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복 국방장관과 수사검사의 육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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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1-13 16:34 조회2,6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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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복 국방장관과 수사검사의 육갑질
주영복은 1979년 12.12. 사건 직후 노재현의 뒤를 이어 국방장관에 임명되었고, 1982년에 전두환에 의해 내무장관으로 옮겨갔다. 1927에 태어나 78세인 2005에 사망했다. 5.18때 그의 나이는 53세,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되었지만 그 후 사면됐다.
아래는 1995년 12월 12일, 서울지검에서 진술한 내용 중 일부다.
검사: 진술인은 최대통령의 하야 소식을 하루 전인 1980년 8월 15일에 들었다고 했지요?
주영복: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절 행사가 끝나고 쉬고 있는데 대통령이 불러서 갔습니다.
문: 대통령이 진술인만 불렀나요?
답: 여러 사람들을 함께 불렀습니다.
문: 대통령이 무어라 하시던가요?
답: 평화적 정부이양의 선례를 남기기 위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말씀하셔서 한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문: 그 때 대통령의 눈 부위 등에 어떤 폭행을 당한 자국이 없던가요?
답: 어느 쪽인지는 모르지만 한쪽 눈이 부자연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문: 그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나요?
답: 그전에는 없었습니다.
문: 진술인은 대통령이 스스로의 판단과 결심으로 하야했다고 보십니까?
답: 참 진술하기 곤란한 질문입니다.
문: 1980년 8월 21일, 진술인의 주도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소집하여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는 결의를 했나요?
답: 제가 주도한 것은 아니고 보안사 측에서 하라 해서 했습니다. 제 입장에서 거절할 수 없어 회의를 소집한 것입니다. 그날 저녁인지 다음날 저녁인지는 몰라도 부부동반 500명 정도가 모인 자리에서 보안사의 주선으로 윤성민 1군사령관과 윤자중 공군총장이 전두환을 앞에 세워놓고 “위대한 영도자 전두환 대장을 위해 건배를 하자”고 소리를 지르자 모두가 “위하여”를 소리 지르고 건배를 했습니다.
문: 진술인은 그 회의에서 훈시를 통해 “구국 일념으로 탁월한 영도력을 발휘해 국가의 위난을 수습하고 새 시대 새 역사의 지도자로 국내외에 뚜렷이 부각된 전두환 장군을 차기 국가원수로 추대할 것을 여기 모인 육해공군 지휘관과 더불어 제의하고 전국적 합의로 결의를 다짐한다. 오직 이 길만이 우리 국가목표인 항구적 안정과 보람찬 민주복자국가 건설을 앞당길 수 있음을 확신한다”라는 말을 했지요?
답: 예
문: 그 훈시도 전두환이 시킨 것인가요?
답: 보안사에서 가져와 읽으라 해서 읽은 것뿐입니다.
문: 더 할 말이 있나요?
답: 전두환은 1.12 군부세력을 등에 업고 10.26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정승화 총장을 연행 구속하고 심지어 노재현 국방장관까지 거의 연행하다시피 해 군권을 장악했습니다. 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보위 설치 국회해산 등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군 인사까지 포함한 거의 모든 중요사항에 대한 결정을 전두환 시시에 의해서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고령이라 나머지 인생을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주: 주영복은 1927년생, 5.19당시 53세, 고령이라는 말은 한번만 잘 봐달라는 뜻으로 보인다. 징역 7년 선고.
그의 나머지 진술 중에서 눈에 띄는 내용들을 몇 가지만 추려본다.
1) 국방장관은 중요 정책에 대해 보안사령관에게 지시할 위치에 있었지만 그들이 실세여서 지시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들이 시키는 일이면 다 해야 했다.
2) 전두환이 중정부장서리를 겸직한 것은 정보를 장악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전두환이 실권자였기 때문에 신현확과 이희성은 꼭두각시였다.
3) 5월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는 국방부 국장들 및 국방차관 조문환과 상의한 결과 모두의 뜻에 따라 내가 열기로 결정했다.
4) 5월17일21:40분에 국무회의가 열렸는데 긴장감이 돌았고, 국무원들 모두가 약간 겁먹은 얼굴이었다. 비상계엄전국확대는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5) 5월17일 22시에 정치인들과 자야인사들을 체포한 것은 전두환 등 실세들이 정권을 잡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6) 전두환은 12.12이후 군권을 탈취하고 80년5월경 국보위를 설치하여 모든 권한을 좌지우지 했다. 대통령은 물론 본인, 계엄사령관 무두가 전혀 실권이 없는 사람(바지)들이었다.
2022.1.1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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