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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사기꾼 송선태의 거짓말을 밝힌다. (조사천씨 사망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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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머스 작성일22-03-26 02:34 조회2,974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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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사기꾼 송선태의 거짓말을 밝힌다.

(권력을 이용하여 회유 협박으로 거짓 증인을 만들어내는 짓은 5.18왜곡처벌법으로 다스려야)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식

 

 

2021년 12월 27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장 송선태는 출범 2주년 기념 주요 조사결과를 보고(https://youtu.be/Pj3IQIlxO5U)하면서 많은 거짓말을 하였다.

 

그 거짓말 중 하나가 동구청 앞에서 장갑차를 타고 가다가 총격을 받고 사망한 조사천에 대한 조사보고였다. 그는 전일빌딩 옥상에 올라가 있던 11공수 한 모 일병의 조준 사격으로 조사천이 사망하였고, 저격병 한 모 일병의 증언을 확보했다고 발표하였다.

 

조사천(34세, 남)의 시신은 5.21일 오후 1시에서 1시 반 사이, 피격 직후 지프차 엔진덮개 위로 옮겨져 선동에 이용되다가 오후 2시 기독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후 그의 시신은 도청으로 옮겨져, 상무관에 안치되었다가 5월 28일 오전 11시, 광주지방검찰정 검사 한광수의 지휘아래,의사 최유섭 군의관 박승일이 검안하였다.

 

당시 검시조서에는 사인은 칼빈에 의한 왼쪽 앞가슴부위 맹관 총상이며 사입구 아래쪽 피하에 10X16cm 크기의 피하혈반이 있었음이 추가로 언급되어 있었다. 당시 우리 계엄군은 칼빈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칼빈으로 저격을 한 적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에 송선태는 거짓말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조씨의 총상은 아래 사진1의 하측에 박스로 표시하는 바와 같이, 모든 기록에서 ‘카빈총상’으로 나와 있다.

 

                                         사진1.jpg

                     사진1. 아버지 조사천의 영정을 들고 있는 아들 조천호

 

 

조사천씨의 피격사망장소는 카톨릭센터 앞인가? 전일빌딩앞인가?

 

또한 조사천총에 맞은 장소는 카톨릭센터 건물 앞을 지날 때였는데 전일빌딩 옥상에서는 이곳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저격이 불가능하였다.

 

또한 정말로 장갑차를 타고 가던 조사천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기회를 노리던 저격병 한 모 일병의 눈에 띄여 저격을 하였다면 총알이 조사천의 가슴을 앞에서 뒤로 뚫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전흉부를 뚫은 총알이 등으로 뚫고 나왔어야 한다. 이럴 경우 검안서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전흉부 피부를 뚫고 앞가슴벽을 따라 피하로 나란히 16cm나 전진하다가 흉곽속으로 들어간 총알의 궤적을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조사천이 피격되던 당시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조사천은 머리 바로 위에서 발사된 카빈 총알에 의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망진단서와 검시보고서.jpg

사망진단서와 검시보고서 부분 발췌


 

증인 및 목격자들의 증언

 

증인들의 증언을 몇가지 보기로 한다.



1) 부인 정동순씨의 증언(조사일시: 1988.8)이다.

5.18관련자료 |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jnu.ac.kr)

(…중략)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여기저기 찾을 것도 없이 출입구 쪽에서 두번째에 남편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목에 총알이 관통한 상태로 눈을 뜬 채였다.

 

남편을 붙잡고 통곡을 하는데 외국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중략…) 29일 합동 장례식날 남편도 망월동으로 갔다. 선산이 있으면 선산에다 묻으라고 했지만 나는 식구가 한꺼번에 죽었으면 죽었지 다른 곳에 갈 수 없다고 했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장례식에는 한 집에서 3명씩만 오라고 했다. 관은 따로 실려가고, 나는 동장님과 함께 따로 망월동으로 갔다. 남편친구 분들은 걸어서 망월동까지 와주셨다. 시체가 부패해서 관이 터지고 시체 썩은 물이 흘러 나왔으나 어떻게 손을 볼 수가 없어 관을 비닐로 싼 채 그냥 묻었다. 지금도 그 비닐은 썩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이다.

 

 

21일 오후 카톨릭센터앞에서 건물 옥상에서 금남로 군중을 향해 무차별 총질을 해대던 카빈총을 든 무장괴한에 의해 쓰러진 조사천씨를 목격한 여러 사람의 증언을 들어보자.

