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방송 텍스트, 북한의 5.18 가요 무등산의 진달래와 5·18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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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머스 작성일21-02-18 07:52 조회4,073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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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5.18 가요 무등산의 진달래와 5·18 성명서
https://youtu.be/DR8Jo5JpU9o, 2021. 2. 16, Daniel Kim
북한의 5.18가요
'무등산의 진달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기념식 때 제창하라고 지시한 문재인이 환장할 만큼
좋아할 북한의 5.18추모곡이다. 광주사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황석영의 '임을 위한 행진곡'과 달리 '무등산의 진달래'는 그만큼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심정이 애절하게 표현된 노래인 것이다.
광주사태가 끝난 직후부터 북한 방방곡곡에서 부른
'무등산의 진달래'에서 반복되는 가사 "새빨간 진달래가 새빨간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네. 젊은 넋이 꽃이 되어 젊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연분홍 진달래가 연분홍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네. 죽은 넋이 꽃이
되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를 들어보면 어째서 광주사태를 일으킬 것을 선언한
‘5.18 성명서’문장이 “우리가 흘린 이 젊은
피가 통일 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피빛 진달래로 피어 오르길 바란다!!!”인지를 알 수 있다. 진달래는 광주사태 당시 북한의 국화였으며, 광주사태를 조직한 자들의 목표는 적화통일이었던 것이다.
탈북여성 조귀임씨가
부른 북한의 5.18노래 가사:
(노래 1절) 광주라
무등산에 겨울을 이겨내고, 새빨간 진달래가 새빨간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네. 동강난 조국 땅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젊은 넋이 꽃이 되어 젊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노래 2절) 광주라
무등산에 봄철을 부르면서, 연분홍 진달래가 연분홍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네.. 찢어진 민족혈맥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2015년 10월 13일 보신각 앞에서 개최된 5.18 역사 바로잡기 국민대회 때 탈북민 조귀임 씨가 부른 북한의 5.18노래 '무등산의 진달래'는 참깨방송이 최초로 녹화하였음.)
김대령 저 '임을
위한 행진곡' 전자책
https://www.bookstore21.net/ebook/518...
5.18의 진실 규명에 동참하는 방법
https://www.study21.org/support.html
간략히
00:01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입니다, 2월 14일…
그리고, 북한남자와 남한여자, 남한남자와 북한여자 사이에도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남한국민들이, 한국 국민들이 북녘동포를 사랑합니다.
그럼에도 북한과 남한 사이에는 참
풀리지 않는 남한과 북한이 국토가 분단된 지 75년이 지났는데도 해결되지 않고, 풀리지 않는 애증관계가 있습니다.
00:42
공식적으로, 북한과 남한은 적국관계입니다.
이렇게 남한과 북한이 서로 적국관계인
이유는 양국간에 서로 상이한 전혀 다른 두 체제간의 긴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식 공산주의 체제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북한 역시 자유통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원하는 통일은 적화통일입니다.
01:28
그런데, 북한의 광주에 대한 사랑은 일편단심, 1980년 5월이래, 광주사태이래 일편단심 변하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01:55
오늘, 그 이유를 탈북여성, 조귀임씨는 2011년에
탈북하였고,
남한에 와서 보니, 광주사태를 북한에서 ‘광주인민봉기’라고
부르는 광주사태를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2015년 10월13일에
보신각 앞에서 5.18역사바로잡기 국민대회가 열렸을 때, 5.18가요를
불러 주었습니다.
02:46
자,
우리가 지난번 “5.18의 진실을 증언한 탈북민 허강일씨”란 제목의 방송에서 한국에서 1995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한
5.18기념식은 실은 북한 따라하기 였고, 북한에서는 광주사태가
발생한 바로 이듬해인 1981년 5월18일부터 5.18기념식을 국가행사로써 기념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03:26
5.18가요.. 마찬가지에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주사태 때 시민군이 불렀던 시민군의 노래가 아니고요, 북한이
윤이상을 시켜서 황석영에게 너… 5.18가요 만들어서 테이프로 제작하여 보급하라, 그렇게 지령을 내리니까 황석영이 카세트 테이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녹음하여 보급하여 알려지게 된 노래였던 거에요.
