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대해 국민에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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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1-18 23:09 조회23,5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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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대해 국민에 고합니다.
5.18은 전라남도 광주시민들과 국가 사이에 발생했던 10일간의 무력충돌사건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09:30분경,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령에 따라 경계근무를 하고 있던 20명의 공수부대원들에게 250여명의 학생들이 가방에서 돌멩이를 꺼내 일제 공격한 순간에서 시작됐고, 5월 27일 새벽 05:23분 주영복 국방장관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광주시가 수복되었음을 보고한 순간에 종결되었습니다.
당시의 국민들에 5.18광주사태는 적색분자들이 배후 조종한 반국가 폭동으로 인식됐고, 당시의 법관들도 그렇게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이 사회는 북한의 대남공작부가 양성해온 386학생 세력을 중심으로 민주화라는 광란의 붉은 쓰나미를 맞는 불운을 당하게 되었고, 여기에 1995년 10월 19일, 노태우 비자금이 터져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가세하면서 군사정권에 대한 비난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노태우 비자금이 터지자 당혹스러운 입장에 선 사람은 김영삼이었습니다. 노태우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은 김영삼이 노태우의 비자금을 수천억 원 규모로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을 산 것입니다. 이에 감이 뛰어나다는 김영삼은 그 동안 아무 문제가 없다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에 넣는 기상천외한 돌출행동을 감행함으로써 자기에게 집중됐던 관심을 전두환-노태우에게 전가했고, 이에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군부세력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가세하여 12.12와 5.18역사는 그야말로 법에도 없는 마녀사냥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헌법에서 규정한 일사부재리 원칙과 형벌불소급 원칙을 짓밟고 관심법까지 동원하여 5.18에 대한 정통사관을 뒤엎고, 좌익세력과 양아치 세력으로 대변되는 무산계급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극시켰습니다. 당시 역사바로 세우기에 동원된 검사, 판사,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반드시 역사적인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사실상 적화돼 있습니다.
이로 인해 5.18은 민주화의 정신적 성지가 됐고, 5.18과 같은 성격을 갖는 동의대사태와 4.3사건 등 반국가 반란사건이 줄줄이 민주화 사건 즉 민중항쟁 사건으로 공공연히 대접받게 되었고, 엄청난 금전적 보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과거 반공 정부에서 간첩으로 판명되었던 모든 좌익사건들이 모두 민주화 사건으로 뒤바뀌면서 과거의 역적들에게 수십-수백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되고 있는 반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6.25에 참전한 용사들, 월남참전 용사들, 고엽제 환자들, 그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경은 비천한 대접을 받고 있거나 국가폭력배라는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이를 놓고 어찌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좌익들에 의해 점령돼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5.18이라는 적색사건 하나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적색분자들은 5.18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는 적색분자들은 물론 수많은 국민이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이고, 5.18은 민중항쟁이라 부릅니다. 민중항쟁이라는 말은 적색분자들이 추구하는 ‘민주화’를 탄압하는 대한민국에 대항하여 싸운 항쟁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적국이요 북한공화국은 조국인 것입니다.
도대체 5.18에 붙여진 ‘민주화’란 무슨 뜻입니까? 이들이 말하는 민주화란 우리가 알고 있는 순수한 민주화가 아니라 북한의 대남공작 서적들에 나타나 있는 특별한 의미의 민주화인 것입니다. 북한식 민주화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습니다. 저들의 사기에 놀아나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를 낱말 그대로의 의미로만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칼날에 치명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는 반드시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해야 하며 이를 널리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체사상-민주화-진보’의 실체
아래 내용들은 평양 노동당에서 발간한 책들을 소화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최근 서울시장으로 출마했던 한명숙은 서울을 ‘사람중심도시’로 만들겠다 했고, 세금 증액 없이도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사기를 치는 손학규 역시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중심의 진보사회를 만들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사람중심”이라는 것이 바로 적색분자들의 전용 용어인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북한에서 “사람중심철학”으로 통합니다. 황장엽씨가 ‘사람중심철학’이라고 포장한 것을 김일성이 ‘주체사상’으로 재포장한 것입니다. 북한 원전에서의 주체사상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철학이란 말, 얼른 보면 근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함정이 있습니다. 그 함정은 ‘사람’의 정의(Definition)에 숨어 있습니다. 주체사상 속의 ‘사람’은 노동자-농민 등 ‘무산계급’에 속한 사람만을 의미합니다.