 

 

2) 최인영 17세, 용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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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쯤 되자 점점 불어나는 시민들과 차들로 금남로는 가득가득 메워져 있었다. 바로 그때 시민군차가 도청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공수부대들을 향해 무섭게 달려든 청년은 머리에 횐 띠를 동여매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장갑차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금남로 사거리에 모여 있었다. 장갑차가 동구청 부근까지 가자 갑자기 총성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순식간에 시민들은 흩어져 도망갔다. 나도 친구들과 도망을 갔다 한참 후 부분부분 모여 있던 시민들과 청년들은 공수들의 무차별 난사에 위협을 느끼고 총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3) 김행주 17세, 고등학생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441

그때가 오후 2시경이었다. 그 장갑차는 위 뚜껑을 열고 그곳에 태극기를 든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타고 있었다. 이 장갑차가 도청 앞 광장을 한바퀴 돌고 왔는데 분수대쯤에서 M16이 불을 뿜었다. 총을 맞고 그 차가 내 앞에 와서 섰다.

 

M16 총알은 그 사람의 귀밑을 맞혔다. 턱이 완전히 처지면서 두개로 나뉘어져 버렸다. 그 사람은 장갑차 위 구멍에서 팔을 뒤로 하고 처져 있었는데, 위턱부터는 완전히 뒤로 제쳐져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순간 아찔해져서 뒤로 몇 걸음을 물렀다. (김행주, 1989.1)


 

4) 윤석진 19세, 재수생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19&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C%A4%EC%84%9D%EC%A7%84&sop=and

그때 APC 장갑차 한 대가 도청을 향해 돌진해 갔다. 관광호텔 앞에서 장갑차 뚜껑을 열고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애가 나왔다. 안전벨트를 맨 상태에서 대형 태극기를 흔들어댔다. "탕, 탕." 총소리가 남과 동시에 그의 턱 부분이 아예 날아가버렸다. 목뼈가 허옇게 보이고 피가 솟구쳤다.도청 옥상이나 전일빌딩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총을 쏘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총알이 뚫고 나간 것이 아니라 (턱을) 분리를 시켜버렸기 때문이다.



5) 나상옥 21세, 대학생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20

내가 탄 차가 관광호텔 부근에 이르렀을 때 총소리가 들렸다. 장갑차에 탔던 청년(트레이닝 바지를 입었음)이 장갑차 밖으로 몸을 내놓고 가다가 목 오른쪽 부위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봤다. 백운동을 출발하기 전에 계엄군은 총을 갖고 있으니 절대 몸을 밖으로 노출시키면 안 된다고 했는데 시민들의 환호하는 모습에 흥분해서 몸을 내밀었던 모양이다. 금남로와 도청 앞에서도 군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청년이 목에 맞은 것은 정조준에 의한 것이었다. 오른쪽 목에 맞은 점을 미루어 아마 관광호텔에서 쏘았을 가능성이 높다.


 

6) 장종필 18세, 가게종업원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21

얼마 후 비몽사몽 속에서 기독병원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의사, 간호원 구별 없이 들것을 들고 병원 뜰에 줄줄이 서있었다. 총상인지 곤봉으로 맞았는지 모르지만 시신을 2,3구 정도 옮기는 것을 보았다. 시체 중 1구는 목에 총을 맞았는지 완전히 터져 있었다.

 

 

7) 임병석 19세, 화물차 운전수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445

내가 운전하는 레커 좌측에는 장갑차가 서고 뒤에는 불도저, 지프차가 뒤따랐다. 금남로는 물론이고 유동 일대와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부근까지 가득 메워져 있던 군중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장갑차에서는 화순 산다는 사람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도청을 향해 서서히 진격했다.

 

그때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장갑차에 탄 그 사람의 머리가 총을 맞아 닭고기를 칼로 다져놓은 것처럼 되어버렸다.순식간의 일이었다. 설마 그들이 우리에게 총을 쏠까 했는데 바로 눈앞에서 당하고 나자 지프차 위에 그 시체를 옮겨 태웠다. 그리고 시체를 태극기로 덮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시민군들에게 계엄군의 만행을 알렸다.


