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tv, 제277화, 2020년 8.15는 제2의 광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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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7-25 21:53 조회4,2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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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2020년 8.15는 제2의 광복일
https://www.youtube.com/watch?v=Ykd8InQV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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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에 둘러씌운 간첩 임헌영의 [친일부역]
백선엽 대장에게 '친일부역자‘(Pro-Japanese collaborator)'라는 굴레를 씌운 자는 임헌영(본명 임준열)이다. 임헌영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장이며 1979년 일망타진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간첩단 [남민전]의 글쟁이었다. [부역자]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전시에 적국을 도운 사람을 말한다. 그러면 일본군 장교 백선엽은 적국을 도왔는가? 23세의 백선엽은 1943년 만주군 간도특설대 소위로 복무했다. 그런데 당시의 간도특설대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싸운 부대가 아니었다. 당시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일제 시기인 1920년에 태어나 23세에 일본 군대에 동원됐다. 1943년 백선엽은 당시의 모든 조선인들이 그러했듯이 일본국적의 일본인이었다.
빨갱이들은 글자의 의미 그대로 북조선을 추종하는 반역자들이다. 반역자들이 가장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태어나서는 안 될 대한민국]이고, [미국]이고, [맥아더]이다. 그리고 오늘의 부유한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백선엽 등이다. 이런 틀 속에서 우리는 빨갱이들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읽어야 한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모략인지에 대해 따져야 한다.
1) 일본 국민이었던 백선엽이 일본군에서 복무했다는 사실 하나로 백선엽이 일본 부역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 백선엽이 친일부역자라면 당시 일본은 대한민국과 전쟁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대한민국이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그가 복무했던 일본 제국군 소속인 [간도특설대]는 존재조차 없었던 대한민국을 침공한 바 없고, 백선엽도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적이 없다. [간도특설대]는 주로 중국 공산당 게릴라들을 토벌했고, 그나마 백선엽은 적을 보지도 못했으며 실제 전투를 한 바도 없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장교들 중에도 파월기간 1년 내내 베트콩 구경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귀국한 이들이 꽤 많다. 정대협의 윤미향은 이런 파월 장병들을 향해 양민을 마구 학살했고, 여성들을 마구 강간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렇게 근거 없이 선동 선전하는 존재가 바로 백선엽을 모략하는 빨갱이들인 것이다.
2) 노무현 정부가 [일제강점 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했다. 동 위원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일본군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연합군 포로들에 가혹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전범]으로 처벌받았던 악질 친일 조선인 83명을 사면했다. 그들의 신분이 교도관이었을 뿐, 실제로는 전범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면의 이유였다. 그렇다면 백선엽 역시 신분이 일본군 장교였을 뿐 실제로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분류돼야 한다. 그가 조선인을 향해 총을 쏘았다거나 가혹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들 83명은 친일파 명단에 들어 있었다. 여기에서 사면이라는 뜻은 노무현이 친일파 명단에서 이들 83명의 이름을 삭제시켜 주었다는 뜻이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은 2004년 2월, 당시 열린우리당 김원웅을 비롯한 69명이 발의하여 제정되었다. 참고로 김원웅은 지금 광복회장을 맡고 있는 조폭 같은 빨갱이다. 대전 현충원에서 백선엽 대장의 앞길을 막고 행패를 부렸던 그 인간이다. 노무현 위원회는 김용봉을 위원장으로 하여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고, 당시 일본군 중장이었던 홍사익 등을 사면하기 위해 급조되었다. 홍사익 등 83명은 친일인명사전에 친일매국행위자로 등재되었다가 노무현이 사면(친일 명단에서 삭제)해 준 사람이다. 아마도 홍사익은 좌익이었던 모양이다.
홍사익은 연합군을 수용한 [포로수용소] 소장을 맡았다. 그의 휘하에서 [일본군 교도관]으로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 포로들을 상대로 가혹 행위를 벌였던 조선인 출신 [일본군 교도관]이 83명이나 되었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종결되고 일본인 전쟁범죄자를 처벌하는 국제군사재판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홍사익을 포함한 83명의 악질 조선인들이 [포로학대 살해]라는 죄목으로 중범죄자들로 판결되었고, 홍사익은 즉시 처형됐다. 빨갱이들은 이 재판이 부당하다며 [홍사익 평전]을 내는 등 이들 일본 앞잡이인 간수(교도관)들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백선엽 대장의 경우와 얼마나 다른가? 이것이 오늘날 이 나라를 노략질하는 빨갱이 조폭들의 억지인 것이다.
