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홍어십쌔잡쌔조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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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1-23 13:39 조회3,72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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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시리즈 홍어십쌔잡쌔조꾸 (4)
8순 넘은 해남 할매 내세워 소송질하는 5.18기념재단
심복례 남편 김인태
위 사진들은 오마이뉴스가 2019년에 해남에 가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심복례는 1940년생으로 해남의 농녀다. 그는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고 했다. 키는 145cm 정도, 이 여인은 법정에서의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여인이다. 그래서 첫 심리를 중단하고 또 다시 불러 신문했다. 이 여성 역시 인터넷 접근이 불가능한 여인이었다. 그런데 5․18기념재단이 그녀를 내세워 ‘그녀가 인터넷을 통해 명예훼손당했다’는 취지로 대리고소를 했다. 아울러 광주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를 냈다.
5.18기념재단, 심복례를 제62광수로 출전시켜
소송의 실질 주체는 5.18기념재단이고 이름만 빌린 것이다. 5․18기념재단은 1995년에 심복례를 제62광수(리을설)로 내세웠다. 그랬더니 광주법원 이창한 부장판사를 비롯한 광주판사들이 그녀를 제62광수로 인정해 피고인에게 배상금을 물렸다. 이 사건을 가장 먼저 심리했던 판사는 광주지법 이창한 부장판사였다. 이 자는 도둑제판을 했다. 5.18기념재단이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한 지 2일 만에 인용판결을 내렸고, 그 다음날 판결서를 내게 도착시켰다. 이는 군사적전이었다. 피고(피신청인)들은 소송이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도 몰랐고, 따라서 변론서도 제출하지 못했고, 재판도 물론 없었다. 아래는 이창한이 쓴 판결서다. 이 판결서의 주문 이유는 이후 김태호 전라판사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마우스로 긁어 사용됐다.
리을설은 북한 인민군의 전설이고 2015년 [인민군 원수]의 계급으로 사망했다. 5.18 당시 심복례는 40세, 사망한 그의 남편 김인태는 47세였다. 제62광수는 무장한 어깨들 한 가운데 당당히 서 있었고, 리을설 바로 옆에 서 있는 군병은 황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60세의 여장한 장군의 자리에 40세에 불과한 해남의 농촌 여성 그것도 글자는커녕 언어소통 자체가 어려운 키 145정도의 깡촌 여성이 서 있을 수 있는지 독자들은 상상해 보기 바란다.
광주판사 이창한의 도둑재판
이창한
가처분: 사건 2015카합636 발행 및 배포금지 가처분
재판장 이창한 (배석판사: 권노을, 유정훈)
주문
채무자들은 뉴스타운 호외지 제1,2,3호의 내용과 같은 내용을 추가발행하거나 배포하거나 같은 취지를 담은 내용을 인터넷에 게시하여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1건단 2,000,000원의 금원을 지급하라
이유
1. 5.18 민주화 운동은 이미 법률적으로 역사적으로 그 성격이 아래와 같이 확립돼 있다. 이를 부정하는 행위는 범법 행위다.
1)“전두환은 5.17계엄확대선포로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을 강압하였다. 이에 광주 시민들이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시위를 했고, 이에 전두환 등은 광주 시민을 사살 구타하는 방법으로 시위를 무력 진압하였다. 5.18 민주화 운동은 헌법파괴 세력에 맞서 항거한 헌법수호 운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에 기초하여 국가는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예우, 보상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5.18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1997.4.17. 선고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광주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세력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다.”
