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인민봉기는 북한에서 불리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표현이다. 해마다 5월 18일 기념행사가 평양에 이어 전국의 도, 시들에서 대규모로 열린다.
북한당국은 행사에 참가한 북한 주민들에게 ‘광주민중항쟁의 염원을 기어이 달성하자’, ‘전 국민적 봉기를 일으켜 미군을 몰아내자’, ‘국가 보안법을 철폐하라’, ‘친미 정권을 타도하고 조국 통일을 이룩하자’는 구호를 외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노동신문 사설, 조선중앙텔레비죤, 3방송 등 언론 매체들을 통해 5.18광주인민봉기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미군 철수, 친미 정권 타도, 자주적인 조국 통일을 위해 남조선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싸우라고 선동한다.
중앙보고대회 보고에서 북한 당국은 ‘5.18광주인민봉기는 자주적이고 민주화된 새 세상에서 살려는 남조선 인민들의 강력한 지향과 염원을 반영한 정의의 반미-반파쇼 항쟁이었으며, 파쇼적인 정규 무력에 맞서 결사 항전을 벌인 대중적 무장 봉기’였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노동신문 사설에서는 ‘최후 승리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 통치를 끝장내기 위한 전 인민적인 반미 자주화투쟁을 과감히 벌여야 하며 광범한 각계각층 인민들이 단합하여 전 남조선적인 공동 투쟁을 힘있게 벌여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5월 18일 대외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 을 통해서도 북한당국은 5.18을 거론했다.
‘5. 18광주인민봉기’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서 북한당국은 ‘광주인민봉기는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이 《유신》파쑈독재를 지탱하기 위하여 1980년 5월 17일 남조선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하여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에 걸쳐 광주에서 진행된 반《정부》적인 대중적 무장봉기’라고 설명했다.
또한 ‘인민봉기는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어 삽시에 온 광주 시내를 휩쓸었고 여기에 시내의 모든 인민들과 시 주변의 노동자,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그 수는 5월 21일에 무려 30여 만명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봉기군중들은 도청, 시청을 비롯한 통치 기관들을 들이쳐 그를 장악하였고 무기고를 습격하여 수천 정의 무기를 탈취했으며 《계엄군》의 많은 탱크와 차량들까지 빼앗아 타고 용감히 싸워 5월 21일에는 《계엄군》을 몰아내고 광주시를 완전히 자기들의 통제 밑에 넣었다는 것이 기사의 설명이다.
또한 기사에서는 ‘항쟁의 불길은 도내 대부분의 지역과 전라북도에까지 파급되었으며 목포, 라주, 화순, 령광, 담양을 비롯한 17개 시, 군이 봉기군중의 수중에 장악되었다’면서 ‘이에 당황한 전두환 군사파쑈도당은 《계엄군》을 더욱 증강하여 2중3중으로 광주시를 완전히 포위하고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봉쇄책동을 감행하였으며 봉기자들을 회유해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봉기군이 완강히 항거해 나서자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은 5월 27일 새벽 수많은 탱크와 장갑차, 헬기를 비롯한 방대한 병력을 투입하여 봉기군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봉기군중은 자기들의 투지를 굽히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굴함없이 싸웠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