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학당 교장 이영훈, 폭력가인가, 학당의 교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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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2-11 23:32 조회3,0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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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학당 교장 이영훈, 폭력가인가, 학당의 교장인가?
이영훈 교수는 최근 언어폭력가요 물리적 폭력가로 이미지화돼 있다. 그 사례를 몇 개 들어 본다. 2019.8.10. MBC기자가 [반일종족주의]와 관련해 질문이 있다며 이영훈에게 따라 붙었다. “교수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묻는 용어가 공손해 보였다. MBC가 보도한 부분만을 보면 이영훈 교수는 기자의 마이크를 내려쳤다. 그리고 그 마이크는 땅으로 분사됐다. 이어서 이영훈은 우악스러운 손으로 기자의 뺨을 세게 때렸다. 거친 욕설도 했다. 아래는 mbc의 보도내용 일부다.
“줄곧 폭언과 함께 고함을 지르며 인터뷰를 거부하던 이 교수는 갑자기 마이크를 파손하더니 취재기자의 얼굴을 가격하는 폭력까지 행사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P5fOxPQjB4
욕설이 섞인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은 교수 출신에게는 물론 [이승만학당]의 교장 신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도 기자들로부터 이런 경우를 많이 당했지만 나는 112 경찰을 불러서 해결했다.
진실 편에 섰던 위안부 피해자 심지자는 안중에 없고, 심미자를 가해한 안병직만 눈에 뵈는 이승만 학당 교장 이영훈
약 7개월 전인 2021년 7월 29일(목)박영길 선생에게 이영훈 교수로부터 카톡이 왔다고 한다. 박영길 선생은 초대 일본군 ‘위안부’ 단체인 세계평화무궁화회 회장을 맡았던 심미자(沈美子) 할머니가 60년간을 보존해왔던 1만쪽 분량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카톡의 내용은 심미자(沈美子) 할머니가 남긴 1만쪽 분량의 자료를 열람하고 싶으니, 한번 들려 달라는 요지였다고 한다.
그는 하남에서 남산에 있는 이영훈 교장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랬더니, 박영길 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자료를 이승만학당에 넘겨줄 수 없는가에 대한 의향을 묻기 위한 자리였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박영길 선생은 심미자(沈美子) 할머니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존교와 같은 신념이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심미자 할머니를 여러 차례 만나 녹음을 해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박선생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들을 언젠가는 후진에게 이양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한다. 그러기에 내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영훈 교수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박영길 선생이 심미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의 말을 인용했다고 한다. 이 순간에서부터 사단이 발생했다고 한다.
심미자 할머니는 안병직 교수를 ‘놈’이라고 불렀다 한다. 안병직 교수가 정대협에서 윤미향과 3년 동안이나 한팀-한편이 되어 일하면서, 심미자 할머니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몰아가면서 심미자 할머니를 모든 케이스의 일본군‘위안부’ 명단과 증언집에서 삭제시키는 일을 했다는 것이 심미자 할머니가 평소에 들려주었던 말이라고 한다.
참고로 심미자 할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자기가 최초로 형성된 위안부 모임(세계평화무궁화회)의 초대 회장을 하면서 모든 회원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밤새내 이야기하고 울고 했다고 했다. 그 결과 판단이 섰다고 했다. 강제로 끌려간 사람은 20%가 채 안되고 80% 이상이 스스로 지원했다고 한다. 2004년 당시 대만의 한 국회의원도 이러한 발언을 했다고 비난을 받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아마도 안병직과 윤미향은 이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 그 할머니를 왕따시켰던 모양이었다. 따라서 심미자와 윤미향, 심미자와 안병직은 원수관계로 발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병직 그놈이 증언집을 만들기 위해서 성남의 내 집에 와서 지난날의 일본에서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했던 증언도 듣고 일본을 다니면서 재판을 한 기록도 보고, 자료에 대한 설명도 듣고 했으면서도, 자기를 일본군‘위안부’ 증언이 사실과 맞지 않고, 신빙성이 없다고 하면서 증언집과 명단에서 이름을 뺏다.” “안병직과 윤미향이 일본군 ‘위안부’를 공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목적인 반일 투쟁을 위해 악용하는 것이라며 늘 불만을 표했다” 이것이 늘 심미자 할머니가 들여주었던 말이었다고 한다.
이날 박영길 선생은 이영훈 앞에서 할머니가 늘 “안병직 놈”이라 했다고 말해주었다 한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가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고성을 지르며 “나는 다른 건 참아도 내 스승을 욕하는 자는 용서할 수 없다”면서 고성을 지르며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면서 사무실을 나가라고 손 삿대 짓을 하며,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고 했다고 한다.
당신이 무슨 심미자(沈美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냐 하면서 또 다시 일어나 바짝 다가와 “나가라” 고성을 질렀다고 한다. 박영길 선생의 말로는 이영훈 교수의 그 그런 모습을 목격하고 딱하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했다. 이영훈 교수가 진정 이성이 있는 지성인 이라면, 인격과 명예가 있는 교수라면, 아무리 스승이 중하다 해도 그의 수승은 그의 스승일뿐이지, 만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스승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스승이라 해도 남이 그 스승의 잘못된 과거를 지적해 주면 겸허하게 경청하고 말 일이았다. 안병직에게 일생의 피날레를 피탈당한 심미자 할머니는 누구이고, 실제로 산맥을 휘젓고 다니면서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고 발광했던 박현채 그리고 그의 단짝 동지인 안병직 이 개자식은 누구이길래 이승만학당의 교장이라는 아영훈이가 이토록 편파적으로 발광을 하는 것인가?
이 세상을 개화시키겠다는 종자들이 심미자 할머니의 말살된 인권과 명예 그리고 존엄성은 안중에 없다는 말인가, 정말로 세상을 계몽시키려 노력하는 학자라면 스승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반송하고 대신 사과를 해야 대의명분있는 자세다. 박영길 선생은 이런 이영훈에게 자료를 넘겨주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사무실로부터 탈출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여성 근무자도 있었고, 이우연 교수도 있었다 한다. 박영길 선생의 소감으로는 “이영훈은 3분 이상, 이성을 상실한 야수였고, 시정잡배보다 더 험악한 잡배였다”고 말했다. 이에 비하면 이우연 교수가 참으로 점잖았다고 한다. 이우연 교수가 박영길 선생을 밖으로 안내해 무마해서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영훈은 1951년생이고, 박영길은 1941년생이다. 부탁할 사안이 있어서 멀리에 사는 10년 연상의 손님을 자기 사무실로 초청했으면 설령 말에 실수나 불만족스러운 표현이 있다 해도 참거나 교정을 청하여 대화를 끝내고 배웅까지를 하는 것이 기본 매너다. 연상의 손님을 초대해놓고 “욕설과 주먹질만 없었지 완전히 공포분위기를 만들어 추방했다”고 하니 그 거칠고 험악했다는 장면에 공포의 상징 박현채가 오버랩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매너만 있었으면 1만쪽 자료를 인계해 주었을 텐데 성질이 더럽고 과격해, 주고 싶었던 마음을 접었다는 것이 박선생이 전언이다. 폭력가가 거룩하신 이승만 박사를 표절하여 [이승만 학당]을 만들고, 이를 간판으로 써먹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2. 2. 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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