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후 쇼의 이동진의 ‘시시비비(是是非非)’ 토론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1,2차 토론회를 지인의 전갈로 보았다. 토론회 시청 소감은, 국민들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는 달라져 지지성향으로 바뀌고 있어 경탄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남북 좌익들의 주술과 같은 공작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3월 9일, 2차 토론회는 필자를 실망시켰다. 토론자의 한 사람은 길거리 보수집회에서 자유대한을 위해 신명을 바치는 봉태홍 ‘라이트 뉴스’ 대표였고, 다른 한사람은 이봉규 시사평론가였다. 이봉규씨는 토론회 서두에 자신은 좌파가 아니고 중도이며, 우파에 가깝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토론회가 무르익어갈 수록 이봉규씨는 극좌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좌익은 스스로 자신을 좌익이라고 하지 않고 다른 간판을 내세운다는 말이 실감나는 토론이었다.
이봉규씨는 토론회에 나서려면 최소한도 첫째, 토론 상대자와의 예의를 갖추며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빈정대는 웃음속에 상대의 말꼬리를 잡아 망신주는 내공이 깊은 고수로 비쳤다. 봉태홍씨가 신사도를 지켰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건전한 토론회는 간데 없고 말꼬리 잡아 망신주기를 즐기는 듯한 그에게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렸을 것이다.
이봉규씨는 사기협잡배(詐欺挾雜輩)같은 남북 좌익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미친듯이 내지르는 광언(狂言)같은 발언을 복창하는 듯 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항쟁 때, “시민들 수천명을 살인하게 명령한 살인마”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봉규씨는 눈으로 목도했는가? 주장의 근거는 있는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장인가?
독자 제위 여러분, 5,18 광주사태 때 진압군에 의해 시민들이 수천명이 죽었는가? YS가 대통령 시절,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이용하여 헌법에 반하는 소급입법을 하여 소위 ‘5,18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 노태우 죽이기를 할 때 법정에서 분명히 밝혀진 것이 사망자는 160명 안팍이었는데, 이봉규씨의 ‘광주시민 수천명 살인설’은 무슨 근거에서 주장하는 것인가? 전두환, 노태우 죽이기에 환장하여 환상을 보았거나, 자다가 봉창 뚫는 주장 아닌가? 이동진 사회자는 인신공격에 대해 헛소리를 연발하는 이봉규씨를 제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동진은 대본에 코를 박듯 사회를 보며 모른체 했다.
수천명 살인설의 진원지는 북한에서 대남공작을 위해 만든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에서나 나오는 주장이다. ‘5,18문제’는 YS의 지시에 의해 대한민국 사법부의 조사와 판결에서 사상자 숫자가 밝혀졌고, 전두환 전 대통령하고는 무관하여 “무죄‘가 판명났다. 그런데 사법부의 조사, 판결은 믿지 않고 북한정권의 '5,18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니 그의 정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봉규씨의 주장은 북한정권은 물론, 한국내 북한정권 추종자들에게 박장대호(拍掌大呼)로서 환영받을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딱하게 보고 지탄할 일이 아닐까?
또, 이봉규씨는 전국이 시청하는 토론장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자신이 직접 목도를 한 사건도 아니면서, “수천명을 살인하게 한 명령을 내린 살인마”라는 거듭 주장하여 인신공격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것도 표현의 자유인가? 사기협잡배 같은 허위사실을 퍼뜨리면서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토론을 해서는 안된다. 제정신이요, 일말의 양심있는 ‘시사토론가’라면 정중히 사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봉규씨 같은 시사토론가의 주장으로 한국사회는 대남적화의 전성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차제에 이봉규씨는 금후, ‘1212’문제와 ‘5,18’문제에 대하여 토론장에 나가려면, 지만원박사의 편저인 ‘수사기록으로 본 1212, 와 5,18’을 일독하기를 진심으로 권장한다.
