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위로곡] 최악의 고난기 14~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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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8-28 13:12 조회8,7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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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위로곡]
최악의 고난기 14~17세
서울서 온 이웃
야, 지만원, 인생의 행로에는 아주 작은 순간을 통해 전환점이 생기게 되지? 네게도 14살 때 그런 순간이 있었지? 네가 살던 고래산 자락 외딴집에 갑자기 이웃이 생겼잖아. 서울에 살던 60대 부부가 이웃에 허름한 집을 짓고 노년을 보내려고 이사를 오셨지? 겨울의 어느 한 저녁, 아버지가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고, 안주거리를 만들어 새 집을 찾아 가셨지? 네가 술주전자를 들었고, 그 노인은 유식한 분이었지? "보아하니 막내는 영리하게 생겼는데 이런 시골에서 중학교를 나온들 농사밖에 더 짓겠소! 몸도 애리하게 생겼는데 농사를 지을 아이도 아니오. 여기 학교 때려치고 무조건 서울로 보내세요. 넓은 데 가야 뭐가 돼도 됩니다." 아버지는 한숨만 내쉬시고, 이때 네 가슴엔 충격파가 일었지. '맞아 맞아, 여기서 1등으로 졸업한들 농사밖에 더 짓겠어?‘
무작정 학교부터 중단했지? 봄이 되자 셋째 형이 네게 괭이자루를 쥐어주면서 돌밭을 가꾸라고 했지? 괭이질 몇 번에 손바닥에 물집이 생겼지? 하소연하니까 물집이 생기고 손바닥이 굳어야 농군이 될 수 있다며, 괭이 자루를 놓지 못하게 했었지, 개울 건너 마을에서는 선거유세 하느라 마이크 소리 크게 들려오고. 잠깐 구경하고 오겠다 했더니, 바람 들어가면 농군이 못 된다고 못 가게 했지? 이때 너는 결심했지. 무작정 서울로 가겠다고.
동네 형 따라 무임승차
아무도 없는 생면부지의 서울 땅에 네가 무슨 희망이 있어서 콩당콩당 마음 졸이면서 왔겠니? 네 가슴에 무엇이 있었니? 무엇이 되겠다는 그 어떤 희망이 있었니? 그냥 부초처럼 떠밀려 온 게 아니었니? 시골에서는 희망이 없고, 희망이 없어서 서울로 오긴 했어도 가진 것도 없고, 친척도 없고, 동네 형네 있으면서 자취밥 얻어먹는 신세에, 전학 증명 없이 다닐 수 있는 학교부터 찾았지? 고흥중학교! 숭인동 인근 청계천 건너에 지어진 1층 건물 학교, 학비조차 없이 감히 교무실로 들어섰지. 키가 자그마하고 통통하고 얼굴이 해맑은 선생님이 너더러 이리 오라 하셨지? "너 교무실에 왜 왔냐?" "네, 시골에서 지평중학교 1학년 마치고 왔는데 2학년이 되고 싶어서요." "그래? 요놈 봐라. 너 눈이 아주 예쁘게 생겼구나. 너 이 책 읽고 해석해봐." 영어책을 네게 건네 주셨고, 너는 또박또박 읽고 해석을 잘했지. "아, 요놈 봐라. 제법인데~ 수학선생님, 이 애 수학 실력 좀 알아봐주세요" 수학 문제, 인수분해를 냈는데 주저 없이 풀었지. 교장 선생님은 이마에 점이 있고, 키가 크고, 훤칠하게 생기신 이인수 선생님. 너를 보시더니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이 아이 2학년 반에 앉혀주세요." 다른 선생님께 명령했고, 너는 곧바로 2학년 반에 앉았지.
반에는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긴 학생이 주름을 잡았지. 영화란 영화는 다 보고 영화 이야기를 해주면, 모든 급우들이 넋을 잃은 채 그 애를 쳐다봤지. 그때 그 아이한테서 아버지를 "우리 꼰대"로 부르는 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지? 그래도 주간 학교에 다녔던 거야. 학비를 벌기 위해 동네 형이 소개해준 청량리 신문 배급소에 가서 새벽 신문을 돌렸지. 홍릉, 안암동, 고대 앞 등에 신문을 돌렸는데. 여러 집이 신문값 안 내고 이사를 갔지. 그렇다고 네게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무섭기로 소문이 나 있는 배급소장이 발로 정강이 찰까 무서워 학교를 그만두었잖아.
