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노파 김진순까지 내세워 사기쳐야만 하는 5.18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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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5-17 13:42 조회3,16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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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노파 김진순까지 내세워 사기쳐야만 하는 5.18신세
5.18기념재단이 나에게 쏟아 부은 소송은 모두 사기극이었다. 그 중 몇 개만 간단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신부 이영선 사기>
광주 이영선 신부는 1987년 당시 신학생이었다. 그런데 5.18기념재단은 1987년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이라는 모략용 화보를 발행한 신부 중 한사람이 이영선이라고 사기쳤다.
이영선 신부, 박창신 신부 '연평도 포격 발언' 두둔
[중앙일보] 2013.11.27
https://news.joins.com/article/13242444
<북한 삐라 사기>
1987년 광주 신부들이 펴낸 책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속에 기재된 15명의 으깨진 얼굴 증 5명이 1982년 북한이 살포한 삐라 속 사진과 동일하다. 동일하면 광주신부들이 북한으로부터 사진을 입수한 것이 된다. 그런데 광주법원 판사들과 김태호 판사는 이 삐라가 북한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삐라 발행 시기와 같은 1982년에 북한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투쟁] 제591쪽에는 삐라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통계 자료가 기재 돼있다.
또한 파주 해이리마을에 소재한 [근현대사 박물관] 불온문서 부스에는 똑같은 삐라가 불온문서(북한 삐라라는 뜻)로 분류돼 전시돼 있었다. 이 사진은 우리 회원이 촬영한 사진이지만 최근 다시 가 보니 박물관이 이 부스를 없애버렸다. 그러나 사진은 증거로 남아 있다.
1987년 광주신부들 발행 좌측 책에 실린 모략사진 5명의 얼굴 동일
<김진순 노파를 이용한 사기>
지난 5월 14일(금) 재판에서 검사가 마지막으로 김진순 노파를 증인석에 세웠다. 그런데 그 노파는 귀도 잘 안 들리고 글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5.18기념재단이 도장을 찍으라 해서 찍었다고 했다. 5.18기념재단은 1980.5.23. 도청에서 관을 잡고 우는 여인(여장한 리을설 62광수)을 김진순이라 지정하여 대리로 고소를 했다. 그런데 그 김진순은 “할머니가 잡고 있는 관 속에 아들 이용충이 있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아니라고 했다. 아들이 죽은 것을 확인한 곳이 경찰서 유리창이라고 했다. 아들의 관을 잡은 적이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변호인은 아래 한겨례신문과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추모의 글을 큰 소리로 차근차근 읽어주었다. 김진순은 변호인이 읽어준 내용이 맞다고 했다. 이날 광주에서 올라와 이를 지켜 본 5.18재단 인간들의 심정이 매우 착잡했을 것 같다.
2016.5.17.자 한겨레 기사는 나에게 큰 선물을 안겨 주었다.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44342.html#csidxd82be38a673fd9e9890b024656ff201
김진순이 잃은 아들의 이름은 이용충, 그는 5월 21일 광주 교도소를 공격하다가 죽었다. 이 내용은 1997년 4.17.자 대법원 판결문에도 나와있다. 그런데 아래 한겨례신문은 김진순이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한 시점이 5월 23일로부터 38일째 되는 1980.6.30.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5.18기념재단과 현재의 서울지검 416호 검사들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백일 하에 드러난 것이다.
<2016.5.17. 한겨레 기사>
이용충 기록: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자료마당 안장자 찾기
<심복례를 이용한 사기>
심복례 남편은 김인태, 김인태는 1980.5.19..에 광주로 떠나 5월 23일 광주에서 사망했다. 노숙자 담요는 그가 황장엽 조에 체포되어 고문당한 후 총살됐다고 법의학적(포렌식)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5.18기념재단이 80대인 그녀를 이용해 “당신이 제62광수 리을설이라고 하라”며 민사소송에 내세웠다. 광주판사들은 줄줄이 그녀의 주장이 맞다며 내게 손해배상금을 물렸다. 그런데 이렇게 돈을 물려 놓고 5.18기념재단은 그녀가 재62광수가 아니라 제139광수(김정은 첫 부인, 김형직사범대학 학장)라 하라고 내세워 그 후의 또 다른 민사소송에서 2중으로 돈을 벌었고, 이와 동시에 서울법원 형사재판에 고소를 했다. 그런데 심복례는 관을 잡고 운 적이 없다. 그녀가 남편의 시신을 처음 확인한 것은 1980.5.30. 망월동에 가매장돼 있는 부패한 시신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심복례도 김진순도 관을 잡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http://xn--www-pi9ly22he1l.heavenpark.com/518/104/10.html
이상 4가지 사기만 보아도 5.18기념재단이 얼마나 막막하고 다급한 코너에 몰려 있다는 점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21.5.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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