‘무등산의 진달래’가 북한의 5.18추모곡인데,
광주사태가 끝난 즉시부터 방방곡곡 전 마을에서 아침마다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이 들을 수 있게끔 마을에서 크게 ‘무등산의 진달래’를 틀어주니까 그때부터 들었던 노래를 지금껏 다 그
가사와 곡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요.
04:44
자..
들어보겠습니다.
(탈북여성 조귀임씨가 부르는 북한의 5.18노래)
(노래 1절)
광주라 무등산에 겨울을 이겨내고,
새빨간 진달래가 새빨간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네.
동강난 조국 땅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젊은 넋이 꽃이 되어 젊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노래 2절)
광주라 무등산에 봄철을 부르면서,
연분홍 진달래가 연분홍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네..
찢어진 민족혈맥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조귀임씨의 증언)
06:43 “가사에서 좀 이상한 걸 받으셨는지요?
광주는 민주화운동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데, 가사에서는
동강난 조국땅을 하나로 다시 잇자, 싸우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찢어진 민족혈맥을 하나로 다시 잇자고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이런 노래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그리고, 제가 어릴... 그때는 10대였는데, 80년대가… 아버님이
사십대였고, 친구분들이랑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 걸 많이 듣고 자랐는데,
음.. 광주에 북한특수군을 들이미는데, 그때
대학생들이, 남조선 대학생들이 머리스타일이 길으렀데요. 북한군인들은
머리가 짧으니까 그 몇 달동안 집합해서 머리 기르게 하고, 그리고 사투리를, 억양을 남조선 억양처럼 배우게 교육시키고, 그 특수군을 조직해서
그렇게 침투시켰는데, 뭐.. 전두환에 의해서 진…
07:56 그래서, 들어갔다가 싸우다가 음.. 싸우는 게 아니고, 파출소를 먼저 쳤는데, 무기를.. 파출소를 쳐서 무기를 나눠줬대요, 광주시민들한테… 근데, 광주시민들이
처음에는 겁나서 무기를 안 받더라네요.
그래서, 아.. 안
되겠다.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
그래서, 뒤에서.. (호각소리) 뒤에서..
뒤에서 몇 사람을, 시위대 몇 사람을 뒤에서 쏴 죽였대요. 그래서 자기네는 안됐지만 시위대가 호응을 처음에 호응을 잘 안 하니까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시위가 진압됐는데, 전두환에 의해서 진압돼서 퇴각했는데, 퇴각할 때 시체들을, 자기네 대원 시체들을 가져올 수 없으니까 야산에
버리고 울면서 통일이 되면 다시 꼭 찾아오마, 너 시체를 찾으러 꼭 찾아오마 이렇게 울면서 퇴각했다고…
09:03 수령님… 수령님이 김일성이죠,
그 때는… 김일성이가 몹시 후회한다고 그때 같이 북한군을 내밀어서 같이 합작해서 그랬더라면
통일될 수 있었는데, 몹시 후회한다고 아버님들이 맨날 이런 이야기 하시던 걸 제가 듣고 자랐습니다.
근데, 이 5.18이라는
거는 교과서에도 기술 안되고, 그냥 입소문 있잖아요. 공공연한
비밀로 북한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북한군 개입된 거를…”
09:30
1980년대에 10대소녀였던 조귀임씨는 아버님과 아버님의 친구들이 광주인민봉기에
대하여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났습니다. 조귀임씨가 노래가 끝나고 이렇게 말했지요.
‘그리고 제가 어릴 그때는 10대였는데, 80년대가…. 아버님이 40대였고, 친구
분들이랑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 걸 많이 듣고 자랐는데, 음 광주에 북한 특수군을 들이 미는데, 그때 대학생들이 남조선 대학생들이 머리스타일이 길었어대요.
