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서(간첩 손성모의 5.18공작과 북한의 5.18기념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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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5-01 10:21 조회3,1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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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변 서
간첩 손성모의 5.18공작과 북한의 5.18기념행사
사건 2020노804 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
피고인 지만원
위 사건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1. 탈북자 제1호 박사 안찬일tv 방송
2020.10.4. 탈북자 1호 박사 안찬일이 “[TOP SECRET] 5.18 사건 때 실제 광주에서 체포된 직파 북한 공작원이 있었다!”는 제목으로 5분 36초 동안 방송하였습니다.
[다인 속기사무소]에 의뢰하여 제작한 녹취록을 증228로 제출합니다.
1) 녹취록의 요약
(1) 손성모는 북한 엘리트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 1929년생으로 1967년도에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했다.
(3) 통일전선부가 그를 스카우트하여 공작원으로 키워오다가 1980년 4월초 광주로 직파됐다. 북한군이 내려왔다 것은 아직도 설이었지만 이 공작원이 침투한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4) 광주사태가 진정된 이후 북한에서는 당간부들과 권력기관 사람들한테 특별강연이 있었다. 강의 내용에 의하면 손성모는 광주지역 시민군 총 사령관으로서 북한에서 내려간 특수부대, 공작원, 또 광주의 학생들, 시민들을 묶어서 지휘한 사실상의 총 사령관이었다. 손성모 동지를 따라 배우자는 강연이었다.
(5) 김일성은 1960년대 초반에 남파간첩들에게 비밀교시를 주었다. “공작원들은 십자가와 스님 뒤에 숨어라.” 공작원 손성모도 80년 4월에 대한민국에 침투하면서 광주 근교에 있는 증심사라는 절로 숨어들어 스님으로 위장했다. 거기에서 거사를 음모했고, 비전향장기수 류낙진의 딸 류소영의 주도로 그 절에서 여러 차례 시민군이 어떻게 일어나서 저항할 것인가, 이런 회의를 열었다는 것이 손성모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6) 광주사건은 그 이후에도 손성모는 월북하지 않고 그 주위에서 계속 또 다른 기회를 노리다가 1981년에 체포됐다. 거의 19년 동안 복역을 하다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에 김대중이 비전향 장기수들을 대거 북한으로 보냈고, 손성모도 이에 포함돼 북으로 갔다.
(7) 북한에 돌아가서는 북한 최고명예인 공화국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1급을 받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등 수많은 명예를 누렸다.
2. 손성모에 대해 안찬일이 새로 밝힌 것
위키백과에 의하면 손성모는 1980.5.7.~10.4.까지 151일 동안 전국 유명 사찰 35곳을 다니면서 위치, 전황, 승려들의 신상 등을 파악했다가 입건되었는데 그 행적을 5.18과결부시킨 적은 없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안찬일은 손성모가 승려로 위장해 김대령의 저서 등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5.18시민군 활동의 핵심 근거지로 알려진 증심사에서 비전향장기수 류낙진의 딸 류소영 등과 함께 5.18 공작을 했고, 그 결과 북한에서 일약 명사가 되어 김일성과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다고 방송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것들은 시간표를 정해놓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3. 손성모에 대해 노숙자담요가 밝인 것(제36광수)
노숙자담요는 광주현장 사진 5개 장면에서 손성모를 발견하여 제64광수로 지정하였습니다. 아래는 노숙자담요가 분석한 영상 자료입니다.
2. 2005.5.17. DailyNK 보도내용(증229)
DailyNK가 “5.18 광주, 北에서는 이렇게 보았다”는 제하에 기사를 썼습니다(증229). 이를 요약합니다.
1) 탈북자들은 대체로 남한에 와서 비로소 5.18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부터 “광주 폭동사태는 반미 자주화 운동이었다”고 선전했다.
2) 해마다 5월이 오면 북한에서는 연례행사가 열린다. 5월 18일에는 거리마다 포스터를 걸어놓고, 추모행사와 군중시위를 벌인다. 라디오 방송과 TV는 5.18~26일까지 1주일 동안 벌어진 투쟁상황과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소개하면서 주민들에게 “5.18 광주폭동은 남조선 인민들이 반미 자주화를 위해 싸운 항쟁운동”이라고 선전한다.
