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는 1950년 2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국무부에 침투했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했지만 공산주의자가 어느 부서의 누구인지 실명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폭로자라는 누명을 쓰면서 40여년 동안 악마로 매도당했다. 매카시의 주장이 옳았다고 판명된 것은 소련이 붕괴되고 1995년 미연방 극비문서 '베노나프로젝트'가 비밀로부터 해제 되면서 매카시가 지목한 여러 사람들(Alger Hiss, Harry Hopkins, Harry Dexter White)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한다. 국무부차관보, 재무부 차관보 , 루스벨트의 전쟁정책 보좌관, CIA 참모장 들이 다 스파이였다 한다.
이러한 사례는 월남에서도 있었고, 독일에도 있었다. 월남에서는 대통령 비서실장, 군사령관, 부통령, 대통령 출마 차점자 등 수많은 핵심부서들을 간첩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1989년 동독이 패망하기 직전까지 서독정부에도 간첩들이 우글거렸다. 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지 문서가 노출되면서 [정권의 골키퍼가 간첩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브란트 총리의 서류가방을 들고 다닌 비서가 슈타지의 첩자였다 한다. 슈타지는 섹시한 남자 공작원을 보내 서독 정부내 여비서들을 포섭하여 정보를 빼냈고, 서독내의 친동독 세력을 동원하여 반공정치 지도자들을 매장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한다. 이런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한때 서독에서 '동독을 편드는 것이 진보적이란 지적 분위기'가 팽배했었고, 슈타지에 약점을 잡힌 언론의들이 반역적 보도를 해댔다 한다. 지금의 우리 실정과 아주 닮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5.18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는지, 와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진실규명은 지금 이 순간에 결판내야 하는 주제가 아니라 역사의 숙제라는 것이다. 정황적 증거는 수사기록에도 많이 나타나 있지만, 결정적 증거는 북한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통일이 되면 증거가 나올 것이고, 통일 이전인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 주제는 지금 재판에 회부해서 북한특수군이 왔다 안 왔다를 법률가가 가릴 수 있는 성격의 주제가 아니라 공론의 장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고 북한으로부터의 정보를 기다려야 할 성격의 주제인 것이다. 기소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야 밝혀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그리고 탈북자 3만명 시대를 맞이하여 북한으로부터의 정보와 증언과 자료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 마당에, 5.18에는 절대로 북한군이 개입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한심한 주장이고, 국가가 보호해야 할 공론의 주제를 놓고 국가기관인 검사가 기소를 한다는 것은 더욱 한심한 코미디라 할 것이다.
이를 기소한 박윤희 검사는 조사과정에서 한 순간, "공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패고 총질을 한 건 사실 아니냐" 발끈하면서 이런 표현을 했다. 5.18에 대한 이런 식의 심각한 편견이 오늘의 기소를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9.10.30.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