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시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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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7-17 21:49 조회3,0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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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시간 #2
철 지난 쇄국주의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은 쇄국주의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역사 발전에 역행하면서 이 나라를 쇄국으로 끌고 가려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이념세력]들입니다. 이들은 과거 70여 년간 국민을 풍요롭게 가꾸어 준 개방적 민주주의 체제를 뒤엎고 북한을 찬양하고, 북한에 퍼주고, 미국과 일본을 배척하고, 북한과 똘똘 뭉쳐 세계의 중심 국가를 만들자는 그야말로 정신적 무녀리들입니다. 민족과 통일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자신들의 정체를 위장한 간첩들도 있습니다. 좌파에 줄을 서면 지식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얼간이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진보세력입니다. 이들은 이념 말고는 아는 게 없습니다. 주위와 어울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끼리 똘똘 뭉치는 것입니다.
쇄국해서 거지가 된 북한, 개방해서 부자가 된 한국
지금은 시스템 시대입니다. 에디슨과 같은 한 사람의 천재가 우뚝 설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여러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시스템적으로 노력해야 인공위성이 뜰 수 있습니다. 미국도 스위스의 정밀 기술과 일본의 세라믹이 없으면 인공위성을 만들지 못합니다. 직장이 있고, 이웃이 있습니다. 남들과 어울려야 살아갑니다. 하지만 좌익들은 직장과 이웃에 어울리지 못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쇄국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이 좌파이고, 이러한 나라가 북한입니다. 조그만 나라가 일본과 미국 등 앞서가는 이웃들을 배척해서 거지가 된 나라(?)가 북조선이고, 어울려서 부자가 된 나라가 한국입니다.
김영삼의 무식한 객기
논리 속에 사는 사람은 일본의 기술, 자본, 부품, 소재, 자본이 끊기면 한국경제가 금방 추락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지난 IMF 때를 기억하십니까? 서양의 나라들이 한국으로부터 달러를 거두어 갈 때, 우리는 일본에 매달렸고, 일본이 우리를 도와주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일본 제품 의존도를 줄인다는 명분하에 일본 제품만은 수입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었습니다. 그리고 그 못난 짓을 '수입선 다변화 원칙"이라고 포장했습니다. 미국에 장기 출장을 나갔던 사람이 일제 캠코더를 구입해 사용한 후 귀국하다가 김포공항에서 압류 당했습니다. "독일제를 사오셨다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무사 통과됩니다. 그러나 일제만은 안 됩니다". 김영삼 시대였습니다. 김영삼이 중앙청을 폭파시켰고, 남산의 고급 외인 아파트를 폭파시켰습니다.
일본과 미국 덕 가장 많이 보는 자들이 반일-반미
무한경쟁 시대에서는 경쟁력만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내세우려면 먼저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그들을 배우고 그들보다 더 열심히 창조하고 일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런 걸 모르는 철부지들은 SONY제품을 애용하면서도 일본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당장 일본을 증오하는 방송사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방송 장비는 온통 일본 SONY제품입니다. 그들의 프로는 거의 일본 것을 표절한 것들입니다. 일본이 없으면 일지리가 없어질 인생들이 일본을 증오하는 척 하고, 미국에 자식들 유학 보내고 영주권 얻어 살게 하는 인간들이 미국을 증오하는 척 하는 것이 좌익의 생리입니다.
좌파의 생리는 은인을 죽이는 것
우리가 누구 덕으로 해방되었습니까?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을 극적으로 이기지 못했다면 우리가 어찌 일본 치하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6.25 전쟁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그들은 한국인들이 지키지 못한 자유를 찾아주느라 56,000여 명의 생명을 잃었고, 11만 5천여 명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한국이라는 미개한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모르면서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동양인을 구하기 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고 와서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아녀자를 특공대로 앞장세운 북괴에 무수한 생명 잃은 미국
1950년6월30일, 한국에 진주한 미 24사단이 대전 전투에서 15일간에 8,000명을 잃었습니다. 부상당한 사단장 딘 소장이 한국인의 밀고로 인해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좌익들은 이런 미군에 대해서는 양민학살자로 매도했고, 노근리에서 피해를 본 소수의 주민들만 중요하다 떠들어댔습니다. 노근리 피해는 민간복을 입은 자살특공대 때문에 발생한 피해였습니다. 이라크전에서 우리는 자살특공대라는 걸 보았습니다. 어린이, 임신부들에게 폭탄을 들려 내보내 미군을 죽였습니다. 노근리에서도 그랬습니다. 이런 어린이, 부녀자로 구성된 자살특공대의 공격을 어느 군대가 오래 당해 주겠습니까? 그래 놓고 빨갱이들은 미군이 어린아이와 임신부를 죽였다고 대대적으로 왜곡 선전합니다. 좌익들의 전형적인 모략 수법인 것입니다.