남조선은 미국의 괴뢰사회이기 때문에 남조선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 출세한 사람들, 남조선 괴뢰정부가 고용한 모든 관리, 군인, 경찰은 무산계급인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때문에, 무산계급인 ‘사람’은 이들을 무찌르고 이들로부터 독립해야 비로소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핵심입니다. 기득권세력이 ‘사람’의 적이기 때문에 이들을 까부숴야, 사람 사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민중항쟁’이라는 말은 무산계급이 주체사상을 자유롭게 연구하고, 자유롭게 전파하는 것을 방해하는 미국세력과 미국의 앞잡이인 대한민국에 항거한 항쟁이라는 뜻입니다.
주체사상과 민주화는 동전의 앞뒤
‘주체사상’과 ‘민주화’는 동전의 앞뒤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민주화’라는 단어가 1980년대에 폭발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민주화’는 군사독재를 타도한 성스러운 민주주의 운동인 것으로 인식된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과 남한의 적색세력 사이에 통용되는 민주화란 해방직후부터 남한의 혁명세력(간첩)에 내려진 반미 반정부 ‘투쟁’ 명령이었습니다. 저들은 이를 반미-반파쑈 투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들 혁명세력에 놀아난 이른바 주사파 세력과 민중세력이 저들에 세뇌되어 미쳐 날뛴 것입니다.
사람이 주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즉 주체사상을 마음 놓고 연구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는 학원과 사회가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주체적 인간을 많이 양성할 수 없으니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들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에 눈을 뜬 사람이 진보
김일성은 해방직후부터 남한에서 ‘자본주의와 미제와 파쇼괴뢰 치하로부터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남보다 일찍 깨우친 학생, 노동자, 교수, 지식인들 을 ‘진보적 청년학생’, ‘진보적 지식인’, ‘진보적 정치인’ 등으로 불렀습니다. ‘민주화’와 ‘진보’와 ‘주체사상’은 동의어들입니다.
한국의 상식인들은 ‘진보’의 의미를 ‘한국사회를 개선-발전시키려는 과학적 사고’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이 말하는 ‘진보’는 ‘남조선의 낡은 사상과 낡은 제도를 까부수고 최고의 수준으로 진보한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것 즉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제도를 만들기 위한 혁명적 사상과 사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좌익들은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한에서는 매우 간교하게도 그 단어들이 매우 성스럽고 자랑스러운 단어인 것처럼 드러내놓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딱하게도 우리 국민은 그 단어들의 어원을 알지 못한 채 ‘민주화’와 ‘진보’가 매우 성스러운 개념이고 남보다 앞서가는 개념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책이 정리한 주체사상
통일부 자료실에는 “혁명적 세계관과 청년”(150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977년 북한 금성청년출판사가 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의 26쪽에는 주체사상에 대한 정의가 다음과 같이 내려져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자주성은 생명이다. 사람이 사회적으로 자주성을 잃어버리면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동물과 다름없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인민대중은 역사의 추동력이다”(37쪽)
“혁명적 세계관 형성의 첫째 단계는 사회현상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제도 아래서는 모든 인민이 공평하게 먹고 입고 교육을 받는다. 자본주의 세상을 얼른 보면 화려하고 잘 사는 것 같지만 일자리가 없고, 못사는 사람,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본가가 노동력을 착취하여 자기들만 잘 살려 하기 때문이다. 자본가가 인민의 적인 것이다. 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혁명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첫째 단계인 것이다.”(66-68쪽 요약)
“혁명적 세계관 형성의 둘째 단계는 증오심을 키우는 단계다. 자본가를 증오하고 자본주의를 증오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 (72-73쪽 요지)
“혁명적 세계관 형성의 셋째 단계는 끝까지 혁명을 하려는 혁명적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80쪽)
“혁명적 세계관 형성의 마지막 단계는 공산주의자로서 갖춰야 할 사상 정신적 풍모를 다 갖춘 혁명가(간첩)가 되는 것이다.”(88쪽)
이상과 같이 민주화다 진보다 민중 항쟁이다 하는 것은 북한을 정신적 조국으로 하는 불온세력을 지칭하는 언어들인 것임을 우리는 빨리 인식하고 이를 널리 알려야 할 것입니다. 이를 널리 알릴 때 저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고 힘이 빠지는 것입니다.