 

8) 김용오 21세, 식당종업원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22

21일 전날보다는 시내 분위기가 한층 가열되어 있는 것 같았다.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거리로 나왔다. 나는 아침밥을 먹은 후 도청으로 나가보았다. 도청 분수대를 중심으로 공수부대가 서 있고 그 앞에는 수많은 시민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시민들은 공수대를 향해 "이 새끼들 물러가라'고 욕을 하는가 하면 전두환 물러가라', '계엄령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나는 얼마간 그곳에 있다가 유동 삼거리 쪽으로 나왔다. 도청 앞에 시민들이 몰려 있었으므로 이곳은 조금 한산했다.

 

12시경 유동삼거리에서 장갑차 한 대가 오고 있었다. 차 위에선 대형 태극기를 든 교련복 차림의 고등학생이 "애국시민 여러분은 동참하라"고 외쳤다. 뚜렷한 목적은 없었지만 나이 어린 고등학생이 앞장서는 것을 보고 나는 장갑차에 올라탔다. 장갑차 안에는 6명 정도의 젊은이가 타고 있었다. 사방이 막혀 있어 밖을 내다보지는 못했으나 장갑차가 서서히 도청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제일은행 부근 쯤이었을까? 갑자기 '땅!' 하는 총성이 울려 깜짝 놀랐다. 운전수는 급히 차를 돌려 유동삼거리로 되돌아갔다. 차에서 내려보니 장갑차 위에 탔던 고등학생이 온몸이 피투성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언뜻 보아 얼굴에 총을 맞았는지 입이 한쪽으로 처져 있었다.주위에서 시민들이 달려들어 그를 끌어내리고 태극기로 덮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 얼른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9) 이규홍 26세, 당구장 지배인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33

5월 21일로 기억된다. 유동 삼거리에 많은 인파가 몰리고 어떤 청년 하나가 시위진압용 경찰장갑차를 타고 있었는데 이 상태에서 도청으로 진격하자고 했다. 그래서 도청 앞으로 올라가고 시위군중들과 함께 나도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관광호텔 부근에서 장갑차에 타고 있던 청년이 상체를 드러내는 순간 도청 앞에서 쏜 Ml6총에 턱 부분을 맞고 쓰러졌다. 곧 유동 삼거리로 데려와 살펴보니 장갑차 윗부분에는 피가 흥건히 젖어 있고 청년의 목이 겨우 매달린 정도였다. 시위군중들은 얼른 그 사람을 장갑차에서 내려 지프차에 헝겊을 깔고 누이고 대형 태극기로 덮었다. 이어서 지프차를 시내로 몰고 다니면서 스피커로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고 궐기하라고 말했다.


 

10) 이용일 19세, 재봉견습생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43

아마 점심때가 좀 지나서 일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하상가 쪽에서 누가 총을 싣고 와 박스 채 차에서 내렸다. 모두들 몰려가서 너나할 것없이 총을 들었다. 그때 갑자기 가톨릭센터 옥상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바로 내 옆사람이 총알에 맞아 쓰러졌다. 사람들은 충장로파출소와 현대예식장 쪽으로 나뉘어 모두 흩어졌다.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은 아예 밟혀버렸다. 잠시 후 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또 어떤 사람이 장갑차를 타고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러닝셔츠만 입고 머리에는 흰 띠를 두르고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장갑차의 뚜껑을 열고 상체를 위로 내놓고 서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총을 한 자루 던져주었는데 그는 필요없다며 받지 않았다. 그 장갑차는 얼마쯤 앞으로 나가는 듯싶었다. 그러나 도청 쪽에서 저격병이 쏜 총에 목을 맞고 쓰러졌다.


 

11) 장세경 25세, 소방공무원 시험 치루고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sca=&sop=and&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E%A5%EC%84%B8%EA%B2%BD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에 시민들 사이에서 총이 나오기 시작했다. 장갑차 위에 탄 어떤 청년이 태극기를 들고 카빈총을 거꾸로 매고 도청을 향해 간다고 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말렸으나,

 

"죽어도 간다."

