결혼한 지 23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붉은 세력의 끝없는 괴롭힘 때문에 김현희 부부는 어엿한 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월간조선》 2009년 6월호 <김현희씨의 12년 만의 서울 나들이> 제하의 인터뷰에는 아래 내용이 있다.
“부엌이고 화장실이고 하도 좁아서 혼자 외에는 못 들어갑니다. 생쥐하고 바퀴벌레가 약을 놔도 3개월 지나면 또 생겨요. 쥐가 집에도 막 들어와요. 그게 참 영리하데요. 사람 있으면 못 나가고 있다가, 문 열면 확 나가는 쥐가 많거든요. 바퀴벌레도 요즘 바퀴는 (집게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이만해요. 서양 바퀴인지. 지난 3월에 부산 가기 전날에도 새벽에 자다가 일어나서 이불 위로 지나가는 큼지막한 바퀴벌레를 잡다가 잠을 설쳤어요. 그런데 그런 곳에서 사는 저를 그날은 국가원수 경호하듯이 그러니까 그것도 참 어색하데요.”
1962년생인 김현희는 지금 60이다. 한국에 온 이후 35년 동안 김일성 종교 집단에 시달려 온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녀는 임시 거처의 인생을 이어왔다. 자유가 보장되는 이 사회에서 그녀는 국민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종북자들이 설치한 곰팡이 냄새 진동하는 10평 가두리 장에 꽁꽁 갇혀 있다. 생쥐와 바퀴벌레로부터 또 다른 고통을 당하면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2022.8.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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