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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답변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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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10-14 16:57 조회2,8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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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분석사례김용화 (98광수)

 

출생1953

한국도착1995.6. 태안 상륙

고소이유5.18때 평안남도 소재의 인민군 4군단 예하 차기수로 근무했다.

 

증거 자료

 

① 96.7.18 시사저널탈북자 김용화씨북한 주민 증거 없어 추방 위기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7939

② 96.12.11 연합뉴스무국적자 김용화씨 그는 과연 누구일까?

https://news.v.daum.net/v/19961211112800275?f=o

③ 2012.9.11 뉴데일리, '탈북자의 아버지김용화! 6천명 구해낸 진정한 탈북지원단체!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2/09/11/2012091100012.html

④ 2013.05.05 이제 만나러 갑니다. 73, ‘탈북하는데, 7년 걸린 남자의 레전드 탈북과정

https://principlesofknowledge.kr/archives/59215

⑤ 2016.1.25., 연합뉴스탈북단체 대표가 탈북민 지원금 13천만원 '꿀꺽'

https://www.yna.co.kr/view/AKR20160124069652004

⑥ 2019.8.24. 경향신문탈북시켜놓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니정부는 뭐 했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8241132001

 

(1) 경력

 

① (1996. 7. 시사저널), 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기술전문학교와 단천 마그네샤 공장 기능공학교에서 기술을 배웠다김씨가 조선인민군에 입대한 것은 열일곱 살 때인 70인민군 892부대 운전병으로 시작해 1979년 3월 소위로 임관하여 1982.2. 중위로 제대

 

④ 2013.5.5. 이만갑 프로에서는 사회안전부 대위로 근무했다고 발언

 

의 견

 

북한에서는 6년제 중학교 졸업을 17세에 한다김용화는 17세였던 1970년 사병 입대하여 1979년 소위로 임관했다고 말한다사병 복무를 10년 한 것이 된다사병 근무 10년을 만기로 마치고 1979년에 소위로 임관한 후, 1982년 2월에 중위로 제대하고교화소 근무를 거쳐 1985.6. 함흥철도국 승무지도원으로 있다가 1988.7. 중국으로 탈출했다면마그네샤 공장 기능학교는 언제 다녔다는 것인가? 2013년 이만갑 프로에서는 자기가 사회안전부 대위 출신이라고도 했다군에서는 중위로 제대하고이어서 경찰에 가서 대위계급을 달았다고 한다.

 

(2) 탈북 동기

 

① 1996. 7. 시사저널철도부 함흥철도국단천기관차대(기관차를 운영하는 철도기관승무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88(35북한을 탈출한 것은 다소 우연한 계기에서였다김씨의 주장에 따르면출신 지역 등을 둘러싸고 누적되었던 내부 갈등에다 그가 책임졌던 열차가 정지 사고를 내 당정치부장 · 동료들과 갈등이 생겼다단순 사고인데도 처가 식구들의 사상성까지 들먹이면서 비판서를 강요당하자 정치부장과 싸움을 벌인 끝에 밤새 고민하다가 자살을 결심했다단천역에서 차라리 먼 곳으로 떠나 자살하자고 결심한 그는 충동적으로 혜산행 열차에 올라탔다열차가 압록강변 도시인 혜산에 도착하자 죽을 바에는 중국으로 탈출하자는 생각이 들어 압록강을 건넜다.

 

② 1996. 12. 연합뉴스, 함경남도 단천시 철도승무대원으로 근무하던 중 일어난 열차 연착 사고의 책임추궁을 피해 혜산까지 왔다가 압록강을 건넜다.

 

③ 2012.9. 뉴데일리저는 한국에서 88올림픽 행사가 있을 때 탈북했습니다북한 함흥철도국 지도원으로 일을 할 때 열차 전복사건이 일어났는데 책임 질 사람이 필요했던 북한정권이 애꿎은 사람 2명을 사형시키고 다음이 내 차례라는 소식을 듣고 억울하게 죽기 싫어서 중국으로 탈북했다. . .

