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명 김명국, 15년 동안 국민 농락했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4-02 15:58 조회3,425회 댓글0건첨부파일
- 김명국-이주성 통화내용.mp3 (4.6M) 63회 다운로드 DATE : 2021-04-03 19:05:40
관련링크
본문
가명 김명국, 15년 동안 국민 농락했나?
<위 녹음 파일을 열어 보십시오>
가명 김명국씨는 2006년 탈북했다. 그와 인척 관계에 있는 이주성씨는 그가 그와 인터뷰한 내용이라며 2012년 9월 “김일성, 광주사태 북한군 남파명령”이라는 111쪽 분량의 소책자를 썼고, 그 뒤에 2017년 5월 “논픽션- 광주사태 당시 남파되었던 한 탈북 군인의 5.18 체험담”이라는 부제를 달아 비봉출판사를 통해 단행본을 냈다.
JTBC가 극성을 부리면서 나를 접근했듯이 아마도 그 역시 극성맞은 기자들로부터 닦달을 당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5.18 진상 규명 관계자에 의하면 가명 김명국이 최근 5.18 진상 규명 위원회에 자기 발로 찾아와 “나는 2006년 탈북시 국정원에서도 내가 5.18때 광주에 왔다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고, 이주성에게는 거짓말로 광주에 왔었다고 했다. 이주성이 [보랏빛 호수]에 쓴 내용 그대로를 말해주었다.” 이런 취지로 말하고 갔다고 한다.
아래 기사에서는 지만원의 5.18 주장이 [보랏 및 호수] 내용에서 출발했다고 썼다. 이는 허위다. 내가 이제까지 20년에 걸쳐 쓴 5.18책은 모두 10권이다. 그 어느 책의 내용에도 가명 김명국의 이야기나 이주성의 이야기를 북한군 개입의 증거로 삼지 않았다. 이번 진상 조사의 시작을 보니까, 적색 언론들이 만들어주는 틀에 갇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가 든다.
가명 김명국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자. 그는 2006년에 탈북했다. 그 해 광화문 세실레스토랑에 그가 발표자로 나온다는 임천용씨의 말이 있었다. 그 후 가명 김명국은 국정원 사무관 이병영에 의해 “그 따위 소리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는 취지의 협박을 받았고, 김명국에게 ‘보안 각서’를 쓰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리고 2015년 3월 15일, 채널A에 의해 섭외되어 방송에 출연했다. 그러면 김명국은 [보랏빛 호수]의 두꺼운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소설로 지어내서 이주성에 말해줌으로써 이주성으로 하여금 국민을 기만하고 ‘논픽션’ 책을 쓰게 했고, 인세 수입을 얻도록 해주었다는 말이 된다.
2015.3.15. 채널A
직감적으로는 김명국씨가 김현희가 당했던 것처럼 좌익들에 지쳐서 자기 발로 5.18 진상 규명 위원회를 찾아가 그런 진술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만 치부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팩트들만 놓고 따지자면 김명국은 자기 처남에게 사실이 아닌 400쪽에 육박하는 기나긴 소설 내용을 구술해 주었고, 이주성은 그걸 사실로 알고 책을 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탈북자 김명국은 한국 국민을 지난 15년 동안 농락해왔다는 객관적 결론이 도출된다. 그렇다면 김명국은 국민을 기만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아래는 3월 30일, 미디어오늘이 전한 뉴스다.
“5·18진상규명위, 북한군 침투설 ‘모태’ 김명국 주장 ‘허위’ 결론”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679
“일부 탈북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은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거나, 역사적·전술적인 타당성이 없는 무리한 주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1980년 광주에 침투했다는 북한군 김명국(가명)씨 주장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검증했다. 북한군 침투설의 ‘모태’가 된 탈북민 김명국씨 주장은 2013년 5월 채널A가 무비판적으로 중계하며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김씨의 존재는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라는 지만원씨 주장의 주요 근거이기도 했다.
5·18 진상규명위는 지난 1월31일 내놓은 240여쪽 분량의‘2020년 하반기 조사활동보고서’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탈북자의 북한특수군 광주 일원 침투 주장’ 검증 단락을 따로 마련했다. 규명위는 “탈북자 ○○○은 2006년경부터 기자회견과 언론인터뷰 등을 통해 본인이 북한 특수군으로 직접 5·18 당시 광주에 침투했는데, 약 300~600명의 병력이 배나 잠수함을 이용해 서해안·동해안으로, 또는 땅굴을 통해서 남침한 후 북한으로 귀환했다고 여러 차례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특수군의 광주침투 주장은 2015~2016년을 기점으로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었고,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진위를 밝히고 의혹을 해소해 향후 이와 관련된 국민적 논란 및 갈등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진상규명위는 군 및 정보기관에서 보유한 정보자료·교범·교훈집 등과 대조해 (침투설을) 분석하는 한편 로동신문·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문건과 기타 공개자료를 통해 조사 결과를 보완하고 미국정부 문서(주한 미 대사관, 국무부, 국방부, CIA 등)를 통해서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의 진위 여부를 추적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김명국의) 육·해상 및 땅굴을 통한 침투 및 복귀 경로 주장은 과거 북한 공작원 또는 무장공비 침투 사례와 당시 우리 군의 경계태세 등을 종합하여 분석했을 때 실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규명위는 “특히 자폭용으로 시신을 분쇄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폭약 관련 내용은 폭발물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일반인 수준의 서술로 그 신빙성이 극히 의심되는 주장”이라고 결론 냈다.
이어 “(김명국 주장처럼) ○○해안에서 증심사까지 약 60km의 거리를 도보로 ‘광주시가지를 우회하여’ 5시간 내 이동하기에는 거리 및 위치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5·18 투입 북한군 기념 열사릉(전사자 묘지) 주장에 대해서도 “5·18 당시 남파 후 전사하여 복귀 못 한 북한군의 묘지가 청진에 소재한다는 주장으로서, 우리 군 및 북한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이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인원들의 묘지인 것으로 추정됐다”고 반박했다.
5·18 진상규명위는 또한 “‘5·18 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5·18 프레스’, ‘5·18 기계공장’ 등 북한에서 5·18을 기념한다는 활동을 검증했는데, 이는 모두 다른 의미로 ‘5·18’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5·18 무사고 정시견인초과 운동’의 ‘5·18’은 1979년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18차 전원회의를 의미하는 식”이라고 밝혔다. 규명위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도발 징후 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침투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 미국 정부 기관들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