5.18의 진실
저는 12.12와 5.18에 대해 2004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연구해 왔습니다. 이제까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우리 국민이 알고 있는 역사는 거의 전부가 가짜입니다. 5.18은 대한민국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광주시민이 희생적으로 나선 운동이 아니라 사회적 반감을 가지고 있는 광주시의 기층세력(무산계급)은 물론 평소 반골정신을 계승해온 일부 전라도 사람들, 평소 경상도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온 전라도 사람들이, '북괴 특수전 부대들이 특수 제작-확산한 유언비어'들에 선동되어 일으킨 반정부 폭동 즉 반란이었습니다.
5.18이 반란이라는 것은 과거사위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 있습니다. 현직 진실화해위(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영조)이 “5·18은 민중반란”(a popular revolt)으로, 4·3은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모반·폭동”(communist-led rebellion)으로 공식 규정한 논문을 국제사회에 발표한 것입니다(2010.11.19.자 보도)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광주에 투입한 7공수 여단을 놓고 북괴 특수전 부대와 간첩들은, '전두환이 경상도 출신 공수부대원들만 뽑아서 환각제를 먹여 전라도 사람 70%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들 경상도 군인들은 광주에 오자마자 한 손에는 대검을 들고 다른 손에는 철봉이 박힌 살인용 곤봉을 들고 미친 듯이 찌르고 때리며 살인을 저질렀으며, 임산부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임산부 얼굴에 뿌렸고, 여학생의 옷을 벗겨 희롱을 하고 드디어는 유방을 대검으로 도려냈다는 기상천외한 유언비어를 뿌렸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분노-흥분하지 않을 사람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7공수 35대대의 경우 3개 지역대중 2명의 지역대장이 전라도 출신이었고, 전체 7공수 요원의 40%가 전라도 출신들이었습니다. 7공수의 주둔지가 전북 금마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유언비어에 흥분하여 거리로 몰려나온 광주시민들이 과연 민주화라는 고귀한 명분을 위해 싸웠겠습니까? 이들은 경상도와 공수부대를 악마라며 증오했고 죽자 사자 싸운 것입니다. 광주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의 본질은 더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싸운 공수부대 요원들은 이런 유언비어를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기상천외한 유언비어들을 전해 듣고 아연실색했습니다. 폭도들은 유언비어에 미처 날뛰었지만, 공수부대 간부들은 폭도들이 어째서 저토록 분노하고 광분할까, 어떻게 저토록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할까 그것이 수수께끼였습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고립된 소수의 입장에서 매타작만 당했던 것입니다.
공수부대가 시위대를 때린 것은 오직 5월 18일 하루였습니다. 5월 19일부터는 계속 매타작만 당했고, 공수부대를 부하 부대로 접수한 31사단장과 전교사 지휘부는 한마디로 장교단 같지도 않은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공수부대 대대장이 상관을 향해 ‘개새끼’라고 무전을 통해 욕을 했겠습니까?
