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말하는 매카시는 미국 최고의 애국자로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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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2-06-07 10:22 조회17,2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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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이 말하는 매카시는 미국 최고의 애국자로 재평가
우리 모두가 매카시와 같은 위대한 애국자가 되자!!
매카시는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50년 2월, 미 국무부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침투했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했다. 이런 폭로만으로도 미국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국무부 사람들은 “내 옆에도 빨갱이가 있을지 몰라” 하면서 친구들에 대해서까지 속으로 의심을 하고 경계했다.
위장한 빨갱이들의 역습이 시작했다. “빨갱이가 어느 부서의 누구인지 실명을 밝혀라” 후에 밝혀졌지만 매카시는 205명의 인권을 고려하여 ‘비공개청문회’에서만 밝히고 일반에게는 함구했다. 이를 놓고 빨갱이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매카시를 향해 “ 근거 없는 폭로자” “마녀 사냥자” “꼴통”등으로 매도했다. 멋모르는 미국인들은 빨갱이들의 공격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여 매카시를 공격했다. 결국 매카시는 노도와 같이 분출되는 여론에 치어 40여년 동안 악마로 매도당하다 초라한 생을 마감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됐다. 소련의 기밀문서가 해제됐다. 미국의 기밀문서(특히 NSA의 베노너 프로젝트 기록)를 통해 매카시가 지목했던 상당수의 정치인, 관료인사들이 소련의 간첩이었거나 그들과 내통한 사람들이었거나 빨갱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매카시가 지목한 여러 사람들(Alger Hiss, Harry Hopkins, Harry Dexter White)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됐고, 국무부차관보, 재무부 차관보 , 루스벨트의 전쟁정책 보좌관, CIA 참모장 들이 다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얄타회담에 참가했던 국무부 고위 관료 엘저 히스는 평소 “나는 매키시의 희생자다, 억울하다”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소련문서에는 그가 소련의 간첩으로 등록돼 있었다. 로젠버그 부부는 원자탄 기술을 소련에 넘켰다고 기록돼 있었다. 브레튼우즈 협정을 탄생시킨 재무부 고위 관료 해리 화이트 등 수많은 고위급 관료들이 소련 간첩으로 등록돼 있었다.
이런 내용들은 헤인스와 클레르가 2003년에 쓴 책 ‘부인(否認)’은 물론 아서 허먼의 ‘조지프 매카시’(2000년), 테드 모건의 ‘빨갱이’(Reds, 2004년), 앤 쿨터는 자신의 저서 "Treason: Liberal Treachery from the Cold War to the War on Terrorism" 등의 저서들에 낱낱이 기록돼 있다.
앤 쿨터는 그의 위 저서에서, 소련의 기밀문서들과 KGB소속 요원들의 증언 등을 통해 매카시의 대다수 주장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후 윌리엄 노먼 그릭과 메드포드 스탠턴 에반스도 비슷한 주장들을 내놓았다.
1953~54년의 ‘매카시 비공개청문회’ 자료도 공개됐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월드지(誌)는 소련과 연계된 미국 내 공산주의자에 대한 매카시 의원의 기소내용이 상당부분 사실이며 매카시의 기소 방법도 선동적이라기보다는 인권보호를 염두에 둔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기사는 공개된 자료가 기존의 평가와는 반대로 매카시 의원이 증인이나 용의자로 지목된 자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음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공개 청문회에 앞서 가진 비공개 청문회는 대중 앞에 드러낼 적당한 희생양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시민을 보호하는 장치였다고 했다.
조지 메이슨 대학의 헤르만(Herman) 교수는 2000년 발간된 그의 저서 ‘가장 혐오 받는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의 삶과 업적에 대한 재조명(Joseph McCarthy: Re-examining the Life and Work of America’s Most Hated Senator)’에서 매카시 의원을 높이 평가했다.
이런 것들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조지프 매카시 의원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고, 결국 매키시는 미국을 지켜낸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됐다.
이러한 사례는 월남에서도 있었고, 독일에도 있었다. 월남에서는 대통령 비서실장, 군사령관, 부통령, 대통령 출마 차점자 등 수많은 핵심부서들을 간첩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1989년 동독이 패망하기 직전까지 서독정부에도 간첩들이 우글거렸다. 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지 문서가 노출되면서 '정권의 골키퍼가 간첩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브란트 총리의 서류가방을 들고 다닌 비서가 슈타지의 첩자였다. 슈타지는 섹시한 남자 공작원을 보내 서독 정부내 여비서들을 포섭하여 정보를 빼냈고, 서독내의 친동독 세력을 동원하여 반공정치 지도자들을 매장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이런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한때 서독에서 '동독을 편드는 것이 진보적이란 지적 분위기'가 팽배했었고, 여기에 더해 슈타지에 약점 잡힌 언론인들이 반역적 보도를 해댔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우리 실정과 꼭 빼닮았다.
지금 이해찬은 6월 6일, 그들을 공격하는 여론과 언론과 박근혜 및 이명박을 향해 "매카시적 광풍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면 이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이해찬이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매카시는 미국을 빨갱이들로부터 구한 애국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빨갱이들에 희생당했지만, 지금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미국을 지켜낸 영웅으로 재평가된 것이다. 평화롭게 앞을 향해 달려야 하는 이 땅에 침입한 독사의 자식들, 이 독사들은 수치라는 것을 모르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한국판 매카시'들을 향해 목을 쳐들고 달려든다. 우리 모두가 위대하고 훌륭한 매카시가 되어 머리 쳐들고 위협하는 독사의 머리들을 몽둥이로 패야 할 것이다.