북한 군인들은 머리가 짧으니까 그 몇 달동안 집합해서 머리 기르게 하고, 그리고 사투리를, 억양을 남조선 억양처럼 배우게 교육시키고, 그 특수군을 조직해서
그렇게 침투시켰는데…’
10:36
뭐 북한에서는 광주사태 발생 첫날부터
정규방송을 전부 중단하고, 광주사태를 온종일 실황중계 방송하였습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광주 시민군 얼굴을 매일 방송에서 보았는데, 화면에
비친 자기 동네친구, 학교친구, 군대전우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광주 시민군 얼굴을 볼 때마다, 아.. 저기 내 친구 있다, 어.. 저기 내 친척이 있다, 여기 광수가 있다, 그렇게 외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누구나 광주사태에 대해서
잘 알지요. 시민군의 정체에 대해서 잘 안다 말입니다.
11:35
그런데, 남한에서는 5.18유공자 수가 5천명이
넘잖아요?
근데, 광주사태 영상이나 사진 속의 시민군이 누구인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어요.
자..
시민군들…광주에서 학교 다니고 자라났으면 학교친구가 있고,
또 동창도 있고, 동네사람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뭐 직장친구, 뭐..
군대동료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얼굴을 누군가는 알아야죠?
그런데, 사십 년이 지나고 지금 사십 일년이 다 가는데도 아무도 몰라요. 조금
여기 이 사진에 보시면은 경찰 장갑차(페퍼포크차임) 위에
기관총을 설치한 시민군이 있습니다.
12:39
이 시민군이 지금 이대로 나타나면은
엄청나게 많은 5.18의 포상금을 받을텐데 나타나지를 않고, 누군지
아는 사람도 없어요.
여기 국군 철모와 전경 방석모를 쓰고, 군용트럭 위에 기관총을 설치한 시민군 3인조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 광주시민으로 보입니까? 광주에 있으면 80만 광주시민 중에 아무도 이 자들을 아는 자들이 없어요.
13:25
시민군들 중에 붉은색 상의를 입은
그런 시민군들이 많았는데, 붉은색 옷을 입은 시민군들이 많았던 이유가,
아까 조귀임씨가 불렀던 진달래, 빨간 진달래와 관련이 있습니다.
13:52
자..
이 시민군 머리를 보세요. 저게 저 머리가 당시 대학생,
미용실에서 이쁘게 커트 한 대학생의 헤어스타일일 수 있는가요?
그리고, 선량한 광주시민이 저런 폼, 완벽한 전사처럼 보이는 저런 모습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14:22
조귀임씨는 북한 군인들이, 북한 특수군이 머리를 기르고, 광주에 투입된 거라고 증언을 했는데, 음 그 진실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영상을 보겠습니다.
먼저, 김대중의 연설을 들어봅시다. 김대중이 5월11일 전라북도 정읍에 가서 광주사태를 선동하는 연설을 이렇게
하였습니다.
‘월남식으로 국민 속에 침투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가지고
도시게릴라, 농촌게릴라의 게릴라전을 하는 것입니다.’
15:11
자..
이 김대중의 연설을 정읍연설을 김대중 육성으로 들어 보시겠습니다.
(1980.5.11 김대중의 정읍연설)
“월남식으로 국민 속에 침투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가지고, 도시게릴라 농촌게릴라의 게릴라전을 하는 것입니다. (옳소….)”
15:39
예.
김대중이 이렇게 게릴라전을 하라는 선동연설을 하자, 이 연설 중에 동원되었던 전남대 학생
몇 명이 ‘옳소’하는 소리를 들으셨죠. 김대중이 이 연설을 한 지 나흘 만에 도청광장에서 제2시국선언문이 낭독되었습니다.
(1980.5.15 도청광장에서 낭독한 제2시국선언문)
16:14
이 5월15일자의 시국선언문은 광주사태를 일으키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농촌문제, 노동자 문제가 나옵니다.
아니 광주사태를 일으키는데, 왜 여기서 농촌 문제와 노동자 문제가 나옵니까?
