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치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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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7-31 16:43 조회3,94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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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치적 (경제)
박정희의 유산
박정희의 경제 업적 중 첫째는 정신혁명이었다. ‘조센진이 뭘 해?’ 자조적이었던 정신에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정신혁명이었다. 농업경제 국가를 중화학공업 국가로 천지개벽을 시켰다. 고속도로와 댐 등 경제 인프라를 건설하고, 광활한 공업공단을 건설해놓고, 세계 최고의 기능공을 양성하여 외국기업들을 끌어들였다.
공업의 자생능력을 키우기 위해 외국에서 한물 간 제품에 대한 기술자료를 배로 실어다 ‘공업’의 ‘공’자도 모르던 기업들에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선진국에 진출해 있던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을 대거 유치해 스파르타식 지도를 하게 했다.
일본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이 지원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케네디에게 돈을 꾸러 갔다가 퇴짜를 맞고 서독으로 날아갔다. 쥐털로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화를 벌었다. 존슨 대통령을 일깨워 월남에 파병을 했고, 천막기업을 월남으로 끌어들여 돈을 벌게 했고 기술을 배우게 했다. 더운 나라에서 단련된 병사들이 제대하여 중동으로 가서 돈을 벌었다. 월남에서도 달러가 들어오고 중동으로부터 특수를 누렸다. 천막기업들이 오늘날의 대기업이 됐다. 포항제철, 소양강댐, 경부고속도로, 호남정유, 충주비료. . 중화학공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어제도 건설, 오늘도 건설, 5천 년 동안 가난을 상징했던 보릿고개는 옛말이 되었다. 1970년대에 세계는 한국경제를 [한강의 기적]이라 칭송했다. 하지만 정권 말기에는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3고(고유가, 고금리, 고달러)의 한파가 한국경제를 두 자리 수의 인플레와 마이너스 성장 그리고 무역적자로 몰아갔다. 바로 이 단계에서부터 전두환은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이라는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냈다.
반도체 국가와 IT 국가 만들어
박정희 대통령은 18년 동안 한국을 세계적인 중화학공업국으로 제조했다. 등소평이 가장 부러워하던 공장이 포항제철이었다. 레이건의 1980년대, 미국은 생산기반에서 일본에 뒤졌다. 미국이 연구개발해서 종이에 새 기술을 담아놓으면, 생산능력이 우세한 일본이 먼저 제조해 돈을 벌었다. 미국에 비상이 걸렸다. 레이건은 미국의 우수한 두뇌들을 모아 '불루 리본 위원회'를 만들었다. '불루 리본 위원회'는 레이건에게 일본을 이기는 방법은 IT(정보기술)와 BT(생명기술)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것이 1980년대 중반이었다.
그런데 전두환은 육사 18기 오명에게 지시해 기계식 교환기를 전자식 교환기로 바꾸어 모든 가정에 전화를 놓을 수 있도록 하라 했다. 날벼락과 같은 지시에 오명은 맨땅에 헤딩을 해서 성공했다. 1985년에 설립된 ETRI(전자통신 연구소)가 한국식 핸드폰을 개발했다.
전두환은 삼성, 현대, LG를 결합하여 핵심 먹거리 기술인 반도체 제조기술을 개발시켰다. 오늘날 우리를 먹여 살리는 기술이 바로 핸드폰과 반도체가 아니던가. 지금 정보기술과 인프라는 일본보다 100리는 앞서 있다. 전두환은 또 다른 육사 천재 김성진 박사로 하여금 국가전산망을 설계토록 했다.오늘날의 국가전산망은 전두환이 만든 것이다. 이는 IT의 기념비로 평가됐다.
20% 내외의 인플레 해결
젊은 두뇌 김재익이 전두환에게 인플레를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인플레 속에서 체신부장관이 견디다 못해 첫 타자로 나서서 우편요금을 올려야 하겠다고 보고했다. 전두환이 말했다. “안 돼, 올리면 나 김재익한테 혼나, 구조 조정해” 이후 모든 정부 부처가 구조 조정을 했다. 모든 공무원 봉급을 동결했다. 전 정부기관에 예산 개혁을 주도했다. PPBS 예산제도에 이어 영기점 예산(Zero Base Budget) 제도를 도입했다. 합법성을 중시하는 예산 집행에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예산 집행으로 전환했다. 물가가 3% 대로 잡혔고, 무역에서는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됐다. 외채를 갚고, 공무원과 기업에만 적용됐던 의료보험이 전 국민에게 확장했다.
올림픽 유치와 한강사업
1981년, 전두환은 국내외 모든 관련자들이 무리한 시도이고 불가능한 시도라고 말렸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여 일본을 따돌리고 1988년 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수상게임을 수용하려니, 한강이 필요했다. 당시의 한강은 그야말로 냄새나는 시궁창이었다. 가뭄이 들면 바닥이 드러나고 똥오줌과 폐기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1982년, 전두환은 ‘한강종합개발사업’을 추진했다. 환경정화 시스템을 설치하고 댐과 보를 만들었다. 한강다리도 증가했다. 4년 동안 1조가 투입됐다. 오늘의 한강은 전두환이 새로 제조한 것이다.
1980년대 초기, 세계의 모든 나라가 불황에 빠져들었을 때, 한국만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는 평가가 고유명사처럼 따라붙은 경제 건설을 했다.
박정희도 경제, 전두환도 경제, 이 두 대통령이 건설한 경제 강국은 이후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 파괴하고, 훔쳐 먹고, 북한에 퍼주었어도 아직도 건재할 만큼 튼튼하고 거대했던 것이다.
이 화려한 업적, 누가 지웠나?
이러한 업적은 누가 다 숨겼는가? 김대중이 주범이었다. 김대중의 꼬붕 되어 경제를 파탄 내려 반역질만 일삼았던 종자들이 어찌하여 민주화 화신되어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의 멘토로 둔갑해 있는 것인가? 박정희는 후진타오, 등소평, 푸틴, 마하타르 등에 우러러 보이는 멘토였다. 심지어는 김정일도 부러워했다. 전두환은 용인만 해놓고 내맡긴 것이 아니다. 박정희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전문가들을 찾아 만나서, 사고와 착안의 폭을 넓혔다.
12.12는 쿠데타 아니었다
어쩌다 전두환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전두환은 쿠데타로 집권하긴 했지만 잘했다”는 말을 한다. 전두환은 쿠데타로 집권한 것이 아니다.
<12.12는 쿠데타가 아니다>
2022.7.3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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