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서(국정원 모 간부의 증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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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5-01 10:33 조회3,2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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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변 서
-국정원 모 간부의 증언에 대하여-
사건 2020노804 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
피고인 지만원
위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1. 이 특별한 답변서를 제출하는 이유
피고인은 2019.2.25.~26. 한 애국국민으로부터 매우 귀중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 답변서는 제보내용과 이 제보내용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근거로 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후대에라도 이루어질 진실규명 노력을 위해 매우 귀중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제출합니다. 제출하는 목적은 ① 국정원이 국가안보와 역사규명에 절대적으로 소중한 진실을 은닉-매몰시켰을 것이라는 데 대한 강한 의혹을 공식문서에 남기고 싶고, ② 만일 이 증언이 사실로 공식화됐더라면 피고인의 연구 결과가 곧 진실인 것으로 확인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싶고 ③ 피고인의 연구가 아무런 근거 없이 한낱 허위사실 유포행위가 아니라 학설로 공론화될 성격의 것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싶어서입니다.
2. 황장엽 등 북 고위간부에 대한 제보자의 메일을 받은 경위
피고인은 2019.2.25.(증212) 동년 2.26.(증213) 피고인을 돕고 싶어 하는 한 네티즌으로부터 5.18의 진실에 대한 뜻밖의 메일을 접수하였습니다. 비공개를 전제로 한 것이라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증거라 생각은 하면서도 그동안 답변서에 활용하지 못하였습니다. 메일의 요지는 피고인이 황장엽을 제71광로 발표했는데 위 제보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인 학자가 어떻게 그 험한 게릴라작전에 올 수 있느냐”라는 고정관념에 따라 광수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위 제보자역시 같은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보자는 국정원 고위간부 이모씨의 말을 듣고 황장엽에 대한 의심이 풀렸다 하며, 이 모씨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피고인의 영상 연구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 제보자에 의하면 황정엽(71광수)이 1997년 망명 당시 국정원에서 스스로 자기도 광주에 왔었고, 김덕홍(72광수), 이을설(인민군 전설, 62광수), 김중린(134광수, 당시의 현직 대남사업부장)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국정원 고위 간부는 2015.7 경에 귀순한 박승원(제37광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합니다. 당시 동아일보와 의회신문(증214, 증215) 그리고 채널A가 곧 박승원 상장의 기자회견을 하겠다 해놓고 갑자기 극비에 붙였는데 그 국정원간부 이씨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합니다. 동 국정원 간부는 피고인이 2015.10.29. 국정원에 직접 가서 탈북자 19명이 위장간첩일 수 있다는 취지로 신고서를 제출하였는데(증216) 그 사실도 이병호 원장이 묵살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합니다.
3. 피고인이 제보자로부터 받은 이-메일 2건의 요지
A(제보자): “혹시 황장엽이 5.18 때 광주에 왔었나요?”
B(이 모씨): “아니,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주: 국정원에서는 공공연한 비밀?)
A: “제가 그런 비밀을 어찌 압니까?”
B: “그가 지입으로 광주에 왔었다 말했습니다.김덕홍, 리을설, 김중린도 함께 왔다 했지요”
A: “그럼 신문한 녹취록이 있나요?”
B: “김대중이 태우라 해서 다 태웠습니다.”
A: “김덕홍은 요새 어찌 됐나요?”
B: “그는 산송장이지요.”
A: “2015년에 탈북했다는 박승원은 어찌 된 겁니까?”
B:“ 간부들이 이제 곧 세상이 뒤집힌다며 ‘도원의 결의’를 하고 기자회견을 준비했지요. 그런데 이병호가 꼬리를 내렸지요. 지금 빨갱이 세상이 다 됐는데 그거 발표하면 뒷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A: “권영해가 북한군 개입을 적극 부인하고 다닌다 하던데요?”