농민들과, 노동자들을 선동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것이었어요. 농촌문제, 강령1, 강령2, 강령3, 강령4, 뭐.. 이렇게
쭉 나오는데… 이게... 대학생이 쓴 것이 맞습니까?
항상, 다른 나라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킬 때는 먼저 농민들을 유혹?하게 하는 그런 강령으로 농민들을 선동했었습니다.
17:21
자..
그러면은 오늘 우리가 5월15일자 성명서, 제2시국선언문 전문을 보는 이유는, 바로 이 광주사태를 일으키겠다고 선언하는 이 선언문에 어째서 북한의 5.18가요
명칭이 ‘무등산의 진달래’인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아..
여기… 끝 단락을.. 끝 단락 두 문장을 제가
읽어드리겠는데요.
‘이에 우리는 유신잔당의 국민주권 찬탈음모를 분쇄하고자, 우리 대학인의 민주역량을
총집결하여 반민주, 반민족 세력과의 성전(聖战)을 엄숙히 선포한다.
우리가 흘린 이 젊은 피가 통일 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피빛 진달래로 피어오르길 바란다!!!’
18:33
살벌하지요. 여기서 ‘유신잔당’이란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국무총리를 지칭합니다. 대통령과,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를 강제로 퇴진시켜 국가를 전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19:03
반민주 5.18성명서에서 ‘민주’는
항상 ‘북한식 인민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라는 뜻으로만 쓰였습니다.
‘자유민주’와 싸우겠다는 뜻이었어요. 그래서, 반민주는 자유민주주의의 진영을 ‘반민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인사들을 ‘반민족 세력’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
19:41
성전, ‘성전을 엄숙히 선포한다’.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테러라고가
아니고, 성전, 홀리 워(Holy
War)라고 하죠.
당시 이 때 1980년 5월에 음.. 광주사태를
일으키겠다는 말을 ‘성전을 엄숙히 선포한다’로 표현했습니다.
20:12
그리고, 그 이 전문에 그 문장이 ‘우리가 흘린 이 젊은 피가 통일 민주조국으로...’ 아.. 근데 광주사태를 일으키는데,
여기서 통일이라는 말이 왜 나옵니까? 여기서 어, ‘통일
민주조국이’란 북한이 주동하는 적화통일을 의미했었어요.
20:42
광주사태를 일으켜서 최규하 과도정부를
전복시킨 다음에, 그 다음에 뭡니까? 그 다음에 통일이라는
것인데, 자..그 광주사태를 일으키는 목적이 꿈이 이런 것입니다. 근데, 그 통일은 적화통일이라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어요.
‘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피빛 진달래로 피어 오르길 바란다.’
21:22
‘피빛…’ 피빛이란 빨간색이지요.
당시 공산당을 상징하는 색깔이 빨간색이었고요, 그리고 진달래… 무궁화가 아니고 진달래입니다.
대한민국 국화는 무궁화인데, 그 당시에 북한의 국화는 진달래였습니다.
‘피빛 진달래로 피어 오르길 바란다.’그렇게 북한식 공산주의 적화통일의
의지를 이런 말로 표현을 했지요.
22:03
자…
그러면, 과연 이 문장을 갓 스무 살의 전남대 학생이 썼을까요?
아니면, 간첩이 불러준 대로 받아 쓴 문장이었을까요?
광주에서 유혈폭동을 일으키겠다는 선언문이
‘우리가 흘린 이 젊은 피가 통일 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피빛 진달래로
피어오르길 바란다.’
이후, 북한의 5.18가요 무등산의 진달래에서 반복되는 가사, 바로 이 ‘피빛 진달래가 피어 오른다’는 가사입니다.
‘새빨간 진달래가 새빨간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네.
젊은 넋이 꽃이 되어, 젊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연분홍 진달래가 연분홍 진달래가
붉게 피어 나네.
죽은 넋이 꽃이 되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23:32
광주사태 때, 북한군이 주둔하였던 무등산에서 피빛 진달래가 피어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며, 조귀임씨의 노래를 다시 들어보시겠습니다.
