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조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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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08-19 20:17 조회23,86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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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창 경찰서장의 이유 있는 반항
하극상의 전말
채수창 강북경찰서장과 조현오 서울청장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이 6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조현오 서울청장은 경찰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동반 사퇴하자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군으로 말하자면 대령이 3성장군 되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대든 것이다.
조현오 서울청장은 몇 년도에 임관했는지는 몰라도 고대 정외과를 나와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경정(작은 무궁화 3개)을 달고 임관했기 때문에 경찰의 뿌리와 밑바닥 문화를 잘 알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경찰 내부에서는 외무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웬 경찰이냐는 말도 들린다. 반면 강북경찰서장은 정규 4년제 경찰대학 제1기생이다. 이들은 졸업하면 경위(작은 무궁화 1개)로 임관되어 주로 파출소장으로 부임한다 한다.
경찰에 들어오는 코스는 4개 루트, 고시, 4년제 경찰대학, 간부후보, 순경 등 다양한 채용루트가 있다. 전두환 시대에는 육군사관학교 졸업생 중 일부 희망자에 한해 경정(작은 무궁화 3개)으로 임관시킨 적이 있었지만, 경찰내부로부터 반발을 사서 1982년경에 사라졌다. 이른바 유신사무관 제도의 일환이었다.
유신사무관 제도의 존속 여부를 놓고 관계분야의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을 때 총무처장관의 요청을 받은 국방장관이 당시 국방연구원에 과제를 부여했고, 이 예민한 과제는 또 필자에게 떨어졌다. 필자는 3개월이라는 단기에 이 과제의 결론을 냈고, 결론은 유신사무관제의 폐지였다. 육사의 혈통을 지키고, 대다수의 공무원들에 주는 위화감을 제거하고, 5공정권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 본인 스스로를 위해서도 젊은 인생을 질시 속에서 지내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바로 이 유신사무관과 같은 제도가 아직도 경찰에 살아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이번 항명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언론들은 ‘적어도 경찰서장쯤 되었으면 정당한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정도’라며 천편일률적으로 강북 경찰서장을 나무라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만난 경찰들은 ‘곪은 것이 터진 사건’이며 이제 겨우 나이 48세에 스스로 옷을 벗으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데 대해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채서장을 옹호한다.
채수창 서장은 왜 자폭을 선택했나?
강북서는 최근 4개월 동안 성과주의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기록했다한다. 채서장은 적발보다는 민생을 돕는 일에 치중했다고 한다. 서울청장은 이를 자기의 트레이드마크인‘성과주의’에 대한 일종의 항명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때 서울청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강북경찰서장을 불러 특별한 사유나 애로가 있는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기의 리더십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다. 그게 지휘관의 기본이다.
강북서장의 점수는 통계학에서 말하는 Outlier다. 밀집해 달리는 양떼 집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인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 연구의 가치를 품고 있는 귀중한 연구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서울청장에게는 이런 지식이 없었다. 지식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에게는 리더십의 기본이 없었다. 그리고 괘씸하다는 식으로 주먹부터 날렸다. 이는 인격 자체에 관한 문제다.
그는 서울청 감찰반을 동원하여 4개월 연속 강북서에 보내 감찰을 실시했다 한다. 채수창 서장에 의하면 “실적이 안 나온다고 감찰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뒤지고 압박했다. 사생활 조사까지 하는 바람에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적어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서울의 한 경찰서장 정도가 이런 취급을 당했다면 이는 경찰의 수치다. 인격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치사하고 유치한 짓이다. 필자가 채서장의 위치에서 이런 대접을 받았다 해도 이 정도의 반발은 했을 것이다. 5공 시절인 1987년 초, 필자도 치사한 꼴을 보지 못해 45세에 대령 옷을 벗어버렸다.