B: “그 사람 참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4. 네티즌 제보자로부터 받은 2건의 메일 발췌
제1신: 2019.2.25.(증212)
저는 항상 지박사님의 건강과 안위를 걱정하는 한낱 民草인 000라는 사람입니다.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을 보며 뭔가 도움을 드려야겠다고 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가진 게 없어 안타까워 하던 차에 제가 某 주요인사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이 정보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드렸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지박사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는 내용이 아닌지 확인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질문부터 드려야겠습니다. 황장엽이 귀순 직후 국정원에서 조사 받을 때 이미 자기가 5.18 때 광주에 왔었으며 같이 온 고위 멤버들의 명단을 진술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제2신: 2019.2.26.(증213)
<2~3쪽>
질문에 대한 아무런 답이 없이 반송하신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一考의 가치도 없다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憂國하는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 의무감 같은 것이 날 밀어붙이니 알려드릴 건 알려드리고 이후부턴 일체 緘口할 것입니다. 지박사님이 알고 계시면 빨갱이들과의 투쟁에 유용한 情報가 되겠지만 저 같은 野人은 알고 있어봐야 마음의 짐만 될 뿐이라서입니다. 아래에 나오는 황장엽을 직접 심문했다고 하는, 前 국정원 사람에 대해 간략히 애둘러 소개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해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대화는 한 字도 틀림없이 그대로 적었습니다.
이름은 李 某. . . 신상정보 생략. .
5.18은 좌빨들의 급소이지만 그 중에서도 황장엽이 과연 그때 광주에 내려왔었는가의 與否야 말로 雷管 중의 雷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보여줘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안 믿습니다. 제와 형제 같은 9살 年上의 가장 친한 친구도 (공군 ROTC출신. 사귄지 44년) “북한군 개입은 믿는데 황장엽이 왔다는 건 믿기 어렵다. 김일성대 총장하던(그 당시는 총장이 아닌데) 사람을 어떻게 내려 보낸단 말인가”이 일로 거의 싸울 뻔도 했었지요.
저 역시 박근혜 탄핵 광풍이 극성을 부리던 2017.1.21에 처음으로‘5.18 영상화보집’속의 황장엽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론 반신반의했었습니다. 황장엽같은 고위층이 그런 위험한 작전에 투입이 되다니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고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여기에 쐐기를 박아준 인물이 바로 위에 소개한 李 某 氏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지만원 박사 책에는 황장엽이 내려온 걸로 되어있던데요?”하니 그 사람 눈을 동그랗게 뜨며 曰 “아니 아직 모르고 있었어요?”“저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압니까?”“지가 내려왔었다고 제 입으로 얘기했어요. 김덕홍이도 이을설 김중린이도 같이 왔었고”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지박사님에 대한 저의 전폭적인 신뢰는 지박사님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의 이 말 한마디로부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군 개입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단박에 바꿔놓을 수 있는 5.18의 雷管은 바로 황장엽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4쪽>
그 후 6개월인가 지나서 다시 물었습니다. “황장엽을 심문했다면 그 녹취록이 있을 텐데 아직 잘 보존되고 있습니까?”그 사람 曰 “梁선생이 참 아픈 델 찌르는데.....(좀 뜸을 들이더니) 김대중이 없애라고 해서 다 없앴어요” 몇 개월 후 황장엽과 다름없는 증인인 김덕홍의 근황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그 사람 曰 “산 송장입니다”이게 무슨 뜻인지 저는 지금도 정확히 모릅니다. 몇 달 전 최근에 그 사람에게 다시 질문했습니다. “지박사는 600명의 북한군이 내려왔었다고 하는데 황장엽이는 몇 명이라고 하던가요?”하니 그 사람 曰 “정확히 457명. 지박사는 너무 나갔어.”
(주: 북한은 광주에서 떼죽음 당한 시위대가 475명이라고 주장합니다. 457과 475년 기억 또는 전달과정에서 발생한 오차일 수 있을 것입니다)
<5쪽>
2015년도에 있었어야 할 박승원 상장 기자회견 취소 건은 일 년 동안 저를 괴롭힌 話頭와도 같았습니다. . .그 양반에게 제가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만약 지만원 박사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실 의향이 있습니까?”했더니웃으면서 “지박사가 날 만나면 틀림없이 도와달라고 할 텐데...”하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가능할 것입니다. 제가 이 양반을 안 지가 꼭 3년 되었습니다. 이병호 이병기 수사 때 자기 집 아파트에도 수사관 12명이 들이닥쳤었다고 했습니다.
