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시대에 5.18끝내자, 날치기 작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3-23 00:03 조회3,84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문재인 시대에 5.18끝내자, 날치기 작전
5.18을 북한특수군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정황증거가 있습니다. 이 42개 증거를 허위사실로 입증하지 못하면 5.18은 북한의 소리 없는 남침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광주도 법원도 42개 증거에 대해 도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북한군 개입’ 42개 증거가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공식화된 것입니다. 이승만 학당이 나서서 북한의 전범행위를 감추어주고 있습니다. 이 42개 증거에 대한 반론을 펴는 것이 아니라, 이동욱이라는 고졸 출신을 저격수로 내세워 지만원에 대한 인신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동욱은 2019년 2월에 문재인이 자격미달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해 11월에 문재인이 직접 5.18상규명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했습니다. 앞 거래에서는 부결하고, 뒷거래에서 결재를 한 것입니다.
비상임위원은 회의가 있을 때만 회의장에 나가는 직책입니다. 그런데 이동욱은 사실상 5.18진상규명위의 위원장, 대변인, 공작원으로 행동합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동욱의 독무대가 되었습니다. 북한 특수군 신분으로 5.18에 직접 참전했었다는 탈북자 정명운의 진술이 담긴 책, [보랏빛호수]가 허위사실로 쓰였다는 것을 자백받기 위해 정명운을 모텔로 불러내 4시간에 걸쳐 협박하고 회유했습니다. 딸들의 장래를 미끼로 협박한 것입니다. 이에 정명운이 무릎을 꿇고 허위사실을 자백했습니다. 이어서 이 책의 저자 이주성을 밤 10시에 성남 ‘인투모텔’로 불러내 “지만원도 나에게 와서 살려달라 빌었다”는 등의 거짓말로 협박하고 회유하다가 녹음을 당해, 협박사실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가, [이승만tv]와 [정규재tv]에 고정 출연하여 온갖 거짓말과 요설을 피면서 지만원을 인격살인하고 있습니다. 42개 증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요설만을 가지고, 북한의 비밀 남침범행을 숨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간첩행위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빨갱이들이 북한특수의 전과를, 구두닦이 등 광주양아치 계급이 주도한 한국판 ‘마그나카르타’라며 성골행세
5.18유공자들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받아 호의호식합니다. 공짜 혜택 증서가 한 바구니 가득합니다. 자식들까지 가산점 받아 좋은 직장 선점합니다. 정치적 사회적 지위를 독점하여 점령군 행세를 합니다. 봉이 된 국민은 알고 싶어 합니다. 유공자가 1만 명을 언제 넘었는지, 가산점을 받는 사람이 70만을 넘었는지, 누가 유공자인지, 무슨 공로를 세웠기에 그리도 찬란한 유공자가 되었는지 알려 달라 애원했습니다. 이에 광주 점령군사령부가 거만을 떨었습니다. “유공자가 몇 명인지, 특혜자 명단에 누가 들어 있는지, 무얼 해서 유공자가 됐는지 느그들은 알 거 없다. 부지런히 세금이나 바치고, 5.18정신을 자자손손 기리도록 자식교육이나 철저히 시켜라.” 결론적으로 5.18은 국가역사가 아니라 그들의 이권증서요, 점령군 신분을 표시하는 마패인 것입니다.
5.18은 김일성이 전라도를 북한의 위성국으로 만들기 위해 선전포고 없이 일으킨 게릴라전
김일성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당하자마자 살인기계로 양성한 특수군을 10~20명 단위로 6개월여에 걸쳐 잠수함과 산맥을 이용하여 침투시켰습니다. 영화 [김군]이 밝힌 바와 같이 이들은 광주천 등 다리 밑에 천막을 치고 넝마주이 등으로 위장하여 시가지를 정찰하고 작전계획을 짠 후 5월 18일 08시를 공격개시 시간으로 하여 국제 용병 수준의 게릴라전을 수행했습니다. 지만원은 10여 권을 책을 통해 ‘북한의 게릴라전’을 입증하는 42개 정황 증거를 내놨습니다. 이로 인해 2016년부터 재판에 시달려왔습니다. 5.18로 먹고, 취직하고, 으스대는 붉은 집단의 역린을 건드린 것입니다.