3) 평양시에서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고 각 기관마다 만든 대형포스터를 들고 군중시위를 하는데, 노동자대표, 청년학생대표, 농민대표들이 차례로 나와 연설과 구호를 외친다. 광주에서 시작된 선혈들의 넋을 헛되이 하지 말고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4) 지금도 <노동신문>은 계엄군이 시민들을 거리로 끌고 다니는 모습, 철사로 결박한 모습들을 보도한다.
5) 영화관에서는 광주봉기를 주제로 한 ‘님을 위한 교향시’를 상영한다. 남한의 한 대학생(이영호)이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시위에 참가했다가 계엄군에게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6) 북한 당국은 “광주폭동은 미국이 지휘했다”고 주장한다. 주한 미 대사 글라이스틴이 전두환을 골방으로 불러 광주를 진압할 데 대한 지시를 내리는 장면도 연출하여 방영한다. 미국은 광주가 폭도들에게 점령당하면 한국의 안보가 위태롭고, 남한에서 쫓겨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제 무기로 계엄군을 무장시키고, 장갑차를 제공해 광주를 포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상물을 동원해 선전한 결과 북한 주민들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갖고 ‘남조선 괴뢰도당’에 대한 증오심을 높인다. 당시 광주에서 희생된 사람들도 ‘5천 명’이라고 보도했다.
7) 1980년 5월 18일 북한 방송은 저녁 7시와 9시 뉴스 말미에 갑자기 “남조선에서 광주폭동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광주폭동’ 소식을 싣고 사진들을 실었다. 시내회관에서는 조총련을 통해 입수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무료로 방영했다.
8) 북한 주민들은 시민군이 계엄군의 무기와 군수차량을 빼앗아 거리를 누비는 모습을 보며 “4.19 다음으로 큰 항쟁운동”으로 평가했다. 일부 주민들은 “남조선에서 내란이 일어났으니, 북에서 쳐 내려가면 통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4.19 당시 때도 북한 군부의 실수로 기회를 놓쳤는데, 이번에도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5월 24일 시작된 계엄군의 광주진입을 놓고 “군중들이 러시아의 ‘차빠예브’(러시아 혁명시기 사태를 안일하게 파악한 볼셰비키 장군)처럼 경각심이 부족해 계엄군의 진입을 허용했다”면서 혁명봉기를 자연발생적으로 방치했다느니, 지도자의 리더십이 부족했다느니 하는 의견이 설왕설래 했다.
9) 당시 북한 주민들 사이에 괴상한 유언비어들도 나돌았다. 유언비어 중에는 “북한의 특수부대 한 개 여단이 잠수함을 타고 서해로 들어가 무장 봉기군과 합세했다. 특수부대는 남한 사람들과 같이 장발도 하고, 말씨도 서울말로 고쳤다”, “계엄군을 지휘한 사람은 평북 정주에서 월남한 대지주의 딸인데, ‘폭도들은 빨갱이다, 시민들은 흩어지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작원들이 주동이 되어 대열을 정리하고 계엄군과 싸웠다”는 등등 믿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참고로 제62광수 리을설은 인민군 원수 계급에 오른 북한의 전설이며 3성장군인 상장으로 광주 현장 여러 곳에서 여장을 하고 지휘를 하고 모략용 사진들에 찍혀 있습니다. 아래는 여장을 한 리을설의 장면 사진들입니다.
3. 2020.05.18. LIVERTY KOREA POST의 보도내용(증230)
LIVERTY KOREA POST가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광주인민봉기에 대해 언급”이라는 제하에 기사를 썼습니다. 이를 요약합니다.
1) 남한은 5.18민주화운동, 북한은 광주인민봉기라고 부른다.
2) 해마다 5월 18일 기념행사가 평양에 이어 전국의 도, 시들에서 대규모로 열린다.
3) 노동신문 사설, 조선중앙텔레비죤, 3방송 등 언론매체들을 통해 5.18광주인민봉기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미군철수, 친미정권 타도, 자주적인 조국통일을 위해 남조선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싸우라고 선동한다.
4) 중앙보고대회 보고에서 북한당국은 ‘5.18광주인민봉기는 자주적이고 민주화된 새 세상에서 살려는 남조선 인민들의 강력한 지향과 염원을 반영한 정의의 반미-반파쇼 항쟁이었으며, 파쇼적인 정규 무력에 맞서 결사항전을 벌인 대중적 무장봉기’였다고 강조한다.