<6쪽>
탈북광수 건에 대해 지박사님이 국정원에 신고한 것이 이병호에 의해 묵살된 것도 그 사람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17년 2월에 실현될 뻔 했던 박승원 상장 기자회견 건에 대해 말씀 드리지요..박근혜 탄핵이 무르익던 2016년 연말 무렵 이 양반 曰 “이병호 이병기와 머리를 맞대고 흡사 桃園結義를 하듯 박승원 상장 기자회견을 내년 초에 실행하기로 결의했다.”고 하여 저도 정말 기대가 컸었습니다. 저를 만날 때 마다 “내년 봄이면 세상 뒤집어집니다. 아마 기자회견이 성사되면 전라도 사람들 얼굴도 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수십 번을 말했는데 정작 2월이 거의 다 갈 무렵 하는 말이 이병호가 “좌파들이 이렇게 극성인 판국에 어떻게 기자회견을 하느냐”며 꽁지를 내려버리더랍니다. 기가 막혔지요. 그리고 이병호의 구속. 아마 기자회견 실행 못한 것을 감방 안에서 후회하고 있겠지요. 우파의 마지막 카드이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린 것입니다.
소결: 위 제보자는 피고인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2019.2.25.~26.이면, 피고인이 광화문 면세점 앞에서 1주일 동안 청중을 모아놓고 5.18에 대한 영상들과 강의를 했었기에 제보자의 메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이에 대해 제보자는 매우 서운해 하면서도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자기가 전 국정원 고위간부 이 모씨로부터 들었던 말들을 보탬도 빠짐도 없이 그대로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① 황장엽이 귀순할 때, 자기와 김덕홍과 리을설(인민군 전설 원수계급)과 김중린(현직 통일전선부장, 북한한 판 CIA부장)이 5.18때 광주에 왔었다고 실토했다는 말 ② 위 사실을 김대중의 명령으로 불태워 증거를 인멸시켰다는 말 ③ 2015.7경 박승원 상장(3성)이 귀순하여 기자회견을 계획했지만 당시 국정원정 이병호가 좌경세력이 두려워 묻었다는 이야기 ④ 피고인이 2015.10.29. 탈북 간첩혐의자(탈북한 광수) 20명 정도를 국정원에 신고한 사실도 이병호가 묵살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였습니다. 제보자는 필체에 나타난 인품으로 보아 함부로 말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며, 그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이 모씨는 제보자의 설명에 따라 추적하면 누구인지 금방 알아낼 수 있을만한 사람입니다. 피고인은 광수에 대한 영상 분석에서 황장엽, 김덕홍, 리을설, 김중린, 박승원을 광수로 분석하였습니다. 이는 위 제보자의 제보 내용과 일치합니다. 제보 내용이 구체성이 있고, 제보내용이 피고인의 연구결과와 일치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북한군 개입]에 대한 사실 여부는 미완의 숙제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피고인의 연구가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인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북한군 개입]에 대한 진실여부는 미완의 숙제라는 결론을 낼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5. 피고인의 연구가 학설이라는 데 대한 사실들
1) 고정관념으로는 새로운 것 추구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믿기 어려워하는 것이 황장엽을 광수로 판독하였다는 점입니다. 연약해 보이는 노학자이고, 높은 사람인데 광주의 폭동 현장에 어떻게 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보자 역시 얼굴분석에는 동의하지만 고정관념에 걸려 믿어지지 않았다고 실토하였습니다. 제보자는 이 모 국정원 전 간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피고인의 연구결과를 수긍하였다고 말합니다. 황장엽을 광수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철저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북한 역시 남한에서처럼 권력 있는 사람, 학자, 예술인, 영화배우 등은 위험한 곳에 오지 않는다는 남한식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없지만, 유럽, 미국, 북한에는 그것이 있습니다. 광수들 중에는 영화배우도 여럿 있고, 시인, 소설가, 여성, 아이, 부녀자들이 다 끼어 있습니다. 이들은 게릴라전 및 심리전을 수행하는 부대 편제의 필수 요소들입니다. 그런데 게릴라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슨 폭동에 여성과 노인과 어린이들이 동원되느냐며 비웃습니다. 게릴라전을 모르는 사람들은 북한 특수군이 600명씩이나 어떻게 들키지 않고 오느냐고도 하고, 600명이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했다면 공수부대와 전투를 했어야 했는데 공수부대가 그만큼 많이 죽었느냐는 말도 합니다. 김일성 군대가 들키는 방법으로 600명을 보낼 리는 없습니다. 김일성이 광주에서 600명의 군병을 확보할 때, 그 600명으로 하여금 남한에서 한국군과 드러내놓고 전쟁을 하라고 마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군사교리와 전쟁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600명이라는 것은 현장에서 활동한 특수군 숫자가 600명이라는 것일 뿐, 그 중에는 북한이 10.26사건 이후 내려 보낸 숫자, 기존에 남한에서 활동해왔던 고정간첩 숫자가 배합돼 있을 것입니다. 