10.26사태 직후 김일성은 권력공백 사태를 적화통일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남한에 와 있는 간첩들에 전민봉기(전국봉기)를 일으키라 명령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수전 부대를 대거 한국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평소 곽동의 등 간첩들과 늘 접촉하는 김대중은 1980년 5월 22일을 기해 전 국민에게 검은 리본을 달고 폭동을 일으킬 것과 군은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고 이 폭동에 참여할 것을 공개적으로 선동했습니다. 반역이었습니다.
이를 가만히 둔다면 그건 정부가 아니지요. 이는 5월 15일의 서울역 10만 폭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어서 당시 정부로서는 방치할 수 없었고, 그래서 5.17조치가 행해진 것입니다. 감히 김대중이 전국 폭동을 선언하다니요. 북으로부터의 언질이 없었다면 이런 엄청난 선언을 할 수 있었을까요? 2006년 6월 15일, 6.15 민족통일대축전 6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대중은 북한의 대남공작부 사람들을 대거 데려와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굿판을 벌였고, 그 자리에서 망월동 묘지에 묻힌 영령들이 북한 빨갱이-남한 빨갱이가 어우러져 적화통일 잔치를 벌이는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뻐하실 것인가, 이런 취지의 특별연설을 했습니다.
저는 북한이 발행한 대외비 자료를 연구했습니다. 그 자료들은 광주 현장에 오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사실 자료들이었습니다. 국정원 자료보다 더 자세하고, 당시 시위대의 감정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했습니다. 거기에는 시위의 전략-전술-교훈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북한 책과 남한 책 그리고 탈북자들이 쓴 36명의 증언과 수기들이 모두 하나의 정점으로 수렴되었습니다. 광주에 북한 특수군 수백 명이 분명히 왔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5.18은 북한이 기획-연출-현장 지휘했고, 현장 역사도 북한 책에 더 자세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현장에 있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역사인 것입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북한은 전 지역에 걸쳐 당정의 최고간부들이 주최하는 5.18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북한 최고의 시설, 장비, 천리마 운동에 5.18의 칭호를 영광의 의미로 부여해 줍니다. 북한에서만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매년 5월이 되면 광주는 붉은 해방구가 됩니다. 국내 해외 빨갱이들이 다 집결하여 광주시를 붉은 깃발로 물들이면서 반미-반파쇼 선동을 하고, 심지어는 이명박정권을 몰아내자는 시위를 합니다. 5.15묘지에 있는 모든 묘비에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이명박 퇴진”이라는 띠를 두롭니다.
국민 여러분, 이런 5.18을 어떻게 대한민국을 위한 민주화운동이라며 보훈처가 나서서 해마다 경축행사를 할 수 있습니까? 북한은 5.18을 자기들이 이룩한 대남적화통일 역사의 꽃이라 경축하고, 남한은 민주화의 꽃이라며 경축하고 있으니 이런 코미디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5.18단체와 안양지검 박윤희 검사를 국민 여러분께 고발합니다.