 

 

 

 

 

의 견

 

➀ 96년 7월의 시사저널에서 그는 함흥철도국 내 단청기관차대(관리기관승무지도원으로 일했다고 한다조직에서 지역 갈등이 있었는데 열차 정지사고가 발생했고열차 정지사고는 사소한 사고였는데도 이를 놓고 자기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해서 정치부장과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자살을 결심했고자살을 할 바에야 충동적으로 압록강변 혜산행 열차를 탔고죽을 바에야 차라리 탈출을 하자는 생각이 들어 압록강을 건넜다고 했다.

 

② 96년 12월 연합뉴스에서는 단천시 철도승무대원으로 근무하던 중 일어난 열차 연착사고의 책임 추궁을 피해 혜산까지 왔다가 압록강을 건넜다.

 

③ 2012년 뉴데일리에서는 열차전북사고가 발생했고이에 대해 책임질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에 애꿎은 사람 2명을 사형시키고 다음에는 내 차례라는 소문이 돌아 중국으로 탈출했다고 했다.

 

④ 2013년 이만갑 프로에서는 1988년 7월 13일 시설 노후로 인해 2호열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이 사고로 사형선고를 받고 도주할 결심을 했고당증과 권총을 챙겨 도주했다고 했다자살은 민족반역죄에 해당하고, 3대가 멸족되는 선택이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죽기로 결심했다고 했다라디오를 듣다 보니 김만철 가족에 대해 당이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김만철이 탄 배가 북한의 폭격을 맞아 동해에서 침몰한 것으로 보도하는 것을 보고 북한에 대해 배신감이 들었고당 간부들도 속이는 판에 인민들은 얼마나 속고 있을까에 대해 깨닫고살아남아 북한의 이런 실상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탈북 동기가 96년 다르고 2012년 다르고 2013년 다른 것이다. 96년 시사저널에서는 승무지도원으로 근무하던 중열차 정지사고로 인해 정치부장과 싸웠기 때문에 자실을 하려 하다가 탈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같은 해에 연합뉴스에서는 철도 승무대원으로 근무하던 중 연착사고가 발생했고그에 대한 책임추궁을 피하기 위해 혜산으로 갔다가 도강을 했다고 했다. 2012년에는 열차 전복사고에 대해 2명이 사형됐고다음에는 자기 차례라는 소문을 듣고 탈출하였다고 했다. 2013에는 열차 전복사고로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도주를 했고도주 도중 라다오를 통해 당국이 김만철 일가의 귀순 사실을 놓고 거짓말을 해서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탈북했다고 했다

 

남한에서도 권총을 구하기 어려운데 더구나 검열과 몸수색이 일상화된 북한에서 일개 열차 승무 지도원이이라는 중간 간부가 권총을 소지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사형선고까지 받았다면 곧바로 체포 수감됐어야 했을 텐데 도주를 그것도 권총까지 가지고 도주했다는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그는 1953년생이다. 1988년에 36세였고처와 슬하의 자식이 있었다그의 탈북 동기에는 가족에 대한 고민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자기 자신도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에서 북한정권에 대한 내부고발자가 되기 위해 탈북을 결심했다는 것도 허풍으로 들린다더구나 우리민족끼리의 방송을 들으면 그는 파렴치범으로 교화소에 갔다가 탈출했다는 부분이 있다그가 북정권에 대한 내부고발 정신을 가지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말은 그의 상습적인 거짓말쟁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철로가 지극히 노후화돼 있고전기가 자주 끊겨 평양에서 나진까지 가는데 길게는 20여 일이나 걸린다고 한다열차는 잘 해야 시속 20km라는 것이 인터넷에 많이 게재돼 있다가다가 먹을 것이 없고 겨울이면 추위에 견디지 못해 죽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따라서 열차 정지사고는 식생활처럼 일상화돼 있다이런 정지사고를 놓고 억울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처형할 정도로 소란을 부렸다는 것은 과장으로 보인다또한 열차 전복사고라면 정비 기술부서나 선로부서의 우두머리에게 책임이 떨어지는 것이 특히 북한사회의 일반적 현상인데 책임 분야가 전혀 다른 하급 승무 지도원에게책임을 물어 사형을 선고했다거나 덤터기를 씌우려 했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탈북동기에 대한 그의 설명에는 믿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3) 탈북 과정