이 모씨가 말해주었다는 357명은 10.26이후 북한이 조금씩 침투시킨 숫자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5.18은 게릴라전과 심리전이 배합된 북한식 작전이었습니다. 광주 현장 사진 수백 장이 바로 모략전을 위한 사진들일 것입니다. 여기에 황장엽과 배우들이 끼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사람들은 깊이 분석해 보려하지 않고, 각자가 겪어온 제한된 경험에서 형성됐을 고정관념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려 합니다. 황장엽을 광수로 수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광수의 존재 전체를 부인-백안시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피고인은 2014.10.경에 남북한 공식 문헌, 5.18기념사업회가 보관한 문서 등을 종합하여 [5.18분석 최종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이 책에는 5.18이 북한이 주도한 사건이라는 결론을 냈고, 따라서 광주 폭동을 주도한 인물들 역시 북한특수군일 것이라는 데까지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한 네티즌이 2010.5.17. 평양노동자회관에서 개최된 5.18 제30주년 기념행사장 로열박스에 앉아있는 사람이 광주현장 사진에 나타난 얼굴과 동일하다는 점을 인터넷에 올리자 노숙자담요가 나타나 광주현장사진들을 속속 찾아내 분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분석과정을 음미해보면 이 작업은 한 단위의 영상분석팀이 쌓아올린 예술이고 만리장성입니다. 뉴턴 식으로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구중력의 가속도(g=980cm/sec2)를 발굴하지 못하듯이, 갈릴레오처럼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이 천동설에 매몰돼 있듯이, 사물을 고정관념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학설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제에 이름을 특정해 낼 수 있는 전 국정원 고위간부가 들려준 말은 피고인 및 노숙자담요의 연구가 터무니없는 소설이 아니었다는 점을 시사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유튜브에서 5.18을 다루면 며칠 안에 폭파당합니다. 외교부가 미국정부로부터 122건의 비밀해제된 외교문서를 받아놓고도 국민에게는 43건만 받았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모씨가 들려주었다는 말은 현 우리 사회현상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2) 피고인은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연구결과를 학문적 접근방법에 의해 도출하였습니다. 2002년 광주법원으로 연행된 이후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평균 400쪽 짜리 5.18역사서 10권을 발간하였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쌓일 때마다 책을 쓴 것입니다. 웬만한 인물들도 생전에 단 1권의 책을 자기 손으로 발행하지 못합니다. 5.18에 대해 10권의 역사서를 자기 손으로 타자를 쳐서 쓴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의 독자들이 책 내용을 수긍한다면 이는 분명 학문의 범주에 속할 것입니다. 사학자가 역사서를 쓴다면 한 개의 역사사건에 대해 1권의 책으로 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일 역사에 대해 10권의 역사서를 썼다면 이 역사는 방대한 자료를 요하는 역사이며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진 역사서일 것입니다. 이를 놓고 단순히 피고인이 5월의 명예를 훼손시키기 위한 범의를 가지고 쓴 책이라 평가할 사람은 아마 드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역사책들은 정식 출판되었고, 수만 명의 독자들이 이를 읽었고, 읽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에 호응하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호응하였다는 표현은 주관적인 평가가 아닙니다. 그 중 한 가지만 먼저 제시하자면, 약칭 5.18진상규명법의 제3조 6항입니다. 거기에 [북한군 개입] 여부를 조사하라는 명령이 기재된 것은 사회일각에 북한군 개입에 대한 학설이 여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아래는 위키백과(증218)가 나열한 피고인의 일부 저서들입니다. 여기에는 5.18역사서들이 대부분 누락돼 있습니다. 증219는 2021.3.15.자 조선일보 제26면의 전면광고문입니다. 광주법원이 가처분판결로 판매금지 시킨 [5.18영상고발]이라는 제목의 화보집과 [무등산의 진달래]는 광고에 넣지 못했고, [솔로몬 앞에 선 5.18]은 품절이 되어 광고에 넣지 못했습니다. 피고인이 ‘피고인이 저술한 저서들’을 제시하는 이유는 피고인이 32세에 미국 해군대학원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하면서부더 80세에 이른 지금까지의 일생을 연구하는 인생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3) [북한군 개입]에 대해, 피고인의 학설을 인용하는 강의가 잇따랐습니다.