서울서 만난 사람들
동네 형 자취집에 너무 오래 있는 것도 눈치 보이고, 그래서 또 구둔으로 내려왔지. 몇달 후 큰형이 장안동 기와집 따님과 재혼을 했지? 네가 7살 때 여주에서 시집오신 큰형수님은 네 가족이 1.4 후퇴 때 충북 음성으로 피난 갈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너를 아들처럼 업어서 키웠지만 애석하게도 피난 이후 폐병으로 돌아가시고, 재혼한 형수님이 장안동 돌산 밑에 토담집을 얻어 놓고, 큰형을 청량리역에 산더미처럼 쌓인 석탄을 열차에 삽질하여 싣는 노동일에 취직을 시켰지. 당시 청량리역의 석탄 더미는 바람에 날려 답십리 도로까지도 검게 채색시켰지. 큰형의 얼굴은 눈만 반짝이고 모두가 숯검정. 그래도 그 노동자 자리를 얻으려고 큰형수님은 연줄을 찾아 머리를 조아리면서 부탁을 했지. 1955년이었어. 대한민국의 일자리는 1970년대에야 폭발했지.
큰 형수님이 한동네에 자동차 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서 만드는 서비스공장 공장장에 부탁해서 일자리를 구했으니 상경하라 하셨지. 장안동에서 종로 5가에 있는 서비스 공장, 성격이 까실어져서 손에 점심밥을 들고 다니기 싫어, 점심을 굶고 하루종일 여름 땀 흘리면서 일했지? 철조망 밖을 지나다니는 여학생들이 천사처럼 보였을 때의 네 열등감이 어떠했었니? 기운이 없으니 몸에는 손바닥보다 더 두껍게 두드러기가 솟아났고, 그 임금 받아 가지고 고흥고등학교 1학년 야간 반에 다닌 학비를 내려고 했는데~ 사장이 떼어먹었지, 며칠 동안 새벽에 사장집을 찾아갔지만 쇠도둑같이 생긴 사장은 줄 생각을 안 하고, 그래도 그 사이에 몇 달간은 학비 없이 야간고를 다녔잖아. 이인수 교장 선생님이 네가 돈이 없는 줄 아시고, 중학교 2학년 다니다 그만둔 너를 고1 반에 넣어 주셨지. 그 덕분에 좋은 친구 두 사람 얻었잖아? 송창대와 채승시, 이 두 사람은 너보다 3~4살 많았지만 한 사람은 화장품 행상을 하고, 다른 사람은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마른 미역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팔았지. 그렇게 번 코 묻은 돈으로 너에게는 밥도 사주고, 넌 사랑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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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송창대가 너를 가정교사로 취직시켜 주었고, 그래서 지상에서의 천사도 만나게 된 거 잖아. 공사장에 나가 등짐도 졌고, 새로 짓는 건물에 가서 바닥을 매끄럽게 갈아내는 노동일도 했고. 그래도 장안평에서 고흥고등학교 야간반에 5개월 정도 여름과 가을에 다녔던 것이 고행이었지만 기억에 많이 남지?
세 들어 사는 토담집 부뚜막 위에 형수님이 올려놓은 밥에는 얼음이 가시처럼 솟아나 있었고 너는 거기에 왜간장을 넣어 숟갈로 비볐지, 서걱서걱 소리가 났고, 그걸 조금씩 입에 넣고, 한참씩 씹어 삼켰는데도 대골대골 위경련이 났지. 셋방 주인 노인은 돌을 연탄불 위에 달궜다가 수건에 싸서 그걸 명치에 대고 있으라 했고?
