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실의 북한 결혼 [탈북자들의 위험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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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9-29 13:49 조회3,7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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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실의 북한 결혼>
[탈북자들의 위험한 가면]
이순실의 북한 결혼에 대한 요약
위키백과에는 군사복무 시절에 알게 된 소대장과 결혼했지만 가정 폭력으로 인해 가출했고, 임신한 몸으로 꽃제비 생활에 접어들었다고 기재돼 있다. 2012년 6월 1일 이만갑 프로에서는 군사복무 기간에 친분을 쌓았던 소대장에게 배낭 메고 가서 결혼식 없이 살았는데 남편이 술주정하여 많이 때렸다고 했다. 2014년 5월 20일 통일 북소리에서는 같은 부대의 입당 보증인의 중매로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시댁 식구는 6명,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장애인 큰아들, 남편이었는데 혼자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도 모자라 남편이 폭행을 자행하고, 식구들 모두가 못 살게 굴어 가출해서 곧바로 꽃제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꽃제비 생활 도중에도 선거 때만 되면 집에 가서 주민 거주 여부에 대해 조사를 받아야 해서 시댁에 들렸는데 그 과정에서 임신이 되었다고 말했다. 꽃제비 생활을 시작한 때가 시댁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임신은 꽃제비 생활 도중 시댁에 들렸다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2015년 8월 15일에는 2007년에 탈북을 시도했다가 체포되어 감옥생활을 하고 만기 출소하는 날, 오빠가 혜산시 감옥에 찾아와 자기를 데리고 황해도 평산으로 데리고 갔는데 오빠네 식구들도 살기가 심히 어려워 나가겠다고 했더니 오빠가 시집을 가라며 신랑감의 개성 주소를 적어주었는데 배낭 하나 메고 70리 길을 걸어 그 주소로 찾아간 것이 결혼이었다고 말했다. 남편의 술 폭력에 대항해 싸우다가 집 유리창을 다 깨먹고 7개월 만에 탈출했는데 그 때는 이미 임신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입덧을 했는데 돼지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7년 5월 30일에 한 말은 다음과 같다. 8번째 탈북 후 감옥에서 만기 출소했는데 감옥에서 고생한 후유증으로 무릎이 팅팅 붓고 고름이 나왔다. 이럴게 병든 나를 오빠는 오빠의 친구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시집은 개성 장풍리 삼거리에 있었다. 7개월 만에 뛰쳐나와 보니 이미 임신이 되어 있었다. 2018년 1월 12일에는 8번째탈북하다 체포돼 감옥살이를 했는데 만기가 되자 보위부가 오빠에게 연락해서 나를 데려가 다시는 탈북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라고 하면서 나를 오빠에게 내주었는데 오빠 집에 오니 집이 파산 직전이라 나를 시집가라 하면서 남편의 될 사람의 개성 주소를 써주어서 배낭 하나 메고 70리 길을 걸어가 오빠의 친구와 그냥 살았다고 했다. 2007년에 8번째 탈북이 이루어졌고, 이어서 오빠가 정해준 오빠 친구에게 개성으로 시집을 가서 7개월 살고 뛰쳐나와 임신을 했다고 표현돼 있는 것이다. 2019년 9월 9일에는 꽃제비들도 선거 때면 집에 들어가야 했지만, 나는 선거고 뭐고 무시하면서 집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면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방송 프로마다 틀리다. 남편에 대해서는 군복무시절 친하게 지냈던 소대장과 결혼했다고도 했고, 오빠가 중매한 오빠의 친구라고도 했고, 입당 시에 보증을 서준 보증인의 중매로 만난 사람이라고도 했다. 임신과 관련해서도, 시집에서 가출한 후 선거 때마다 실시하는 거주인 조사에 응하기 위해 시집을 방문했다가 그 과정에서 임신을 했다고도 했고, 거주지 조사 과정에 응한 적이 없었고, 임신은 가출할 때 이미 되어 있었다고도 말했다.
여기에는 매우 중시해야 할 대목이 있다. 이순실은 2007년에 8번째 탈북을 했고, 그 결과 감옥에 가서 6개월 감옥살이를 한 후 곧장 오빠에 이끌려 혜산에서 평산의 오빠집으로 온 후 곧장 오빠가 정해준 개성에 사는 오빠 친구에게 시집을 가서 7개월 살고 뛰쳐나와 임신을 했다고 표현했는데 어떻게 2004년 12월 25일 또는 27일에 그 딸아이를 출산했다는 것인가? 이순싱은 남한에 와서 현 남편과결혼한 날짜가 2007년 10월 25일이라고 했고, 하나원을 2006년 12월에 이수해 아파트 집을 배정받았다고 했다.
시댁에는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는 없고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가 있다고 했다. 남한에서 현 남편과 결혼한 시점, 하나원을 이수한 시점을 사실로 본다면 8번째 탈출 시기는 2006년 이전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순실(1962년)의 나이는 44세인 것으로 추정되고, 시할아버지 시할머니는 없고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가 있다면 그 증조부모의 나이는 적어도 80~100세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증조부모들이 아들과 며느리 없는 증조 손자의 집에서 동거한다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커니와 그 늙은 증조부모가 증조 며느리를 못살게 닦달했다는 이야기도 황당하게 들린다. 이순실은 남편의 폭력을 이기지 못해 가출하여 꽃제비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꽃제비 생활은 8번째 탈북에 실패한 2006년 이후에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1991년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꽃제비 생활로 접어들었다는 꽃제비 관련 이야기와 상충한다.
2020.9.2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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