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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된 상고이유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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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3-06 17:33 조회4,7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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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남선 등 광수관련 피해자에 대하여

 

1. 공소의 요지

 

피해자들은 순수한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인물들이었는데,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북한사람이라고 특정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2. 원심판결의 요지

 

1) 광주에 북한군은 오지 않았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점은 1997년의 판결, 피고인에 손해해상을 선고한 광주법원의 판결, 5.18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과정에서 이미 밝혀졌다. 따라서 [북한군 개입] 표현은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려는 의도적인 표현이다.

 

2) 북한군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광주현장 사진 속 얼굴들은 북한 얼굴일 수 없다. 현장사진 속 얼굴들이 북한 얼굴이라 주장한 것은 피고인의 범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는 5.18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폄하하려는 범행이다.

 

3) 사진 속 인물들은 실제 누구인지 밝혀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위공간에 있었던 광주사람들이 자기라고 주장하면 그 주장이 맞는 것이 된다. 피고인이 북한고위층을 지칭한 행위는 특정인'을 지목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피해자들의 이름을 특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난해한 판결)

 

4) 피해자들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상세하며 모순이 없다.

 

5) 북한군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갔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북한군은 오지 않은 것이다. 피고인은 그 어느 답변서에서도 이를 설명하지 않았다.

 

 

3. 피고인의 반론

 

1) 북한군 개입에 대하여

 

피고인은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정황증거 42개를 174쪽 분량으로 제출했습니다(5.18답변서 50~224). 42개의 정황증거는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판결의 공정성을 위해서나, 국가안보를 위해서나 결코 반론과정 없이 무시될 수 있는 가벼운 증거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 광주운동권 인물들과 항쟁본부 구성한 최고 5.18유공자들은 충돌이 가장 치열했던 5.18~5.24. 기간에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광주-전남지역의 운동권 선두에 섰던 윤한봉과 박관현은 517일 이전에 도망갔고, 남아 있던 정동년은 체포됐습니다. 광주지역 운동권들이 5.18시위현장에 없었던 것입니다. 5.18 최고반열의 유공자들은 훗날 항쟁본부라고 개명된 시민학생수습위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며, 이 위원회는 525일에야 전남도청에서 꾸려졌는데, 이들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59, 정리 5.18답변서 76~77). 1980.5.25일 이전에는 광주시민들이 조직한 시위대가 없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5.18 10일의 시위는 5.18~24까지의 무장시위기간과 5.25~26수습기간, 그리고 2.27새벽의 진압순간으로 분리됩니다. 5.18최고반열의 유공자들은 5.25에 각자 도청에 들어가 갑론을박 하다가 진압된 사람들입니다(59, 98~175). 유공자들이 개칭한 항쟁본부는 바로 수습 차원에서 5.25에야 형성됐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5.18~24 기간에 괴력을 과시했던 무장시위에 대해서는 이를 조직하고 지휘한 사람이 광주에 없다는 것입니다.

 

(2) 광주 시위 참가자의 80% 이상이 10~20대의 초중고학생, 공원, 식당종업원, 무직자, 노동자, 농민, 구두닦이 등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저변 인구들로, 정치 슬로건을 선도하거나 시위의 조직화를 선도할 수 있는 계층이 아니었습니다.

 

사망자 154명과 군법회의 제1심에서 집행유예 이상의 처벌을 받은 257명에 대한 성분을 분석한 결과 10대가 20%, 20대가 61%였고, 직업은 학생, 무직, 공원, 농부, 종업원, 목공, 철공, 구두닦이, 식당종업원, 벽돌공, 칠기공 등 주로 초--고 학생들과 하층계급에 속했던 사람이었습니다(59, 65~82). 조직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북한 조국통일사가 1982년에 발행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194) 600쪽에는 체포자 730명에 대한 성분분석 결과가 기재돼 있습니다. 학생21%, 노동자 35.8%, 실업자 17.3%, 농민6.4%, 상인 6.4%, 회사원 5.1%, 기타 8%로 정리돼 있습니다. 남한 자료를 보나 북한 자료를 보나, 시위공간에서 사망한 사람 그리고 붙잡힌 사람의 80% 이상이 초중고 학생들과 10~20대의 개념 없는 어린 사람들이었고, 직업 역시 의식을 계몽하는데 앞장서거나 시민들을 결집하여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 가질 수 있는 업종들이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 자료들은 [5.18답변서] 89~91쪽에 정리돼 있습니다.

 

(3) 광주에 출현한 맥가이버 부대

 

위와 같이 시민들을 의식화시키고 선동할 수 있는 운동권은 1980.5.17. 산천초목이 얼어붙었다던 예비검속이 무서워 도망갔거나 체포됐고, 시위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리거나 직업이 없거나 사회저변에서 기름 묻히고 땀 흘리고 천대받던 사람들이 그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주동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군사작전 상황들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현장 사진들이 수백 장 규모로 나와 있습니다.

