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학당 이영훈은 빨치산 직계 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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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2-04 22:46 조회3,20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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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학당 이영훈은 빨치산 직계 존속
출생년도:1951
출생지:찾지 못함
학력: 서울대 경제학박사 (논문: 조선후기 농업경영)
성향: 서울대 70학번, 지독한 빨갱이 운동권, 연필과 물리력으로 투쟁, 서울대 경제학과 1학년(1970년 11월) 때 전태일이 분신하자 박정희를 노동 착취자라며 시위, 1971년 구로공단에 위장취업, 학교에서 5년간 제적. 당시 위장 취업자는 기업 도산에 앞장 선 기업의 염라대왕, 김문수-손학규 부류이며, 민노총의 뿌리.
뿌리: 골수 빨치산 후예 박현채(서울대55학번)와 안병직(서울대 57학번)과 함께 연구하고 함께 휴가 가는 생활을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 지남철 트리오. 1995년 박현채가 사망하자 안병직과 이영훈 뉴라이트 이론가로 전신,
대담집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2008)에서 이영훈은 안병직과 자기는 하나라고 소개했다. “대학 들어와 안병직 선생님을 만난 지 37년이다. 그간 내 인생은 안 선생님을 빼고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지시로 서당에 들어가 사서삼경을 읽었고 조선시대 경제사 연구를 시작했다. 내 인생 행로가 결정됐다. 37년 만남과 배움에서 안 선생님은 언제나 연구자로서 정직했다. 모택동주의자였을 때도 그랬고 신고전파 성장이론으로 전향한 뒤에도 그랬다.” (2007년 11월 6일 이영훈 씀). 두 사람은 1970년 교수와 제자로 만나 49년을 함께 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700
빨치산 족보: 박현채-안병직-이영훈
안병직은 박헌채를 만나자마자 마르크스주의자로 변했다. 그리고 마오쩌둥에 심취했다. 박현채는 전남 화순 적벽, 김중태(61학번), 김정남(61학번), 김근태(65학번) 등 골수빨갱이들을 양성했다. 안병직은 그 시절을 “나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소문난 학생운동 강사였다”고 회고했다. 안병직은 이영훈과 김문수에게 ‘노동운동하라’고 권했고 이에 따라 두 사람은 노동운동을 지독하게 했다, 당시의 노동운동은 기업을 도산시키는 운동이었다.
안병직은 통혁당(통일혁명당) 간첩 김수행, 신영복과 호형호제했다. 이영훈과 김문수는 동기인데 1971년 안병직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안병직은 “내가 자네들 나이였으면 교수가 아니라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 80년대 후반 골수 빨치산 박현채와 이영훈은 지리산을 함께 등반했다.
▲ 1987년 안병직과 이영훈은 낙성대경제연구소 창립
이영훈은 “일진회”를 “자유민권 실천한 최초의 민간 정치 단체”라고 띄웠다. 하지만 일진회는 한총련의 원조였다. 고건과 류근일이 만든 클럽이다. 일진회가 4.19를 지휘했다는 것은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에도 나와 있다.
빨치산 원조 박현채(위키백과)
출생: 1934년 11월 3일, 전라남도 화순군
사망: 1995년 8월 17일(60세)
경력: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50년에서 1952년사이 빨치산 소년돌격부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지리산·백아산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 1964년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
광주수창국민학교 졸업
광주서중학교 졸업
1954년 전주고등학교 편입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입학
1960년대초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1964년 인혁당 사건에 연루 감옥살이
1989년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임용됨.
1995년 뇌졸중으로 별세
소설 태백산맥의 모델
소설가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집필하면서 광주서중(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선배인 박현채를 빨치산 전사 조원제의 모델로 삼았다.
이승만 학당에는 출강자들만 보이고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 빨치산 직속자가 이승만 장사를 하는 것은 마치 [50명의 간첩을 능가한다는 조갑제]가 박정희 장사를 하는 것과도 같다. 두 사람의 행실이 일란성 쌍둥이인 것이다. 얼마전 김길자라는 경인여대 전 학장이 [우남애국상]으로 애국장사를 했다. 우남은 이승만 박사의 호다. 조갑제-정규제-이영훈은 현대판 빨치산 트리오라고 생각한다. 요사이 이영훈과 이동욱이 콜라보하여 5.18 성역화에 발벗고 나섰다. 이 예민한 시점에서 이영훈과 이승만 학당이 무슨 동기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와 손을 잡았는지, 그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애국국민들은 밝혀내야 할 것이다.
2022.2.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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