3) 백선엽이 속해 있었던 나라는 두 개였다. 1920년부터 1945년까지 그의 조국은 일본이었다. 그의 두 번째 조국은 1948년에 건국된 대한민국이었다. 1950년 그는 원-스타가 되어 대한민국 국군 제1사단장이 되었다. 그해 8월 내내 그가 다부동 전투에서 세계가 존경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도 없었을 것이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김일성 치하로 넘어가 있을 것이다. 바로 김일성의 통일 야욕에 제동을 건 존재가 미국이었고, 맥아더였고, 이승만이었고, 백선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적화통일에 혈안이 된 빨갱이들이 이들 개국공신들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것이다.
2020년 8.15는 제2의 광복일
일본이 조선인들을 착취했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조선시대에는 10%의 양반이 90%를 노예로 삼고 착취와 학대를 일삼았습니다. 일본은 이런 노예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1922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에는 일본총독이 조선어 장려시험을 치르게 했고, 합격자에게는 수당을 지급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1928년에는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제정해주었습니다. 반면 1504년 연산군은 언문을 쓰는 사람을 엄벌하라 하였습니다. 일본은 노동 값을 신사적으로 치러주었고, 양곡 값을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왕과 양반들은 그냥 착취하고 그것도 모자라 재판 없이 볼기 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런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을 우리는 광복절로 기념합니다.
그런데 지금 북조선은 어떻습니까? 10%의 노동당이 90%의 동족을 노예로 부리며 짐승보다 더 가혹하게 학대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김일성 주체사상에 실성한 조폭들이 청와대를 장악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온갖 탄압과 착취를 일삼고 있습니다. 부정선거 도구를 움켜쥐고 영구집권을 획책합니다. 우리를 김정은의 노예로 흡수시키려고 혈안이 돼 있습니다. 권력이 하라는 말만 하고 싫어하는 말을 하면 감옥에 보냅니다. 아무런 죄 없는 한동욱 전 부산고검장을 마구잡이로 얽어 넣으려는 저 행패를 보십시오. 무산자들로부터는 마지막 희망마저 강탈해 가고, 집 가진 사람들로부터는 집을 팔 때까지 저축해놓은 돈을 마구 강탈해 갑니다. 업체들이 연일 사라져 갑니다. 절망 그 자체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행패를 방관해야 하겠습니까. 분노의 항쟁만이 제2의 광복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회원님들께 드리는 8월의 인사말씀
7월에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꽤 있었습니다. 구국의 영웅 백선엽 대장께서 향년 100세의 연세로 우리 곁을 떠나셨고, 적화통일 사상에 병든 박원순이 거룩한 이력서를 조작해내면서 국민도 희롱하고 여러 명의 처녀들을 희롱하다 시궁창에 머리를 박고 사라지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타살이든 자살이든 그건 둘째 문제이고, 우선은 광화문에 인공기를 걸겠다는 공포의 소나기를 퍼붓던 인간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안도합니다. 그의 아들은 병역비리 문제로 영국에 꼭꼭 숨어 있다가 애비가 죽으니 입국을 했습니다.
박원순 사망에 이은 박주신의 운명
양승오 박사를 포함해 7명의 애국자들이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트위터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박주신이 다른 남성의 MRI를 이용해 병역 4급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박주신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공개검증이라는 형식으로 MRI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검증하겠다는 그 날 세브란스 병원에 나타난 인물은 국민이 확실하게 인정하는 박주신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작은 글씨로 쓰인 구인장을 당사자의 눈앞에 읽을 수 없는 속도로 슬쩍 스쳐 보여주는 그런 행태로 진행되어 국민들은 카메라에 슬쩍 스치는 얼굴을 박주신의 얼굴이라고 믿지 못했습니다. 공개검증은 말뿐이었고, 박원순에 의해 연출된 날치기 프로였습니다. 의혹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조갑제가 나타나 박주신을 선생이라 칭하면서 박원순-박주신 부자에게 무게 추를 달아주었습니다. 그 직후 제1심 재판부는 세브란스에서 벌어졌던 날치기 쇼를 [확실한 공개검증]으로 인정하고 검찰의 구형보다 높은 1인당 벌금 700만∼1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8명의 피고인들은 항소를 했고, 이 재판은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오석준)의 심리로 지금까지 4년여 간 심리를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박주신이 입국함에 따라 오속준 재판부는 8월 26일 오후 3시에 박주신을 증인으로 호출했습니다. 이 재판은 매우 큰 국민적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합니다.