 

불가사의한 군사작전

 

1980.5.21. 상황입니다. 부대이동 계획은 극비로 취급됩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300명 집단이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정확히 08시에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장애물을 미리 설치하고 매복하고 있다가 정확히 08시에 그곳을 통과하는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하여 이웃에 있는 군납업체 아시아자동차공장으로 향했습니다. 이 지프차 차량행렬 사진은 [5.18답변서] 53쪽에 있습니다

 

09, 또 다른 300명이 버스들을 타고 아시아자동차공장으로 와서 매복부대 300명과 합류하였습니다. 이들 600명은 삼엄하게 경비되고 있던 아시아자동차군납공장을 점령하여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0여 대를 탈취하여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는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300여 정의 총기와 다수의 폭발물을 탈취하였습니다.  

 

이는 1985.7.18. 검찰이 발행한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안기부 상황일지]에 기재돼 있으며(59), [북한 자료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5.18답변서 64~69). 특히 장갑차는 군에 납품되지 않았던 것이기에 운전 매뉴얼이 없으면 운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자가용 시대가 아니어서 운전자들이 귀했던 시대였습니다. 군사작전으로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 이런 상황자료가 검찰과 안기부 자료에 원석의 상태로 기재돼 있었지만 당시의 분석관들은 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응용수학박사인 피고인은 이 원석과 같은 자료를 통계처리 하였고, 그 결과 누구의 눈에나 보일 수 있는 가시성 정보를 생산해 냈습니다.

 

전남도청 접수한 존재는 광주시민들과는 거리가 먼 군사프로 집단

 

전남도청은 공수부대 5개 대대가 519일부터 결사적으로 방어했습니다. 하지만 521일 오후 4시부터 공수부대는 수에 밀려 포위당했습니다. 구사일생의 처지가 된 계엄군은 포위망을 간신히 뚫고 무장시민들로부터 집중사격을 받고, 스나이핑도 당하면서 광주시 외곽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이어서 계엄당국은 교도소를 공격하라는 내용의 북한 지령을 무전으로 감청하고 교도소를 방어하고 있던 제30 향토사단 제62대대 병력을 정예부대인 3공수여단으로 교체하였습니다.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접수한 핵심 집단은 광주시민들이 아니라 군사프로 집단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5.18답변서] 76~77쪽에 정리돼 있습니다. 도청 정문을 무장 어깨들이 지키는 사진, 도청 안에서 무장한 어깨들이 전투관련 행위를 하고 있는 사진들이 [5.18답변서] 51~57쪽에 정리돼 있습니다. 사진 자체가 던지는 전달력이 매우 큽니다. 사진 속에 나타난 전투프로들이 광주의 기층인구일 수는 없다는 것이 피고인의 판단입니다.  

            한국군은 총구를 위로, 인민군은 총구를 밑으로

 

전남도청에 2,100발의 TNT 폭탄조립 

 

TNT, 도화선, 수류탄 등 폭발물을 앞에 놓고, 그것들로부터 미량으로 유출되는 유해가스를 흡입하지 않기 위해 방독면까지 쓰고 작업하는 프로들의 사진이 [5.18답변서] 55쪽에 제시돼 있습니다.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군을 필한 사람이라 해도 방독면 쓸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진압 직전에 이들이 조립해 놓은 2,100발의 TNT폭탄을 목숨을 걸고 잠입하여 해체한 기술자가 있었습니다. 5급 갑의 배승일 문관이었습니다[5.18답변서] 71).

 

1급 보안시설 광주교도소를 5회씩이나 야간작전으로 무장공격

1997.4.17. 대법원 판결문 ‘2-항에는 광주무장 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5회 공격했다는 사실이 기재돼 있습니다. 교도소는 계엄이 선포되면 우선적으로 경비해야 하는 1급 보안시설입니다. 이를 무장공격한 행위는 민주화운동 범위에 있지 않습니다. 피고인은 북한지령을 받은 공격이라고 판단합니다.

 