광주운동권 인물들, 항쟁본부 최고 유공자들, 치열한 충돌기간(5.18~5.24)에 불참
광주-전남지역의 운동권 선두에 섰던 윤한봉과 박관현은 5월 17일 이전에 도망갔고, 남아 있던 정동년은 체포됐습니다. 광주지역 운동권들이 5.18시위현장에 없었던 것입니다. 김종배, 윤상원 등 5.18 최고반열의 유공자들은 훗날 ‘항쟁본부’라고 개명된 ‘시민학생수습위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며, 이 위원회는 5월 25일에야 전남도청에서 꾸려졌는데, 이들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 1980.5.25일 이전에는 광주시민들이 조직한 시위대가 없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5.18 10일간의 시위는 5.18~24까지의 ‘무장폭동’ 기간과 5.25~26의 ‘수습’ 기간, 그리고 5.27새벽의 ‘진압’ 순간으로 분리됩니다. 5.18 최고 반열의 유공자들은 5.25에 각자 도청에 들어가 갑론을박하다 진압된 사람들입니다. 유공자들이 개칭한 ‘항쟁본부’는 바로 수습 차원에서 5월 25일에야 형성됐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5.18~24 기간에 괴력을 과시했던 무장시위에 대해서는 이를 조직하고 지휘한 사람이 광주에 없는 것입니다.
광주 바닥에 어울리지 않는 불가사의한 전투프로들
1980년 5월 21일의상황이 매우 특별합니다. 부대이동 계획은 극비로 취급됩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300명 집단이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정확히 08시에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장애물을 미리 설치한 후 매복하고 있다가 정확히 08시에 그곳을 통과하는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하여 이웃에 있는 군납업체 ‘아시아자동차공장’으로 향했습니다.
09시, 또 다른 300명이 다섯 대의 버스를 타고 아시아자동차공장으로 와서 매복부대 300명과 합류하였습니다. 이들 600명은 삼엄하게 경비되고 있던 아시아자동차 군납공장을 점령하여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0여 대를 탈취하여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는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300여 정의 총기와 다수의 폭발물을 탈취하였습니다. 도청에 2,100발의 TN폭탄을 조립해 놓았습니다. 광주시를 히로시마 잿더미로 초토화시킬 수 있는 분량이었습니다.
빨갱이 대법원장 김명수가 사조직을 키워 붉은 판결문을 쓰게 합니다
판사가 피고인의 [북한군 개입] 주장을 허위사실로 판결하려면 반드시 42개 증거가 허위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42개 증거는 판사에 의해 허위사실로 증명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판사들은 “5.18은 이미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이미 정리돼있다“는 정치역사를 잣대로 하여 지만원에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지금은 우리사회에까지 얼굴분석 기술이 성큼 다가와 실용화되고 있습니다. 얼굴지문은 손가락지문보다 더 정확합니다. 얼굴분석 분야의 외국전문가가 광주현장의 한 얼굴을 놓고 5.18당시 39세의 북한거물 ‘문응조’라 지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1,2심 재판장은 ”북한거물 ‘문응조’라 지정한 것은 당시 18세였던 다방 종업원 ‘박철’을 지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알리바이가 안 맞아도 광주시민이 주장한 것이면 무조건 다 모순 없는 진실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등의 해괴한 판결문을 썼습니다. 거칠 게 없는 인민재판을 하였고 학문을 희화화하여 유린하였습니다. 결국 2심 판결서 65쪽은 원심판결을 파기할 수 있는 6개의 파기사유로 가득 차 있습니다.
김명수가 조직한 사조직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과 대법원에서 정치판결을 일삼고 있다 합니다. 이들은 재판을 정치와 동일시한다 합니다. 이에 대한 빼박 증거가 바로 지만원을 재판한 서울중앙지법 8-3항소부 김예영, 장윤선, 장성학입니다. 이번 판결문을 쓴 자가 김예영인데 그가 바로 이 조직의 핵심 멤버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안면에 철판을 깔고 표독한 인민군식 판결문을 쓰는가는 이번에 지만원이 받은 2심 판결문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습니다. 이 판결문을 읽고 포복절도하지 않을 국민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 독직판사들은 국민들로부터 회초리를 맞아야 합니다. 이 판결문은 널리 알리기 위해 아래 [5.18상고이유서]의 부록으로 첨부돼 있습니다.