(조귀임씨의 노래)
23:56
(노래 1절)
광주라 무등산에 겨울을 이겨내고,
새빨간 진달래가 새빨간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네.
동강난 조국 땅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젊은 넋이 꽃이 되어 젊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노래 2절)
광주라 무등산에 봄철을 부르면서,
연분홍 진달래가 연분홍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네..
찢어진 민족혈맥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25:54
광주사태 희생자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애도합니다.
그러나, 조귀임씨도 북한의 5.18추모곡 ‘무등산의
진달래’를 부른 후, 이렇게 증언하였지요. ‘뒤에서 몇 사람을, 시위대 몇 사람을 뒤에서 쏴
죽였대요.’
그래서, ‘자기네는
안 됐지만 시위대가 호응을, 처음에 호응을 잘 안 하니까 그렇게 했더라고 해요.’
조귀임씨의 5.18증언을
조귀임씨의 음성으로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조귀임씨의 증언)
‘뒤에서.. 몇 사람을 시위대 몇 사람을
뒤에서 쏴 죽였대요. 그래서 자기네는 안됐지만 시위대가 호응을, 처음에
호응을 잘 안 하니까 그렇게 했더라고 해요.’
27:00
조귀임씨 증언이 맞습니다.
5월21일 도청광장의 공수부대원들에게는 실탄이 없었습니다. 충정작전 중에는 절대로 실탄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공포탄은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27:32
그리고, 5월21일 오후 금남로 총상 사망자들은 모두 뒤에서
쏜 총에 즉 도청광장 쪽에서 날아온 총탄이 아니라, 카톨릭센터 쪽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았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요?
28:00
2013년에 5.18기념재단에서 “5.18의 기억과 역사 제5권 천주교편”을 발간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조비오 신부와 유팔동씨 등 천주교 인사들의 구술증언이 수록된 책입니다.
28:25
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 사무국장이었던
유팔동은 카톨릭센터 7층 건물 전체관리 총책임자로서, 시민군들이
시민들의 등뒤로 총을 쏘는 것을 현장 목격한 인물입니다.
2013년 5.18기념재단에서 발간한 ‘518의 기억과 역사- 천주교편’ 527쪽에서
유팔동씨는 그 사실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 사무국장 유팔동씨의 증언)
‘시민군들이 이렇게 총을 가지고 우리 카톨릭센터 옥상으로 올라갈라 그랬어요. 그래서 “왜 그러십니까?” 그랬더니 옥상에서 봐야 아까 말씀드린대로 우리 센터 건물이 그때는 광주 금남로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 거기서 도청을 향해 총질을 좀 하겠다. 그 양반들이 총을 들고 그러니까 그래 가지고 그분 말릴 수도 없고….’
30:06
자..
유팔동씨는 무장공비들을 시민군이라고 부릅니다.
무장강도도 무서운데, 무장공비들 여러 명이, 총을 든 공비들이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
왔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리고, 총을 쏜다 그랬는데 뭐.. 감히 쏘지 말라고 누가 그럴 수 있었겠어요?
30:46
공수부대의 집단발포라는 유언비어가
있죠. 그 유언비어를 소재로 만든 5.18영화들이,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그렇게
하는데, 그러나, 그때 군인들 총은 빈 총이었습니다. 그 무렵에서 5월21일
점심시간 무렵에 오후1시경에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러나, 그 총성은 군인들이 쏜 총성이 아니라, 유팔동씨가 시민군이라고 부르는
무장공비들이 카톨릭센터 7층 옥상에서 쏘는 총소리였습니다. 군인들
총은 빈 총이었구요.
31:44
그때, ‘광주향토사단’이라고 부르는 31사단 96연대 3개소대가 기독교방송국, 전일방송국, 문화방송국… 3개방송국 경계를 5월20일까지 하고 있다가 5.20일에 방송국 방화할 때, 방송국에 불을 지를 때 도청으로 피신하였다가 본부에서 보내진 헬기를 타고 철수할 때 공수부대만 사지에 남겨두고
자기들만 철수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한동석 중위가 공포탄 3통을 주었는데 즉, 2백발 주었지요.