추미애와 윤석열과의 박장 결투, 윤석열의 쾌송으로 종결
추미애의 꼬붕은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입니다. 추미애와 이성윤은 공동하여 윤석열을 궁지에 몰아넣고 직위를 해제시키려 안간힘을 써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산녹취록]이라는 것을 흔들어 보이면서 그것으로 윤석열을 메어꽂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요행히도 추미애가 되치기 당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추미애와 이성윤은 윤석열을 죽이기 위해 채널A 기자 이동재와 윤석열의 애마 한동훈(당시 부산고검장)이 공모하여 유시민을 죽이기 위해 감옥에 있는 이철(전 VIK 대표)을 협박해 유시민의 신라젠 관련 비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가 실패한 혐의(강요미수)를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이런 혐의를 씌우기 위해 추미애는 온갖 무리수를 써가면서 이성윤에게 이에 대한 독점적 수사권을 부여하고 윤석열의 간섭을 배제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위법한 명령이었고 그래서 세간의 빈축과 비난을 많이 샀습니다. 여권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것이 [검언 유착]의 전형이라고 총공격을 가해왔습니다.
추미애는 왜 꼭 한동훈 검사를 때려잡으려 했겠습니까? 한동훈이 윤석열의 애마이기 때문에 한동훈을 죽이면 윤석열에게 뒤집어씌울 여론재판 거리가 마련된다는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추미애는 되치기를 당해 패하게 생겼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추미애는 KBS 보도를 근거로 히여 한동훈을 죽이려 했는데 KBS 보도 내용이 허위였습니다. 이 보보에 대해 한동훈이 KBS를 상대로 수억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KBS가 꼬리를 내리고 오보를 인정하는 사과 방송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KBS 직원 98명이 허위보도에 관련된 KBS 직원들과 사장의 책임을 묻고 나섰습니다. KBS가 일거에 내분에 휩싸여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윤석열은 수사심의 위원회를 구성해 추미애가 추구하는 [검언 유착] 사건에 대해 심의해 달라 했습니다. 수사심의 위원회는 7월 24일, 채널A 기자(이동재 35)에 대해서는 [수사 계속 및 기소]를 의결했고, 한동훈에 대해서는 수사중단과 불기소를 의결했습니다. 검찰은 이제까지 수사심의위원회를 8차례 열었고, 8차례 모두 의결에 따랐습니다. 현재 이성윤은 위원회 의결에 반발하고 있지만 이미 그는 여론의 강력한 물결에 휩쓸려가는 생쥐의 입장이 돼 있습니다.
위원회의 의결을 무시하고 강행한다면 여론은 더욱 악화될 것이고, 악화된 여론을 등에 업고 재판으로 끌고 간다 해도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성윤이 지금 곧바로 무릎을 꿇어서 받는 충격이 10이라면 강행했을 때 받는 충격은 100 정도는 될 것입니다. 문재인-추미애-이성윤으로 이어지는 윤석열 죽기기 공작은 완전한 실패적으로 운명지어 졌습니다. 한번 기울어진 여론을 다시 뒤집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추미애가 이성윤을 조종해 더 이상 오기를 부리면 이는 문재인 지지여론에 즉시 반영될 것입니다. 저들이 주장하는 [검언 유착]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반대로 권력으로 언론을 이용해 윤석열을 죽이려던 고약한 공작은 부메랑이 되어 [권언 유착]이라는 새로운 주홍글씨를 달게 된 것입니다. 생사람 때려잡으려 공작을 시작했다가 대 망신을 당한 꼴이 되었습니다.