지금은 인터넷 전성시대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예전처럼 보안이 어렵다. 예컨대 김일성은 생존시에 ‘5,18 광주사태’의 소식을 듣고 절호의 기회를 잡은 듯 쾌재(快哉)!를 불렀다 한다. 북한인민에게 사기협잡을 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사기협잡을 하겠다는 발상에서, 밀입북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광주의 비극을 수령님께서 활용 해주십사” 간청하는 황석영에게 시나리오를 쓰게 하여 만든 영화가 ‘님을 위한 교향시’이다. 김일성은, 첫째, 영화를 본 북한 인민들이 분개하여 해마다 “5, 18 정신을 본받자”는 군중대회를 통해 국군과 반미감정을 고조시키고, 둘째, 대한민국 국민들을 국군과 이간질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김일성이 만든 ‘님을 위한 교향시’의 마각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수령님께서 사기협잡을 한것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었다. 탈북 군인들이 광주사태 때 특수부대가 지원되었고, 김일성이 '님을 위한 교향시'를 만들어 반포한 것을 폭로한 것이다.
우리의 청소년들, 유권자들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 활짝 깨어났다. 초, 중고생을 붙잡고 민주화 운동을 위해 경찰서와 예비군 등 무기고를 털어 무장하고, 교도소를 습격하여 수천명 죄수들에게 무장시켜 함께 국군을 죽이면서 민주화 운동을 하자고 설득하면 과연 몇 명이나 동의할까? 진정한 민주화는 법치의 세상이다. 무법천지가 민주화 세상이 아닌 것이다. 국민들은 깨어있는데, 대남적화 방송을 복창해서 누가 믿을까?
대한민국의 국운은 희망이 있다. 신라, 고려, 조선, 국운이 다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했다면, 김일성이 소련과 중공의 앞잡이가 되어 일으킨 ‘6,25 전쟁’때 망했다. 또, 김재규가 일으킨 ‘10,26 사건’ 후 김재규와 추종군인들이 집권하려 했을 때, 위기였다. 물론, ‘5,18 광주사태’ 때 위험했다. 김일성은 미군이 주둔하는 한 무력통일이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유일한 길은 좌파 정치인이 정권을 잡게 해서 대한민국을 통째로 자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은 한국의 좌파 정치인을 위해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에게 암살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운이 튼튼하여 김일성이나, 돈과 암살대로 지원받은 정치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허망한 소망을 품고, 저승차사에 의한 황천행을 피하지 못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여름날의 천둥번개는 울었는가, 라는 시가 있듯이, 세계에서 주목받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 국운은 천둥, 번개처럼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때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늘에서 점지 하듯이, 대한민국을 보위하기 위한 대통령들이 나타났다. 그 대통령들이 하늘에서 강림한 부처님이나 예수님같은 무소유의 성인이 아니다. 위대한 공(功)도 있고, 중생적인 과(過)도 있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국운이 선택한 대통령중의 한 분이다. 이제 그분은 산수(傘壽)를 지났다. 그분만큼 영욕(榮辱)이 교차한 분이 또 있을까? 그분은 이제 속세를 떠난 수행자처럼, 정치에 초탈해 있다. 그런데 심심하면, 언론에서 음모의 시비를 하고, 타작하듯 해서야 되겠는가?
지금은 국운이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다. 중도를 표방하며 좌우를 포용하면서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대통령이다. 30년 전 같으면 낙선의 고배(苦杯)를 들어야 할 좌우포용이다. 왕성한 대한민국 국운은 어디서 오는가?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성숙한 국민들이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이 아비의 전철(前轍)을 밟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김정일 추종자들이 무기고를 털어 반란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군부시대의 회귀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상등국의 반열에 반드시 오를 것이다. 희망이 보인다.
끝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자들이 총칼로 정권을 장악했다면, 대한민국이 온전할 수 있었을까?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북한정권이 기회를 잡지 않았을까?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이 박대통령의 암살자들을 법정에 세운 것은 한국 군인들의 충의를 국제사회에 보여준 자랑스러운 쾌거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인본분(軍人本分)은 충의(忠義)라는 것과, 사나이들의 신의(信義)는 관제(關帝)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실천해 보여주었다. 이제 그분에게 우리는 대남공작의 복창같은 시비보다는 태극기를 흔들어 남은 여생 편히 보내게 해드리면서, 영광된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현명한 국민들의 각오라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 ◇
李法徹(bubch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