교도소 공격은 밤에 이루어졌으며, 야간작전은 고도로 훈련된 공수부대요원들도 공포심을 갖는 특수작전에 속합니다. 여기에 총알받이로 강제 동원된 일부 광주시민들은 공격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야음 공격은 기도비닉이 필수이기 때문에 아무 시민이나 동원하면 기습의도가 탄로 납니다. 무장시위대가 교도소를 집요하게 공격한 이유는 거기에 수감돼 있는 간첩수 170명을 포함한 2,700명의 수용자를 해방시켜 폭동의 동력으로 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교도소 공격으로 인해 공격집단에서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많은 사망자가 바로 2014.5.23.부터 청주에서 이상하게 발견된 430구 유골이라는 판단을 합니다.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데 대한 증거가 잡히면 북한은 UN에서 전범집단으로 재판을 받게 되기 때문에 북한군 시체는 광주에서 먼 거리에 숨겨야만 했을 것입니다. 도청을 점령했던 전투프로집단이 524일 낮에 증발한 것은 바로 교도소 공격에서 떼죽음을 당해 전투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병합사건에는 소송당시의 광주시장 윤장현의 고소사건이 포함돼 있다가 취하되었습니다. 2017, 윤장현과 김양래는 광주시민은 절대로 교도소를 공격한 적이 없다했습니다. 그렇다면 교도소는 광주시민 아닌 외지인이 공격했다는 말이 됩니다. 교도소를 북한군이 공격했다는 것을 광주시장과 ‘5.18기념재단의 실무책임자 상임이사가 명백히 확인해 준 것입니다. 윤장현은 피고인의 이 말을 문제 삼아 고소했다가 취하한 것입니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상황일지에 기록된 서울서 온 대학생 500여 명 광주도착, 환영식 거행이라는 글자의 의미

 

2017.10.12. 증인으로 출석한 김양래는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로 이 사건 소송을 주도한 사람입니다. 변호인이 위 환영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김양래는 전혀 아는 바 없다고 답한 후 전두환이 투입시킨 편의대일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편의대는 게릴라를 의미합니다. 전두환이 다른 부대 장병들에 민간복을 입혀 공수부대를 공격했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주장은 결국 [5.18기념재단]에 기록된 서울서 온 학생 500여 명의 정체를 밝힐 수 없다는 딱한 입장의 표시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광주현장에 중화기 들고 등장한 어깨들은 국제용병 수준

 

[5.18답변서] 53~58쪽에는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거운 중화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 사진들을 놓고 광주의 기층계급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래 동그라미로 표식된 어깨는 무거운 중화기 M16유탄발사기를 우악스럽게 파지하고, 앞에 찬 헝겊주머니에는 유탄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가운데 사진은 웬만한 체력이면 사진처럼 가볍게 멜 수 없는 CAL50 기관총입니다. 오른쪽에는 장갑차를 유도하는 군사작전입니다. 이런 작전의 주역들이 광주의 어린 시민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보편타당한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지휘체계 완연한 전투프로 사진들

 

광주 현장 사진들에는 지휘체계가 갖추어지고, 몸매가 단련되고, 총을 가볍게 다루고, 분업체계가 갖추어져 있고, 자세들이 범상치 않은, 전투프로로밖에 보이지 않는 집단들이 많이 있습니다([5.18답변서] 53~59).

 

 

시위에 예비군 참여 없었다는 항쟁사령관 김종배 증언

 

항쟁본부 총사령관이었다는 김종배는 항쟁본부가 1980.5.25.에 조직되었고, “거기에서 이제부터 예비군도 좀 동원하고 체계적으로 대비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는 요지의 증언을 했습니다 ([5.18답변서] 201-202).

 

(4) 5.18현장을 촬영한 기록영화 1980년에 북한이 제작 - 결정적 단서

 

광주현장을 담은 기록영화가 1980년 바로 그해 북한에서 제작되었고, 그 축소판이 42분짜리 영상으로 제작되어 전라도 일대에 관람되었습니다(137 USB, [5.18답변서] 94). 이는 5.18현장을 북한이 촬영했다는 결정적 증거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137 기록영화 앞부분에는 이 영화는 반파쑈민주화투쟁에 일떠선 광주를 비롯한 남조선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영웅적 항쟁 자료 가운데서 그 일부를 편집한 것이다라고 기재돼 있고, 영화의 끝부분에는 '<김일성 훈장>을 수여받은 조선기록영화촬영소 편집 1980'으로 기재돼 있습니다([5.18답변서] 94).

 

(5) 5.18은 북한이 주도한 역사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현상들

 

한국에서는 매년 5.18행사를 광주에서만 1회에 한하여 개최합니다. 반면 북한에서는 매년 북한전역의 시--도시 단위에서 여러 날에 걸쳐 기념합니다. 노동력을 귀하게 여기는 북한이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대한민국에 비해 수십 배 규모로, 평양 한 곳만이 아니라 북한의 전 시--도시 단위로 거행하는 이유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세상을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사람에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와 아울러 김일성은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 영예의 상징으로 [5.18] 글자를 하사했습니다. “5.18청년호”, “5.18영화연구소“ ”5.18공장“. . 등입니다([5.18답변서] 91~93). 