32:27
그
200발을 장교들만 몇 발씩 지급받아 있었습니다.
예.
공포탄은 쏘아도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몇 사람 죽었죠.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많이 죽은 거 아니고…. 몇 사람 죽었는데…. 등 뒤에서 날아오는 총에 맞았습니다. 공수부대 총에 맞았다면은
도청광장에서 날아오는 총에 맞았으면 앞에서 맞았을텐데 등 뒤에서 맞았습니다.
32:56
그 이유는 시민군들이 카톨릭센터 옥상에서
도청 쪽으로 총을 쏘았기 때문입니다. 총에는 사정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센터에서 (도청쪽으로) 쏘면은
그 거리가 약 1km되구, 적어도 500m이상 떨어져 있는데, 그렇게 1km 떨어지면은 사정거리 바깥이기 때문에 군인들을 죽이지 못합니다.
33:25
그런데, 왜 도청 쪽으로 총질을 하였을까요?
그러면은 그 사이에 있는 카톨릭센터와 교통광장
사이에 있는 금남로 시민들 등뒤에 맞게 됩니다.
그래서, 총소리를 내고, 그럼 이 총소리 난 다음에, 이제 시민들 몇 사람 죽게 해서 선동을 하겠다는 거였지요. 누명을… 국군에게 누명을 씌운 그러한 공작을 무장공비들이, 게릴라들이 하였던
것입니다.
34:10
광주대교구 하고 광주단체는 한촌입니다. 마치 5.18을 홍보하는 한촌이에요, 광주대교구, 광주의 종교단체입니다.
그러니까 유팔동씨는 시민군에게 최대로 유리하게 증언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어요. 그러나,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거, 모든 사건에는 진행순서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시민군들이 카톨릭센터 옥상에서 총을 쏜… 도청 쪽으로
총을 쏜 이 사실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35:10
유팔동씨의 이 증언과, 아까 5.18가요 무등산의 진달래를 부른 조귀임씨의 증언이 일치하지요. 희생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군인들이 쏜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뒤에서 시민군들이 쏜 총에 맞았던 것입니다.
35:39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광주단체들이 5.18기록물을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도 5.18기록물 중 가장 중요한 ’5.18성명서’를 전혀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5.18성명서를 찬찬히 읽어보면 광주사태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이었다는 사실이 탄로나기 때문이다. 무등산에서 작성된 5.18성명서의
키워드, 즉 5.18성명서의 암호가 '진달래'이다.
북한의
5.18가요 '무등산의 진달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기념식 때 제창하라고 지시한 문재인이 환장할 만큼 좋아할
만큼 좋아할 노래이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한국보다 14년 먼저 5.18을 국가기념일로 정한 북한에서 5.18기념식 때 제창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노래 가사에 무등산에서 작성된 5.18성명서의 암호를 풀어주는 열쇠가 있다.
댓글목록
해머스님의 댓글
해머스 작성일
위 동영상은 북한에서 5.18추모곡으로 불리웠던 "무등산의 진달래" 노래 관련인데,
바로 "무등산의 진달래"의 관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하며,
그 유래와 배경을 명확하게 해설해주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많은 국민들께 널리 알려야 하겠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노래이지? 알게 하면 효과가 크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유사상표여부를 따질 때,
"칭호, 외관, 관념"의 이 3가지 측면에서 양자를 대비하게 됩니다.
보통, 칭호나 외관은 단순비교가 가능하지만, 관념비교는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말로 전달하는 것보다는 이미지로 전달하는 것이 효과가 큰 것임을 알게 합니다.
삼성의 상표를 말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구구절절 설명하게 되어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삼성의 상표는 단순 타원형의 도형과 함께
사람들의 뇌 속으로 이미지로 간단하게 신속하게 그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래서, 형평성을 잃은 언론보도로 세뇌되어
개돼지로 전락되어진 국민들을 각성시키는데는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여야 합니다.
이 노래가 상당히 좋은 효과를 가져오기에 몇번 이와 관련된 글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