① 2016년 6월 건국대 홍신애 여성 교수가 북한군 개입과 피고인 저서를 학생들에 소개했다는 이유로 5.18단체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았고, 결국 학교당국은 홍교수를 퇴출시켰습니다. 아래는 BBS NEWS 발췌분입니다.
“5·18기념재단과 유족회 등 관련단체들은 15일 건국대 총장에게 발송한 서신을 통해 "건국대에서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홍 모 교수가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북한이 5·18 민주화운동에 개입했다' 라는 발언을 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과 연관된 노래'라며 왜곡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체들은 또 "홍 교수가 심지어 이러한 헛주장이 담긴 지만원 씨의 저서를 학생들에게 추천하기까지 했다"며 "홍 교수는 학생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 밝혔습니다.”(증219)
② 한겨레신문(증221)에 의하면 2017년 5월 16일, 건국대 상허문화재단이 주최한 특강에서 백남기씨의 사인을 연구해 발표했던 이용식 교수는 이런 요지의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5·18 당시 인민군 특수부대 600명이 내려왔다. 우리나라가 좌경화된 시초가 5·18이다. 인민군 특수부대 600명이 2개 대대가 내려왔다. 우리는 그 진실을 밝힐 것이다.” 이 특강을 주최했던 상허문화재단 강국희 상임이사 역시 강연을 통해 ‘반역·종북세력의 특징’은 ‘5·18 민주묘지참배’다. 5·18을 비롯해 제주 4·3사건 등을 모두 ‘폭동’이라고 규정했다.“ 참고로 상허는 건국대학을 청설한 유석찬의 호입니다.(증220
③ 2019.2.8. 국회 대국민 공청회에서 이종명, 김순례, 김진태의원의 발언이 있었고, 설훈, 민명두, 최경환 그리고 5월 단체 400여명이 집단 고소를 했지만 남부지검은 이를 무혐의 처분하였습니다. (증221)
이종명 의원 발언:"5·18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5·18 폭동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흘러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변질된 게 아니라 정치적·이념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됐다"
김순례 의원 발언: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으로 일궈낸 자유 대한민국의 역사에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
김진태 의원:“지만원 박사를 존경하고 지지한다“
피고인의 발표내용:“5.18은 국민이 저지른 게릴라전이었다. 전두환은 존경할만한 일을 해냈다“
④ 경주 위덕대학교 박훈탁 교수는 “사전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온라인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고 합니다.(증222)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니고 북한군이 저지른 범죄행위란 주장은 상당한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증언과 증인을 갖고 있다. 1980년 광주에 계엄령이 선포돼 20사단이 광주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300명에서 600명의 폭도들이 20사단을 쫓아냈다. 폭도들은 20사단 차량과 버스를 뺏고 마흔 군데가 넘는 무기고를 털어 광주에 집결해서 총질을 했고 광주교도소를 다섯 차례나 습격했는데 이게 민주화운동이냐. 광주에서 죽은 사람이 200명 정도 되는데 70%가 등에 카빈총을 맞고 죽었다. 카빈총은 국군이 사용한 총이 아니고 폭도들이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인만큼 이는 폭동에 해당한다. 광주 폭동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한 분이 지만원 박사이며, 5·18왜곡 처벌법은 광주사태의 진실에 관해서는 입을 틀어막겠다는 의도이다. 5·18왜곡 처벌법이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중간고사 과제물로 내겠다.”