 

(6) 광주 시위를 북한이 주도했다는 단서들 

 

북한 교과서에 5.18은 김일성 교시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는 학자의 연구가 2015.10.14. 연합뉴스 등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249). 북한 조국통일사가 1982년에 발행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194)과 북한의 노동당출판사가 1985년에 발행한 [광주의 분노](251)에는 광주현장에서 발생한 상황들이 서사적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이는 남한의 상황일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자세합니다. 194에는 광주에서 북한이 적용했다는 시위전략, 시위전술 그리고 교훈이 도출돼 있습니다. 반면 남한의 문헌들에는 광주시위에서 사용된 시위전략, 시위전술, 교훈이 기재돼 있지 않고 연구도 된 바도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광주에서 사용된 시위전략, 시위전술을 만들어 군사작전을 기획했고, 현장 상황을 계엄군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하였으며, 사태가 종료된 직후인 1980년 그 해에 광주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가지고 기록영화까지 만들었습니다([5.18답변서] 79~89). 북한이 5.18시위를 풀코스로 관리했다는 생생한 증거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7)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 5.18은 북한 통일전선부가 주도했고, 담당자들이 훈장을 받았다.

 

황장엽의 망명 직전, 중국에서 황장엽을 접촉한 전월간조선 편집장이, 황장엽으로부터 들어서 메모했던 내용과 1998.7. 황장엽과 김덕홍을 동시에 앉혀놓고 인터뷰한 내용을 2013.4.22. TV조선에서 밝혔습니다. 5.18은 북한 통전부가 주도했고, 관련자들이 훈장들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42, [5.18답변서] 100~101)

 

(8) 비밀해제 되어 2020.5.11. 한국정부로 이양된 미국외교문서 9, 북한개입 진하게 암시한 반면 외교부는 불리한 문서 숨겨

 

피고인은 2020.5.11. 미국이 한국정부에 이관한 문서 122520여 쪽 모두를 책자로 묶어 증207-1로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외교부가 국가기록원에 공개한 자료는 보도내용 그대로 43140쪽이었으며 여기에는 북한군 개입을 강하게 시사하는 9건의 문서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외교부가 5.18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국민을 속인 것입니다. 9건의 결정적 문서는 [5.18답변서] 95~100쪽에 제시돼 있습니다. 인민재판이 열리고 몇 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는 제6번째 문서를 뒷받침해주는 4개의 사진이 [5.18답변서] 98~99쪽에 실려있습니다. 4명의 시민이 무장 어깨들에 의해 체포돼 가는 사진입니다. 광주의 기층 시민들이 건장한 광주시민 4명을 체포해간다는 것은 상식 밖의 현상입니다. 연행조는 몸매가 단련돼 있고, 체포행위에 숙달돼 있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9) 청주유골 430구는 북한 유골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조사기록에는, 광주 시립공동묘지에서 일하는 사람의 손을 거친 시체가 594구였고, 527일 새벽에 시체를 운구하는 트럭들이 시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5.18연구소 이름으로 확인돼 있습니다. 당시 사망한 광주시민의 숫자는 정확히 164명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청주시가 원심 재판부에 제출한 사실확인 문서에는 청주에서 발견된 시체가 정확히 430구라고 확인돼 있습니다. 2014.5.23.부터 보도된 수많은 기사에 의하면 청주에서 발견된 유골은 똑같은 규격의 나무 판에 하얀색 비닐로 둘둘 말려있었고, 유품이 일체 없으며 일련번호가 매직으로 쓰였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1m 깊이에 군대식 대오를 갖추어 정리돼 있었다 합니다. 이러한 시체포장 방법은 오로지 광주에서만 있었으며, 당시 시체가 부패해 역겨운 액체가 흐르는 것을 감싸기 위해 사용된 포장 방법이며, 이러한 포장 센터가 실제로 도청 안에 있었습니다. 메디컬 분야의 뉴스 매체들에 의하면 2014년에 충북에서 화장된 무연고 유골은 겨우 18구였고, 조달본부 장터마당에는 이 430구의 무연유골 처리를 위한 장의사업 입찰공고가 없었으며, 청주에서 사실확인한 문서들에는 이 430구를 화장했다는 데 대해 화장터 발행의 화장증명서가 없습니다([5.18

답변서] 107~112).

 