[5.18 상고이유서] 시판용(15,000원) 책으로 발간하는 이유
[5.18상고이유서]는 [5.18답변서]의 자매 판입니다. 이 두 개의 책은 다 같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저자 지만원이 받고 있던 5.18관련 재판에 관한 책입니다. 후자는 제2심 재판부에 제출한 A4지 사이즈 378쪽에 달하는 구체적 답변서였고, 전자는 2심에 패소한 후 대법원에 제출하는 상고이유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법원에 제출하는 답변서와 상고이유서를 시판용 책으로 발행하여 제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희귀합니다.
법원 제출용 변론서를 시판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판결문을 재판장 자의대로 작성하는 것을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견제하자는 의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변론내용의 공명정대함을 배심원과도 같은 독자들에게 남김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이 달린 5.18역사를 몇 사람의 판사들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책은 이 나라 이념판사들이 얼마나 뻔뻔하고 표독한 존재들인가를 생생하게 비춰주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북한의 비밀남침 전범행위를 결사적으로 감싸주는 행위는 간첩이나 할 수 있는 이적행위
여기 지만원을 또라이로 몰고 있는 인물 5명이 있습니다. 지만원은 누구이고 이들은 누구인가요? 지만원은 1942년 생으로 나이 60~81세의 인생을 5.18 연구에 바친 사람입니다. 감옥에도 가고 광주 조폭과 검찰/경찰로부터 린치도 당하고, 안양에서 광주에까지 연행돼 가는 6시간과 광주검사 최성필로부터 조사받는 2시간을 합해 도합 8시간동안 뒷수갑을 찼습니다. 추운 겨울을 광주교도소 마루방에서 지냈습니다. 광주단체들로부터 손해배상금 2억 4천만 원을 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징역 2년 형을 받아놓고 있습니다.
저들은 누구인가요? 5.18을 연구하지도 않았고, 지만원이 쓴 책도 자세히 읽지 않은 모리배입니다 이 5인은 42개 증거에 대해서는 전혀 반론을 펴지 못합니다. 지만원과 맞짱 토론하라는 주변의 권고를 묵살합니다. 오로지 등 뒤에서만 비난하고, 또라이라 매도합니다. 이들의 선두에 조갑제가 있습니다. 42개 증거를 무력화시키지도 못하면서 “북한군 개입은 절대로 없었다, 내가 목숨 걸고 보장한다“며 국민을 선동해왔습니다. 조갑제는 2019년 2월 당시 나경원을 찾아가 지만원을 5.18진상규명 조사위원으로 뽑으면 안 된다고 로비까지 하였습니다.
저들은 저를 또라이로 매도하고, 자기들보다 분석력이 부족하다고 공개적으로 비웃습니다. 그러면 저들은 누구입니까? 조갑제는 고졸이라 논리라는 것을 정규과정에서 훈련받은 바 없습니다. 정규재는 고대 철학과를 다니면서 데모에 진력하다가 졸업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배운 게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조갑제를 하늘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이동욱은 고등학교 졸업 후 8사단에서 하사-중사를 하다가 김영사에 취직해 편집 일을 하다가 조갑제 키드가 되었습니다. 류석춘은 이런 이동욱이 자기보다 매우 훌륭해서 우러러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영훈은 빨치산의 전설 박현채의 수제자입니다.
반면 이런 사람들로부터 또라이로 매도되고 있는 지만원은 누구입니까? 육사를 졸업하고 베트남전에 44개월 참전하여 영예의 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상이6급 유공자가 돼 있습니다. 수리공학의 원조, 미 해군대학원에서 응용수학 박사를 하면서 수학공식 2개, 수학정리 6개, 항공모함 출동 시 창고에 적재해야 할 수리부품 적정량을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었습니다. 그 학교에서 교수생활도 했습니다. 국방연구원에서 7년간 연구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예산개혁을 5년 동안 주도했습니다. 이런 지만원을 저들은 또라이라고 선동하면서 전업 차원에서 북한 앞잡이 노릇을 합니다.
5.18진상규명국민위원회
작성자 지만원 02-595-256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