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답변서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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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8-17 15:39 조회2,9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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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한국의 역사왜곡 처벌법을 고발한 뉴욕타임즈 기사
2021년 7월 18일 뉴욕타임즈가 ‘한국정부가 보장해왔던 표현의 자유가 역사왜곡 문제로 인해 시험당하고 있다’는 제하에 ‘해석이 충돌하고 있는 몇몇 역사에 대한 “음모론”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됨에 따라 정부가 이를 탄압하기 위해 사법적 처벌 장치를 깔고 있다’는 부제를 달고 A4지 8매 분량의 장편 기사를 냈다. 5.18에 대해 정부와 반대되는 표현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법률이 이미 시행되고 있고 이에 더해 세월호, 일제 역사, 위안부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 징역 10년형에 처하겠다는 법률이 제정 중에 있다고 했다. 문재인은 '역사왜곡'을 범죄행위로 다스리게 함으로써 위험한 정치적 지뢰밭으로 진입하고 있다고도 썼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민주화를 위한 한국의 투쟁사들 중에서 1980년의 광주봉기는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들 중 하나였다. 광주봉기는 교과서에 자랑스러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신성시돼 있다. 반면 극우주의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광주사건은 민주화를 위한 광주의 희생사건이 아니라 광주의 저항운동에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하여 유발시킨 폭동이라고 주장한다. . 이 북한음모론은 한국사회에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 증폭되고 있다. . ”
뉴욕 타임즈는 5.18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충돌 당사자를 피고인과 광주의 조영대 신부로 부각했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의 주장을 아래와 같이 요약해 놓았다.
“저들은 우리의 형제자매와 부모들의 아픔을 평가절하하면서 우리를 북한의 앞잡이라고 비난한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악용하고 있다. 지만원이 계엄군의 집단학살 행위에 대해 가짜정보를 확산함으로 인해 광주생존자들은 너무나 오랜동안 고통을 당해왔다. 유럽국가들이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자들을 처벌하듯이 우리도 광주의 잔학행위를 미화하는 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뉴욕타임즈는 피고인의 사정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5.18이 북한공작임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 가장 앞장선 지만원씨는 ‘내가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판단은 민주주의를 돌리는 엔진인 공론의 장에서 공개 토론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와는 반대로 정부는 역사를 자기식대로 강점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 지씨는 민주주의 가치를 위협하고 있는 자들은 본인이 아니라 바로 북한식 공산주의 시각을 가진 문재인 진영의 진보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한다. . 이 뜨거운 논란은 무시할 수 없는 온라인 수단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팟캐스터(인터넷 콘텐츠 제작자들)과 유튜버들은 국가 단위 방송국 시청자들과 동등한 시청률을 가지고 있다.. . 지씨는 대세에 영합하지 않는 독자적 역사관을 피력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대한 도전인 것으로 간주된다는 데 대한 그의 경험을 말해주었다. 2002년 그는 일간지에 광주사태는 북한의 비밀작전이었다는 표현이 포함된 광고문을 실었다. 그는 즉시 수갑에 채여 광주로 압송됐다. 명예훼손 혐의로 100일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그 후 그는 광주사태에 대해 10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명예훼손 혐의로 수많은 기소를 당해 싸우고 있다. 그를 가리켜 조악한 북한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사람이라고 비난들하지만 그의 시각은 다음 표현에 응축돼 있다. ‘만일 2002년에 광주가 나를 그토록 잔인하게 학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광주가 과연 민주화의 성지인가?
피고인은 민주화의 성지라는 광주로부터 인간으로서는 차마 당할 수 없는 날벼락을 맞았다. 이것이 5.18 수호세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기 시작한 첫 케이스였다.
2002년 8월 16일.피고인은 동아일보에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라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냈다. 3,500자의 칼럼형 광고문에는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습니다.”라는 46자의 문장이 들어 있었다.
2002년 8월 20일,이 문장에 대해 동네 이발사 출신 5.18부상자회 회장 김후식이, 검은 유니폼을 입은 11명의 조폭을 이끌고 서울로 와서 다수의 경찰이 보는 앞에서 충무로 소재의 피고인의 사무실을 부수고, 건물주에게 협박을 가하면서 “사무실을 거두어들이겠다”라는 각서를 받아갔다. 이어서 안양 소재의 피고인 아파트로 달려와 수많은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차를 부수고, 대문을 부수며 무력시위를 했다. 경찰의 제보로 피고인과 가족은 간신히 피신하여 화를 모면하였다.
2002년 10월 22일,광주검찰 최성필 검사(1968년 전남 광양 출생)가 형사소송법 4조에 명시된 ‘토지관할’ 규정을 무시하고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피고인의 거소에 1명의 검찰 조사관(김용철)과 3명의 경찰관(이일남, 박찬수, 이규행)을 보냈다. 이들은 신발을 신고 거실에 들어와 어린 자식들과 가족이 보는 앞에서 피고인을 물리력으로 제압하고, 수갑을 등 뒤로 채운 후 6시간 동안 광주로 호송해 갔다. 화장실도 거부당했다. 6시간 내내 찰싹찰싹 뺨도 맞고 머리도 쉴 새 없이 쥐어박혔다. 피고인은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송되는 동안 이들은 각기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네, 김용철입니다” “네, 이일남입니다” “네, 박찬수입니다” “네, 이규행입니다” 아래는 이들로부터 6시간 동안 반복해서 들었던 언어폭력의 요지다.