6.25 직전의 한국군 간첩이 지휘
6.25때 미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는 당시 한국군의 실상을 보면 매우 잘 나타납니다. 군번 1번 이형근 대장의 회고록만 보아도 6.25직전의 한국군은 좌익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일선 부대의 적정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계속 묵살했습니다. 6.25가 발발 2주 전에 중앙 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인사 이동이 단행되었습니다. 6.25 1주일 전에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위치 교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지형도 낯설고 부하와 상관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을 한 것입니다. 6.11부터 발령됐던 비상경계령이 6.24일 0시에 해제됨과 동시에 전 장병의 50%에게 휴가를 주었습니다. 6.24일 저녁, 전후방 연대장급 이상의 모든 지휘관을 불러 육군 장교클럽에서 댄스파티를 열어 새벽까지 술과 파티를 즐기게 했습니다. 국군이 계속 퇴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방송은 국군이 반격, 북진중이라고 허위 방송함으로써 군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상황판단을 그르치게 했습니다. 5.18때에는 합참의장 유병현이 전남해안 경비를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전남해안 경비부대를 모두 전북 변산반도 이북에 배치시켰습니다.
6.25 직전까지도 방송국은 간첩이 장악
그 때에도 지금처럼 방송들이 좌익에 점령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서울에 있는 애국인사들이 피난을 나가지 못한 채, 모두 인민군에 살해됐습니다. 병력과 군수물자가 한강 이북에 있는데도 당시에는 유일했던 한강교를 서둘러 폭파했고, 폭파 명령을 집행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이 1950.9.21일, 비밀리에 사형 집행됨으로써 폭파를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게 했습니다.
미군의 눈물겨운 6.25 참전
98,000명의 한국군 중 맨몸으로 한강을 건너 남쪽 둑에 모인 병사가 겨우 22,000명이었습니다. 총 한 자루 없이 이 병력으로 무슨 전쟁을 합니까? 6.29일 06:00시, 맥아더 원수가 그의 전용기 바탄호(C-54)를 타고 와서 한강 남쪽 제방을 순시했습니다. 6.30일 04:57분, 그는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전쟁 개입 결심을 받아냈습니다. 트루먼은 2개 사단과 1개 전투연대 파견을 전 세계에 공표했습니다. 당시 미군 병사의 70%는 불과 19-20세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7월 1일 03시, 스미스 부대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구마모도를 출발, 08:05분에 이다쓰게에 도착했습니다. 08:45분,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4대의 C-54기에 탑승하고 부산으로 출발했지만 안개가 짙어 내릴 수 없었습니다. 10회나 회항하다가 15:00시에 겨우 착륙했습니다. 열차를 타고 7.2일 08:00시에 대전에 도착했습니다. 7월 8-15간 제 25사단이 부산에 속속 들어왔고,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군 지휘를 UN군사령관에게 위임했습니다.
한국을 위해 희생된 미군에 숙연해야
1950.6.25.일부터 1953.7.27.일까지, 총1,789,000명의 미군이 참전 했으며, 전투원 전사자 33,665명, 비전투원 사망자 3,275명, 부상자 92,134명, 실종자 8,176명이른 통계를 남겼습니다.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 비문에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제목의 비문이 있습니다. “우리 조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생면부지의 나라, 일변식도 없는 낯선 사람들을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기꺼이 나선 아들과 딸들에게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빨갱이들이 미국, 맥아더, 이승만, 박정희를 증오하는 이유
이 비문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미국이라는 큰 나라가 식민지에 불과했던 못난 나라 한국에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워주게 하는 눈물겨운 비문입니다. 미국이 없고, 맥아더가 없었으면 우리는 지금 공산 치하에서 꽃제비가 되고 아오지에서 신음하다 죽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찔한 일입니까? 바로 미국과 맥아더가 우리나라를 지켜주었기 때문에 빨갱이들이 이 두 존재를 증오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과 거지의 나라를 부자나라로 만든 기적의 영웅 박정희를 죽도록 미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경오를 망실한 좌익들의 병신놀이
빨갱이들은 미군이 엄청난 전사자를 낸 사실을 비웃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당연한 희생이라고 주둥이질을 합니다. 주한미군이 미선이-효순이를 장갑차로 여러 차례 깔아뭉개 확인사살을 했다며 모략전까지 펴면서 주한미군을 몰아내려 발악을 했습니다.