박원순 피해여성 A씨의 SOS 묵살한 이성윤 검찰
박원순 사망일은 7월 10일 0:01시라고 공식화돼 있습니다. 일부 언론들은 9일 20시 경에 타살되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피해 여성이 경찰에 피해사실을 고소함과 동시에 고소인 조사를 받은 날은 7월 8일 오후입니다. 그런데 7월 24일에 새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피해자 변호인이 경찰에 고소하기 전에 먼저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고 싶다며 면담을 신청했다 합니다. 담당 검사는 이성윤이 지휘하는 유현정 부장검사(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였습니다. 유현정 감사는 가해자가 박원순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면담 일자를 약속했다고 합니다. 여러 시간이 흐른 후 유현정 부장검사는 피해자 변호인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일정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면담일정을 잡은 것은 유한정 검사의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다시 면담일정을 취소한 것은 윗선의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조직의 특성상 그 윗선은 이성윤 지검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검찰에서 문전박대 당한 피해자는 할 수 없이 피해사실을 경찰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현재 법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박원순의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박원순에게 피의사실을 알려주었느냐를 규명하는 일입니다. 가해자가 박원순이기 때문에 경찰은 청와대에 즉각 보고했습니다. 그러면 피의사실을 박원순에게 알려준 존재는 누구이겠습니까? 경찰은 청와대에 보고한 순간으로부터 몸조심을 했을 것 같습니다. 감히 검찰이 피의사실을 박원순에게 알려주는 행동을 했다? 경찰의 생리상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상식입니다. 피의사실을 박원순에 알릴 수 있는 존재는 경찰보다 청와대일 것입니다. 여기에 이성윤 라인이 개입되면서 범위는 더 넓어졌습니다. 추미애의 애마인 이성윤은 7일에 박원순 피의사실을 보고받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는 그 다음 무슨 조치를 취했겠습니까? 누구보다 먼저 추미애에게 보고를 했을 것입니다. 추미애가 보고를 받았다면 추미애는 어떤 행동을 했겠습니까? 청와대에 보고했을 것입니다. 청와대는 7월 7일에 추미애로부터, 7월 8일 밤중에는 경찰로부터 같은 내용을 보고받았을 것입니다. 청와대는 분명 이에 대한 상황처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 상황처리는 7월 7일에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박원순이 죽기 전까지 청와대는 2일간의 상황처리 가간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청와대는 이런 보고를 받고 무슨 행동을 했겠습니까? 저들의 생리상 적극적인 매너로 상황처리를 하였을 것입니다. [빨갱이 세력의 구린 점을 빨리 파묻어야 한다]는 것이 상황처리 지침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여기에서 김지하의 폭로가 생각납니다. 그는 5적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하여 전두환 시대에 감옥에 갔습니다. 이때 빨갱이들이 찾아와 끈질기게 “죽어라, 죽으면 영웅 만들어 준다”고 했다 합니다. 이후는 소설입니다. 아마도 청와대는 박원순에게 자결할 것을 주문했을 것입니다. 박원순이 이에 순순히 따랐느냐 아니었느냐에 따라 자실이냐 타살이냐가 판가름 났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는 단지 논리적 추론일 뿐, 사실은 지금 단계에서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런데도 수사당국은 사인에 대해 불문에 붙이고 화장으로 일단락 시켰습니다. 바로 이점이 수상한 것입니다. 한변(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이 서울중앙지검 이성윤 지검장과 유현정 부장검사 등을 공무상비밀누설,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합니다. 이 고발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배당돼 있다합니다. 중앙지검이 중앙지검을 자체 수사하겠다는 것입니다.
분노의 거국적 표시
현 정권은 국민을 적대시하고 국가에 반역합니다. 특히 주택 정책은 국민 모두를 토끼몰이 식으로 압박하여 분노와 질병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분노가 특히 젊은 세대와 주부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연일 새롭게 터져 나오는 증거들에 의해 증폭되고 확산돼 가고 있습니다. 국민에겐 희망이 없습니다. 이제 국민에 남은 것은 앉아서 고사당하느냐 분노하느냐 두 가지 선택뿐입니다. 8월에는 분노의 역사를 써야 할 것입니다.
학습자료가 늘 준비돼 있습니다.
학습 없는 애국활동에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월간 시국진단을 구독하시는 우리 애국회원 여러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드립니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준비돼 있는 책들이 소개돼 있습니다. [무등산의 진달래]는 2020년 6월 10일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5.18에 대한 매의 시각으로 총 정리한 것으로 우리 회원님들께는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보문고나 인터넷 알라딘에 주문하시면 됩니다.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사무실(02-595-2563)로 도움을 요청하면 됩니다. [조선과 일본]은 일본에서 6쇄(2만권) 발간되었으며 40개 신문에 광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독서열이 많이 뒤떨어져 있습니다. [뚝섬 무지개]는 며칠 전 5쇄를 인쇄하였습니다.
끝으로 몹쓸 전염병이 진정되지 않고 있는 이 위험한 계절에 우리 귀하신 애국회원님들의 건강을 간절히 빌어드립니다.
산케이 신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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