답십리와 돌산 사이에는 집들이 없었잖아. 수업이 끝나면 캄캄한 밤, 답십리에까지는 친구와 함께 와도 답십리로부터 장안평 돌산까지는 참으로 무서웠었지. 더구나 공동묘지 구역을 지나기 싫어서 혹시 동행자가 있을까 한참씩 기다렸다가 단숨에 들고 뛰고, 비가 억수로 내릴 때는 공동묘지가 싫어서 칠흑에 논길을 걷다가 논으로 굴러 떨어지고.
그래서 2학년 때는 용두동 미나리밭 한가운데 지어진 한영고등학교 야간반으로 옮겨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너는 14살 때부터 부초처럼 이리저리 밀려다니면서 희망없이 지탱한 거야. 사춘기? 네 사전에 사춘기는 없었어. 모든 사람이 다 너보다 위에 있었고, 너는 그들을 부러워할 여유조차 없이 너무나 각박하게 몰렸어. 단 한 번이라도 희망이나 꿈을 가져본 적 있었니? 전혀 없었어. 그냥 몸부림만 쳤어. 살아남기 위해, 공부 좀 더하기 위해. 그것이 네 십대 인생의 이정표였어. 네 인생은 부초야, 지금까지가 부초였다면 앞으로도 부초겠지. 그러니까 낙심도 기대도 하지마. 하늘이 너에게 10대 인생을 다시 허락해 주신다면 그걸 받겠니? 절대 싫지? 그런 지옥 같은 인생을 어떻게 또 살겠니? 네가 얻은 것, 네가 잃은 것, 모두가 네 뜻에 의한 것이 아니었잖아. 오로지 남는 건 사랑뿐이야.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사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인생은 그나마 살맛이 있는 거라구. 사랑에 감동할 수 있는 심장이 있고, 남의 가슴에 사랑을 남길 수 있는 기회 있음에 감사하며 살 뿐이야. 사랑의 기억은 영원해, 네 인생은 사랑 그 자체였어. 그러니까 행복해하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고 사랑의 기억이야.
고흥고등학교, 지금은 동대문상고가 됐지. 거기에서 만난 송창대가 너를 가정교사로 취직시켰고, 그때 너는 네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천사를 만난 거야. 그때부터 너는 지옥 같던 삶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 1957년 부터, 한영고등학교 제 10기가 되었어. 야간반이지만 2학년과 3학년을 줄곧 다닐 수 있게 된 거야.
사랑의 신세계
가정교사 자리가 끝나던 날, 너는 갑자기 잘 곳이 없어졌지. 가을 어느 날 너는 미나리밭에 지어진 검은 판자집 교실에서 잠을 잤지. 무서웠지만 멀리에서 비쳐오는 흐미한 가로등을 위안 삼아, 검은 목재 책상들을 포개 놓고 잠을 청했었지, 하필이면 그날 밤중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요란할 게 뭐야. 너는 공포에 휩싸였었지. 세찬 바람이 창틈으로 귀신소리를 내며 들어와서는 교실 안을 휘돌아 다녔지. 눈도 뜰 수 없고, 몸도 오그라져 미동도 할 수 없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었지. 용기에 용기를 내서 창문을 열었지만 나무 창문이라 비에 젖어 불어나 열리지가 않았지. 그때의 그 공포 기억나? 더구나 너는 지평중학교에서 영어선생님과 음악선생님을 겸했던 미남 선생님한테서 무시무시한 괴기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서 그게 연상이 돼 더 무서웠었지? 그러다가 창문 하나가 열려서 창문을 딛고 탈출했었지? 가로등을 향해 무의식 속에서 달렸지. 가로등 밑에서 아늑함을 느끼고 한참씩 비를 맞고 서 있었지? 세차게 쏠려 다니는 빗줄기가 은가루처럼 아름답기까지 했었어. 가로등에서 가로등으로. 아침에 깨어 보니 너는 가정교사 학습을 지켜보아 주셨던 27세의 어머니 옆이었잖아. 함경도 원산에서 피난 나와 남매를 거느리고 혼자된 엄마 집이었지?
