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클럽] 형성에 방해꾼 1호는 장세동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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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6-01 21:56 조회3,8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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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클럽] 형성에 방해꾼 1호는 장세동일 것
대부분의 국민은 전두환의 돌쇠 장세동을 전두환에 충성한 사람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전클럽]을 시작하면 그가 직-간접으로 나서서 협력해 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판단은 전혀 다르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5.18연구를 왜 하느냐 나를 협박
2008년 나는 10.26사건, 12.12사건, 5.18사건을 모두 엮어 4부작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을 냈다. 5.18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쉬웠지만 10.26과 12.12. 사건은 수사기록이 하도 많고 다각적이어서 퍼즐 맞추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내가 군대 내에서의 다양한 경력으로 군을 좀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2개 사건에 관련된 군법과 법률과 규정은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구나 수사용어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를 참고해야 했다. 그야말로 신의 경지라 할 만큼 몰두하여 초벌(draft)을 인쇄해 5공 계열의 주요인물들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다른 인물들은 성실히 검토하여 등장인물에 오자까지 교정해 주었다.
그런데 장세동에 전화를 했더니 매우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신 이 시점에 그 역사를 쓰는 저의가 뭐요?”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선배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셨지요?” “나는 안기부장을 했다. 지금은 더 이상 안기부장이 아니지만 당신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을 다 추적하고 있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자 그는 한동안 횡설수설했다.
반면 당시 보안사의 핵심 실무 정보를 총괄했던 이학봉(육사18기)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29년 전, 10.26에 대해 수사를 할 때, 보안사에서는 최고의 베타랑급 수사관들을 투입시켜 여러 날 밤을 새워가면서 퍼즐 맞추기에 애를 써서 겨우 퍼즐을 맞출 수 있었는데 당신은 29년 전의 사건을 수사관도 아니면서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뀌어 맞주었소, 육사에 당신 같은 천재 있다는 말 못 들어 보았는데. . ” 육사 16기 장세동과는 딴판이었다.
2. 현충원 28묘역에 가지 말자 특전사 지휘관들 선동
2014년 5월 18일,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은 장세동 및 광주에 투입됐던 여단장 등 20여 명과 함께 오전 10시30분경에 서울현충원에 와서 잠깐 28묘역을 둘러본 후, 현충원 내의 VIP실에서 회의도 하고 식사를 한 후 오후 3시경 현충원을 나갔다.
오후 2시, 계엄군으로 전사한 장병들을 충신으로 선포하는 의식이 거행되는 순간 정호용 장군은 약속 시간에 오지 않았다. 박희도 장군, 정진태 장군, 이종구 장관, 고명승 장군 신윤희 장군 등 5-6공 시대의 다른 인물들은 필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 참석했지만 그 보다 먼저 필자와 약속한 정호용 전 장관은 아무런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았고, 다급하게 거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날 전국 각지에서 1,000여 명의 국민들이 참석했다. 제주도에서도 4명이나 참석했다.
이들 20여 명의 핵심 5공 인물들은 우리가 도착하기 훨씬 전인 오전 10:30분에 현충원 VIP실로 가서 장장 4시간 동안이나 마라톤 회의를 했다. 오후 2시 나는 참석자들에게 정호용 장군이 참석했다고 공지까지 했다. 그런데 그는 현충원에서 장장 4시간을 보내면서도 회의만 하고, '계엄군의 날'을 선포하는 그 역사적인 자리를 회피하고 돌아갔다.
진상을 알고 보니 그날 5공 인사 20여 명이 와서 회의를 한 결과 그 자리에는 갈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냈고, 그 결론을 강력히 주장한 사람은 장세동이었다.
1. 지만원은 자기의 인기를 위해 정치적인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날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그런 데 동참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2. 지만원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고 지만원은 문제(언론에 공격당한 것)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사람 옆에 있다가는 우리에게도 흙탕물이 튈 수 있다.
3. 5.18에 북한군이 왔다는 데 대해 아무런 증거가 없고, 지만원이 주장하는 논리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지만원에 동조할 수 없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
4. 5공은 지난 5월 18일에 처음으로 현충원에 왔고, 전사한 부대원에 꽃다발을 처음 바쳤다. 이후 우리는 광주 사망자들에 대해 우리대로 조용히 우리만의 도리를 할 것이다. 27명중 공수부대요원은 15명뿐이지 않는가. 나머지는 다른 부대 사람들이다.
5. 우리가 (왜 난 데 없는, 대령에 불과한) 지만원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나
6. 우리는 전과자다. 우리 생전에 재심을 통해 전과를 벗을 기회는 없다. 우리의 나이도 많다. 결론은 뻔한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지만원 하는 일에 리스크를 감수해가면서 동참해야 하는가?
7. 지만원은 국민의 60% 정도가 5.18을 폭동으로 알고 있다고 하던데 우리가 보기엔 어림도 없다. 대부분의 국민이 지금도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알고 있다.
2014년 5월 18일 서울 현충원에 오신 모든 분들은 5.18과 아무런 관계가 없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분들은 오직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그 자리에 오셨고, 그분들을 포함한 수많은 애국자들이 전국각지에서 필자가 보내드리는 책들을 이웃에 전파하고 있다. 그런데 5공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수군 지만원의 행동을 평가만 하고 있었다.
우리가 공수부대의 명예를 회복시키려 하는 것은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해야만 대한민국이 살고 광주시위대가 내란 폭동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서이지 정호용 등 당시 공수부대 인물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5공 및 당시 공수부대 사람들은 우리 애국세력이 하는 일이 그들의 이익(연금을 탈 수 있는 복권)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지만원을 믿을 수도 없고 지만원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멀리 선을 긋겠다고 한다.
그들은 나이가 많아 살아생전에는 전과자의 딱지를 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명예회복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들이 일선에 나서면 오히려 또 다른 곤욕만 치를 뿐, 아무런 성과가 없을 것이라 한다.
이들 5공과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 5공사람들은 오로지 바라는 목표가 재심을 통한 전과자 딱지 떼기다. 역사인식이 없는 이기주의적 소원뿐인 것이다. 살아생전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에, 우리가 추진하는 공수부대의 명예회복 운동에 동참할 수 없다고 한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처음부터 ‘우리가 이긴다’는 비전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야할 길이 이 길밖에 없기 때문에 5리를 가든 10리를 가든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도 5공사람들과는 달리 날이 갈수록 이런 애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5공 사람들은 참으로 부끄러운 길, 공명정대하지 못한 그늘 길로 들어서 있다. 아마도 이들은 북한특수군 600명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서글픈 것은 5공사람들이 우리에게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이런 한심한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5공에서 총장을 하고 장관을 하고 국정원장을 하는 등 8년의 세월을 호령하고 호화를 누렸다는 것이다. 구역질나고 슬프다. 김재규의 표현 그대로 전두환 주위에는 이런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몇몇 훌륭한 분들도 있었겠지만~
2022.6.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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