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렬과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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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07-29 12:28 조회30,06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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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렬과 5.18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이라는 골수 빨갱이 한상렬, 겉으로는 인권, 민주, 진보를 주창하지만, 전형적인 북한 맹종자다. 지난 6월 12일 몰래 개구멍을 통해 북한에 올라가 북한 빨갱이들과 어울리며 희희낙락하고 있다. 북한주민을 학살-학대하는 무법자 김정일과 북한체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는 반면, 그에게 밥을 먹여주고 옷을 입혀주는 남한정부를 '역적 패당'이라며 저주를 쏟아낸다. 미국과 한국을 저주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인 것이다.
맥아더 동상 철거시위에도 앞장섰다. 맥아더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인천상륙작전은 없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그때 남한은 김일성 치하로 통일됐을 것이라는 데 대해 앙심을 품은 것이다. 오종렬, 박석운과 함께 2008년 5월부터 100일 동안 서울 중심부를 무법천지로 만들면서 한미관계를 악화시키고 반미여론을 하늘 높이 일으켰다.
광화문 시위는 반미-친북을 위해 존재하는 ‘방송의 해방구’ MBC가 허위사실을 침소봉대하여 국민을 선동함으로써 시작됐다. 이에 동조해 아고라에 기생하는 빨갱이들이 온갖 유언비어들을 지어냈다. 이 허위방송과 유언비어들이 순수한 국민을 광화문 거리로 유혹해낸 것이다.
유언비어야말로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환각제인 것이며, 이러한 환각제는 대구10.1폭동, 제주4.3폭동, 광주5.18폭동에서 빨갱이들이 단골메뉴로 사용한 전략이었다. 선동 없이는 폭동에 필요한 인력을 동원할 수 없다. 그리고 선동의 가장 큰 재료가 유언비어인 것이다
귀가 얇은 일부 국민들은 언제나 선동에 놀아난다.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생각했고, 이런 협상을 주도한 이명박을 규탄해야 한다며 의협심을 가지고 도심으로 몰려나왔다. 광우병시위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기획과 연출로 진행됐지만 지휘부의 정점에는 한상렬을 위시한 진보연대 3인방이 있었다.
결국 국가사회를 들었다 놨다 했던 광우병 시위는 MBC-진보연대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이 MBC와 아고라가 지어낸 허위사실과 유언비어에 선동되어 거리로 나왔지만, 아마도 그들은 아직까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광우병시위의 확대판이 바로 5.18이다. 광주사태에 동원된 시위대와 시민들 역시 유언비어에 선동되어 거리로 나왔다. 당시의 광주시민 80만 중 20만 명 정도가 거리로 나왔다. 유언비어의 힘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계엄군이 전라도 사람을 빨갱이로 보고 경상도 군인들만 뽑아서 전라도 사람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 보냈다. 공수대를 며칠 씩 굶긴 다음 술에 환각제를 타서 마시게 했다. 사람을 짐승 죽이듯 하고 있다. 전라도 영웅 김대중도 죽었고, 벌써 1,000명이나 죽었다. 가만히 있으면 앉아서 다 죽는다. 죽을 때 죽더라도 싸워 보고나 죽자” 이런 종류의 유언비어요 선동이었다. 그런데 이런 유언비어의 출처는 북한이었다. 이는 필자가 아주 최근에 발견해 냈다.
광주의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였다. 하나는 단순히 나와서 관망하는 시민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악착같이 계엄군을 공격하는 시위대였다. 광주에서 사망한 시위대의 80% 이상은 일부 어린학생들과 양아치로 대변되는 무산계층이었다.
사망한 어린 학생들은 의협심에서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고속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구두닦이, 껌팔이, 쓰리꾼, 넝마주이 등 파출소를 들락거리던 최하층 계급은 자기들을 멸시해온 세상을 한번 뒤집어 보자는 심정으로 폭력시위에 앞장섰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먼저 파출소부터 불태웠던 것이다. 사망한 사람들이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인데 비해 시위지도부 사람은 죽지 않았다.
광화문 시위의 연출자는 MBC와 진보연대로 부각돼 있지만, 광주시위에는 연출자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4일간의 광주의 폭력작전은 정규군이 시가지 게릴라 작전을 주도한다 해도 흉내조차 낼 수 없이 전문적이고 일사불란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광화문 시위를 연출한 진보연대와 같은 그런 지휘부가 없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시민군대장(안성기)으로 띄운 박남선은 26세의 골재채취운전수에 불과했고, 당시의 시민군지도부(학생대책위원회)는 온건파 김창길과 강경파 김종배가 옥신각신 싸우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학생대책위원회도 겨우 계엄군이 광주에서 철수한 지 4일 후인 5월 25일에 비로소 결성됐다. 그 이전에는 그 방대한 광주작전을 지휘한 연출자가 없었다.
빨갱이들이 5.18의 영웅으로 모시는 윤상원(본명 윤개원)도 겨우 대변인 자리를 맡았다. 윤개원 정도가 투사회보라는 지하 유인물을 만들어 광주시민을 선동한 것이 전부였고, 수많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작전을 지휘한 현장 지도부 인물은 없었다.
오직 잘 싸운 고2짜리 말단 전사 윤기권을 북한이 데려갔을 뿐이다. 윤기권의 공로를 현장에 지켜보지 않고 어찌 북한이 윤기권을 찍어서 영웅으로 모셔갔겠는가? 윤기권은 5월 18일에 경찰관 15명을 인질로 잡은 공로로 2억원을 보상받았다.
통상 고정간첩들은 개인당 수십 명씩의 지역동조자들을 거느린다. 간첩이 지시하면 이들이 현장에서 바람을 잡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에 발간되는 “솔로몬 앞에 선 5.18”에서 5.18은 북한이 기획-연출했을 것이라는 연구결론을 냈다.
2010.7.2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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