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5.18영화: 5.18 지휘자 광주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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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10-21 15:43 조회4,3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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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5.18영화: 5.18 지휘자 광주에는 없다
아래는 광주와 전라남북도 주민들이 거의 다 보았다는 42분짜리 기록영화의 자막이다. 1980년에 조선기록영화촐영소가 광주에서 찍은 동영상들을 요약하여 발췌했다고 기록돼 있다. 5.18에 대한 기록영화를 제작한 주체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인 것이다. 남한에는 광주를 촬영한 기록영화가 없다. 광주의 촬영권은 오로지 북한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광주비디오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영상을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아래는 1991년 개봉된 북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다. 1989년부터 김일성이 황석영과 윤이상을 북한에 불러다 제막한 영화다. 황석영은 북한 제1의 시나리오 작가라는 리춘구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윤이상은 배경음악을 작곡했다. 테마곡은 ‘임을 위한 행진곡’, 모든 영화에는 주인공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위기간 내내 도망가 있었던 비겁자 박관현이었다. 광주교도소에서 손가락질 받다가 단식으로 자살을 한 사람이다. 북한은 이런 그를 5.18의 영웅으로 내세웠다. 그가 교도소장으로 있던 전두환의 꼬붕 호백 소령과 의식화전쟁을 하다가 음독 타살당했다는 거짓말을 줄거리로 한 것이다. 5.18의 주인공이 광주인이기는 하지만 그 주인공은 5.18을 지휘한 영웅이 아니라 5.18을 피해 도망갔던 비겁자였던 것이다. 미국과 전두환을 모략한 영화이자, 광주를 조롱한 영화이고, 5.18의 영웅은 북한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 영화인 것이다.
한국에서 5.18영화가 처음 나온 것은 2007년 7월의 [화려한 휴가]였다. 화려한 휴가의 주 무대는 5월 21일 13시의 전남도청 앞이다. 그러나 5월 21일 13시경의 도청 앞 발포는 없었다. 13시에 도청 앞 계엄군에는 실탄이 없었다. 계엄군은 전남도청만은 결사적으로 지켜야 한다며 500명의 병력이 넓은 도청 울타리 내부에 강강술래 식으로 늘어서 있었다. 이는 도청을 지키려는 배치일 뿐, 공격용 배치는 아니다. 광주시민이라면 도청을 지켜주겠다는 계엄군에 어째서 총질을 하는가? 공격용 배치는 폭도들이 전개했다. 옥상마다 저격수를 배치해 시민군을 정밀 저격하고 도청과 헬기를 향해 저격활동을 벌였다. 조사천도 그 중의 하나였다. 조사천은 카톨릭센터 옥상에 배치됐던 폭도 저격수에 의해 카빈총알을 맞고 사망했다. 이용식 교수의 정밀분석에 의하면 총알은 머리를 뚫고 턱뼈를 관통한 후 가슴을 뚫고 들어가 박혔다.
영화는 왜 존재하지도 않았던 도청 앞 시나리오를 엮어 냈을까? 5원 21일의 화련한 공작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08시의 20사단 습격, 아시아자동자 점령사건, 무기탈취사건, TNT 폭탄제조사건, 교도소 5회 공격사건은 누가 뭐라 해도 광주 양아치급 콩가루들이 해낼 수 있는 사건들이 아니다. 이런 사건들이 드러나면 북한의 소행임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선수를 쳐서 영화를 통해 국민인식을 바꾸어 놓으려 했던 것이다.
그 후 10년만인 2017년, 영화 [택시운전사]가 흥행을 누렸다. 관객들을 감동시킨 주인공은 누구였는가? 5월 20일 힌츠페터를 광주에 태워다 준 택시기사였다. 택시기사 김사복은 1974년 8.15행사장에 문세광을 태워다 준 고급택시의 주인이었다. 이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흥행 인기에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흥행을 누린 5.18의 주인공 역시 택시기사이지 5.18지휘자는 아니었다. 북한이 만들어 해마다 관람시켜준다는 [님을 위한 교향시]. 국민 대부분을 현혹-세뇌 시킨 [화려한 휴가], 감성을 자극한 흥행영화 [택시운전사], 이 모두에 부각된 주인공은 영웅이 아니라 최하층 계급의 무녀리들이었다.
그 어느 영화보다도 더 리얼한 존재는 그들의 증언록이다. [5.18항쟁 증언자료집]. 5.18 최고의 영웅이라는 자들의 증언록이다. 5.18최고의 유공자들은 5월 24일에 비워진 도청에 어중이떠중이 자격으로 도청에 들어가 밤낮으로 갑론을박하고 성질자랑을 했다. 5월 26일 윤상원이 외신기자들 앞에서 결사항전을 발표했다가 27일 새벽 두 손 들고 항복한 자들이다. 특히 김효섭의 증언을 보면 5.18의 전설이라는 윤상원은 전혀 전설이 아니였다.
2021.10.2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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