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 307] 5.18규명의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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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8-07 09:42 조회8,1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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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 307]
5.18규명의 마침표.
-간절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
5.18정신 요약
5.18 22년 연구에 종지부를 찍었다. 발굴된 진실은 5개.
1. 5.18은 북괴가 전면 남침의 마중물 수단으로 일으켰다. 성공하면 남침으로 연결됐다. 10세 미만 때 징집하여 김신조급 살인기계, 만능 맥가이버급으로 양성한 공작 요원 600명이 광주에 파견돼 5월 21일 광주교도소를 공격하다가 490명이 하룻밤에 몰살당했다. 5월 21일, 야간 공격에 대응해 공수부대가 사용한 실탄은 484,840발이었다.
2. 1997년 2월, 490명에 대한 명단을 황장엽이 선물로 가져왔다. 당시 전두환은 감옥에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전두환은 영웅이 되고, 김영삼과 권영해가 지옥에 가야만 했다. 전두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감옥에 넣은 자는 김영삼과 권영해. 이 두 사람은 그래서 5.18의 진실을 극비에 부쳤다.
3. 1995~‘98년 북한 주민 3백만이 아사했다. 김정일이 다급해졌다. 현금과 물자가 억수로 필요했다. 5.18은 김대중의 아킬레스건이다. 5.18의 진실이 알려지면 김대중과 민주당과 전라도는 날벼락을 맞는다. 그래서 김정일은 5.18로 김대중을 협박했다. 김정일이 김대중의 심복 김경재를 평양에 불러 490명이 안치된 인민국 ’애국 렬사묘‘를 보여주었다. 김경재의 보고를 받은 김대중은 그 순간으로부터 김정일의 개가 됐다.
4. 5.18의 진실이 땅에 묻혔기에 국민은 전라도의 노예가 되어 주머니를 털리고 입에 재갈이 물렸다.
5. 5.18 세력의 기승으로 국가는 대책 없이 적화되었다.
시대의 인물 권영해와 김경재의 폭탄 증언
권영해와 김경재는 역사의 한 페이지씩을 차지하는 증인이었다. 권영해는 국방 장관과 안기부장을 지낸 인물이고, 김경재는 국회의원과 자유 총연맹 총재를 지낸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이 필자의 22년 연구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학자의 연구 결과가 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데 대해 공증(Notarization)도장을 찍어준 것이다. 5.18의 진실을 먼저 털어놓은 사람은 김경재. 2023.5.10.대한언론 KNews를 통해 진실을 밝혔다. 엄청난 폭발력을 갖는 내용인데도, 언론들이 외면했고, 국민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다. 전달력도, 국민의 소화력도 이 내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5.18을 북한이 주도했다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와도 같은 이 말은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사회에 조금도 흡수되지 못했다. “5.18을 북한이 주도했다”는 이 말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4.6.30.과 7.8 권영해가 두 차례에 걸쳐 일간지 ’스카이데일리‘에 또다시 털어놨다. 이 두 인물들이 털어놓은 내용을 시간표 순서대로 정리한다.
1997년 2월, 권영해가 확보한 진실
권영해가 밝힌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5.18을 북한이 주도했다는 사실과 광주에 와서 전사한 490명의 명단이다. 명단의 제목은 [남조선 통일전선]을 위한 투쟁에서 전사한 조선인민군 렬사 자료]이고, 여기에는 490명에 대한 이름, 태어난 곳, 생년월일, 입대 연도, 전사 연월일, 군사 칭호(계급) 순의 인적 사항이 기재돼 있다. 이 자료의 제목은 북한의 5.18노래 [무등산의 진달래]의 가사와도 일치한다. ’동강 난 조국 땅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통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광주에 와서 억세게 싸우다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명단의 기록을 보면 몇 명의 중사 및 상사를 제외하면 모두가 위관급 장교이며, 모두가 5.18 당시 30세 전후의 나이였다.
이런 구체적인 자료는 적장의 서랍에서나 꺼내올 수 있는 자료이기에 국정원의 공작 실력으로 꺼내올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김영삼을 모시는 국정원이 구태여 이런 극비의 명단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구해올 이유도 없었다. 이는 황장엽이 1997.2.12. 망명하면서 5.18을 북한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입증시키기 위해 가져온 것이다.