 

① 1996. 7. 시사저널단천역에서 차라리 먼 곳으로 떠나 자살하자고 결심한 그는 충동적으로 혜산행 열차에 올라탔다열차가 압록강변 도시인 혜산에 도착하자 죽을 바에는 중국으로 탈출하자는 생각이 들어 압록강을 건넜다. . . 감시와 도피가 계속되는 중국 생활에서 그를 안정시킨 사람은 89년 초에 만난 조선족 교포 장춘선씨(43)였다장씨는 김씨와 힘을 합쳐 식당을 꾸리면서 지난해 6월 중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7년 넘게 사실상 결혼 생활을 해 왔다. . . 95년 김씨의 불법 체류 사실을 안 중국 공안요원들과 북한 정치보위부 요원이 김씨의 집을 급습했다김씨가 집을 비운 사이 장씨가 대신 연행되어 고초를 겪은 이 사건은 그가 탈출 경로를 베트남으로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다그러나 베트남에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탈북 사실이 밝혀져 하이퐁 시 감옥에 수용됐고 북한으로 송환되기 직전에야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겨우 감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 .0.5t짜리 쪽배로 산동성 해양현을 출발해, 70시간 만에 충남 태안 앞바다에 도착했다. 1차 밀항 기도가 선박 고장으로 실패한 뒤 한 달쯤 지나서였다. 88(35압록강을 넘어 북한땅을 탈출한 지 7년 만에 이룬 한국행이었다. . .

 

북한 주민임을 입증할 서류가 없어 법무부 서울출입국 관리사무소로 넘겨졌다. .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법무부 서울외국인보호소밀입국한 조선족과 방글라데시· 필리핀· 파키스탄 등 아시아 각국에서 불법 입국한 외국인들이 강제 퇴거 명령을 기다리는 곳이다지금 이 외국인보호소에 북한을 탈출한 귀순자 한 사람이 불법 체류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1년째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김용화씨(43). 수감 번호 232번이 적힌 푸른 수의를 입고 있는 그가 중국에서 두 번에 걸쳐 밀항을 기도한 끝에 입국에 성공한 것은 지난해 6월 말이었다(1995년 6).

 

의 견

 

 

 

 

김용화는 단천역에서 충동적으로 혜산행 열차에 올라탔다고 말했다위키백과를 보면 그가 승차했다는 단천역은 함경선 중간 지점에 속하는 일개 역이고함경선은 동해의 원산으로부터 해변을 따라 함경북도 끝 부분인 성진을 연결하는 동해철로다혜산역으로 가려면 길주역에서 백두산청년선을 타고 22개 역을 가야 한다단천역에서 길주역을 가려면 함경선을 타고 동해안을 따라 북으로 12개 역을 가야 한다길주역에서 혜산을 가려면 백두산청년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철로 거리가 141.7km이고역 수는 양끝 역을 포함해 22개나 된다.

 

아무리 철도 승무원이라 해도 그는 단청기관차대 소속이고단청기관차대는 함흥 철도국 예하 기관이다함흥 철도국은 평남 일부함경남도 일부강원도 일부에 소재한 역들만 관할하며 관할 역의 총수는 218개역이 중에 기술역에 속하는 역이 7개 있고그 중 단천역이 있다참고로 잡중화물장 역이 20개 있다기술역은 정비를 하는 곳이다그래서 기차가 전복됐다면 이는 기술역에 근무하는 정비 부서에 그 책임이 귀착된다이러한 상황에서 일개 승무원 신분으로 체포령이 내려져 있을 시간대에 함경선을 타고 북쪽으로 12개 정거장을 가고거기에서 여러 개 군을 통과하면서 감시가 가장 심한 백두산청년호로 갈아타고 혜산에까지 21개 역을 가서 이렇다 할 스토리 없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것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대목이다.