고 하며 도청을 향해 전진했다. 청년이 탄 차가 관광호텔 앞에 이르자 연발 총성과 동시에 태극기를 든 청년이 장갑차 위에서 뒤로 넘어졌다. 장갑차가 되돌아오는데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도 사람들 사이에서 "으으!" 하는 저음의 신음 소리가 났다. 청년은 코에 구멍이 뚫리면서 머리는 반쪽으로 갈라지고 왼쪽 머리가 완전히 날아간 상태에 턱이 떨어져 가슴에 얹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으" 하는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12) 서채원 19세, 무직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63

12시30분경 시위대의 장갑차 한 대가 유동 쪽에서 도청 쪽으로 왔다. 장갑차의 앞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태극기를 든 채 서 있었다. 모든 시민들의 눈은 그 장갑차로 향했다. 그 장갑차가 광주관광호텔 가까이 다가갔을 때 총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태극기를 들고 앞에 서 있던 젊은이가 머리에서 피를 내뿜으며 축 내려앉았다. 분수처럼 솟아오르던 그 붉은 피,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보았던 그 장면을 결코 잊지 못한다. 정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될 일이었다. 그것을 본 시민들은 모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목격자 증언 종합 요약

 

목격자들의 증언이 모든 면에서 일치하지 않는 점은 있으나 여러 사람의 증언을 종합해 추론해보면 조사천의 사인은 다음과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의 총상 부위는 좌측 머리, 좌측 턱, 좌측 목 부위와 좌측 앞가슴으로 보인다. 좌측 머리와 좌측 턱을 부순 총알이 턱밑 피부를 뚫고 나온 후 다시 좌측 앞가슴을 뚫고 가슴 속에 박힌 것이다.

 

그럼 머리와 가슴 중 어느 것이 치명상일까? 몇몇 목격자들은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다고 증언한 것으로 보아 머리는 가죽만 손상된 것이 아니라 머리뼈를 부순 총알이 측두골 부위의 뇌정맥동 즉 측정맥동(lateral venous sinus)에 손상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피가 나오면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와 주변을 흥건히 적시기에 충분하며 곧 사망에 이른다.

 

차에서 내려보니 장갑차 위에 탔던 고등학생이 온몸이 피투성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김용오)

 

머리에서 피를 내뿜으며 축 내려앉았다. 분수처럼 솟아오르던 그 붉은 피,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보았던 그 장면을 결코 잊지 못한다.”(서채원)

 

머리는 반쪽으로 갈라지고 왼쪽 머리가 완전히 날아간 상태에 턱이 떨어져 가슴에 얹혀 있었다.”(장세경)

 

가슴에는 직경 1cm의 총알이 들어간 자리와 함께 가로 10cm, 세로 16cm의 피멍이 생겼는데 이 피멍은 총알이 피부 밑으로 진행하면서 벌려놓은 틈으로 피가 흘러내려 생긴 것이다. 즉 총알은 피부 밑을 지나며 흉곽과 나란히 진행하였던 것이므로 이 총알이 흉곽내부로 들어갔더라도 심장을 뚫지는 않고 폐속에 박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가슴 총상으로는 피가 뿜어져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총알이 가슴 정면에서 뚫고 들어갈 경우는 이런 크기의 피멍이 생기지 않는다.

 

이상으로 볼 때 조사천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총알이 측두골을 깨 부수고 측부 정맥동(lateral venous sinus)을 찢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대량의 피가 쏟아져 곧 죽게 된다.



 

목격자 증언에 따른 탄도 추정

 

아래 그림은 증인들의 증언을 따라 추정해 본 탄도이다.

 

그림1.png

                        그림1.  하늘색이 정맥동, 붉은 선은 탄도

 

 

                         그림2.png

                        그림2. 뒤에서 본 그림. 파란 부위가 정맥동

 

           그림3.jpg

                        그림3. 측두골 바로 아래에 정맥동이 위치함.

 

그림4, 5.png

그림4와 5. 정면 얼굴과 추정 손상 부위. 붉은 선은 총알이 지나간 궤적이다.