국민에게는 역사의 진실을 탐구할 권리가 있고, 넓은 의미의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은 세월이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기희생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7년 동안 10만 쪽에 이른다는 수사 및 재판 기록들을 조사하고, 그 외 많은 자료들을 획득하여 12.12와 5.18에 대한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 방대한 노력은, 오직 역사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신념과 대한민국의 안녕을 지키겠다는 신념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노력인 것이지, 감정을 가지고 충돌의 한 쪽 당사자를 비방하기 위해 기울일 수 있는 노력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진실탐구의 노력에 대해 충돌의 한쪽 당사자가 나서서 끈질기게 탄압을 가한다는 것은 옳지도 않고 모양새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월 29일 5.18단체 수십 명이 본 법원에 왔습니다. 이들의 일부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법정 밖에서 연로하신 어른들을 향해 욕설을 계속하면서 엄청난 수모와 한숨을 안겨주었습니다. 심지어는 광주 패거리들의 폭력적 언행에 주눅 든 어른 들 옆에 서 있는 40대 후반인 피고인 측 여성에게 뒤로부터 접근하여 순간적인 폭력을 가했습니다. 귀고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귀가 찢어졌습니다. 누군가가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나와 사진을 찍은 후 용의자를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고소를 하라 했지만 그 여인은 광주 사람들로부터 보복당하는 것이 무섭다며 없었던 일로 하겠다 했습니다. 재판정 안에서는 변호인이 변호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욕설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재판장이 주의를 주고 부탁하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세차례나 재판을 중단하고 냉각의 시간을 갖고서야 가까스로 변론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비문명권 세계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이런 무절제하고도 호전적인 폭력 행위가 언제까지 '5.18의 이름'으로 성행되고 고무돼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1994년 말과 1995년 초에 걸쳐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는 1946년 당시 북한에 진주한 소군정 최고 사령관 스티코프 대장의 비망록을 입수하여 보도했습니다. 스티코프-김일성-박헌영으로 이어지는 지휘선을 유지하면서 이들은 1946년 남한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9월 총파업과 10월 대구폭동을 직접 지휘했습니다. 이 두 사건에 대해 각 200만엔과 300만엔을 지원했습니다. 남한에서의 폭동들이 소련의 지휘를 받는 김일성-박헌영이 주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하지만 남한의 좌파들은 이 두 폭동이 북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미군정의 탄압에 항거하기 위해 일으킨 순수한 ‘민중항쟁’이라고 선전해왔습니다. 남한에서의 ‘반란’을 놓고 북한 및 좌파들은 ‘민중항쟁’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해방공간에서 발아된 반미 투쟁, 단선-단정 반대 투쟁에 뿌리를 둔, 북한의 집요한 대남공작이 중단되지 않는 한, 남한 사회의 불만에 편승하여 불만을 소요로 점화시키려는 북한의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이를 경계하자 하는 것은 애국의 길이지 박윤희 검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법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18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다는 사실은 당시의 군도 몰랐고, 정보당국도 의심만 했지 증거를 잡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일반 광주시민들이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아무도 모르게 5.18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다고 하면 이는 불법을 저지른 북한과 이를 잡지 못한 남한당국의 불명예는 될 수 있겠지만 광주시민들의 명예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이 일부 광주시민들의 불명예가 된다는 것인지 5.18단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 광주시민의 희생이 공수부대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면 5.18의 명예가 보존되고, 북한특수군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면 5.18의 명예가 훼손된다고 하는 5.18단체와 박윤희 검사의 주장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북한과 한편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반사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광주는 그야말로 해방구가 됩니다. 대법원에서 불법 이적단체들로 판명된 반역단체들을 위시하여, 수많은 좌파단체들이 광주로 대거 몰려들어 북한 단체들 및 해외 좌파단체들과 연합하여 반미 반파쇼 민족자주통일을 위한 투쟁을 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역시 해마다 5월이 되면 최고위급 당정 인물들이 주동이 되어 북한 전역 단위로 반미 반파쑈 민족자주통일을 위한 투쟁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5.18의 이름으로 남북한이 한 데 어울려 반국가 투쟁을 선동하는 이 행위들이 언제까지 고무 격려돼야 할 것입니까?
진실탐구 노력은 국가적으로 장려되고 격려돼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진실탐구노력이 이렇게 법정에 서 있습니다. 5.18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매우 많아도 절대로 오지 않았다고 단정할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5.18단체와 박윤희 검사는 광주에 북한군이 절대로 오지 않았다 주장합니다.
5.18과 북한은 내통한 하나이며 이들은 연합하여 남과 북에서 각기 5.18영화를 만들고, 수많은 책들을 만들어 반미-반정부-적화통일을 선전-선동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이런 자료들을 UN에 등재시켜 국제무대에서 반-대한민국 선전을 하겠다합니다. 이에 더해 5.18단체는 대한민국의 건국개념을 부정합니다. 5.18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반역자들이 부르다 최근에 공식행사에서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된 곡입니다. 5.18단체 자체가 친북 좌익인 것입니다.