 

김용화는 1988년 7월에 압록강을 건넜고이듬해인 89년 초에 7세 연상의 조선족 장춘선(43)을 만나 7년 넘게 동거를 했고, 1995년도에 중국 공안요원들과 북한 정치보위부 요원이 자신의 집을 급습했지만 출타중이라 체포를 모면하고베트남으로 갔지만 이내 체포되어 하이퐁 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북송되기 직전에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탈옥하여 다시 중국으로 잠입하여 산동성에서 0.5톤 짜리 쪽배를 타고 70시간(3) 만에 태안에 도착했디고 한다수위가 높았을 여름철에 압록강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 중국에 갔고중국에서 7년 연상의 여인을 만나 동거하다가 공안과 보위부 요원이 잡으러 오자 베트남으로 도망했고베트남에서 체포돼 감옥에 갇혔지만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탈옥하여 다시 중국으로 잠입하여 산동성까지 수만 Km를 걸어가 민물 낚싯배에 해당하는 0.5톤 쪽배를 타고 장장 3일 동안 항해하여 태안에 도착했다고 한다산동성 동단에서 태안반도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400km, 0.5톤짜리 낚싯배가 험한 파도를 극복하면서 70시간 동안 왔다면 첫째로 의심되는 것이 연료주입 없이 그 작은 쪽배가 3일 동안 밤낮으로((70시간)) 태안반도를 향해 계속해서 엔진을 돌릴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문제이고그 다음 의심되는 것이 생존 가능성의 문제이다또 하나의 문제점은 항해 도구의 부재다목표점을 정해놓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려면 GPS 장비가 필요하다그런데 그는 이런 장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이 세 가지로 보아 그의 주장은 황당한 구라로 들릴 수밖에 없다그가 이렇게 성공한 것은 2차 시도였고그 이전 한 달 전에는 1차 밀항을 시도했지만 선박 고장으로 실패했다고 했다그가 태안에 도착한 시점은 1995년 6월말이었다고 했다중국에서 베트남을 향해 탈주한 것도 1995베트남에서 감옥살이를 한 것도 1995탈옥하여 다시 중국으로 잠입해 산동성에서 태안으로 온 시점이 1995년 6월 말이라는 것이다.

② 1996.12. 연합뉴스지난 88년 7월 25일 양강도 혜산시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 길림성 매하구로 탈출했다. 함경남도 단천시 철도승무대원으로 근무하던 중 일어난 열차 연착사고의 책임추궁을 피해 혜산까지 왔다가 압록강을 건넜다지난 92년 .수교 이후 씨는 세 차례 북경 주재 한국 대사관을 찾아 귀순을 받아줄 것을 요청했으나 `탈북자인 것은 사실인 것 같으나 북경 대사관에서는 귀순 요청을 받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 물러섰다이어 그는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을 목표로, 95년 2월 말 중국 운남성 화구시에서 베트남 로까이 지역으로 잠입했다당시 중국에서는 베트남 하이퐁 항구에서 한국행 배를 이용한 밀항귀순도 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그러나 하노이 주재 한국 대사관 K경제담당 참사관 등은 "불법 월경 혐의로 체포령이 내려져 있다"면서 미화 620여 달러 가량의 여비를 쥐어주면서 피신하라고 했을 뿐 귀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씨는 하이퐁港 부두에서 밀항을 시도하는 등 베트남에서 한국행 기회를 엿보다 95년 3월 말 베트남 공안당국에 검거되기도 했다트남을 탈출중국에 다시 밀입국한 씨는 95년 6월 1일 산동성(山東省해양현에서 쪽배를 타고 남한 서해안으로 밀항을 결행했다이 밀항 시도는 보름 동안 표류하다 되돌아 온 것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6월 22일 8마력짜리 트랙터 엔진을 부착한 0.5t 선박을 구입다시 한번 서해로 탈출을 시도했다. 95년 6월 25일 낮 11시께 남한 선박 <형제호>를 발견, "탈북자를 구해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쳤다배에 오른 씨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충남(忠南태안 앞바다에 도착했고 북한을 탈출한 지 6년 만에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것이다.

