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의 망동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6-28 14:51 조회4,750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김경재의 망동
사랑제일교회 견학은 유익했다
6월 27일, 나는 두 번째로 사랑제일교회에 나갔다. 초청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대안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전광훈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 과정을 통해 그를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2차례의 예배는 내게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시스템미래당을 창당할 때 만들어 놓은 정책서를 혹시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남기고 왔다. 그 정첵서에 어떤 것들이 담겨 있는지는 내가 이번 6월 20일과 6월 27일의 짧은 멘트에서 짐작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재의 기습적 망동
예배가 무려 5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목사님과 함께 식사하는 공간으로 안내됐다. 잠시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점심 멤버도 아닌 김경재가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나를 헐뜯고 나가는 순간 나와 부딪혔다. 나에게 레이저 광선을 쏘며 왜 자기를 험담하느냐고 했다. 무슨 내용의 험담이냐 했더니 대지는 않고 그 증거가 사방에 널려있다며 사라졌다. 식탁에 앉아 “저 사람 지금 나를 뭐라고 비난했느냐”고 물으니 내가 김경재를 “위장탈북자”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경재가 탈북자인가요? 제가 그를 탈북자라고 인식할 수 있나요?” 하고는 체면이 상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성실한 전 자기 특보까지 동원해 지만원 공격에 가담시키려 공작
며칠 전 한 가까운 회원으로부터 생뚱맞은 전화가 왔다. 내가 김경재와 변희재를 묶어서 위장한 사람들이라고 비방했다는 것이다. 어제(6.27) 사정을 파악해 보니 김경재가 변희재에게 ”지만원이가 너와 나를 묶어서 위장 탈북자라고 비방했다“는 것으로 파악됐다.
어제(6.27.) 밤 10시경 김경재에 전화를 걸었다.
아까 낮에 나를 비난한 내용이 뭐냐
우리를 가지고 위장탈북자라고 비방했잖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전에 너는 나를 따로 불러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사실 확인부터 해야 하는 것이 신사 아니냐?
우릴 위장탈북자라고 한 놈에게 무슨 신사적인 대우를 하냐?
그런 말 했다는 증거를 대라
증거가 널려있다
야, 김경재, 나와 너는 동갑이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이후 욕설이 오갔다.
김경재의 망동, 계략적 음모로밖에 해석 안 돼
식사에 초대된 사람도 아닌데 일부러 시간 맞춰 교회 식당에 찾아와 교회의 지휘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지도 않았고 할 말도 아닌 말’을 지어내 나를 공개석상에서 모함을 하고 곧장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김경재가 “우리”라고 표현한 것은 김경재와 변희재를 의미하는 모양이다. 내가 두 사람을 싸잡아 “위장한 탈북자”라 했다는 것이다.
나는 변희재를 높이 평가한다는 방송을 했어도 그를 비하한 적이 없다. 그런데 김경재는 한때 자기의 특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변희재를 악용해 그로 하여금 나를 공격하게 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김경재를 가리켜 위장이라는 말도, 탈북자라는 말도 한 적이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기재한 것은 지난 6월 15일, 홈페이지 최근글에 “막장 시국의 결론: 윤석열은 위장한 대깨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처음이었다.
“나는 전광훈에게 충고하고 싶다. 모두를 가지려면 다 잃는다는 사실을, 적이 없으면 친구도 없다는 사실을,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명성이라는 사실을,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을 다 포용하려 들다가는 모두를 잃는다는 사실을, 5.18을 최고의 이슈로 쟁점화 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의 열쇠인 [차별화]를 이룩해 낼 수 없다는 것을. 모두를 가지려면 모두를 잃고 모두를 버리면 모두를 갖는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간절히 바란다. 조갑제, 정규재, 김문수, 김경재와 같은 카멜레온족과 이별하지 않으면 나는 전광훈으로부터도 떠날 것이다. 하지만 윤석렬은 내 주적이다.”
이 글은 김경재뿐만 아니라 조갑제, 정규재, 김문수 등을 동시에 지목한 것이며 그들에 대한 나의 사상적 평가를 내린 글이다. 김경재가 문제 삼으려면 바로 이 글을 가지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글은 문제를 삼을 수 있는 성격의 글이 아니다. 문제 삼다가는 오히려 자기의 처지가 곤궁해진다. 이러하기 때문에 증거도 없으면서 생으로 거짓말을 지어내 마타도어 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아마도 이는 사랑제일교회 지휘부에게 나를 망신주어 더 이상 가지 못하게 하려고 꾸민 계획적인 모략전일 것이다. 마치 김대중이 거짓말을 지어내 박정희를 모략했던 것처럼. 어제 김경재는 김대중을 빼닮은 음모를 꾸몄다. 이런 성격의 사안이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하면서도 어제의 기분은 교회 갔다가 똥 밟은 기분 그 자체였다. 분명한 명예훼손 행위지만 회피한다.
내게는 김경재가 아직도 빨갱이다
김경재는 김대중의 수십 년 심복이었으며 1999년 김대중의 특사로 북한을 다녀왔고, 그 다음 해에 있을 김대중-김정일 사이에 교량을 놓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해 개인적 정치 성향에 의해 북한에 많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도돼 있다. 그는 1999년 평양에 7박 8일(11월 6~13)씩이나 머물렀다. DJ의 최측근으로 북한에 7박 8일이나 있었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계의 대상이 된다. 아래는 2011.8.1.자 월간중앙 100호 기사의 일부다.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289541
“DJ 정부 시절인 1999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대북 비밀특사가 또 한 명 있었다. 바로 김경재 전 의원이다. 재선의원으로 민주당 최고위원까지 지낸 김경재 씨는 당시 DJ가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초선 의원(15대·순천 갑) 신분이었다. . . 그는 단독 방북한 특사였지만 DJ의 친서도 휴대하지 않았다. 김경재 씨는 DJ로부터 “자네는 내 의도를 잘 아니까 구두로 내 메시지를 전하라”는 지시를 받고 수행원 두 명을 대동하고 방북했다고 밝혔다.“
“김경재 씨는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그해(1999) 11월 6일부터 13일까지 7박 8일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김경재 씨의 방북 명분은 그가 단장으로 있던 합창단 ‘프리모칸단테’의 평양 공연 협의였다. 북한 측에서는 그가 의장으로 있던 사단법인 ‘보통사람들의 통일운동 시대’가 지원한 자전거와 식량의 배포 상황을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 . 김경재 씨는 당시만 하더라도 DJ의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DJ와 1971년 공식적으로 알게 된 이래 그때까지 참모로서 근 30년 세월 동안 고락을 함께한 ‘동지적 관계’였다. 특히 DJ가 미국에 망명 중이던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안팎 현지에서 ‘모셨던’ 특수한 사이다.”
2021.6.28. 지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