이에 대해 5월단체는 “박 교수 강의는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넘어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과 역사를 왜곡하고 폄훼하는 행위”라 주장하면서 퇴출과 재발 방지방안 제시를 촉구했다고 합니다. (증222)
⑤ 이사건 전 광주시장 윤장현의 고소사건에서 다뤄진 바와 같이 당시 대권후보였던 남재준이 2017.4.18.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피고인이 개최한 ['5·18 진실 전국 알리기 국민대회]에 참석해 아래의 요지로 연설하였습니다.
“사법부가 판결한 일부 사상범까지 수감된 교도소를 총을 들고 습격하는 것이 과연 민주화를 위한 것이었느냐.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는 무리에게 역사가 왜곡되고 일그러지다 못해 역사 스스로가 조국을 부인하는 참담한 상황이 됐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저는 모든 잘못된 비정상을 철저히 재규명해서 바로잡겠다”
⑥ [북한군 개입] 표현이 [학문적 의견]이라는 판례들이 존재합니다. 2011년 안양법원 및 서울고법 그리고 2012년의 대법원은 [북한군 개입] 표현을 학문적 의견이라고 판결했습니다. 2020.10.30. 서울남부지검 역시 [북한군 표현]이 학문적 의견이라며 처벌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했습니다.
⑦ 5.18역사학회가 박사 및 변호사 등 25명으로 발족되어 2019년 2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총 7회의 성명서를 내서 5.18은 북한이 저지른 폭동이라는 요지의 성명서를 냈습니다. 제7회 성명서 일부를 발췌합니다.(증223)
5.18역사학회 성명서 (2020.12.5.)-제7회, 최신
5.18역사왜곡처벌법 및 5.18진상규명특별법개정안을 성토한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고 역사해석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사악한 독재다.
-5.18진상을 조사하겠다면서,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처벌하겠다니
-전두환 전대통령, 지만원 박사, 손상윤 회장에 대한 법원 판결은 모두 위법 부당하다.
-지만원 박사는 광주 전라도민의 명예를 찾아준 은인이다.
역사는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던, 문재인의 약속은 어디로 갔나?
그동안 좌익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왔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후안무치하게도 역사해석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 한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역사왜곡처벌법은 헌법의 기본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헌법 제19-22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및 학문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기 때문이다. 또 무릇 역사에 대한 해석은 학계의 몫이며,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서 “역사는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하며 어떤 경우든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이념전쟁은 독재 권력의 전조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적어도 역사 교육에서는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문재인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5.18 북한군폭동설은 학문적으로 정설이다.
