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규명위의 위계 공작 널리 알리자(책으로 만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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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6-15 17:21 조회2,8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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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진상규명위의 위계 공작 널리 알리자
송선태는 위원장 자격이 없는데 전라도 권력으로 임명됐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장관급이다. 그 위원장은 송선태가 맡고 있다. 그런데 그는 계엄군법회의에서 2년의 실형을 받았고, 그 대가로 5.18유공자가 됐다. 5.18진상규명 작업에 관한 한, 누가 봐도 송선태는 이해당사자다. 위원장을 맡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가 문재인에 의해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주지하다시피 문재인은 막무가내 생리로 빚어진 골수 공산당이자 간첩으로 폭넓게 의심받는 자다.
5.18진상조사위의 목표는 위계에 의한 지만원 지우기
5.18진상규명 조사위의 목표는 지만원의 연구 결과를 허위로 몰아가고 지만원의 인격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송선태는 비상임위원 이동욱을 앞잡이로 내세웠다. 비상임위원은 회의 때만 참석하여 조사결과를 듣고 거수로 찬성여부에 의사표시를 하는 피동적 존재다. 그런데 이동욱은 낮에만 상근하는 것이 아니라 밤중에도 조사활동을 한다. 일선 조사관의 업무와 위원장 업무를 대행한다. 밤중에 [보랏빛 호수]의 주인공과 저자를 모텔로 불러내 욕하고 협박하고 회유하는 공작을 벌였다.
이동욱과 정규재와 이영훈은 공모 공동하여 20개에 가까운 허위사실을 지어내 지만원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고소/고발인들의 활동을 위축시켜 업무를 방해했다. 허위사실을 방송을 통해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한 죄(7년), 위계와 허위사실 적시로 신용을 훼손한 죄(5년), 상대방을 공격하여 연구 및 전파 활동을 훼방한 업무방해죄(5년), 이 세 가지 범죄가 경합되면 형량은 최대 17년이나 된다.
광수의 탄생
여기에서는 송선태와 차복환이 공모 공동한 범죄를 한 번 더 강조하고자 한다. 나의 연구는 문헌자료에 의한 연구와 영상자료에 대한 연구다. 문헌 연구는 남북한 당국이 작성한 문헌, 통일부 문헌, 5.18기념재단이 보유한 문헌 등 주로 기록물의 텍스트 부분을 기초로 하여 한 연구이고, 영상연구 결과는 2015.5.5.부터 노숙자담요가 만 3년에 걸쳐 발굴하고 학문적 영상분석 기법으로 설명해 낸 661명의 광수다 게으르거나 정신이 병들거나, 수학적 사고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광수를 부인하지만, 학습 자세와 학습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공감을 넘어 노숙자담요의 업적을 찬양한다. 그 제1번째 광수가 2015년 5월 17일 평양 노동자회관에서 열린 5.18 제30주년 기념행사장 로열석에 앉아있던 사람이었다(김창식).
[중앙일보] 입력 2019.05.18. https://dcnewsj.joins.com/article/23471438
송선태와 차복환의 위계에 의한 모략 행위
광주는 5.18 현장 사진의 로고 인물 제1광수를 어떻게든 만들어 내야만 했다. 2016년 10월 13일 제1광수로 내세운 인물이 이강갑이었다. (광주드림)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76000
영화 ‘김군’은 1광수가 광주천 양아치였다고 결론
노숙자담요가 “이 사람은 아니다” 라고 하자 이강갑은 슬며시 사라졌다. 그리고 나온 것이 영화 [김군]이다. 강상우 감독 영화 제작팀이 4년 동안 광주와 전남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아래는 영화의 줄거리다. 자기가 1광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몇 사람 있었지만 모두 아니었다. 이강갑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1광수 얼굴을 금방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막걸리 장사를 하던 부녀였다. 당시 22세였다던 딸 주옥이 영화에 출연했다. 두 사람은 1광수를 김군으로 기억하며 광주천에서 천막을 치고 7-8명이 함께 양아치 생활을 했고, 김군은 막걸리집에 자주 들렸다고 했으며. 어느 날 김군이 높은 차 위에서 멋진 모습으로 대장 노릇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어 음료와 밥을 올려주었고, 사태가 종결되지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전남일보 2019-05-12
https://jnilbo.com/view/media/view?code=2019051213361436586
2022.5.3.에는 즉결처분되었다고 소문났던 김씨 성을 가진 20세가 나타나 1광수라고 주장했다고 보도
2022.5.3. 서울신문은 5.18 당시 즉결처분 됐다던 청년이 42년 만에 1광수로 깜짝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갓 스무 살 나이로 김씨 성을 가진 1광수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광주시 남구 송암동 주택가에서 계엄군에 잡혀 즉결처분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시신이 수습되지 않아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였는데 그 김군이 깜짝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2022.5.3.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504009027
2022.5.4.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1041588.html
2022.5.12. 차복환이 1광수라며 대대적 방송
그 후 10일 만인 2022.5.12. KBS, 연합뉴스 등 수많은 보도매체들이 일제히 차복환이 1광수라고 보도했다. 송선태가 직접 방송에 출연해 차복환이 제1광수이며 지만원의 주장은 허위날조라고 보도했다. 지만원의 학자적 신용이 땅에 곤두박혔다.
https://www.youtube.com/watch?v=zHLyasdORJA
한국일보 특종 보도는 방송 내용과 일치한다.