미국이 국익 때문에 한국에 와서 피를 흘렸다는 말을 음미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정신적 귀족이기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들도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돌이켜 보십시오. 프랑스 국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3가지 색깔로 이뤄졌습니다. 이 세 가지는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하면서 피를 흘린 사람들이 추구했던 이상입니다. 그들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죽었습니까? 2000년 유고에서 인종청소에 나섰던 밀로세비치 정권에 폭격을 가했던 미국, 유고에서 무슨 국익을 얻었습니까? 유고에 석유가 있었는가요?
부부지간에도 이용가치 있어야
지난 냉전기간을 살펴보십시오. 미국과 소련은 각기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지키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미국이 한국전에 참가한 것은 한국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 것이며, 침략자 김일성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이었습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이익의 합치’(Goal Congruence)라 합니다. 회사를 보십시오. 사원이 열심히 일할수록 이익이 사원에게 돌아간다면 사원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사원이 열심히 일하면 회사도 이익을 봅니다. 이렇듯 개인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일치할 때에 회사와 개인은 다 같이 번영합니다.
설사 한국전을 통해 미국이 이익을 얻었다 칩시다. 그러면 미국만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고 한국은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았는가요? 요사이 윈-윈 게임을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이익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을 때에 관계가 오래 유지됩니다. 부부지간에도 주고받는 관계가 있어야 결혼생활이 오래 영위될 수 있습니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다른 한쪽은 내내 주기만 한다면 그 결혼생활은 오래오래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한 끼 점심에도 공짜가 없습니다. 하물며 국제관계에 어찌 일방적인 공짜가 있을 수 있습니까? 이는 경영학이나 경제학 교과서의 첫머리에 나오는 ‘협상이론’입니다. 저들은 이런 기본조차 배워보지 못한 무식한 이념주의자들입니다. 협상이 바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얼개인 것입니다. 이념세력은 배운 게 없어 생각하는 것이 단세포적이고 유치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윈윈의 찰떡궁합
미국은 지난 50년 간 북괴의 악랄한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북이 청와대를 기습하고, 이승복 어린이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아웅산 테러를 자행하고, 땅굴이 연속적으로 발견됐을 때, 우리는 얼마나 미국의 도움을 바랬습니까? 카터가 미7사단을 빼내갈 때, 우리는 카터를 얼마나 원망했습니까? 그런데 한국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이념세력들이 이제는 미국 없이도 안전하니까 나가달라고 단말마적 행패를 부립니다.
미국인들이 '일류 시민'이라는 사실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돼 있습니다. 이 엄연한 사실이 한국의 일부 세력이 부정한다 해서 뒤집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러의 미국인, 더러의 일본인들은 못나 보이고 나빠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라면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미국은 우리가 버린 고아와 장애인을 데려다 길러주었습니다. 미국을 비난하는 좌익들은 어째서 이런 고아와 장애아들을 맡아 기르지 않았는가요?
제가 겪은 목가적인 미국인들
미국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땅을 밟아본 적도 없고, 학문의 기초가 없어 배울 능력이 없고, 언어 능력과 매너 등에서 그들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람들이거나 적화통일을 획책하는 좌익들입니다. 저는 1974년 7월. 난생 처음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보았습니다. 그 때에 제가 미국인들로부터 받은 혜택은 한국인들로부터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었으며 이념세력들로부터 듣는 미국과는 전혀 딴판의 나라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몬터레이 반도(Monterey Peninsula)에 작은 비행장이 있습니다. 비행장에 도착하자 이미 재학 중인 선배들과 너그럽게 생긴 미국인 중년 부부가 나와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스폰서(Sponsor)라는 부부였습니다. 제가 미국생활에 원만하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스폰서를 자청했다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얻는 일, 자동차를 사는 일, 면허증을 따는 일, 집기를 장만하는 일들을 일일이 돌보아 준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래서 미국을 다양한 민족을 융화시키는 주전자라는 의미의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부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부녀회관 옆에 커다란 창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주민들이 쓰다가 기증한 침대, 전등, 책상, 소파, 부엌도구 등의 가재도구 등 헌 집기들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저는 스폰서의 도움으로 그것들을 빌려왔습니다. 스폰서는 주말이면 가끔 가정파티를 열어 그의 친구들을 초대해주었습니다. 미국생활의 다양성을 스폰서 혼자 말해주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파티에 초대된 미국 친구들이 십시일반 식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는 단 시간 내에 미국생활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습다.