5.18북한군폭동설은 지만원 박사가 2008.10.20.에 출판한 연구서인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전4권)에 의해 최초로 학문적으로 논증되었다. 지만원 박사는 좌익들도 감히 부인하지 못하는, 검찰 수사기록 10만 페이지를 심층분석하여, 5.18 주동자들은 북한군일 수밖에 없으며, 북한군이 아니라면 광주5.18을 도저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논증했다. 5.18북한군 폭동설은 2013.5.12.에 김대령 박사의 연구서인 “역사로서의 5.18”(전4권)에 의해서 다시 한 번 논증되었다. 광주5.18측은 5.18당시 광주에 떠돌던 이런저런 문서들을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들을 유네스코에 보내서 길이 보존하도록 했다. 김대령 박사는 바로 이 자료들을 분석하여, 5.18이 북한군폭동임을 논증한 것이다. 이에 자극을 받은 광주5.18측에서, 5.18당시에 활약했던 시민군을 찾아내어,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5.18북한군폭동설이 거짓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지만원 박사는 광주5.18 당시에 총을 들고 활약했던 시위대 사진 속의 인물들이 모두 북한에 실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폭로했다. 소위 광수사진인데, 2015.5.5.부터 약 15개월 동안 지만원 박사는 뉴스타운 손상윤 회장과 함께, 이를 널리 알렸고, 애국 시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광수 사진은 최근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컴퓨터를 이용한 얼굴인식기술(facial recognition technology)과 필명 노숙자담요 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만원 박사는 광주 전라도민의 명예를 찾아주었다
5.18 관련하여 많은 광주시민, 전라도민들은, 지만원 박사를 원망한다. 그런데 잠간 생각해보자, 그게 타당한가? 5.18이 북한군 폭동이라는 지만원 박사의 연구결과는, 해방 직후 북에 의해 저질러졌던 대구폭동, 제주4.3사건, 여수순천반란사건과 6.25를 비롯한 수많은 도발들과 그후 지금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침투와 도발을 고려할 때에, 너무나도 합리적이다. 동시에 지만원 박사의 5.18 북한군폭동설은 광주시민과 전라도민에게 매우 유익하고, 명예롭다. 왜 그런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지만, 초기에는 5.18민주항쟁이라고 불렀다. 항쟁이란, 시위대가 국군에게 돌을 던지고, 방화하고, 총을 들고 국군을 살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저들의 폭력성을 감추기 위해, 항쟁이라는 단어를 슬그머니 감춘 것이다. 그런데 지만원 박사의 연구결과인 북한군폭동설은 광주 전라도민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석, 폭동, 방화, 그리고 국군과 시민을 살상한 것 등이 모두 북한군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토착간첩들의 협조가 있었고, 일부 현지 청년들의 부화뇌동이 있었지만, 절대다수 시민들은 법질서를 지켰고, 국가를 상대로 한 폭동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광주 전라도민에게 묻고 싶다. 당시 광주에 출동한 계엄군의 절반이 전라도 청년들이었다. 그들이 고향의 형제들을 살육했겠는가? 씨를 말리려 했겠는가? 또 광주 전라도민들이 저들 국군에게 돌을 던지고, 방화하고, 총격을 가하고 살상했다면, 국가와 법질서에 대항했다면, 그 폭동이 명예로운 것인가, 아니면, 법과 질서를 지킨 성숙한 시민이 명예로운 것인가? 지만원 박사는, 광주 전라도민들에게, 당신들은 투석, 방화, 살상을 자행한 난동자들이 아니며, 법과 질서를 지킨 훌륭한 시민들이었다고 논증하고 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지극했으나, 총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만원 박사는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여러분을 변호하고 있다. 그렇지 아니한가?
저들의 폭력적 매너는 5.18이 북한군 폭동인 또 하나의 증거
저들이 만든 법에 의하더라도, 아직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이렇다 저렇다 단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또 다시, 악법을 만들어 역사를 제멋대로 재단하려 하는 것은, 5.18이 북한군 폭동임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판단된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면, 왜 조사결과를 차분히 기다리지 못하는가?
진실을 감추려는 저들의 폭력 행위, 언제 그치려나
2002.10.22. 광주 검찰은 지만원 박사를 부당하게 광주로 끌고 가면서, 승용차 안에서 폭행했다. 2010.7.9. 광주의 폭도들은, 5.18폭동을 증언하는 광주의 애국자 김동문 기자를 폭행했다. 2013.6.10. 광주에서 서울에 온 시위대들은 광화문의 채널 A와 TV조선 사옥 앞에서 폭력을 행사했다. 2016.5.19. 서울 중앙지법에서 재판이 끝난 후에, 광주5.18측 폭도들이 법원 안에서 지만원 박사를 집단폭행했다.