 

 

그림6, 7.png

                                          그림6과 7. 측면 사진

 

그림8, 9.png

그림8과 9. 밑에서 올려다 본 턱밑 사출구와 노출된 턱뼈. 그림4. 뒤에서 본 사입구

 

 

 

                     그림10.jpg

             그림10. 조사천의 턱뼈가 이렇게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목격자들은 머리에서 피가 뿜었거나 목이 터졌거나, 턱밑 관통 상처를 통해 두 쪽이 난 턱뼈가 허옇게 드러나 보이는 것을 언급했을 뿐 가슴에 난 총상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사천의 부인 정동순 조차도 목에 총상이 있었다고 증언하였듯이 목격자들에게는 머리와 턱과 목의 상처가 눈에 띄였는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일반인들은 눈에 띄는 커다란 상처나 출혈에만 시선이 가기 때문에 가슴에 난 1cm 크기의 피부 상처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조사천의 검시는 사망일로부터 7일이나 지나서 시신이 부패했을 때 행해졌기 때문에, 검시에 참여했던 의사나 검사들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부패할 대로 부패한 시신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들의 눈으로는 피범벅이 된 머리카락으로 덮인 측두부의 총상이나 일부러 턱을 치켜들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턱밑 피부 열상은 구분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검시관들 눈에는 가슴에 난 카빈 총알 구멍과 그 구멍 아래로 16cm 정도의 길이와 10cm 정도의 폭을 갖는 피멍 자국만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사고 당시 증언자들의 증언을 종합해서 조사천의 상처부위를 다시 추론해보면, 탄도가 머리 위에서 가슴을 향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총알은 카톨릭센터 옥상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장 목격자 중 윤석진나상옥은 총알이 높은 건물 옥상에서 날라왔다고 생각했고, 이용일은 이 사건 바로 전에 카톨릭센터 옥상에서 총알이 날라와 자기 옆 사람이 죽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조사천이 탄 장갑차는 카톨릭센터에 가장 가까운 차로(3차로)에서 도청을 향해 천천히 운행하고 있었다(임병석).

 

당시 금남로에는 약 오천명의 군중이 길을 메우고 있어서 그들이 길을 비켜 주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차의 속도가 빠를 수가 없었다. 금남로를 서서히 달리던 장갑차에서 상체를 내밀고 있던 그에게 누군가가 대형 태극기를 건네주었다. 그가 일어나 태극기를 양손으로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며 카톨릭센터 옆을 지날 때, 조사천의 앞 바로 머리위 카톨릭센터 빌딩(지상 7층 건물) 옥상에서 발사된 총알이 두 손에 태극기를 든 채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있던 그의 왼쪽 머리 측두골을 깨고, 턱뼈 왼쪽 부분을 부수고(위 사진 참조) 턱밑 피부를 뚫고 나온 뒤, 다시 왼쪽 가슴 피부를 스치듯 뚫고 가슴속에 박혔던 것이다.

 

검안서에도 1x1cm 총상 주위에 16x10cm의 피하출혈이 있었던 사실이 총알이 피부 밑으로 16cm 정도를 주행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머리에서 피를 내뿜으며 축 내려 앉았다”(서채원)는 표현에서 총알이 머리부분을 맞혔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위에서 쏜 총알에 맞았기 때문에 그 충격이 그를 짓눌러 “머리에서 피를 내뿜으며 축 내려앉았”던 것이었다. 이 총알로 인해 좌측 턱 근처 목 피부와 근육이 손상되어 “목이 터졌다”는 표현이 나올 수 있었고(장종필)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와 덜렁거린 인상(이규홍)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 검안서에도 사인은 카빈 탄환에 의한 왼쪽 앞가슴 맹관 총상(총알이 몸 안에 박혀 있다.)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2.png

    사진2. 우측 가로수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얀 건물이 카톨릭센터 빌딩.

 

사진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건물 옥상에서 무장괴한이 보도 옆을 지나가는 장갑차에 탄 조사천을 저격하였다. 건물에서 장갑차까지의 거리가 약 7m, 건물의 높이가 약 21m 이므로 발사각이 약 72도였을 것이다. 이 각도는 실제 조사천의 피격 탄도각과 비슷하다. 사진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동구청 건물이다.


지도1.jpg

      지도1. 금남로1가의 카톨릭센터, 동구청, 전일빌딩, 도청앞의 위치

 

 

 

카톨릭센터 옥상에 올라가 총질한 사람은 누군가?

 

< 카톨릭센터에 올라간 무장괴한은 광주 사람이 아니었다.>


 

13) 광주 카톨릭교구 사무국장이었던 유팔동씨의 증언

 

광주 카톨릭교구 사무국장이었던 유팔동씨의 증언처럼 무장 괴한들이 카톨릭센터 옥상에 올라가 금남로 시민들을 향해 총질을 했던 정황으로 미루어 조사천씨는 카톨릭센터 옥상의 카빈총을 든 무장 괴한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에 희생된 것이 틀림없다. 광주 시민이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 자들은 혼란을 틈타 계엄군이 시민을 살해한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눈에 띄는 표적을 살해한 것이었다. 당시 금남로에는 계엄군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는 도청 쪽을 보아도 군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나상옥).

