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시위’는 북의 전략-전술 교범대로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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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3-06-09 00:29 조회10,76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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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시위’는 북의 전략-전술 교범대로 수행!
1982년 3월 20일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이라는 단행본이 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은 남조선인민들의 앞길을 밝혀주는 위대한 혁명적 기치”라는 중간 제목으로 시작하여 남한에서 발생한 ‘빨치산 혁명사건’들에 대한 역사들이 방대하게 기술돼 있다.
여기에는 1980년 5월의 남조선시위에 적용했다는 시위전략과 시위전술이 게재돼 있다.
시위전략
“학교 외의 시위를 위주로 하면서 성토대회, 성명발표, 교내시위, 롱성투쟁 등을 결합하여 투쟁을 중단 없이 벌려나가고, 시내 중심부를 시위구역으로 설정하고, 역량의 집중과 통일행동을 보장함으로써 시위의 정치적 효과를 높힌다”(567쪽 10-13줄).
실제로 당시 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시위를 했지만, 이것이 북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는 누구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 전략의 요점은 1) 주력시위(주공)는 시내중심부에서 벌이고, 성토대회, 성명발표, 교내시위, 농성투쟁 등을 조공으로 하여 중단 없는 공격을 실시하고 2) 모든 시위대들은 집중과 통일된 행동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배합’하라는 북한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남한 학생들이 이러한 군사전략을 시위전략으로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까?
시위전술
“시위에서는 과감한 육박에 의한 경찰저지선의 정면돌파와 경찰의 포위를 역포위로 전환시켜 앞으로 열어나가는 돌파, 분산과 집합, 큰 대열과 작은 대열의 배합, 속도행진에 의한 빠른 기동과 바리케트에 의한 완강한 방어 등으로 주도권을 틀어쥐고 적을 피동에 몰아넣는다. 또한 작은 돌과 큰 돌 심지어는 화염병까지 준비하여 적에 대한 타격력을 높여야 하며, 의학대학 학생들로 치료대를 조직하여 부상자에 대한 응급조치를 받게 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시위와 대중선전을 밀접히 결합시키면서 광장과 큰 거리에서의 집회에 큰 의의를 부여하는 한편, 시민들에게는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고, 공장지대에서는 로동자들에게 확성기로 <함께 나가자!>고 호소하고, 경찰들에게도 같이 싸우자 호소해야 한다.”(567쪽 13-26줄)
여기에서 ‘돌파’, ‘제 역량의 배합’, ‘역포위’, ‘속도전’, ‘주위선동’이라는 군사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는 북한 특유의 군사전술이다. 북한의 전략, 전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배합”이며, 이 전술이 남한 시위에서도 응용되었다는 것이다.
‘돌파작전’은 ‘첨입작전’으로 대표된다. 적의 약한 곳에 최강-대량의 군사력을 투입하여 나무에 쐐기를 박 듯이 거북이 등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포위’란 무엇인가? 경찰저지선을 돌파한 시위대가 저지선상에 늘어선 양쪽의 경찰들을 뒤로부터 둘러싸는 전술이다. 이는 휴전선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우리 군의 방어선을 돌파한 후 돌파병력에 의해 돌파지점 양쪽에 늘어서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우리 군을 뒤로부터 포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에서는 물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던 ‘1980년 5월의 시위’들은 그냥 산발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시위가 아니라, 시위전략과 시위전술을 통달한 검은 ‘시위작전사령부’의 일사불란한 지휘(계획, 명령, 상황파악) 하에 이루어진 작전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파악해야만 한다.
북한이 도출한 광주작전의 교훈
교훈1: “광주인민봉기는 새로운 단계의 반파쇼민주화투쟁을 위해서 귀중한 교훈들을 남기었는데 그 교훈은 첫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승리는 반미투쟁과 결합될 때에만 확고한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609쪽 16-19줄)
교훈2: “광주인민봉기가 남긴 교훈은 둘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청년학생운동과 로동운동과의 결합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심화 발전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609쪽 하3-5줄).
교훈3: “광주인민봉기가 남긴 교훈은 셋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보다 광범한 대중적 지반 위에서 반파쑈민주역량을 형성하고 그것을 조직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610쪽 7-9줄)
모든 역량들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시위가 실패한다는 뜻을 뒤집어 보면 1980년 5월에 자행된 모든 시위들이 조직화를 시도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뒷받침된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매 시기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새로운 구국통일방안을 내놓으실 때마다 그것을 전적으로 지지하여 나섰으며, 원쑤들의 파쑈폭압과 분령책동이 극도에 이른 어려운 속에서도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벌려왔다”(611쪽 하 10-15줄).
남한에서 조성된 정세를 이용하여 김일성이 구국통일방안을 내놓았다는 말이다. 간첩들이 남한의 정세를 파악하여 북에 보내면 북에서 지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대남작전들 중에서 광주폭동이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고 평가한다.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력사에 불멸의 위훈의 탑을 쌓아올린 영웅적 광주 인민봉기는 커다란 력사적 의의를 가지는 사변으로 된다. 영웅적 광주인민봉기는 그 성격에 있어서 민주와 통일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한결같은 지향을 반영한 대중적인 애국적 항쟁이며 가장 높은 형태의 반파쑈민주화투쟁으로 된다.”(596쪽 8-12줄)
대남공작 역사책은 모략이 기본
이 책에도 계엄군에 대한 모략이 지배적으로 표현돼 있다.
“악귀 같은 교형리(주:괴로군)들은 녀학생들을 그들의 부모가 보는 가운데 발가벗기고 젖가슴을 도려낸 다음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였다. 무차별 하갈의 잔학성은 어린이나 늙은이, 임산부들에 대한 만행에서 더욱 몸서리치게 드러났는데 놈들은 광주천 기슭에 쓰러진 어머니의 시체를 붙잡고 우는 4살짜리 어린이에게도 달려들어 ‘폭도의 종자를 멸종시키라’고 하면서 총검으로 참살하고 살인만행에 항거하였다 하여 70대의 할아버지도 하수구에 밀어 넣어 죽였고,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창자가 튀어나온 배에서 태아를 꺼내 던지는 귀축같은 만행도 서슴치 않았다.”(590쪽 하4줄-591쪽 3줄)
“광주시의 도청 지하실 한 곳에만도 얼굴을 알 수 없도록 화염방사기에 그슬리고 찢긴 475구의 시체가 쌓여져 있은 사실만 놓고 보아도 놈들의 살육만행이 . ”(591쪽 14-16줄)
2013.6.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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