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선진화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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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09-11-30 15:24 조회25,2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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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은행들은 아직도 담보를 잡고 돈을 대출해주는 부동산 전당포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업에 대출을 해주면 은행은 그 때부터 기업의 감시자가 돼야 한다. 그 기업이 망하게 되면 은행은 가장 훌륭한 경영자를 찾아 대출기업의 CEO로 임명해야 한다. 이것이 은행의 합리적인 경영이 아니겠는가?
은행은 왜 제자리걸음밖에 할 수 없는가? 조직을 포함한 경영 시스템이 제자리에 안주해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지점들의 집합체다. 모든 지점장들은 천편일률적인 구시대 조직을 가지고 예전과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영업실적에 의해 고가점수를 받고 있다. 현 지점장들의 능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창구를 운영하는 일뿐이다. 이런 능력밖에 가지지 못한 지점장들에게 고객의 신용과 능력 평가를 전제로 하는 대출업무를 맡기고 있기 때문에 부실대출이 속출해 온 것이다.
시스템이 빈약하고 허술하기 때문에 지점장은 대리급 심복 한 사람만 두면 얼마든지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 정치권과 권부의 대출압력이 쉽게 먹혀들 수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에 들어 국가가 대부분의 은행들을 국유화했기 때문에 집권당의 관치 인사와 관치금융, 파워 대출의 악습들이 심화됐고 그 관행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있다.
은행의 각 지점을 들여다보자. 대출과 대부에 할당된 인력은 팀당 2명으로 구성된 3개 팀 뿐이다. 3개 팀을 1명의 부장이 통할하고 있다. 그 위에 지점장이 있다. 2명으로 구성된 팀마저도 팀장과 팀원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말만 팀이지 팀에는 실무자 1명, 감독자 1명으로 구성돼 있어 팀단위에서 대출에 관련한 수많은 조사를 주도하고 리스크를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팀의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지점장 일인 독재가 가능하다. 더구나 대출해준 돈에 대한 사후관리 대책은 전혀 없다. 일단 대출해준 돈에 대해서는 기업이 구워먹든 삶아먹든 간여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고, 인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떼일 수밖에!
대출 및 대부 업무와 사후관리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지점을 차별화해야 한다. 대출 및 대부 업무만을 다루는 대출전문 지점과 수신 및 창구 업무만을 관장하는 일반지점으로 분리하여 지점을 설치하는 방법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일반 지점은 지금처럼 고객들의 편리를 위해 지역마다 설치하지만, 대출 전문 지점은 인력 규모 상 넓은 지역 단위에 하나씩 드문드문 둘 수밖에 없다.
대출 전문지점 내의 인력은 고급 분석 능력을 갖춰야 하며 이들은 팀제로 운영돼야 한다. 팀에게는 시장을 나눠줘야 한다. 시장은 지역적으로 나눌 수도 있고, 고객과 기업군으로 나눌 수 있다. 대출 업무는 팀장의 실명제 하에 수행하고, 대출된 돈을 책임지고 사후관리 해야 한다.
팀 단위로 책임 대출과 사후 관리를 하게 하는 이상 지점장은 대출 업무에서 완전히 제외돼야 한다. 특정 업체에 대한 의사결정에서는 더욱 철저하게 배제돼야 한다. 지점장은 대출업무의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팀들의 대출업무에 대한 감사자가 돼야 한다.
지점장의 리더십은 팀들의 경영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 시스템 개선, 복지 문제에 지향돼야 한다. 성과는 지점장이 평가하지만 인사권은 지점장에게 주어지지 말아야 한다. 지점장의 인사권은 팀원들의 독립성을 파괴하고 지점장의 막후 영향력 행사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사권이 있어야 사람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훌륭한 경영을 할 수 없다. 한국의 경영이 과학화되지 못하고 부정과 비리가 만연해 온 것은 직속상관 개인에게 주어진 인사권 때문일 수 있다. 인사권을 개인이 가지고 있으면 그 개인도 타락하고 부하들도 타락한다.
대출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은 적어도 5명 이상으로 구성된 팀원들에 의한 현장 조사와 팀원 간의 열띤 토의에 의해 만장일치로 이뤄져야 한다. 팀간의 치열한 경쟁이 유도돼야 한다. 그러면 부정과 야합이 없어지고, 부실대출 가능성이 줄어들며, 대출 업무의 신속성과 정확성 그리고 전문성이 길러진다.
반면 일반지점 내의 인력은 단순 업무에 치중하기 때문에 인력도 지금의 반 이하로 축소돼야 할 것이다. 단순한 업무만을 취급하기 때문에 지점장의 직급도 지금보다 낮고 다른 간부들의 직위와 숫자도 지금보다 하향 조정돼야 할 것이다.
관치 금융의 폐해와 은행 경영의 합리화를 보장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스템은 15명 내외로 구성된 감시 위원회다. 은행마다 15명 내외의 공신력 있는 사계 인사를 선발해 감시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15명이라는 숫자는 야합할 수 없는 다수다. 필자는 1999년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던 서울시 시정개혁자문위원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비교적 합리적으로 인선이 이뤄진 서울시 시정개혁위원회는 많은 가능성을 시사해 줬다.
그런 위원회를 은행마다 설치하면 금융문제는 즉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은행장도 이들 15명의 감시위원회가 선발한다. 이들에 의해 선발된 은행장은 정치권의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다. 설사 받았다 해도 은행장의 독단은 통하지 않는다. 15명의 감시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년 의무적으로 외부 경영분석팀을 고용해 은행의 경영상태를 분석한 다음 이에 따라 인사를 단행한다. 이렇게 하는데 어찌 은행이 발전되지 않겠는가?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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