무의식 중에 네가 달려간 곳이 그 어머니의 작은 연탄 부뚜막이었어. 거기에 걸려있는 양은솥을 난로 삼아 새우처럼 잠들어 있는 것을 그 어머니가 발견하고 너를 남매 옆에 눕힌 거였잖아. 너는 그날의 충격에 악몽을 꾸고, 여러 날 동안 땀을 많이 흘렸지. 마침 한영고등학교 대선배들이 경영하는 오파상 사무실에 취직이 돼서 을지로 3가 수도극장 근처 사무실에서 잘 수 있었잖아. 너에게 죽으라는 법은 없었어.
비가 추적이던 어느 가을의 하교길, 울타리 없는 학교 앞에 그 누나가 우산과 반장화를 사 오셨지? 너는 생전 처음 그런 대우를 받아봤지? 울컥! 천덕꾸러기로, 거지 신세로 지내던 네게는 엄청난 신분의 상승이었지! "야 지만원, 나는 아줌마 아냐, 네 누나야. 이제부터 누나라 불러." 비닐우산을 함께 쓰고, 우산 아래 밀착하기 위해 누나의 허리를 감아 쥐였을 때 너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지? 누나가 생긴 오늘은 천국, 누나 없던 어제는 지옥. 신분의 변화가 생겼고, 그 신분의 변화는 바로 사랑이었어. 사랑이 없는 공간은 지옥이고, 사랑이 있는 공간은 천국인 거야. 패여진 땅에는 뿌연 물이 고여있었고, 둘이는 패인 곳을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여유로운 산책을 했었지? 20분이면 갈 수 있는 용두동 버스정류장까지를 한 시간씩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버스정류장에서도 여러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버스가 떠나면 너도 모르게 어깨가 흐느껴졌지. 여기에서부터 네 지옥 생활은 끝이 났던 거야. 하지만 누나는 뚝섬 강을 건너갔고, 너는 서울대 수학과 시험에서 떨어졌지. 다니다마다 했던 야간 중고등학교, 그것으로 서울대에 합격할 수는 없었던 거지.
하늘의 단련
지만원, 잠시 뒤돌아 보자구. 네가 서울에서 갑자기 이사 오신 이웃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라구. 너는 서울에 갈 생각조차 못했을 거야. 서울에 왔으니까 고흥고등학교에서 좋은 친구 두 명씩이나 만났고, 한영고등학교에서도 많은 친구를 만났잖아. 한영고교 친구 세 명은 재수 공부한다며 구둔 너의 집에 가서 산에도 가고 노래도 부르면서 어울려 공부했는데 너는 고흥고등학교 친구 창대의 하숙집에 들렸다가 또 다른 가정교사 자리를 얻었지. 신당동 2층집. 서울시 의원의 둘째 아들이 사대부고 3학년인데 입시 공부를 도와 달라는 자리였어. 사대부고가 어떤 학교야. 경기, 경복 사대부고를 3대 일류 고등학교로 꼽았잖아. 너는 겨우 이름도 없었던 한영고등학교 야간 졸업생이었고.
그 아들은 유치하리만큼 기본적인 것들을 물었고, 너는 너의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기초개념부터 설명을 해주었지. 그아들이 너를 의지하고 신뢰했지. 하지만 너도 잠재실력을 끄집어 내서 연필로 속히 표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실력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거야. 결국 그 학생은 서울공대에 합격했고 너는 육사를 갔지. 하늘이 너를 인도한 거야. 이런 과정을 통해 너는 조리있게 내용을 타인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전달력을 훈련한 거야.
이런 과정에서도 너는 담임 선생님이 네게 주신 을유문화사의 역사소설 10여 권을 틈틈이 읽었지. 을지문덕, 강감찬, 김종서 한명회, 황진이....시야가 넓어졌지. 이게 네 마음을 키워주었을거야. 한번은 구둔에서 친구들을 만나 역사소설 이야기를 조금씩 해주었더니 그 친구들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지?어쩌면 눈으로 보듯이 스토리를 리얼하게 전개할 수 있느냐고. 그때 너는 네 일생 처음으로 자신감을 같은 걸 느끼게 되었지. 친구들로부터 감탄이 섞인 칭찬을 들었을 때 너는 네 일생 처음으로 너도 남들만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지? 물론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진 이과 반에서 1등은 했지만 그건 남들에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지. 네게는 인문학적인 그리고 문학적인 소질이 함께 싹트기 시작한거야. 지금의 네 글쓰는 능력은 바로 이때부터 발아가 됐던거야. 안 그래? 하늘이 너를 키워주신 거라구.