서울청장의 명령, 서울시민들을 쥐어짜라
그러면 조현오 서울청장은 도대체 성과주의를 어떻게 진행했기에 이런 반발을 불러왔는가? 한마디로 서울시민들을 쥐어짜라는 압박이었다 한다. 절도 폭력 강간 등 강력범죄뿐만 아니라 교통위반자 건수, 주정차 위반자 건수, 건널목 무단 횡단 건수, 노점상 위반건수, 노래방 중심으로 발생하는 범죄건수, 경범죄 . . 등 경찰사회에서 유행하는 ‘후리가리 실적 올리기’를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후리가리’란 ‘싸그리’라는 뜻이란다. 큰 고기든 실 낱 같은 송사리 할 것 없이 모두 챙겨 점수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어린 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아 억지로 건수를 만들어 보고한 경찰이 한동안 죄책감에 가슴앓이를 한 적도 있다 한다. 채수창 서장은 이런 말을 했다. “양천서 서장과 형사과장이 경찰대 동문인데 일부 언론에 경찰대 출신들이 승진에 눈이 멀었다고 하는 식의 기사를 보고 참담했다. 서울청장의 성과주의 행정이 바뀌지 않은 한, 경찰 고문은 얼마든지 또 발생할 수 있다. 경찰대 출신이 승진에 매달리는 등 비겁하고 치사한 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빗나간 성과주의, 위험한 성과주의
성과주의! 1980년대에 군에는 성과주의가 유행했다.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수치에 의한 성과를 평가하여 그에 따라 상을 주고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성과주의다. 개념상으로만 보면 환영할만한 일이고 또 반드시 성과에 따라 상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있다.
필자가 연구소에 근무할 때 예편인 2성장군이 연구소장으로 왔다. 그 연구소장은 수위에게 명하여 정문을 누가 몇 번 통과하였는가를 기록하도록 했다. 그리고 정문을 많이 출입한 연구자들을 범죄시했다. 연구의 대상은 모두 연구소 밖에 있고, 현실감 있는 연구를 하려면 연구소 정문을 많이 통과해야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연구소장은 이것을 성과에 불리하게 반영시키겠다했다. 불평이 없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군에서도 성과측정(Performance Evaluation)을 한다며 가당치도 않은 성과지수를 개발하여 고과를 먹였다. 수많은 노력들이 진행됐지만 성과지수가 비상식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에 불평과 불만만 팽배하고 결국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전문 분야의 교수나 기술자는 평가 대상의 인물이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 금방 평가한다. 여기에는 평가지수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서울청장은 전근대적인 게슈타포
수치(Numbers)를 가지고 간부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게으른 짓이며 바보짓이다. GE의 잭 웰치는 수치를 제시하는 경영자는 GE를 떠나라 했다. 가치(Value)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경찰 간부는 수치로 제어되는 사냥개가 아니다. 경찰 간부는 가치를 개발해야 하고 그 가치로 평가받아야 한다. 강북경찰서장은 민생을 챙겼다 한다. 민생은 경찰이 챙겨야 할 존중할 만한 가치다. 하지만 서울청장이 건수 올리기에 서울시의 모든 경찰을 사냥개 노릇을 시킨 행위는 어느 모로 보나 가치가 아니다.
경찰이 경찰다우려면 사후적발로 민생에 아픔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예방활동을 해야 한다. 예방활동을 하다보면 범죄의 소굴과 근원이 파악된다. 이것이 시스템적 치안의 출발점이다. 서울청장의 행위는 경찰을 실적 올리기의 사냥개로 내몰았고, 경찰의 가슴을 삭막하게 고갈시켰고, 시민을 괴롭히는 전근대적인 게슈타포 경찰행위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청장의 '후리가리식 실적올리기’행정은 지탄을 받아야 할 대상이며, 당장 중지돼야 할 악행이다. 더구나 철학이 틀린 경찰서장에게 감찰력을 집중 투입하여 전 방위 압박을 가한 행동은 가장 유치한 폭력이며, 이는 경찰의 체면과 위상을 스스로 낮추는 지각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2010.6.2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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