얼떨결에 나선 5·18 민주화운동, 그해 만 20세였던 차씨가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된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차씨는 석 달 전쯤 광주에 와서 광주교대 인근 공장에서 상패를 만들어 군부대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광주엔 직업군인인 친형이 살고 있었는데, 차씨뿐 아니라 다른 동생들도 형님 집에 의탁하고 있었다. . . 페퍼포그차를 탄 차씨의 모습이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날은 시민군 가담 이틀째인 5월 22일이었다. 형이 "절대 항쟁에 나서지 말고 동생들 잘 챙기고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차씨는 이날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거리로 나선 참이었다.
그날 차씨는 군용 트럭을 타고 화순경찰서 앞 예비군 무기고로 가서 다른 시민군들과 무기를 탈취한 뒤 광주로 돌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트레이닝복 차림이던 차씨는 도청에서 군복과 군화를 받아 갈아입고 차량도 페퍼포그차로 갈아탔다. 머리엔 '석방하라. 김군'이라고 적힌 띠를 둘렀다. 김군은 당시 야당 유력 정치인으로 신군부에 의해 연행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에둘러 쓴 것이었다. 차씨는 차량 상단 사수 자리에 섰다. 다만 그는 차량에 설치된 자동 소총을 다룰 줄 몰랐고 소총 또한 기관총 탄띠를 걸쳐만 놓은 빈총이었다. 이것이 '김군 사진'이 탄생한 배경이었다.
차씨가 속한 시민군 일행은 상무대 방향에서 계엄군 탱크가 몰려오자 일보후퇴한 뒤 조선대로 가서 사격 연습을 했다. 군 미필자였던 차씨의 사격 실력은 엉망이었다. 그는 "총알 10발 중 한 발도 못 맞혔는데, 싸우고 싶은 마음에 한 번 더 쏘게 해달라고 했다"며 "총기를 M1에서 더 가벼운 칼빈으로 바꿨는데도 10발이 전부 빗나갔다"고 떠올렸다.
사격 연습장에 있던 중학생쯤 돼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차씨의 정신을 퍼뜩 깨웠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집에 두고 온 동생들 얼굴과 함께 "동생들 잘 돌보라"는 형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동생들 걱정에 총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급히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니까 동생 두 명이 벌서고 있더라고요. 제가 군복 차림에 총까지 들고 오니까 형님이 더 화가 나서 심하게 혼을 냈어요. 형님이 상무대에 잡혀온 사람들은 다 죽어 나간다고, 제발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형님도 울컥해 하더라고요."
형이 집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차씨는 더는 시민군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에 총소리가 어마어마하게 들렸어요. 나도 같이 싸워야 하는데 마음이 안 좋았죠." 차씨와 동생들은 2, 3일간 꼬박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
문이 열린 뒤 차씨가 향한 곳은 도청이었다. 그곳엔 시민군 시신이 든 관이 줄지어 있었다. "관이 세 줄씩 길게 놓였는데, 벌레가 끓고 피가 흐르는 모습을 보자니 저절로 다리가 풀리더군요. 도청에서 집까지 걸어가면서 엄청 울었습니다." 함께 싸우지 못한 사이 주검으로 돌아온 동료들의 모습에 차씨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매일 술로 버텼다. 그렇게 5·18 민주화운동은 끝났다.
5월 22일 장갑차에 잠깐 타 보고 금방 내려와 집으로 돌아간 것이 그의 민주화운동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2022.5.12. 한국일보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051017080001164
2022.5.12.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34737
제 발등 찍은 차복환과 송선태
그런데 한국일보에는 아래 사진이 있다. 타이어로 요새화한 군용트럭에 타고 있는 1광수와 자기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점을 나타내기 위해 차복환이 제공했다는 사진이 있다.
하지만 차복환이 설명한 사진은 아래 사진 하나다. 윗 사진은 군용트럭에 기관총 사수 역할을 하는 1광수이고, 차복환이 단 한번 앉았다가 찍힌 사진은 아래의 페퍼포그 차량이다. 차복환은 트럭을 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페퍼포그에 앉아 있던 사진은 아래에 또 있다. 차복환은 이 사진에 대해 증언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2019.05.18
https://dcnewsj.joins.com/article/23471438
아래의 7개 사진 모두가 1광수를 촬영한 것들이다.
이 7개의 모션 중에서 차복환이 자기였다고 인정한 장면은 1번 장면뿐이다. 4번 장면은 1광수가 페퍼포그 차량이 아니라 군용트럭을 탄 장면이다. 그런데 송선태와 차복환은 4번 장면은 차복환이 탄 차량이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단지 4번 사진의 얼굴이 차복환 얼굴과 유사하다는 점만을 부각시켰다. 위계를 꾸미는 데에도 서툴렀던 것이다. 차복환은 7개의 장면 중에서 1번 장면만 자기 것이고, 다른 6개의 장면에 대해서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증언한 것이다. 위 7개 사진 중에서 1,2,3번 사진은 1광수가 페퍼포그에 올라앉은 사진이다.
차복환과 송선태는 어째서 차복환의 얼굴이 1광수의 얼굴인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우긴 것이다. 우리나라 방송들도 참으로 저질이다. 기자들의 머리에는 우동사리로만 채워져 있다는 말인가? 아래는 노숙자담요가 내놓은 과학적 얼굴분석이다. 송선태와 차복환은 이 분석이 어째서 틀렸는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나는 차복환-송선태의 위계를 차복환의 증언과 영상분석, 2가지로 증명했다. 동일한 방법으로 내 증명을 무력화시키지 못하면 5.18진상규명위도 송선태 /차복환도 다 날아갈 것이다.
(1) 1광수는 평양에 있다
(2) 차복환이 1광수일 수 없는 이유
(3) 차복환의 자충수
(4) 차복환이 1광수가 될 수 없는 결정적 증거
2022.6.1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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