하늘의 기적
네가 10살쯤 됐을 때 군에서 휴가나온 동네 형들이 동네 형수님들이 대접해주는 조촐한 파티, 막걸리에 솥뚜꼉 엎어놓고 요리한 메밀적과 김치를 곁들인 조촐한 자리에 너도 있었지. 형들이 너에게 육사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알려주었지. 육사 나온 장교는 원리 원칙을 따르고, 멋있고, 실력 있다고, 육사는 국비 학교라 학비도 안 든다고. 그때부터 육사는 너의 꿈이 되었어. ’나도 꼭 육사 가야지‘ 그런데 막상 지원하려니 사회적 신분이 있는 세 사람의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 네가 혼자 올라와 고학을 하고, 노동일을 했는데 아는 사람이 누가 있었니. 그래도 한영고 친구들이 다해 줬잖아. 맞아. 네가 구둔에만 있었다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육사에 지원서조차 낼 수 없었어. 그 서울서 이사 오신 어른의 말씀 한 마디가 너의 길을 터주었던 거야.
필기시험도 문제였지만, 키가 고민이었지. 삼각자로 마루 기둥에 눈금을 그려놓고, 갓 시집오신 셋째 형수더러 재달라고 했지만 2~3미리가 늘 부족했잖아. ’에이, 난 안되겠어. 키가 모자라면 첫방에 불합격될텐데 뭐~‘ 보통 사람이라면 스스로 포기했을 수도 있었어. 그런데 너는 키를 조금 부풀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둔 후 계속 육사를 목표로 학습을 지속했지. 이런 네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역사한 마음이었을거야. 키를 재러 가기 직전에 막대기로 정수리를 때려서 부어오르게 한 후 잴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걱정 때문에 공부가 열심히 됐겠어? 그런 생각이 들게 한 분이 하느님이었을 거야. 신체검사 시간이 다가오면서 너는 막대기로 정수리를 때렸었지. 그런데 네 생각과는 달리 퉁퉁 소리만 나고 부어오를 기미가 안 보였어. 점점 더 세게 때려보아도 딱딱한 뼈가 부어오를 리 없었어. 손가락으로 머리를 만져봐도 머리에는 부어오를 만한 살이 없었어. 그래서 너는곧바로 생각을 바꿨지. 머리카락이 굵고 빳빳하니까 이발소에 가서 고데기로 수축성 있게 꺾어놓으면 얼마라도 이득을 볼 수 있을거라 생상을 했지. 하지만 이 모두가 공상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네 마음 얼마나 처절했니. 그래도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신체검사장엘 갔지. 경복궁 옆에 있는 국군병원분소 영내에는 나무그루가 있었고 그라애 야외음악당 같은 간이 의자가 층층이 반달형으로 설치돼 있었지. 거기에 모두가 옷들을 벗어 포개놓고 팬티 바람으로 검사장 안으로 들어들 갔었지. 치질도 검사하고, 몸무게도 합격했고, 맨 마지막으로 키를 쟀지. “불합격” 한 하사관이 외치자 다른 하사관이 불합격 도장을 찍어서 용지를 따로 놓았지. “ 나가, 너 불합격이야”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나왔지. 남들은 옷을 다 입고 가버렸고, 너도 옷을 입었지만, 갈 수가 없었어. 의자에 걸터 앉았지. 스산한 가을 바람에 낙엽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나는 이제 어쩌나~~시골에 가야하나~‘ 너도 모르게 구두까지 신고 신체검사장으로 들어갔지.
