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해제된 미국 외교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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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6-21 21:48 조회4,4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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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 해제된 미국 외교문서
THF RIOT WAS THE
WORK OF COMMUNIST AGENTS AND THE FOLLOWERS OF KIM DAE-JUNG (M-R: KIM TAE
CHUNG), ACCORDING TO THE MLC ACCOUNT. TWO REINSTATED STUDENTS (I.E. FORMER POLITICAL OFFENDERS
PERMITTED TO RETURN TO COLLEGE THE BEGINNING OF THE PRESENT SEMESTER), ONE EACH
FROM CHOSUN AND CHONNAM UNIVERSITIES AND BOTH PAID KDJ
LOYALISTS, ARE NAMED AS THE PRINCIPAL AGITATORS BEHIND THE ORIGINAL
STUDENT PROTESTS.
계엄사 발표에 따르면 폭동은 공산주의 첩자들과 김대중의 추종자들이 일으켰다 함. 이번 학생소요를 배후에서 조종한 주동자로 지목된 사람은 반체제 선동가로서 징계를 받았다가 이번 학기에 복학이 허용된
조선대학교와 전남대학교의 복학생 2명으로서 모두 김대중의 열성 지지자들이었다.
THE FIRST ACT OF THESE AND
OTHER "INSTIGATORS" WAS TO FAN THESE STUDENT PROTESTS INTO A GENERAL
INSURRECTION.
이 두복학생과 여타 "선동자"들이 가장 먼저 행한 행동은 학생소요를 총체적 반란으로 부추기는 일이었다.
THIS THEY DID BY FABRICATING
AND SPREADING RUMORS. THE OFFICIAL ACCOUNT ADMITS THAT "YOUNG SOLDIERS...
DEALT ROUGHLY WITH SOME STUDENTS," BUT SAYS THAT THE ATROCITY RUMORS WHICH
THEN QUICKLY SPREAD WERE "INCOMPREHENSIBLE TO MEN OF REASON. "
반란은 유언비어를 조작하고 확산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공식발표에서는 젊은 병사들이 몇몇 학생들을 거칠게 다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확산된 계엄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유언비어는 이성적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고 발표했다.
NEVERTHELESS THE RUMORS
APPARENTLY CARRIED ENOUGH FORCE TO DRAW IN THE MASS OF CITIZENS. AND, WITHIN 24
HOURS, "MASS HYSTERIA PREVAILED" IN KWANGJU.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언비어들은 군중들에게 급속하게 전파되어, 24시간 내에 광주는 집단 히스테리로 뒤덮였다.
CREDIT FOR CASUALTIES BEING
NO HIGHER THAN THEY WERE IN KWANGJU IS GIVEN ENTIRELY TO THE TROOPS, WHO
"RESTRAINED THEMSELVES FROM USING THEIR RIGHT OF SELF DEFENSE." THEIR
RESOURCEFULNESS IS PRAISED AS WELL: AWARE THAT RIOTERS HAD MINED THE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MARTIAL LAW TROOPS INFILTRATED... THE BUILDING AND
DEFUSED THE CHARGES, "THUS PREVENTING A MASSIVE BLAST WITH MANY CASUALTIES
WHEN KWANGJU WAS RETAKEN. FINALLY, SECURITY FORCES ARE CREDITED WITH GREAT
GENEROSITY OF SPIRIT IN R'ELEASING WITH ADMONITIONS 1,010 OF THE 1,740 PERSONS
TAKEN INTO CUSTODY DURING AND AFTER THE INSURRECTION.
광주에서의 희생자수가 예상보다 적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져 있던 자위권을 발동하지 않고 끝까지 자제한 계엄군의 덕분이었다. 진압과정에서 계엄군이 발휘한 출중한 계략도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계엄군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청 건물에 잡입하여 폭도들이 설치한 폭약의 신관을 제거함으로써 광주시를 재 탈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대참사를 미연에 방지시켰다. 이 점은 매우 칭찬을 받아야 할 부분이다. 끝으로 계엄사가 폭동 과정과 상황 종료 후에 검거된 폭도들
총 1,740명중 1,010명을 훈방하여 관용을 베푼 것도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20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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