 

시민군들이 이렇게 총을 가지고 우리 (카톨릭)센터 옥상으로 올라갈라 그랬어요. 그래서 “왜, 그러냐” 그랬더니 옥상에서 봐야 (아까 말씀드린대로 우리 센터 건물이 그때는 광주 금남로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 거기서 도청을 향해 총질을 좀 하겠다. 그 양반들이 총을 들고 그러니까 그래 가지고 그분 말릴 수도 없고… 그때 시민군하고 저쪽(공수부대)하고 교전이 조금 있었어요.”

(유팔동, 5.18의 기억과 역사 5, 527쪽)

     그림13-0.png

 

 

당시 카톨릭센터, 전일빌딩, 관광호텔옥상은 카빈총을 든 무장시위대가 점거하고 있었다. 아래 요도1(황석영 등,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2판, 167쪽)에서처럼 상기 빌딩들은 무장 시위대의 점령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저격병을 배치할 수가 없었다.

 

              요도1.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2판, 167쪽

 

 

14) 당시 현장에서 취재 중이던 일본 프리랜서 기자 카지마 고이치씨의 증언

 

더구나 당시 현장에서 취재 중이던 일본 프리랜서 기자 카지마 고이치씨의 증언을 들어 보면 이들 건물 옥상에는 무장 시위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風間公一).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1052


내가 촬영하고 있던 건축현장에도 십여명의 시민들이 달려와서는 커다란 나무기둥과 콘크리트 덩어리를 집어 올려서 군인들의 머리 위로 내던지고 있었다.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젊은이를 대여섯명 태우고 있던 장갑차가 군이 바리케이트로 치고 있던 버스를 밀어 제치면서 군인들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대세는 완전히 데모군중들의 손에 장악되고 있었다.

 

그런데 군중 속의 한 사람이 우리들이 있는 곳을 손가락질하면서 『저기에 기자들이 있다』고 외쳐 대자 돌팔매가 일제히 우리들을 향해 날라왔다. 아래에서 공중 높이 날려보내는 돌팔매여서 맞아도 아플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드가 너무 격렬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던 광주시 유일의 호화 관광호텔의 옥상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그러자 가까스로 뒷문으로 들어서자마자 그곳 종업원으로부터 『만약 이 빌딩에서 사진 촬영하는 놈이 한 놈이라도 발견되면 당장에 불을 놓고 말겠다는 통고가 있었으니 제발 다른 곳으로 가 달라』고 했다.

 

그때 독일인으로 보이는 남자 여행객 한 사람(힌츠페터)이 완전 소등되어서 깜깜해진 건물 안으로부터 커다란 백을 메고 나왔으며, 그는 호텔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마치 탈출의 길이라도 재촉하듯 총총히 밖으로 사라져갔다. 이때 쯤에는 골목이란 골목은 물론 길이 트인 곳이면 으레 데모대와 군인들간의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경찰기동대는 이때 이미 자취를 감추어 보이지 않았다. 중앙 광장에서 대치하고 있던 데모대와 군인들과의 거리는 불과 2030m 정도였다.

 

AP의 서울지국에 근무하는 젊은 기자와 나는 도청 뒤에 있던 東子여관으로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오늘 아침 서울과의 전화연락 때문에 광주시 밖의 송정리까지 택시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었다. 전화가 불통되어 그랬던 것이다. 그는 다음 연락을 12시 반경에 다시 하기로 했다고 했으나 그때는 이미 택시마저도 자취를 감추고 없었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렇게 걸어나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는 송정리까지는 갔으나 광주시로는 다시 들어올 수 없게 되어 곧 바로 서울로 돌아가고 만 것이었다.

 

동자여관에는 나 외에도 한국 각 신문사의 사진기자 다섯사람이 함께 투숙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여관으로 돌아와서는 『이젠 별 도리가 없다』고 하며 짙은 한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그들은 전남일보사 옥상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고 했으며, 때마침 나타난 무장데모대들이 『당장 나가라』고 몰아치는 바람에 여관으로되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무장 데모대로부터 폭행은 안 당했다고 했다(風間公一 카지마 고이치).