"니미 씨팔 좃 같이, 뭐 이런 개새끼가 다 있어, 야 이 씨발놈아, 네깟 놈이 무얼 안다고 감히 5.18을 건드려, 니가 감히 5.18을 씨부렀당가~ 이 씨발 개새끼야~ 이 새끼 가다가 목을 비틀어 파묻고 가야 한당께, 뭐 이런 싸가지 없는 개새끼가 다 있어, 야, 이 새끼야, 너 이회창으로부터 얼마나 받아 처먹었냐, 이런 새끼가 무슨 대령 출신이야, 이런 새끼가 무슨 육사 출신이야, 대령질 하면서 돈은 얼마나 받아 챙겼것냐, 부하 꽤나 잡아 쳐먹었을 거다. 이런 쥐새끼 같은 개새끼, 우익새끼들은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한당께. 너 이새끼 가다가 죽을 줄 알아, 너를 때려 죽여서 파묻어도 증거가 남냐? 증거가? . ."
화장실에 가고 싶다 했다가 몰매를 맞았다. “야 이 씨발 개새끼야, 바지에 흥건히 싸부러, 좃대가리를 팍 뭉겨버리기 전에”
광주검찰청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했더니 다른 조사관(이름 모름)이 옆에 붙어 채근했다. “이 씨발놈아 빨리 싸부러” 수갑을 뒤로 채였는지라 팔과 손가락이 퉁퉁 부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빨리 싸부릴” 수 있겠는가?
26세 연하인 최성필 검사가 피고인을 보더니 곧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삿대질을 했다. “네가 5.18에 대해 뭘 알아, 이회창에게서 얼마나 받아 챙겼어, 돈 벌려고 한 짓 아냐? 이 개새끼 수갑 풀어주지 말고 밤새워 조사해”
검사로 보이는 여성이 살랑살랑 짧은 치마를 흔들면서 최성필 검사실로 들어왔다.
“이 자가 지만원이라는 그자랑가? 어이, 이 보소, 얼굴 좀 들어 보소 잉, 당신 눈에는 광주시민 전체가 빨갱이로 보이요? 당신 눈에는 여기 있는 우리가 빨갱이로 보이요? 이 자도 인간이랑가 잉~, 참말로라 잉, 광주가 아니었다면 한국에 무신 민주주의가 생겼겠소. 어림도 없재이 잉~ 이 보소, 당신이 시스템공학 박사요 엥? 시스템공학이란 게 있당가, 어디서 학위를 받았소? 처음 듣는 건디 이거 가짜 아닝가벼, 좀 알아봐야 겠구만, 어이 좀 알아보소”
피고인이 광주지법에서 처음 만난 판사는 정경현(1957년생으로 당시 45세, 전남 함평), 그는 10월 24일에 영장실질심의를 진행했다. 그는 피고인의 변론을 맡은 광주출신 이근우 변호인(당시66세)에게 “변호인은 광주 시민들에게 무슨 욕을 들으려고 서울 사람의 재판을 맡았소” 라 소리쳤다. 아버지뻘 되는 분에게 모욕을 준 것이다. 이때 피고인은 서울변호사 임광규, 정기승, 강신옥, 이종순 등으로부터 무료 변론을 받고 있었다. 이근우 변호인이 필자의 경력과 훈장 받은 사실들을 나열하자 “시끄럽소, 지저분한 신문은 집어치우시오”라고 또 한 차례 면박을 주었다. 이어서 정경현 재판장은 피고인을 삼킬 듯이 노려보면서 “당신이 광주에 대해 무얼 아요? 나는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구속영장은 발부됩니다. 이상이오” 분노에 찬 소리를 히스테리하게 분출하는 것을 끝으로 이후의 재판정은 공포의 고요로 변했다.
2002년에 광주의 경찰, 검찰, 법원이 보여준 행위는 이성과 논리를 상실한 막가파식 폭력 행사였다. 피고인이 본 답변서의 말미에 상서롭지 못한 생지옥 이야기를 정리한 이유는 2016년부터 시작된 이 사건 소송행위 역시 형태만 바뀐 막가파식 폭력 행위라는 점을 명시하고 싶어서다.
저들이 5.18에 대해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을 때로는 물리력으로, 때로는 명예훼손 관련 재판으로 그리고 종내에는 5.18처벌법으로 막아 온 데에는 국가의 존망이 달린 엄청난 이유가 있다. 5.18 성역화세력은 건국과 부흥을 주도한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들을 격하한다. 건국도 부정한다. 한국 정부는 태어나서는 안 될 더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하루속히 멸망시켜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해 왔다. 이 나라에서 오로지 정의로운 것은 5.18을 대들보로 하는 민주화세력이라고 선동해왔다. 민주화세력이 영구 집권을 하겠다는 것이다. 영구 집권의 발판이 바로 5.18의 성역화인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재판은 더러운 정치 재판이기도 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한 성스러운 재판이기도 한 것이다.
2021.8.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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