(10) 재판의 기율에 대한 것입니다. 2022.2.16. 선고 당시 재판장님이 육성으로 한동안 낭독하신 판결내용이 판결서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 내용은 2명의 피고인, 2명의 변호인 그리고 다수의 방청인들이 경창하였습니다. 판결선고직후에 가진 방송들에게 피고인은 이에 대한 부당함을 가장 먼저 부각시켰습니다. “북한군이 왔다 하면서 어느 통로를 거쳐 어느 통로로 갔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북한군은 오지 않은 것이다. 피고인은 이에 대해 전혀 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군 개입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판결이 심히 부당하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이는 항간에 떠돌던 [북한군 개입] 주장에 반대하는 논리였습니다. 그 어느 나라 군 수뇌가 광주현장에서 D-데이 H-시에 활동할 600명의 특수군을 한꺼번에 줄을 세워 적국으로 행진시키겠습니까. 1979.10.26. 사태 직후부터 잠수함과 태백산 등의 통로를 통해 10, 20명 단위로 은밀하게 여러 달에 걸쳐 보냈다는 데 대한 탈북자들의 증언들이 있습니다. 이 증언들은 전문가적 시각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그 증거를 채증하는 일은 국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성격의 것입니다. 그것을 신뢰성 있게 채증할 능력이 있으면 어째서 한동안 [노크귀순]에 대한 보도가 유행했겠습니까? 북한 병사가 와서 아군 벙커에 들어와 방마다 노크를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비록 어느 통로로 왔는지에 대한 채증은 하지 못했다 해도 노크 귀순자는 분명히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간첩침투에 대한 오랜 경험들에 의하면 침투수단은 잠수함과 택백산 통로입니다. 군사전문가들은 침투로와 퇴로에 대해 오로지 전문가적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여러 5.18관련 저서들에서 충분히 밝혔습니다.

 

피고인이 북한군 개입에 대한 결론을 얻은 것은 수사문서, 현장 사진에 대한 군사적 해석, 북한의 문헌들, 5.18기념재단의 결정적인 문서, 보도 등을 종합하여 얻은 결론이지 북한군의 진입 진출 통로를 근거로 하여 얻는 결론이 아닙니다. 원심 재판장님의 이 선고 내용은 음미돼야 할 대목입니다. 강도를 당했습니다.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이 묻습니다. “강도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나갔느냐?” 당한 사람이 말합니다. “그걸 제가 어찌 압니까? 다만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이에 경찰이 말합니다, “강도의 진입로와 퇴로를 모르면 너는 강도 맞은 것이 아니다황당한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침투로, 퇴로][북한군이 광주에서 활동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닙니다. 피고인이 제출한 42개 정황증거가 필요조건입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것이 북한군 개입을 입증하는 데 필요조건이라 판결하였습니다. 또 재판부는 42개 정황증거를 무시하고 사실상 오로지 [진입로 퇴로]만을 잣대로 하여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 판결했습니다. 이는 [진입로, 퇴로][북한군 개입] 여부를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라는 뜻입니다 [진입로와 퇴로]에 대한 증거가 [북한군 개입]을 증명하는 데 필요-충분조건이라 정의한 한 것입니다. “피고인이 제388광수를 북한의 문응조라 한 것은 곧 고소인 박철을 특정한 것이 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 판결논리에 이어 [진입로퇴로][북한군개입]을 입증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판결 역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논리 밖의 판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로 필요조건’ ‘충분조건은 중고등 학교에서 터득하는 논리학의 기본입니다.

 

설사 북한군의 진입로와 퇴로가 궁금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판결의 잣대였다면 경찰이 카메라를 숨겨놓고 위반자를 적발하는 식으로 재판절차를 진행할 것이 아니라 3분의 판사님들 중 어느 판사님이라도 공판정에서 묻거나 추궁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2) 영상분석방법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원심의 억지에 대해여

피고인은 영상분석 전문가가 아닙니다. 단지 위 42개의 정황증거에 의해 5.18은 북한이 주도한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냈을 뿐입니다. 북한군이 광주에 왔다면 광주현장 주역들의 얼굴이 북한얼굴일 것이라는 추측은 누구나 하게 됩니다. 이에 필명 노숙자담요가 등장하여 광주얼굴과 북한 얼굴이 동일인임을 증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얼핏 보고 닮았다는 상식수준의 관찰결과를 내놓은 것이 아니라 얼굴의 특징과 흉터, 점 등을 하나씩 설명하고, 얼굴 각 포인트들의 배열이 일치하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기하학적 도면을 그렸습니다. 이는 인터넷에 떠 있는 영상분석 교과서 그대로입니다. 이에 대한 자료도 답변서로 제출했습니다. 누구든지 인터넷에 [얼굴인식]이나 [안면인식]을 검색하면 금새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권침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중국에서는 식당에서도 얼굴, 대중교통에서도 얼굴로 결제하고, 은행에서도 얼굴로 거래한다는 뉴스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컴퓨터가 할 수 있는 로직이 바로 위 , 항에 근거한 것입니다. 노숙자담요는 광주 얼굴 하나하나를 컴퓨터에 걸어놓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인물 얼굴 수만 점이 담긴 [사진DB]를 걸어놓습니다. 그러면 컴퓨터가 이 , 항 로직에 따라 인물DB에서 동일인을 찾아냅니다. 아무리 육감으로 비슷한 얼굴을 찾아낸다 해도, 무슨 수로 북한에 숨어 있는 수만 명 얼굴에 접근하여 661명이나 되는 비슷한 얼굴을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이런 컴퓨터의 탐색(search) 과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노숙자담요의 작품을 믿을 것이고, 얼굴분석을 관상가의 영역 정도로 낮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얼굴인식이 실생활을 바꿀 수 있는 최신과학이라는 뉴스에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노숙자담요의 이런 영상분석을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원심은 노숙자담요의 분석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잣대로 하여 피고인에게 죄를 주었습니다.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근거를 원심은 두 가지로 들었습니다. 첫째는 노숙자담요가 분석방법을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재판부가 육안으로 7개 요소(촬영시점, 장소, 시선, 얼굴형상, 자세, 의복, 두발)로 판단해보니 노숙자자담요의 분석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는 재판부의 억지요 모략입니다. 노숙자담요는 우리 사회의 무시할 수 없는 일각에서 얼굴분석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사람입니다. 5.18이 북한 소행이라고 믿는 여론도 [광수] 사진들에 동의하거나 감동한 국민들이 많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안을 놓고 원심은 재판부가 의복, 두발, 시선, 장소, 시간 등 7개 요소로 판단해보니 노숙자담요의 분석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사실 이 7개 요소는 컴퓨터에 명령어로 사용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재판부가 비과학적으로 창조한 이런 잣대를 가지고, 재판부의 영상분석이 노숙자담요의 그것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심의 판결대로 노숙자담요가 영상분석 방법론을 전혀 제출하지 않았는지 살피겠습니다. 노숙자담요는 두 가지 방법으로 영상분석방법론을 제시하였습니다.