김영삼의 반역
1997년 2월, 이때 권영해는 5.18의 진실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싶은 입장에 있지 않았다. 솔직히 그에게 5.18의 진실을 가져온 황장엽은 불청객이었고 뜨거운 감자였다. 왜냐하면 5.18을 북이 주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감옥에 있는 전두환이 영웅이 되고 김영삼과 권영해가 지옥으로 가야만 했다. 김영삼과 권영해는 그들의 개인적 영달을 위해 5공 역사를 뒤집었다. 5공 설립자들을 억울하게 감옥에 넣은 죄를 감추기 위해 북의 남침행위를 은닉시켰다.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들인 것이다.
김대중은 김정일의 개
1995~’98년, 김정일은 북한 주민 300만을 굶겨 죽였다. 달러와 물자가 다급해진 김정일이 김대중을 협박하여 남한의 재산을 갈취하려고, 김대중에게 심복을 보내라 했다. 김경재가 김대중의 심복 자격으로 1999년 12월 6~14일 8박 9일간 평양에 머물렀다. 온갖 호의를 보였을 김정일은 김경재에 두 가지를 각인시켰다. 첫째는 달러가 매우 급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5.18을 확실하게 북한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인민군 렬사묘’를 보여준 것이다.
김경재는 이 두 가지를 김대중에게 전달해 주면서, 현찰은 위험하니 조심해야 한다는 진언을 했다. 이후 김경재는 김대중의 눈 밖에 났고, 김대중은 김정일의 개가 되어 정상회담 대가로 4억 5천만 달러를 제공했다. 금강산 관광, 개성 관광사업을 열어 국민 주머니를 털어서 주었다. 대기업에겐 북에 지원을 하라며 닦달을 했고, 쌀과 비료를 30만 톤, 50만 톤 단위로 퍼주었다. 인민군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해군에 절대 먼저 쏘지 말라는 명령으로 손발을 묶어 우리 장병의 생명을 북에 바쳤다. 김정일의 개노릇을 하느라 반역질, 간첩질을 수도 없이 했다. [5.18을 북한이 주도한 것이 남한에 알려지면 김대중과 전라도와 민주당이 날벼락을 맞게 돼있었다. 이것을 숨기기 위해 김대중이 김정일의 개가 되었고, 국부가 북으로 유출되고, 수많은 국민이 북의 노예가 되고 전라도 노예가 된 것이다.
전라도로부터의 해방
악취가 진동하는 5.18, 사기극! 장막을 벗겨 보니 그것은 세계의 유례가 없는 가장 추악한 사기 드라마였다. 순진한 국민은 그 더러운 사기극의 희생양이 되어 전라도의 종이 되었다. ‘민주화의 기수’라던 김영삼은 패악의 사기꾼이었고 ‘민주화의 신’이라는 김대중은 김정일의 개가 되어 북에 한없이 퍼주었다. 전라도는 세도 집단이 되어 국가 위에 군림했고, 타 지역 국민을 호령하면서 주머니를 갈취하고 말도 못하게 입에 재갈을 물렸다. 민주화? 민주화했다는 인간치고 빨갱이 아닌 인간 보지 못했다. 북한 사전에서 ‘민주화’를 검색하면, 주체사상 전파에 방해가 되는 미국, 남한 정부, 자본가를 까부수기 위한 투쟁이 곧 민주화라고 정의돼 있다. 민주화했다는 인간들의 업적이 무엇인가? 김영삼은 누구인가? 전두환 업적을 사기 사업으로 몰고, 전두환에 없는 죄를 만들어 씌웠던 패륜 협잡꾼이 아니었던가? 김대중은 누구인가? 천하의 사기꾼 출신으로 적장을 섬기는 개노릇을 한 인간이 아니던가?
5.18은 저주의 단어다. 민주화도 저주의 단어다. 이제 우리는 전라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들이 무릎을 꿇지 않는 한 전라도와 싸워야 한다.
이 진실을 널리널리 알리고 계몽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민주당이 벌이는 막장 치매 행각을 고통스럽게 지켜볼 이유도 없다. 빨갱이가 입만 벌리면 하는 말 ‘민주항쟁’? 이제부터 우리는 ‘반 전라도 반 사기 국민 항쟁’을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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