2) “위 법률 및 판결의 취지에 의하면 5.18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과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의 귀감으로서 항구적으로 존중돼야 할 대상으로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5.18 민주화 운동의 민주-정의 실현의 이념을 기리고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시책을 마련할 의무를 지며,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또는 상이를 입은 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는 국가가 그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관련자와 그 유족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5.18 민주화 운동 관련자 및 그 유족들 5,700여 명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고, 그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보상이 이루어져 오고 있으며, 1997.5.9.부터는 매년 5.18이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로 지정됨으로써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해마다 5.18 민주화 운동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이에 더해 5.18 민주화 운동 기록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5.18기념재단, 심복례를 62광수로 출전시켜 이겨놓고 다시 심복례를 139광수로 출전시켜 이겼다
그로부터 40일 후 5․18기념재단은 그녀의 입장을 바꾸었다. “나는 62광수가 아니라 139광수다.” 터무니없는 수작을 벌였다. 이에 김동규부장판사는 “심복례는 62광수가 아니고 139광수가 맞다”며 바꾼 주장이 옳다고 인용해주었다. 이후 광주법원의 모든 관련 판사들이 기념재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2억 4천만원을 배상했고, 5.18기념재단은 이 배상금의 일부를 여기저기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름을 빌려준 광주것들에는 얼마가 갔는지 모른다. 이 사건의 원심 재판장 광주일고 김태호 판사도 심복례의 주장이 100% 옳다고 판결했다.
1980년 5월 29일, 남편의 사망소식을 해남에서 전해듣고 5.30일 광주애 도착한 심복례가 5월 23일 도청에서 남편의 관을 잡고 울고 있었다 주장한 5.18기념재단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사이버 추모공간]에는 심복례의 당시 증언이 기록돼 있다. 그녀의 남편 김인태가 해남에서 광주로 간 날은 5월 19일이었고, 김인태가 사망했다는 통지를 받은 날은 5월 29일, 그리고 그녀가 해남을 떠나 광주 전남도청에 도착한 시각이 5월 30일 08시라고 기록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제139광수라고 주장하는 현장 사진은 5월 23일에 촬영됐다. 시간적 알리바이가 형성되지 못한 주장인 것이다. 5월 30일, 망월동 가매장 현장에 냄새가 역한 남편의 시신을 처음 접한 날이 5월 30일이었는데 그보다 1주인 전인 5월 23일에 촬영된 사진 속 얼굴이 자기라고 주장하는 존재가 국가예산 마셔대고 있는 5.18기념재단이다.
광주 법정에서 나의 변호인이 이 사실을 지적하자 김동규 부장판사는 광주 측 변호인들을 향해 “심복례는 알리바이가 형성돼 있지 않다. 피해자일 수가 없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변호인은 기뻐했다. 그런데 막상 판결문(결정문)에는 심복례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판결(결정)돼 있었다. 이창한부장판사, 김동규부장판사를 비롯해 그들을 보좌하는 합의부 판사들은 논리와 팩트로 재판을 하는 것들이 아니라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상대로 한 재판들에서 이런 식의 판결을 내린 광주법원 판사들은 22명이나 된다.
천대받던 신분의 주검 팔아 국가 위에 군림하는 드라큘라 변이종
광주에서 부장판사 짓하는 놈들, 이 물건들이 법복을 입은 것은 대한민국의 재앙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7시30분 방향에 처박혀 사는 종자들, 그들이 전국에 줄줄 흘려놓은 홍어 알 뭉치들도 국가의 재앙이다. 북괴군이 와서 일으킨 게릴라전쟁을 마그나카르타라느니, 미국의 독립선언이라느니, 사기 치는 시발롬들, 이 씨발롬들이 떠드는 마그나카르타는 겨우 북괴와 내통한 적화반란이었다.
부나비처럼 멋모르고 뛰어들었다 사망한 10대 아이들, 껌팔이, 구두닦이, 부랑자, 공돌이, 벽돌공. . 59개 잡종의 천대받던 신분을 가졌던 시체를 팔아 국민세금 강탈해가는 전라도 개잡쌕 조꾸들, 모두가 징그럽고 역겨운 빨강 바퀴벌레가 아닐 수 없다. 송곳니 드러내고 빨강눈깔 깊이 박고, 펄벅의 메뚜기 떼처럼 온 하늘을 새빨간 색깔로 뒤덮으면서 날아오는 변이 드라큘라 집단을 연상케 한다.
2022.1.2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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