 

첫째컴퓨터로 하여금 [인물DB]에서 현장얼굴과 일치하는 얼굴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검색 로직 10-포인트를 제출하였습니다. 10개 분석 포인트는 컴퓨터가 찾아낸 인물에 대해 일반 상식인들에게 설명해 주는 학습과정에도 언제나 활용돼 왔습니다. 이는 [5.18답변서] 228~229쪽에 제시돼 있고, 그 내용은 이래와 같습니다.

얼굴, 지문인식 기하학 분석

법의학적 골상 분석

표면 등고선과 등고면각, 형상방향각 분석

음영픽셀 농담의 차이에 따른 고저, 형상폭, 2차원 평면점과 3차원 입체각점의 길이와 부분각면의 동일점 및 차이점 분석

얼굴의 특징점에 대한 형상조형 분석

3D 입체면상 및 비율 분석

생체 인상의 표정에 따른 관상학적 분석

노화로 인한 피부세포의 물리화학적 변화와 위치이동 분석

사진에 나타난 동적 상황의 형상과 현재의 정적 상황의 형상과의 차이가 두 사진 상 의 모습과 일치되는지를 판단하는 종합적인 객관성 분석

얼굴각부 형상과 특징점, 개성적인 면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상의 객관성 분석

 

이상의 분석-포인트들은 노숙자담요가 실제로 동일인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2개의 얼굴(현장얼굴 Vs. 북한얼굴)을 비교분석하여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과정에서도 한결같이 적용돼 있습니다. 이는 [5.18답변서] 118~197쪽에 전시돼 있습니다. 이들 페이지를 열면 누구나 직감적으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원심판단과는 정반대로 노숙자담요는 얼굴분석 방법론을 시범과 전시의 방법으로 넘치도록 제출했습니다. (1)광수 한사람 한 사람에 대해 현장의 얼굴이 어째서 북한사람의 얼굴인가를 시범 전시하였습니다. (2)광수라고 주장하는 고소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어째서 고소인 얼굴이 광수얼굴일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시범 전시하였습니다. 모든 작품의 생명은 전달력에 달려 있습니다. 학습의 효과도 전달력에 달려 있습니다. 화가가 그림 그리는 방법을 타인들에 설명하려면 화폭에 그려가면서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가를 보여줍니다. 노숙자담요 역시 컴퓨터가 색출해낸 북한인물과 현장 사진 속 얼굴을 마주 놓고, 실제로 위 10개 착안요소를 어떻게 응용하였는지를 화면(화폭)에 담아 전시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학습방법은 시범입니다. 수학을 학습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론은 예제입니다. 대표적인 문제를 내놓고 그것을 푸는 요령을 시범적으로 학습시키는 것입니다. 노숙자담요는 각 인물을 놓고 분석의 시범을 661회나 보여주었습니다. 이 이상으로 더 훌륭하게 보여주는 분석방법이 또 있는 것인지 피고인을 알지 못합니다.

 

광주현장의 얼굴들이 왜 북한의 얼굴들인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실습적 방법, 시범적 방법으로 전시돼 있는 증거자료가 [5.18답변서] 118~197쪽에 전시돼 있습니다.

 

심복례 얼굴이 왜 광수얼굴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시범적 분석방법은 [5.18답변서] 235~237쪽에 제시돼 있습니다.