하사관들은 토요일 외박 꿈에 부풀어 부지런히 짐을 싸고 있었지. 마지막 허우적거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산되는 몸놀림, 바로 그거였어. “형, 저 키 좀 다시 재주세요.”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를 냈지. 하사관이 어이 없어 하며 나가라 소리쳤지. 너는 하사관에게 덤볐어. “내가 어려서부터 동경해왔던 육사인데, 키가 2~3미리 모자란다고 훌륭한 장군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이때 퇴근하시려던 소령 한 분이 다가왔지. 네 생각에 처음 보는 멋있는 몸매에 미남인 소령이 팔뚝에 ’심판관‘이라는 완장을 차고 오시더니, “야, 하사관, 이 아이 왜 이러냐” 하고 물었지. “네. 키가 좀 부족한데 다시 재달라 때를 씁니다.” “그래? 이 아이 키 다시 재라.” 신발을 벗고 신장계에 올라가려 하자 소령님은 “야, 구두 신고 재” 하셨지. 와~ 세상에 이런 기적이 어디있어? 만일 내가 불합격이 선포된 그때 곧바로 하사관에 덤볐더라면 심판관 소령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어.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어. 기적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정교하게 탄생했던 거야.
그래서 필기시험을 치렀지. 경복고등학교 뒤뜰에서 치렀어. 그런데 첫날이 바로 네가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수학과 물리과목 시험날이었어. 그런데 추운 겨울 마루바닥에서 잔 다음 몸이 얼은 상태에서 홍시 하나를 먹은 게 위경련을 일으켰어. 토하고 나서도 시간에 쫒겨 용두동에서 광화문행 버스를 탔지. 복통이 나고 머리가 뽀개질 듯 아프고, 새벽이라 병원도 없고, 시험은 치렀지만 분명 낙방할 거라는 생각을 했지. 2차군에 속한 성균관대 시험을 내키지 않은 기분으로 쳤지만 희망 잃은 너는 독감에 걸려 땀을 흘리고 있었어, 그렇게 눈이 10리 만큼 들어간 네게 우체부 집배원이 육사에서 온 통지문을 가져왔지. 허겁지겁 열어보니 와~합격이 됐다는 거야. 이때 네 기분이 어떠했는지 기억나? 며칠 후 체력 검정이 또 있으니 태릉 육사로 오라는 거였어.
눈이 푹 패인 몸으로 또 육사엘 갔지. 신체검사를 또한번 하는 거야. 이때는 키와 몸무게만 다시 잰 후 합격되면, 역기도 들고, 턱걸이도 하고, 2Km를 시간 내에 달리기 시키는 거였어. 네 앞에 섰던 학생은 키에 불합격되어 울먹였지. 곧바로 네 차례였어. 그때 네 심정 어떠했니? 다시 쟀으면 넌 불합격이었어. 그런데 그때 한 중사가 “야, 시간 없어, 빨리빨리 해” 하면서 1차 검사에서 키가 넉넉하게 기록된 학생은 키를 재지 않게 했지. 네 키는 구두를 신고 쟀으니 넉넉하게 기록돼 있었나봐. 그래서 하사는 너의 키를 다시 재지 않고, 너를 체중계로 밀어넣었어. 와~~하느님! 살았다는 감정이 채 들기도 전에, 몸무게, 그런데 독감으로 살이 빠져 몸무게에서 불합격 판정을 내리면서 용지에 불합격 도장을 찍어버린 거야. 이때 네 콩당이던 가슴이 어떠했겠니? 울먹이면서 또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지. 무슨 대책이 있었니? 하사관이 바쁘니까 “독감 앓았으니 봐달라” 시비 걸 시간도 없고 다리는 떨어지지 않고... 그런데! 이때 키가 작달막하고 통통하게 생기신 대령 한 분이 지나가시다가 네가 울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신 거야. 나중에 알고보니 육사의 군수참모였지. 신체검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군수참모님이 육사 지구 병원에 들렀다가 이 모습을 보신거지. “야, 요놈 왜 울먹이냐?” “예, 체중이 미달입니다.” “그래? 요놈 용지를 따로 내와라. 내가 물 먹여서 데려올게.” 어떻게 생면부지의 대령, 당시는 하늘처럼 높았던 대령님이 물을 먹이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그런 착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이웃 치과 의사실에 가서 주전자를 갖고 나오시더니 너를 화장실로 데려가셨어. “네놈은 이 물을 다 마셔야 해.” 너도 죽어라 마셨지. 더 마시면 물이 역류할 것 같은 거야. 조금 쉬었다 또 마시고, “이젠 더 못 마시겠는데요?” 그럴 때마다 대령님은 네 손목을 꼭 잡고, 체중계 위에 세우셨지. 이렇게 하기를 네 번, 하사관은 그제서야 하늘 같은 대령님의 끈질긴 의지에 껶였지. “대령님, 알겠습니다. 합격시키겠습니다.” 와~ 이게 픽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가능해? 키와 몸무게의 벽을 뚫고 나온 이 두 개의 기적은 현실 세계에서는 상상 범위 저~밖에 있는 전설급 소설이야. 생각해봐. 하늘이 너를 얼마나 아끼고 계신 가를. 너에겐 분명히 수호신이 계신 거라구, 그러니 울지마.
