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의 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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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10-27 17:23 조회3,9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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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의 과오
육사인의 수치
노태우는 4년제 육사를 제1기로 졸업한 사람이지만 나 개인은 그를 육사에 수치를 안겨준 간재비요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위해 전두환을 배신했고, 동기생인 정호용을 더러운 수령에 처박았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5.18역사를 빨갱이 세력에 팔아먹었다. 그가 북방 정첵의 물꼬를 텄다고는 하지만 자기공적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중공과 소련에 낯 뜨거운 모욕을 당하면서 퍼주기를 했다. 그가 당한 모욕은 곧 국가의 모욕이었다.
패러디: 전두환이 싸울 때 노태우는 화장실
그는 1979년 12.12때부터 동기생인 전두환에 아부했다. 전두환은 뻣뻣한 정호용과 살살대는 노태우를 놓고 저울질을 하다가 노태우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부족한 노태우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전두환은 “나를 밟고 가라” 했다. 6.29는 노태우의 발상이 아니라 전두환의 발상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공존했던 시절, 육사인들은 두 사람을 은유적으로 비교했다.
“전두환 노태우 등이 고급 술집에 갔는데 깡패들이 무단 침입하여 싸움을 걸었다. 어깨들의 행패를 참지 못하는 전두환이 상의를 벗고 깡패들과 싸웠다. 싸움이 벌어지자 노태우는 화장실로 도망갔다. 문을 빼꼼히 열어가며 동정을 살피던 노태우, 싸움이 전두환의 승리로 끝나자 어깨를 흔들며 은근슬쩍 나왔다” 이후 노태우의 행동을 보면 그 묘사가 참으로 정확한 묘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삼에게 턱수염 내준 바보
1988년 노태우는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그는 '물태우'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다. 소신도 배짱도 없는 그는 전임자를 지켜줄 만한 의리도 용기도 지혜도 없었다. 그리고 전두환을 백담사로 귀양 보냈다. 1989년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당이 되자, 노태우는 여소야대의 정국을 이겨낼 용기도 지혜도 없었다. 1990년 1월, 명색은 ‘3당 합당’이었지만 사실상 김영삼에게 턱수염을 내주는 졸수를 두었다.
자기 이익 위해 2명의 동기생 죽이고, 역사 팔아먹고
합당에 응한 김영삼과 김종필은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합당해서 덩치를 키운 민자당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폭넓은 명망을 얻고 있던 정호용을 몰아내야 했다. 턱수염을 단단히 움켜쥔 김영삼과 김종필, 노태우에 정호용을 처리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노태우는 정호용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면서 국회의원직을 박탈해 내쫓았다. “정호용은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광주인들을 학살한 원흉이었다”는 실로 황당한 죄를 씌웠다. 정호용 부인은 억울해 자살을 시도했다.
이때부터 바로 노태우는 민주화 패거리들의 포로가 되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광주보상법]을 만들어 오늘날과 같은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5.18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서 전두환 내란 사건으로 둔갑하게 만들고, 전두환을 역적으로 만드는데 첫 물꼬를 터준 존재가 바로 노태우였던 것이다.
이쪽 저쪽 양쪽에서 배척당한 노태우
결국 노태우는 5.18과 전라도와 민주화세력에 영합했지만 전두환의 뒤를 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로부터도 배척당하고, 우익들로부터도 손가락질을 받는 가련한 존재가 됐다. 적이 없으면 친구도 없다. 소신이 없기 때문에 물로 보였던 것이다. 전두환은 애국자였지만 노태우는 이기주의의 비겁한 화신이었다.
2021.10.2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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