 

 

박남선 얼굴이 왜 제71광수의 얼굴이 될 수 없는지는 [5.18답변서] 240~252쪽에 전시돼 있습니다

 

17세의 구두닦이였다던 백종환이 왜 제100광수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영상분석 방법에는 수리공학까지 동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5.18답변서] 257~268쪽에 감동적으로 전시돼 있습니다.

 

  

박철의 얼굴이 왜 제388광수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시범적 영상분석은 [5.18답변서] 270~276쪽에 전시돼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범적 방법으로 얼굴분석 방법을 전시했는데도, 원심은 피고인이 분석방법론을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고 판결합니다. 어쩌면 좋을지 피고인은 그저 답답할 따름입니다.

 

3) 재판부가 영상분석 전문가를 자임해도 되는지에 대하여

 

더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노숙자담요의 분석을 신뢰할 수 없다는 원심재판부의 이유입니다. 피고인은 시범적 모델들을 통해 노숙자담요가 전시한 분석방법론에 최상의 전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원심은 재판부가 위 7개 요소 즉 인물이 바라보는 시선, 촬영 시간, 장소, 두발, 의상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 것이 더 높은 신뢰성을 갖는다고 판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7개 요소는 컴퓨터에 명령어로 사용할 수 없는 요소들입니다. 재판부에 영상분석을 육안으로 할 수 있는 합법적 라이선스가 있는 것인지, 재판부의 위 7개 잣대가 노숙자담요의 분석방법을 0점으로 채점해도 되는 것인지 법률판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4) 재판부의 자의적 판결에 대하여

 

(1) 피고인은 661명의 광수얼굴이 북한 얼굴이라는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안보 목적으로 이들에 대한 노숙자담요의 분석결과를 발견 되는대로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게시했습니다. ‘5.18기념재단은 이 661명 중 15명의 고소인에게 일일이 연락하여 이들의 이름으로 소송을 하였습니다. 이들 15명이 광수 얼굴을 자기 얼굴이라 주장하는 것입니다. 얼굴의 각 부위별 특징 등에 대한 논리가 전혀 없이 그냥 육안으로만 보아도 내가 제 몇 번 광수인지 다 알 것이다, 내가 내 얼굴 모르겠느냐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나이나 생김새부터가 전혀 다른 사진, 흔들려서 얼굴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사진 등을 내놓고 이렇게 주장했는데도 원심은 무조건 그들 주장이 모두 진실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반면 노숙자담요가 영상과학적 매너로 피해자는 절대로 광수얼굴이 아니다라고 분석한 전시물에는 모두 0점을 매겼습니다.

 

고소장에는 89세의 김진순이 1980.5.23. 도청에서 아들 이용충의 관을 잡고 우는 여인이 자기라고 주장돼 있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김진숙 등 유족이 이용충이 사망한 사실을 1980.6.30. 경찰서에 가서, 거기에 진열돼있는 이용충의 유품을 확인함으로써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긴 2개의 증거(66,67)를 제출했습니다(5.18답변서 230). 알리바이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 증거를 배척하는 반론을 펴지 않은 채, 무조건 김진순의 주장을 신뢰한다 판결했습니다.

 

80대 해남 노파 심복례의 이름으로 제출된 고소장에는 1980.5.23. 도청에서 남편 김인태의 관을 잡고 울고 있는 주인공이 심복례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이 주장을 배척하는 증거자료 2개를 제출했습니다. 해남에 사는 심복례가 남편이 사망한 소식을 전해들은 날이 1980.5.29.일이고, 전남도청에서 차를 타고 망월동에 가서 가매장되어 있던 남편의 관을 열어본 날이 1980.5.30.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2개의 증거(70, 증거기록413)를 제출한 것입니다5.18답변서 232). 알리바이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원심은 판결서에 이 증거를 배척하는 반론을 전개함이 없이 무조건 심복례의 주장을 신뢰한다 판결했습니다.

 

박남선의 이름으로 제출된 고소장에는 제71광수가 박남선이라고 주장돼 있습니다. 노숙자담요는 제71광수를 황장엽이라고 판독하였습니다. 박남선은 제71광수의 얼굴이 자기 얼굴이어야 하는데 피고인이 요술을 부려 황장엽과 비슷한 얼굴을 창작해가지고 자기 몸에 합성시켜놓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조선일보 사진DB에서 원문을 인쇄해 제출함과 동시에 그 원사진이 위치한 페이지를 구글로부터 찾아들어가는 경로까지 제출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원심은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척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박남선의 주장에 모순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5.18당시 18세로 고2를 중퇴했다는 고소인 박철은 흔들리는 사진, 식별 자체가 안 되는 아래 3장의 사진을 내놓고 누구든지 육안으로만 보아도 제출하는 사진의 얼굴이 제388광수로 지정된 얼굴과 같은 얼굴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심 제4공판준비 기일조서’(2018.8.16.)에는 당시의 이경진 재판장님께서 박철이 제출한 사진은 식별이 어려우니 식별 가능한 사진을 제출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이후 박철은 이 명령을 무시했습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박철의 주장이 다 옳다고 판결했습니다.

