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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김훈 중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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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10-15 22:12 조회25,7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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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보는 김훈 중위-1


1998년 2월 24일 낮 12시 20분, 판문점 241 GP 3번 벙커에서 김훈 중위가 의문사를 당했다. 이어서 10월 12일 인근지역에서 오정석 중위가 하사의 주먹질에 맞아 죽은 사실이 또 다시 은폐 축소돼 있다 했다. 수많은 병사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의문사를 당했고, 장교들까지 사병들에 의해 의문사를 당하게 된 것이다.

사고는 왜 자주 발생하며 군은 그런 사고를 왜 계속해서 축소 은페하려 하는가? 사고의 원인은 구타, 리더십 부족, 불평, 불만이다. 진실의 축소 은폐 역시 불평, 불만, 불신의 원인이 된다. 군이 사고를 은폐하는 한 사고는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고 후의 처리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져서 처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규명해서 지혜와 교훈을 이끌어내서 다시는 유사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객관적인 조사팀을 투입해서 사고의 진정한 원인을 조사하고 교훈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한국군에서는 이러한 노력 없이 무조건 고급 지휘관들을 처벌해 왔다. 처벌이 두려운 고급 지휘관들은 사건을 축소 은폐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원인은 군수뇌에 있다. 예를 들어 1사단에서 발생한 사고를 1사단장에게 조사시키고, 그 보고를 군수뇌가 그대로 믿기 때문에 사고는 계속해서 은폐 축소된다. 통찰력을 가진 군수뇌라면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그가 가장 믿는 간부들로 사고조사팀을 만들어 급파할 것이다. 그리고 그 조사팀을 감시하는 또 다른 팀을 구성할 것이다. 옛날 박대통령은 군 장군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꽃 같은 대령을 물색해서 군 사고를 조사시켰다.

더구나 김훈 중위 의문사에 대한 수사를 맡았던 1사단 수사팀이 오정석 중위 살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맡았다 한다. 김훈 중위 의문사 수사로 1사단 수사팀이 사회적으로 불신을 받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군수뇌가 또 다른 하극상 사고를 1사단 수사팀의 보고서만 믿고 소홀히 처리한 것은 군수뇌의 자질에 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1사단 수사팀이 오정석 중위 살해사건을 축소은폐 했다면 김훈 중위 의문사에 대해서도 축소 은폐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누군가가 1사단 수사팀을 수사하면 두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1사단 수사팀을 수사할 것인가? 김훈 중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형성된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은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았다. 국방장관이 불신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이 특별 수사팀을 구성하는 길 뿐이다.

70만으로 구성된 대규모 조직에서 사고는 있을 수 있다. 또한 용서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속이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어야 한다. 군수뇌가 속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군 수뇌는 준위도 속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군수뇌는 보고만 받으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이라 세상 물정을 모른다.

"부하를 믿지 못하면 어떻게 지휘를 할 수 있는가?". 늘 고급 장교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부하를 믿어주는 지휘관이 대범하고 통큰 지휘관이 된다. 군은 현장을 보존하지 않는다. 수사도 공개리에 하지 않는다.

김훈 중위의 경우 국회는 두 시간 전에 철모가 있었던 사진을 제출하고 권총의 위치가 처음과 나중이 다르다는 사실을 내놓았다. 그제서야 군이 대응논리를 급하게 내놓았다. 의혹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군이 의문사에 대한 수사를 축소-은폐했다면 거기엔 그럴만한 동기가 있어야만 한다. 그 동기가 무엇인지 군은 솔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과거의 예를 보면 사고가 나면 지휘관들이 연대책임을 졌다. 원인분석보다는 연대책임이 앞서왔던 것이다. 청운의 꿈을 키우고 있는 간부들로서는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사고에 대해서까지 연대책임을 진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싶어하는 것이 군 사회에 널리 인정돼 왔다. 너 좋고 나 좋자는 것이다.

만일 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중앙으로부터 공정하고 능력 있는 전문수사팀과 함께 일반참모들로 구성된 경영개선팀이 즉시 파견되어 처벌보다는 사고의 원인 규명에 1차적 목적으로 두었다면 축소-은폐하려는 동기가 유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가 많은 부대에 다른 지휘관이 가면 그 다음날부터 사고가 없어지는 사례들도 있다. 이 같이 사고는 리더십의 산물이다. 사고는 불안과 불만이 많고 경직된 부대 분위기에서 많이 발생한다. 만일 사고가 날 수 있는 요인을 찾아내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병사들이 매일 내무반에서 자유롭게 토의를 벌이는 부대가 있다면 그런 부대는 사고를 거의 구경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부대의 상황일지는 가장 중요한 공식적 역사기록 문서다. 특히 판문점에서 작성되는 상황일지는 국가차원의 역사 기록이다. 인민군, 미군, 한국군, 그리고 판문점을 통과하는 모든 이들의 활동 내용이 샅샅이 기록된다. 그런데 김훈중위가 살해(?)되던 1998년 2월 24일자에 기록된 상황일지가 누군가에 의해 찢겨져 나갔다.

사건이 터지면 가장 먼저 참조하는 것이 상황일지다. 이는 병사들도 알고 있는 일반화된 군의 상식이다. 상황일지는 김훈중위 살해사건을 규명하는 데 최고의 단서가 된다. 그런데 군수사기관은 이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냄새는 여기서부터 풍기기 시작했다. 은폐를 위해 군이 찢었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2월 4일부터 지난 11월 27일 사건을 자살로 종결시키는데 참여한 수사관들과 부검 군의관들은 "사건의 진상"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조사하면 김훈 중위 살해사건의 진실은 금방 들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은 그들을 조사하지 않았다. 군수뇌에는 물론 군 전체에 치명적인 파장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12월 14일자 중앙일보 23면에는 특별합동조사단장인 양인목 중장의 발언이 인용됐다. "상황일지는 상황병이 작성하는 메모형식의 참고기록일 뿐이다". 상황일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상황일지를 보지 않으면 작전 계획도 세우지 못한다. 상황일지는 부대의 유일한 역사 기록 문서다. 그래서 상황일지의 기록은 작전 책임자가 감독하고 서명한다.

상황일지만 파기된 게 아니라 김훈중위 개인용 장교수첩도 분실됐다. 초동 수사관들은 가장 중요한 단서가 기록돼 있을 두 가지 기록물들을 전혀 찾으려하지도 않고 무조건 "자살"이라고만 단정지었다. 이 두 가지 증거물을 은닉한 사람들은 바로 초동수사에 참여한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시의 조사단장은 축소수사 마인드부터 먼저 나타냈다.

왜 자살로만 몰고 가려 했을까? 진실이 밝혀지면 첫째, 처벌의 파장이 넓어지고, 사회적 여론이 빗발치며, 유가족에게 소송의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2010.10.1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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