2012.6.7.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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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시즘의 진실
제공: 꿈꾸는 자
이른바 ‘매카시 시대(McCarthy Era: 1947~1954)’ 중에 분류된 정부기밀문서가 법적 비밀문건 보존기한 만료와 함께 일반에게 속속 공개되면서 최근 미국에서는 ‘매카시즘(McCarthyism)’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주목된다.
흔히 ‘매카시즘’하면 40, 50년대 미국을 풍미했던 ‘마녀사냥’식 대중선동과 반(反)공산주의 광풍(狂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위스콘신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인 조셉 매카시(Joseph McCarthy)가 주도한 이 운동은 초기에는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전쟁 발발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움직임과 맞물려 미국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으나 이후 공산주의자 적발 과 추방의 선정적인 색채를 띄게 되고 유력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처벌 대상으로 지목되기 시작하면서 정치권의 거센 공격과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됐다. 매카시 의원은 이 과정에서 악의적인 ‘대중선동가(demagogue)’라는 오욕(汚辱)을 얻게 됐다.
5월 공개된 문서, 매카시즘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제공
하지만 50년간 기밀문서로 분류됐던 1953-54년 매카시 비공개청문회 자료가 최근 일반에게 공개되면서 매카시 의원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이해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월드지(誌)는 6월 16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지난 5월 5일 공개된 4,232 페이지 분량의 매카시 비공개청문회 자료를 분석, 보도했다. 잡지는 소련과 연계된 미국 내 공산주의자에 대한 매카시 의원의 기소내용이 상당부분 사실이며 매카시의 공개기소 방법도 선동적이라기 보다는 인권보호를 염두해 둔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기존의 평가와는 반대로 매카시 의원이 증인이나 용의자로 지목된 자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공개 청문회에 앞서 가진 비공개 청문회는 대중 앞에 드러낼 적당한 희생양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시민을 보호하는 장치였다는 것이다.
조지 메이슨 대학의 헤르만(Herman) 교수는 2000년 발간된 그의 저서 ‘가장 혐오 받는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의 삶과 업적에 대한 재조명(Joseph McCarthy: Re-examining the Life and Work of America’s Most Hated Senator)’에서 “최악의 매카시 시대에서도 적법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소되거나 억류된 시민이 한명도 없었으며 공산당 입당도 불법으로 간주되지 않았다”면서 매카시 의원에 대한 기존의 비난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매카시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공산당을 불법화해 일반 개인의 자유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유국가를 수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행정부로부터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매카시의 ‘마녀들’
지난 5월 공개된 매카시청문회 자료는 또한 당시 매카시즘 광풍의 ‘희생자’로 불리며 소련 스파이 혐의에서 벗어났던 자들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맨하탄프로젝트(미 핵개발 계획)의 중심 인물이었던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Oppenheimer)도 그 중 한명이다. 매카시 청문회는 1953년 소련 공산당의 일원으로 17년간 미국에서 활동해온 폴 크라우치(Crouch)를 증언대에 세우고 그가 오펜하이머와 접촉했다는 사실과 미 정부 고위 관리가 오펜하이머를 비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연방재판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았으며 크라우치는 어떤 압력으로 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소련의 KGB국장을 지낸 수도플라토브(Sudoplatov)는 1994년 발간된 자서전에서 미국의 핵기술을 빼내오기 위해 오펜하이머 등 핵물리학자들을 설득해 접촉해 왔던 사실을 밝혔다. 매카시의 기소내용이 사실이었음이 뒤늦게야 드러난 것이다.
소련 공산당 정부의 미국 침투는 1950년대 초반 절정을 이뤘다. 특히 1949년 국무장관이 된 아치슨(Acheson)은 미국이 소련을 국가로 인정한 1933년 이전 유임(有賃)으로 소련의 변론을 맡은 바 있던 인물이었다.
1950년 3월 매카시 의원은 국방부 내 소련 간첩의 침투사실을 폭로하며 오웬 래티모어 (Lattimore), 존 스튜어트 서비스(Service), 필립 제섭(Jessup) 등 9명의 인사의 이름을 공식 거명했다. 하지만 매카시 의원의 발언을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민주당의 타이딩(Tydings) 위원회는 매카시의 기소내용이 ‘사기’와 ‘속임수’라며 매카시를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수년 뒤 래티모어, 서비스, 제섭은 소련과의 연계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 직위가 박탈됐으며 매카시에 의해 타이딩 위원회에 제출된 행정부내 110명의 직원 중 81명은 1954년까지 소련과의 연계혐의가 인정돼 처벌 되거나 면직됐다.
동료들의 평가
1960년대 이후 미국인들이 중*고등학교에서와 미디어를 통해 반 매카시즘 교육을 받아온 것에 비해 매카시 의원의 동료와 동시대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매카시 의원에 대해 높이 평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리버콤(Rivercomb) 상원의원은 “국제음모에 대한 매카시의 불굴의 캠페인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공산주의의 모습을 훨씬 강력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골드워터 상원의원은 “매카시를 애도하지 말라. 창조주로부터 부여 받은 재능을 갖고 꼭 필요한 시기에 그가 살았다는 사실을 감사하라…그가 있었기에 미국은 더욱 밝고, 안전하고 국가가 됐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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