더러는 계속적으로 친구가 돼주었고, 더러는 면허증을 따는 일에 안내자 역할도 주었고, 더러는 가구를 옮기는 데 트럭도 내주었고, 더러는 사고를 당했을 때 먼 길에까지 와서 차를 견인해주기도 했습니다. 제 아이들은 외국어를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학교에 공짜로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차를 내서 마을을 돌면서 데려가고 데려다 주었습니다.
미국인들은 피부색깔이 다양한 이국인들에 대해서까지 이와 같이 스폰서 시스템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연간 미국으로 흘러드는 이민과 유학 인구는 수만 명이나 됩니다. 월남과 캄보디아로부터 대량으로 유입된 피난민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대량난민에 대해서는 정부의 집중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그 후부터는 스폰서들이 담당했습니다. 못된 미국인과 분쟁이 붙으면 스폰서가 대신 나서서 공정한 관리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일본인의 악독함과 한국인의 악독함 비교해봐야
한국인들은 너도나도 대학에 갑니다. 모두가 대학졸업자들이라 3D업종에서 일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와서 그런 일을 해주어야 국가경제가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가난한 외국인들에게 어떤 학대를 했습니까? 앉아서는 온갖 고상한 말들을 내놓지만 정작 이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자애로운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했던 외국인들이 한국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본은 100년 전에 점령국으로서 우리에게 악행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점령국도 아니면서 불쌍하고 약한 외국인을 인간 이하로 학대합니다. 우리는 잘난 미국인들을 욕하기 전에 못난 우리의 진면목부터 거울에 비춰봐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나라들이 한미 찰떡관계 부러워 해
미국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무역의 가장 큰 파트너요 기술의 공급자입니다. 무역에 필요한 해상통로를 지켜주고 있으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배움의 대상이 돼 주고 있습니다. 좌익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미국은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국입니다. 이런 미국과 막역한 사이로 지내는 것은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처럼 미국과 친해지고 싶어도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버림받으면 한국은 단 몇 달 안에 망가질 수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유익한 나라이지 해가 되는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좌파들은 미국을 어떻게 모략하고 있나요?
좌익들과 운동권 출신들은 미국이 38선을 만들어 남북한을 분단시켰고, 애치슨라인을 잘못 선정해서 우리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비난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1945년 당시, 한국은 영국도 프랑스도 아닌 겨우 ‘쪽바리’(?) 왜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미개국이었습니다. 당시의 일본은 미국과 맞상대를 부른 대단한 나라였고,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피를 흘리다가 원자탄 덕택으로 겨우 일본을 이겼습니다. 미국이 일본을 이기지 못했다면 한국은 아마 지금까지도 일본의 노예국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일본국 국민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에 의해 독립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념세력들은 미국이 당시 우리의 사정을 철저하게 보살피지 않았다며 미국을 원망하고 증오합니다.
좌익과 운동권 출신들은 우리 조상이 못나서 일본에게 점령당한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오직 미국만 욕합니다. 당시의 미국은 유럽전쟁과 태평양전쟁에 휘말려 그야말로 경황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한국 같은 나라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마치 미국이 한국의 부모님이요 법적 후견인이 돼주어야 하는 의무라도 지고 있는 나라인 것처럼 생떼를 쓰면서 미국이 좀 더 우리의 이익을 챙겨주지 않고 38선을 나누어 분단시켰다며 욕을 합니다.