5.18단체의 명예는 5.18단체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5.18을 반미-반정부 모략수단으로 악용하지 않고, 5.18시위가 반정부 무장폭동이 아닐 때에만 존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 5.18집단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과 내통하여 5.18 영화를 만들고 수많은 책들을 발간하고,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적화통일을 획책하고, 북한과 나란히 각종 5.18행사를 벌여 반미-반국가 모략행위를 벌이는 등 5.18을 반미-반정부-반국가 모략용으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5.18집단에는 명예가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국가보안법에 따라 법의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안양지검 박윤희 검사가 쓴 공소장은 학자가 쓴 역사책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은 현대판 분서갱유의 선언문이라 할 것입니다. 검찰은 또한 공수부대와 신군부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들은 보호하고, 모처럼 5년에 걸쳐 수사기록을 보고 다큐멘터리 역사책을 쓴 것에 대해서는 책이 나오자마자 책 자체를 법의 심판대에 올렸습니다. 이는 공정한 역사를 쓰려는 앞으로의 수많은 노력들에 찬물을 끼얹는 국가폭력이요 적화행위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이 만든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남한이 만든 영화 ‘화려한 휴가’, 황석영이 쓴 5・18역사책(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 북한 책들이 쏟아낸 5・18역사책들, 그리고 수많은 인터넷 글들과 MBC 드라마들이 허위사실을 쏟아낸 데 대해서는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고 있으면서 유독 제가 쓴 역사책에 대해서는 나오자마자 검찰이 앞장서서 제동을 거는 행위는 용서될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아직도 현장에 갔던 공수부대 출신들, 언론들은 5.18 앞에 주눅이 듭니다. 이제까지는 5.18의 간판을 내걸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믿는 조폭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집단폭력을 마구 휘두르며 짐승같이 날뛰어 왔습니다. 이들은 광주 깡패들에 주눅이 들어 제가 받고 있는 재판정에도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광주 것들은 지금 주눅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첫째 저들이 숨겨온 붉은 신분증이 탄로가 났기 때문에, 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인종이라 해도 더 이상 5.18을 민주화운동이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광주사람들, 전라도 사람들이 누구들입니까? 평균 이상으로 아집이 세고, 타 지역을 적대시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 저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민주화라는 선물을 쟁취하여 선사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감히 5.18을 민주화운동이라 부르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반미-반파쇼 민중항쟁‘이라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커밍아웃! 스스로 빨갱이라 선언한 것입니다.
전에는 5.18은 폭동이라 해도, 5.18에 북한이라는 단어만 갔다 붙여도 이른바 발광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5.18이 북한과 내통한 빨갱이요 반정부 폭동이요 내란행위라 해도 꼼짝을 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저들은 이제 수세에 몰려있습니다.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어디를 감히 나타나겠습니까? 5.18은 이제 심판의 대상이고 몰매를 맞아야 할 대상이지 더 이상 극성스러운 야수 집단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목표는 오직 하루라도 빨리 유네스코 문화기록에 일방적으로 편향된 자료들을 등재하겠다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5.18은 북과 내통한 빨갱이고, 북한이 이룩한 대남공작 역사이며 5.18주동자들은 모두가 북과 내통한 빨갱이들입니다. ‘솔로몬 앞에 선 5.18“이라는 제 책을 반드시 읽어주시고, 확산시켜 붉은역사로 쓰여 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잡는 일에 모두가 나서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책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려면 저는 김대중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 김대중-임동원-김동신을 가리켜 빨갱이라 부르면서 광주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며, 7년씩이나 이 한 역사에 매달려 18만 페이지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공부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16개월에 걸친 5.18재판을 자초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 앞에 선 5.18”은 돈벌이 책이 아니라 10년간의 제 인생을 괴롭히면서 만들어 낸 총알입니다. 총알을 양산하여 쏘는 일은 국민 여러분의 역할이어야 할 것입니다.
2011.1.1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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