 

의 견

 

 

 

 

1988년 7월 25 압록강을 건너 중국 길림성 매화구로 탈출했다고 한다북경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호소했지만 받아주지 않자 베트남주재 한국 대사관에 가서 호소할 작정으로 95년 2 베트남으로 잠입해 하노이 주재 한국 대사관에 갔지만 경제담당 참사가 체포령이 내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미화 620 달러를 주었다고 했다. 95년 3월 베트남 공안당국에 체포됐다가 탈출하여 다시 중국 산동성으로 가서 95년 6월 1쪽배를 타고 남한 서해안으로 밀항을 결행했다보름 동안 표류하다 밀려온 곳이 도로 산동성이었다고 한다. 다시 6월 22일 8마력짜리 엔진을 부착한 0.5t 선박을 구입하여 출발해 95년 6월 25일 낮 11시께 남한 선박 <형제호>를 발견, "탈북자를 구해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쳐서 구조되었다고 한다. 8마력 엔진을 단 쪽배는 또 무슨 돈으로 구입했는가?

 

 

쪽배를 타고 15일 동안 표류했다가 다시 다른 곳도 아니고 산동성으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믿기 어렵다. 15일 동안 무엇을 먹었고식수는 어떻게 해결했는지아무리 무모하다 해도 기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사병생활을 하고 소위-중위까지 올랐다가 열차 사고의 책임을 뒤집어쓸 정도의 지도원이었다면서 감히 식수와 음식의 대책도 없이 쪽배에 몸을 맡기고 그 험한 파도를 극복하면서 한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두 차례에 걸쳐 쪽배를 살 수 있는 돈은 어디에서 났는가한국 대사관이 권총과 당원증을 받고 620 달러를 내주었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빠듯한 대사관 예산을 탈북자의 당원증과 권총을 담보로 잡고 내줄 외교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③ 2012.9. 뉴데일리중국이 개방을 하지 않은 상태라 한국에 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그래서 산둥성지린랴오닝등 중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다 95년에야 베트남으로 건너가 망명 신청을 했다그러나 그 당시 외교마찰을 염려한 한국 정부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결국 한국 무역선을 타고 밀항을 시도하려 했지만 베트남 공안에 체포되는 바람에 유치장에 갇혀 북송을 기다리게 되었다. . . 유치장에서 북송을 대비하여 대못을 구해 자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쌓인 감정이 많은 탓에 음식을 주러 온 유치장 간부 폭행하였는데 이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2년 동안 재판을 받기위해 북송이 연기된 것이다결국 다시 출소 시기가 다가올 즈음 탈옥을 시도하였다수배령을 피해 라오스로 넘어갔지만 거기에서도 잡혀 감옥에 갇힌 후 또 다시 탈옥을 시도했다다시 중국으로 도망가기 위해 길을 걷던 중 우연히 한국인 신혼부부를 만났다말이 통하는 동포에게 나의 사정을 이야기 하니 돈 30만원을 쥐어주더라결국 그 돈을 밑천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노를 저어 갈수 있는 쪽배를 장만했다딱딱한 빵 6조각과 나침판그리고 방수 비닐만으로 18일 동안 노을 저어 한국의 안면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 견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산둥성지린랴오닝등 중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다 하노이 주재 한국 대사관에 갔지만 자기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했다한국 무역선을 타고 밀항을 시도하던 중 베트남 공안에 체포되는 바람에 유치장에 갇혀 북송을 기다리면서 대못으로 자살할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음식을 주러 온 유치장 간부를 폭행한 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2년 동안 재판을 받기위해 북송이 연기되었다고 했다출소 시기가 다가올 즈음 또 탈옥했고수배령을 피해 라오스로 넘어갔지만 거기에서도 잡혀 감옥에 갇힌 후 또 다시 탈옥을 했다고 했다라오스에서 중국으로 도망가기 위해 길을 걷던 중 우연히 한국인 신혼부부를 만나 사정을 했더니 30만원을 쥐어주었다고 했다그 돈을 밑천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노를 저어 갈수 있는 쪽배를 장만하여 딱딱한 빵 6조각과 나침판그리고 방수 비닐만으로 18일 동안 노를 저어 한국의 안면도에 도착했다고 했다.