 

또 다른 증언도 있다.

 

 

15) 정건호 건국대학생 서울에서 광주로 돌아옴: 북한특수군에 의한 저격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495

5월 21일에는 길거리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근거리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계엄군이 도청 안으로 들어가고 도청을 제외한 시내 일원에는 계엄군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집에 와 있던 성일(정성일, 당시 전남대 경제학과 1년이었던 사촌동생)이와 안심하고 11시쯤에 밖으로 나갔다.

 

 

 

조사천씨 사망원인과 유사한 사망자

 

조사천과 비슷한 상태로 죽은 사람이 또 있다.

 

 

1. 임균수

임균수 남, 21일 사망, 우측 두개골 함몰골절, 우측 안와주위 골절(협골 골절), 뇌좌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임균수의 경우도 조사천과 비슷하게 건물 옥상에서 발사된 총알에 의해 머리와 턱이 깨진 것으로 추정된다.

48/임균수(남 20, 원광대)/14:00/도청 인근 Y다실 앞/총상(M16)/5월 21일 14시 기독병원 도착/144

[출처]5.18 광주사태파헤친다...카빈사망자 26명발생|작성자황금거미

 

6.3일 검안 의사 윤강혁, 문형배, 전남의대 병리학교실, 1.우측두골의 함몰골절, 2.하악골 우측의 골절, 뇌좌상으로 사망 추정

 

그림21.png

안기부, 1985

 

그림22.png

김영택, 96.4.22

 

99년 검시보고서 좌측 머리 총상, 두개골 골절, 좌측 안면부, 하악골 골절.  21일 오후 14시 전일빌딩 앞 도청 앞, Y다실 앞, 엠16 총상

 

 

 

2. 김광석

또 한 명은 김광석으로서 그는 21일 오후 2시경 금남로 학살 현장에서 총에 맞고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고 현장을 피하다가 피격되어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림23.png


 

그의 경우도 건물 옥상에서 날라온 카빈 총알에 아래턱이 깨지고 가슴에 총알이 박혔다.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조사천은 카톨릭센터 옥상 괴한의 카빈총에 맞아 죽었음이 분명한데도 거짓 증인을 내세워 진실을 왜곡한 송선태 위원장은 5.18역사왜곡에 따라 처벌되어야 마땅하다.


댓글목록

해머스님의 댓글

해머스 작성일

송선태의 발언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풀영상]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 2주년 대국민 보고회/12월 27일
https://youtu.be/Pj3IQIlxO5U
2021. 12. 27, KBS News

(송선태의 발표내용)

0:00
저도 두부 열창과 좌복부 자상 등의 사망원인이 (하고..) 확인되고 있는 바,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여러 건의 참혹한 살상행위가 계엄군들의 진술을 통해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0:13
제3공수여단, 제11공수여단, 제20사단은 저격수를 운영하여 시위대를 조준 사살했던 사실도
저격수 당사자의 인정진술과, 함께 있었던 계엄군들의 증언, 그리고 피해자의 신원을 통해 교차 확인되고 있습니다.
0:30
5월21일 13시경 도청앞 집단발포 당시 전일빌딩 옥상에 저격수로 배치되었던 11공수여단 한 모 일병은
자신이 장갑차 위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던 청년을 조준하여 저격한 사실을 인정하였고,
그 피해자는 민간인 조모씨임을 조사위원회가 확인하였습니다.
0:50
5월 27일 회사에서 숙직을 하고 새벽에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던 민간인 오 모씨를
20사단소속 조모 병사가 저격하여 사살하고, 피격당해
건물 밖으로 떨어진 시체를 공용터미날로 옮겼다는 복수의 기염 계엄군 진술을 확보했고
그 가해 당사자까지 특정하여 조사 중입니다
1:11
지금까지 유탄에 피격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진상이 새롭게 규명된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물마심)

해머스님의 댓글

해머스 작성일

이용식박사님의 분석내용은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전남대 5.18연구소의 증언자료들로만 당시의 상황을 추적한 조사 결과입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분석하는 분은 어디에서도 제가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준비 과정도 쉽지는 않았을텐데
분석하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고, 감사드립니다.

해머스님의 댓글

해머스 작성일

증언자 이름 밑에 있는 URL을
클릭 또는 터치하시면 증언 전문을 보실 수 있게 링크시켜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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