2018.12.13. 대법원은 명백한 증거들을 외면하면서 지만원 박사와 손상윤 회장을 패소판결하고 8,200만원의 배상금을 부과했다. 2019.1.14. 새누리당은 5.18진상조사위원회 위원 후보에서 지만원 박사를 배제했다. 광주5.18측과 좌익들이 지만원 박사만은 안된다고 악을 썼기 때문이다. 2018.5. 검찰은 전두환 대통령을 사자명예훼손죄로 고소해서, 부당하게 광주로 끌고 갔다. 2019.2.8.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 등이 국회의원회관에서 지만원 박사와 함께 5.18 진상규명 공청회를 개최했는데, 광주5.18측과 좌익들이 아우성을 치자, 자유한국당은 이종명 의원, 김진태 의원, 김순례 의원을 중징계했다. 2019.3.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법원에 내려가자 초등학교 학생들이 전두환 물러가라 외쳤다. 2019.12. 전두환 동상을 만들어, 밧줄로 묶고, 광주시민들이 주먹과 신발로 뺨을 때렸다.
문정권 출범 이후 지금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5.18 관련 유튜브 동영상들을 마구 삭제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엄청난 량의 5.18 광수 사진들이 거의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계엄군이 시위대를 제압하는 사진만 몇 장 남아 있다. 손상윤 회장의 뉴스타운은 최초의 인터넷신문으로 그동안 5.18 진실 알리기에 헌신해 왔는데, 2020.11.13. 네이버와 다음에서 뉴스타운 기사를 뉴스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어느 것 하나 제정신인 것이 없다. 5.18이 민주항쟁도, 민주화운동도 아니라는 것을 큰 소리로 증명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5.18진실, 박근혜 정권도 짓밟았다.
그런데 우리는, 5.18진실을 짓밞은 자들은 좌익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특별히 박근혜 정권의 반역적 행위를 기억해야 한다. 2012.12.27. 대법원에서 5.18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그래서 다음해 1월부터 종편에서 5.18에 대한 논의가 봇물 터지듯 넘쳐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정홍원, 국방장관 김관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경재 등이 나서서 찬물을 끼얹었고,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박만이 나서서 종편을 중징계했다. 당시에 박 정권이 방관만 했어도, 지금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2019.1.14. 자유한국당 나경원은 5.18진상조사위원회 위원 후보에서 지만원 박사를 배제했다. 광주5.18측과 좌익들이 지만원 박사만은 안 된다고 악을 썼기 때문이다. 2019.2.8. 이종명, 김진태 의원 등이 지만원 박사를 초청해서, 국회에서 5.18세미나를 개최했는데, 5.18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바로 잡아야한다는 발언한 것을 문제삼아, 자유한국당 나경원은 이종명, 김진태, 김순례 의원을 중징계했다. 2020.5.18. 미래통합당 주호영과 김종인은 광주로 달려가, 망월동 묘지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 쇼를 했다.(역사학회 성명 끝)
결 론
위와 같이 피고인의 [북한군 개입] 표현은 학설입니다. 이에 대해 5월단체들은 종전의 인식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체적 증거자료에 대한 반증 없이 무조건 ‘학문의 범위’를 초과하여 성스러운 5.18의 명예를 폄훼하는 것이니 처벌하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구동하는 근본 메커니즘인 [표현의 자유], [공론의 장]을 폐쇄시키려는 반민주적 폭력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증거자료
증212. 2019.2.25.자 제보자로부터 받은 메일
증213.2019.2.26.자 제보자로부터 받은 메일
증214. 2015.7.4. 동아일보 “北인민군 상장 탈북-망명”
증215.2016.7.10. 의회신문 “<뉴스&뷰> 전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부총국장 망명설”
증216.간첩의심자로 국정원에 신고한 신고 접수증
증217.위키백과
증218. 2021.3.15.자 조선일보 제26면의 전면광고문
증219.2016. 6.15 BBS NEWS 5.18단체 "건국대 교수가 5·18 역사왜곡"...총장에 항의서한 발송
증220.2017.5.29. 한겨레 [단독] 5·18 잇단 왜곡·폄하 강연…건국대 왜 이러나
증221. 2020.12.11. 부산일보, 국회서 '5·18 망언' 김진태·이종명·김순례·지만원 '불기소 처분'
증222.2021.4.9. 조선일보,“5·18은 북한군이 저지른 범죄이자 폭동” 위덕대 교수 강의 파문
증223. 2020.12.5. 5.18역사학회 제7차 성명서
2021.4.30.
피고인 지만원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 제8-3부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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