 

4가지 경우만 살피더라도 원심 판결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이었는가를 기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억지 판결이 어떻게 이 대명천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있을 수 있는 것인지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2) 피고인은 광수를 주장하는 15명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를 모릅니다. 이 세상에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원거리 사람에게 명예훼손의 범의를 가질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1심 제4공판준비 기일조서’(2018.8.16.)에는 당시의 이경진 재판장님께서 검사에 촉구하신 내용이 있습니다.피고인은 이 사건 오래 전 사진 속의 인물들이 공소장에 피해자로 적시된 사람들이 아니라 북한군이고,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공소장에 피해자로 적시된 사람들은 사진 속 인물인 북한군과 전혀 다른 사람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주장 자체를 공소장에 피해자로 적시된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허위사실의 적시로 판단한 논리적 근거를 설명할 것을 촉구”. 하지만 이후 검사는 이에 대해 아무런 이행이 없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원심은 판결서 23~24쪽을 통해 검사에게는 입증 의무가 없다하면서 피고인이 생면부지의 고소인들에게 범의를 품었다 판결합니다. 재판부가 논리를 파괴하고 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3)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노숙자담요는 사진 속 제388얼굴이 북한의 고위급 인물' 문응조'라 판독하였는데, 원심은 노숙자담요가 '문응조'를 특정한 것은 바로 박철을 특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이런 논리를 이해할 사람이 과연 세계에 존재할지 의심이 갑니다.

 

4. 소 결

 

(1) 이 병합사건들 모두는 5.18을 북한군이 주도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라집니다.

 

(2) 피고인은 5.18을 북한군이 주도했다고 믿을만한 42개 정황증거를 제출했습니다. 이 모두를 과학적으로 배척하지 않는 한, [북한군 개입] 표현은 학문적 평가로 인정돼야 합니다. 하지만 원심은 42개 정황증거를 배척하는 반론의 전개 없이 1997년 대법원 판결 5.18관련법률이 규정한 5.18정신 확정된 역사적 평가 피고인이 광주법원에서 받은 민사재판 결과 등에 반한다는 이유로 [북한군 개입] 표현을 허위로 단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위 항의 광주법원 판결 역시 피고인이 제출한 정황증거 모두를 이 사건 원심에서처럼 반론과정 없이 오로지 ①②③을 전제로 한 판결이었습니다.

 

(3) 원심의 판결대로 [북한군 개입] 표현이 허위사실이라면 현재 국방부는 어째서 [북한군 개입]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막대한 국고를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북한군 개입] 여부는 업무관할 상 국방부이 관할사항입니다. 이 부분 원심의 판결은 위법하기도 하고 월권행위이기도 한 것입니다.

 

(4) 따라서 이 사건 [북한군 개입이 전혀 없었다]는 전제를 깔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모든 판결은 부당한 판결이 되는 것입니다.

 

(5) 노숙자담요가 영상분석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원심 판결은 사실을 정반대로 왜곡하고 강제하는 처사에 해당할 것입니다. 노숙자담요가 [5.18답변서] 118~197에 전시한 영상분석 사례는 영상분석의 위력을 보인 교과서적 시범에 해당할 것입니다. 80쪽에 전시된 시범 사례를 놓고, 원심은 원심 법관들이 촬영시점, 장소, 시선, 의복, 두발 등을 고루 참작해 육안으로 판단해보니 신뢰성이 전혀 없다며 0점을 주었습니다. 설사 재판부에 영상분석 전문기능이 보유돼 있다 해도, 얼굴인식이라는 한 전문분야에서 전문가A의 작품이 전문가B에 해당하는 재판부의 판단과 다르다는 이유로 전문가A를 단죄할 수 있는 것인지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6) 드라마에서나 있음직한 자의적 판결이 있습니다. 김진순과 심복례는 알리바이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박철은 인식 자체가 어려운 흔들리고 갈라진 사진을 내놓고 누구든지 이 사진만 보면 내가 제588광수임을 알 수 있다주장하였습니다. 이경진 재판장께서 식별 가능한 사진을 제출하라 했는데도 무시했습니다. 박남선은 피고인이 신문사 사진DB에 엄연히 들어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는데도 피고인이 신문사 사진을 조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은 이들 주장이 사기성을 띈 허위주장이라는 데 대해 증거자료를 제출했지만 원심은 이에 대한 반론과정 없이, 이 모든 그로테스크한 주장들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7) 결론적으로 북한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자기라고 주장한 15명의 고소인들은 법률적으로 피해자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2022. 3. 7. 지만원

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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