4) 노동신문 사설에서는 ‘최후 승리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 통치를 끝장내기 위한 전 인민적인 반미자주화투쟁을 과감히 벌여야 하며 광범한 각계각층 인민들이 단합하여 전 남조선적인 공동투쟁을 힘 있게 벌여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5) 5월 18일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 을 통해서도 북한당국은 5.18을 거론했다. ‘5. 18광주인민봉기’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서 북한당국은 ‘광주인민봉기는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이 《유신》파쑈독재를 지탱하기 위하여 1980년 5월 17일 남조선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하여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에 걸쳐 광주에서 진행된 반《정부》적인 대중적 무장봉기’라고 설명했다. 또한 ‘인민봉기는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투쟁으로부터 시작되어 삽시에 온 광주 시내를 휩쓸었고 여기에 시내의 모든 인민들과 시주변의 노동자,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그 수는 5월 21일에 무려 30여 만명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6) 봉기군중들은 도청, 시청을 비롯한 통치기관들을 들이쳐 그를 장악하였고 무기고를 습격하여 수천정의 무기를 탈취했으며 《계엄군》의 많은 탱크와 차량들까지 빼앗아 타고 용감히 싸워 5월 21일에는 《계엄군》을 몰아내고 광주시를 완전히 자기들의 통제 밑에 넣었다는 것이 기사의 설명이다. 또한 기사에서는 ‘항쟁의 불길은 도내 대부분의 지역과 전라북도에까지 파급되었으며 목포, 라주, 화순, 령광, 담양을 비롯한 17개 시, 군이 봉기군중의 수중에 장악되었다’면서 ‘이에 당황한 전두환 군사파쑈도당은 《계엄군》을 더욱 증강하여 2중 3중으로 광주시를 완전히 포위하고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봉쇄책동을 감행하였으며 봉기자들을 회유해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봉기군이 완강히 항거해 나서자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은 5월 27일 새벽 수많은 탱크와 장갑차, 헬기를 비롯한 방대한 병력을 투입하여 봉기군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봉기군중은 자기들의 투지를 굽히지 않고 마지막순간까지 굴함 없이 싸웠다’고 언급했다.
결 론
1. 간첩 손성모는 전북 부안츨신으로 서울대 2년에 재학 중 6.25를 맞아 북한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월북한 사람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남파간첩으로 훈련을 받아 1980.4경에 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고 합니다. 1981년 2월에 간첩 아지트로 이름나 있는 문경에서 체포되어 수감되었지만 그가 북한의 ① 남파 공작원이었다는 사실 ② 증심사를 거점으로 하여 5.18 폭동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사실 ③ 그 업적으로 인해 북한에서 유명한 위인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은 2020년 10월에야 탈북자 1호 박사 안찬일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습니다. 노숙자담요는 광주 현장에서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하는 식으로 모략용 촬영 작전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손성모를 발견하여 제64광수로 지정하여 얼굴을 분석하였습니다.
2. 2005년의 데일리NK와 2020년의 LIVERTY KOREA POST는 공히 매년 5월이 되면 북한 당국이, 북한 전역의 시도군 도시 단위에서 여러 날에 걸쳐 5.18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하면서 반미-파쇼 몰아내기 선동을 하고, 노동신문을 비롯하여 북한의 모든 선전매체들을 총동원하여 이를 보도-선동케 하고, 1980년 5.18당시에는 실황방송을 해주었다는 것, 김일성이 1989~91년 사이 황석영(시나리오)과 윤이상(배경음악, 주제곡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으로 불러들여 북한판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하여 1991년 개봉한 이래 해마다 북한 주민에게 그 영화를 관람시키고 있다는 것을 기사화했습니다. 참고로 김일성은 그 대가로 황석영에게는 25만 달러를, 윤이상에게는 5층짜리 [윤이상음악당]과 저택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3.위 사실들만으로도 피고인의 북한군 개입 주장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며, 5.18에 대한 새로운 정부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인의 [북한군 개입] 학설은 시간이 갈수록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처벌할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증거자료
증228. 안찬일tv 녹취록
증229. 2005.5.1. DailyNK, 5.18 광주, 北에서는 이렇게 보았다
증230. 2020.05.18. LIVERTY KOREA POST,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광주인민봉기에 대해 언급
2021.4. 30.
피고인 지만원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 제8-3부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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