운동권 부부들과의 대화
이렇게 욕하던 운동권 부부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부인의 애로를 다 알고 챙겨줍니까?”. 부인이 먼저 나섰습니다. “저 사람 제 애로 전혀 몰라줍니다”. “그럼 부인께서는 남편의 애로를 알고 있습니까?” 남편이 일언지하에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매일 같이 한 집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부부지간에도 상대방의 애로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1945년 당시 국가도 아니고 식민지에 불과했던 한국의 애로를 미국이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그 운동권 부부는 수긍을 했습니다.
저는 이 부부에게 또 물었습니다. “선생님에게 개인적 애로가 있다고 합시다. 그 애로는 국무총리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합시다. 선생님은 국무총리를 만날 수 있나요?” “그분이 어찌 우리 같은 부부들을 만나주겠습니까?”. “선생님도 국무총리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물며 1945년 당시 한국의 그 누가 미국의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당시에는 한국의 애로를 미국에 전달할 통로조차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전두환 시절까지도 한국은 한국의 애로를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했습니다. 한국은 바로 그런 나라였습니다.
미국 덕분에 독립해놓고도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물에 빠진 보따리를 내놓으라 떼를 쓰는 것이 정당한 행동입니까? 38선이 갈라지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이 못났기 때문이지 미국의 탓이 아닙니다. 소련은 일본이 손 들기 3일 전에 참전하여 38선 북쪽에 진주한 것입니다. 나쁘기로 말하자면 소련이 나쁘지 어째서 미국이 나쁩니까?” 이렇게 말하자 그 부부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부부 중 한 사람이 말을 이었습니다.
교실에서 반미-친북 가르쳐야 앞서가는 선생인 것으로 인식
“저는 학교 선생입니다. 1980년을 전후로 하여 고등학생만 돼도 ‘아리랑’을 읽었습니다. 30세의 한국인 ‘김산’이라는 사람이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싸운 투쟁기였습니다. 그 책은 이념을 추구하는 학생들의 필독서였습니다. 그를 본받아 투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투쟁에 나선 학생은 부모님과의 결별을 맹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맑스-레닌과 주체사상을 모르면 축에 기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이념을 알고, 반미-친북을 해야 대화에 끼어 들 수 있고 앞서가는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전교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 역시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반미-친북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래야 앞서가는 선생인 것으로 알아왔습니다. 저 뿐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사가 그렇습니다. 광주 5.18도 미국이 전두환 정권과 야합하여 일으켰고, 미국은 사사건건 한국정부를 통제하며, 미국이 전쟁을 가장 많이 하는 전쟁광이라고도 가르쳤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마 이렇게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제가 물었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잃었을 때에는 김산의 투쟁기를 공부할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라를 찾은 다음에는 국제경쟁력에서 싸워 이기는 테크노크라트의 생애를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젊음은 주먹을 휘두르라고 있는 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라고 있는 게 아닌가요? 젊었을 때 배우지 못하면 그들의 시대가 와도 주먹밖에는 휘두르지 못합니다. 주먹이 국제경쟁력은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이 한국정부를 사사건건 지배하고 있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시나요? 지금 청와대는 이념세력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도 지금 미국에 조종당하고 있다 말하던가요? 사사건건 미국에 반기를 들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이 전쟁광이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히틀러를 응징하고 일본의 침략성을 응징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대놓고 전쟁광이라 하는 것이 합당한 주장인가요? 김일성의 남침을 응징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 미국이 전쟁광인가요?”.
운동권 세대, 산업화 세대 부러워 해
“지금 어른이 되고 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념 세력에 무비판적으로 물들었던 저희들에게 상당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박사님은 한 가지 이론만 신봉하는 꼴통보수로 알려져 접촉을 피해왔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저의 반미-친북 교육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갑니다. 우리 40대는 당시 사회를 풍미했던 이념이라는 열풍 때문에 어학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고,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비지니스를 하다보니 실력이 많이 딸립니다. 박사님 세대는 공부만 해도 되었던 세대가 아니었겠습니까? 그 세대가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태조 왕건을 보십시오. 왕건을 임금으로 옹립하는데 기여한 장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임금으로 등극하자 이들 공신들은 짐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념세력은 정권을 잡는 데까지는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념 지식만으로 어찌 지금처럼 각박한 국제경쟁력 시대에 국가경영을 주도해나갈 수 있습니까? 이들은 지금부터 국민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일단 잡은 이상 절대로 그냥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2022.7.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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