여기까지는 기적이었는데, 마지막 관문이 하나 더 있엇지. 2km를 시간 내에 주파하는 것, 육사 교정의 맨끝 언덕에 지구병원이 있고, 한가운데 화랑연병장, 퍼레이드하는 넓은 잔디 공간에까지 걸어갔지.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배를 가득 채운 물이 출렁소리를 냈지. 그 물을 먹고 2Km를 뛴다는 건 불가능한 것이었어. 시골에서 손기정 선수가 되겠다면서 동네 친구들과 뛰다가 개울에 엎드려 물을 마시고 나면 금방 배가 꼿꼿해져서 한 발자욱도 뛰지 못했던 기억들이 생생했기에 걸어가면서 너는 얼마나 하늘에 빌었니~ 걸어가면서 계속 출렁소리를 줄여보기 위해 배를 눌러가면서 안쪽으로 수축시켜 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지. 드디어 연병장에 도착. 키가 작고 딴딴해 보이는 체육 교관 차 대위님, 이후에도 늘 친절하셨지. 턱걸이 다섯 번, 철봉으로 뛰어올라 봉을 잡고 턱걸이를 한다는 게 긴장을 한데다 몸이 가벼워 배걸이를 했지. 모두가 다 웃었어. 어찌할 바 몰라 하는 네게 차 대위님이 명하셨지. ”아, 그 학생은 됐다. 내려줘라.“ 역기를 또 다섯 번 들어야 하는데, 너는 독감으로 한번은 바들바들 떨면서 올렸지. 그러자 차 대위님은 ”아, 그 학생은 됐다.“ 합격도장을 찍게 했다. 이제 마지막 관문, 2Km 달리기. 20명씩 한팀으로 뛰었지. 노란잔디가 깔린 드넓은 연병장, 너는 긴장에 또 긴장을 하면서 하늘에 빌었지. 배가 꼿꼿해지는 순간, 모든 기적도 물거품이 되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 배와 허벅지살을 계속 꼬집었어. 정신을 잃는 순간, 모든 것이 날아간다며 뛰는 데 쓰는 힘보다 살을 꼬집고 배를 안으로 수축하는데 쓰는 힘이 더 컸지. 한 바퀴를 무사히 돌고, 너는 하늘에 감사했지. 계속 하느님을 찾고, 꼬집고, 배를 당기고 5바퀴를무사히 뛰었어. 20명 중 6등으로! 여기까지가 육사에 입학하기까지 네가 치른 남다른 드라마였어. 몸집이 좋은 학생들에는 전혀 관심 밖에 있었던 키와 몸무게. 그 두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너는 그야말로 눈물나는 고통의 드라마를 치러야 했지. 하늘은 왜 너에게 이렇게 작은 체격을 주셨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고통을 주셨고, 그 과정에서 기적을 선물해 주셨을까? 분명 하늘엔 뜻이 있었을 거야. 하늘은 왜 너에게 1cm만이라도 더 키워주시지 않았을까? 아마도 건강을 배려하신 계산이었을 거야. 그래야 오래살 거라는 계산 말이야. 이처럼 하늘은 너를 눈동자처럼 관리하고 계신거라구, 그러니 네가 옥에 있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니 고통스럽고 외로워도 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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