 

나침판은 북쪽만 가리키는 도구다누군가가 나침판을 들고 움직이는 위치를 시시각각 도면에 그려야만 태안반도로 갈 수 있다그러나 그는 18일 동안 혼자서 계속 노를 저어야 했다파도와 싸워야 했다나침판은 항해에 무용지물인 것이다물은 어떻게 해결했으며 허기는 어떻게 해결했는가18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못한 상태에서 노를 저을 사람 이 세상엔 없을 것이다.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김용화가 권총을 소지한 탈북자라는 취지로 얼굴이 인쇄된 수배지가 곳곳에 붙었다고 했다그래서 베트남을 향해 2km를 걸어서 이동했다고 했다하루에 10시간씩 걷는다 치고 한 시간에 5km를 걷는다고 치더라도 하루의 도보 가능 거리는 50km가 된다. 2만 km를 50km로 나누면 4,000일이 걸린다하루도 쉬지 않고 11년을 걸어야 하는 거리인 것이다그동안 씻지를 않아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는데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 체포됐다고 한다체포는 했지만 몸이 더러워 경찰이 몸수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베트남 경찰은 자기를 중국 거지로 판단하고 곧바로 중국으로 송환을 했는데 송환 도중 화장실을 핑계로 도주를 했다고 했다베트남 경찰들이 총으로 위협하자 그는 총으로 맞대응을 했고이에 권총을 소지한 중국 거지를 잡기 위해 베트남 경찰이 총출동했지만 자기를 체포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시 하노이 한국대사관으로 가서 당증과 권총을 맡긴 후 자금을 지원받아 가지고 한국 무역선을 타고 밀항을 하려다 배 위에서 총을 겨누고 있던 베트남 경찰에 체포됐다고 했다체포 소식을 듣고 북한 대사관이 달려와 그를 북송하기로 하고 14일 동안 기다리던 중 대못을 구해 자살을 하려다가 도시락을 들고 온 베트남 경찰을 폭행했더니 2년 동안 재판을 받으라 하여 북송이 연기됐다고 했다베트남 당국(검찰)은 그가 모범수라며 형량을 감소시켜 주었지만 그는 감옥을 탈출했고탈출해서 다시 중국으로 이동하던 도중 우연히 신혼부부를 만나 돈을 받았고그 돈으로 0.3톤짜리 배를 사서 15일간의 표류 끝에 태안에 도착했다고 했다.

 

의 견

 

이 이만갑 프로에서 김용화가 말한 내용은 구라의 절정을 이룬다총을 든 경찰을 향해 권총을 겨누는 사람은 즉각 사살된다미국의 예를 보면 교통에 걸렸을 때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명령한다손을 올리지 않으면 총을 꺼낸다는 의심을 받아 즉시 사살된다.

 

김용화의 탈북 동기는 4개의 매체마다 다 다르다탈북 동기가 4개이고, 4개가 각기 다르다탈북 과정도 4개이고 4개가 다 다르다다를 뿐만 아니라 그 모두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김용화의 탈북 스토리는 무식하고 황당하기 그지없다그의 탈북 스토리는 가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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