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50명보다 더 큰 역할 한다는 조갑제의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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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5-10 11:14 조회5,9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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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50명보다 더 큰 역할 한다는 조갑제의 방해
바로 이 결정적인 시기에 조갑제가 또 나타났다. 그는 수많은 방송 출연을 통해 “북한군은 절대로 광주에 오지 않았으며 만일 단 1명이라도 광주에 침투했다면 내가 목숨을 내놓겠다”는 방송을 했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열거했다. 1) 당시 대한민국은 철저한 경비에 의해 밀봉돼 있었고, 모든 해안선은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흔적선에 둘러싸여 있어서 북한군이 들어오면 곧 발자국이 남겨지기 때문에 절대로 침투할 수 없다. 2) 내가 1980년 5월 23일 광주에 갔었는데 북한군처럼 생긴 사람 보지 못했다. 수많은 기자들이 광주에 가서 취재를 했지만 누구도 북한군처럼 생긴 사람 보지 못했다 3) 600명이 왔는데 어떻게 들키지 않고 왔으며, 왔으면 계엄군과 교전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런 교전은 없었다.
이런 이유를 합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사상이 다른 사람들 말고는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게릴라전에 능숙한 북한이 600명을 한꺼번에 집단으로 남파시키는 바보 같은 결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60만 대군이 있는 남한에 겨우 600명을 교전 목적으로 보내는 무모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자가 가진 사상은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누가 어떤 사상을 가졌는가는 매우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벌인 행위가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또는 해가 되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그리고 그가 벌이는 행위가 반복적이고 공격적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국가에 해가 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장기간 지속하는 것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단순 간첩보다 더 위험한 것이다. 2014년 2월 24일 중앙일보에는 북한 기자의 솔직한 심정을 기사 제목으로 담았다. “간첩 50명보다 조갑제 한 명이 더 낫더라.”
조갑제 연구
조갑제의 최종학력은 부산고다. 아무리 똘똘하다 해도 그가 고졸출신이라는 사실과 그가 한국에서 누리는 성가 사이에는 상식적으로 매치가 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조갑제는 2020 4.15총선에 투표 부정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강변했다. 2002년 노무현이 당선되는 데에도 투표부정이 있을 수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5.18에 대해 반공 선상에서 이루어진 거룩한 민주화운동이라 극찬했고, 5.18에 북한군이 단 한 명이라도 침투했다면 자기의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로 임무수행 차원에서 5.18성역을 앞장서서 수호했다.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는 북한으로부터 간첩 50명 보다 더 귀중한 역할을 수행하는 귀한 자산으로 존중받고 있다. 왜 이런 평가가 나왔는지 그 일부를 가늠할 수 있는 간단한 이력을 소개한다.
조갑제는 1987년 민중민주주의 이론에 훈련된 좌익계의 대필자 역할을 했다. 1979년 일망타진됐던 남한 최대규모의 간첩단 ‘남민전’, 그 대필자가 임헌영이었듯이, 1980년대 전반의 민주화운동 대필자가 바로 조갑제였다. 당시 조갑제는 이런 말들을 했다. “오늘의 민주화운동은 정상적인 민주화운동이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민주화 역사를 위해서는 박대통령은 잘 제거됐다. 전두환 등에 대한 죄는 청문회와 수사과정을 통해 의문점 없이 깨끗하게 밝혀졌다. 전두환은 쿠데타로 불법 집권했고, 5.18민주화운동은 반공차원에서 이루어진 진정한 민주화운동이다. 전두환은 월남전에서도 양민을 학살한 부대의 연대장이었다. 박종철의 죽음은 2.12 총선과 함께 한국인의 민권수위를 한 단계 올려놓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80년간 쌓인 한의 응어리가 얼마나 깊고 큰지는 박종철 사건에 대한 ‘민중’의 폭발적 반응이 잘 말해 주고 있다”
조갑제는 1987년 2월 25일 “한길사”를 통해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라는 책을 통해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친일파요 독재자라고 깎아내렸다. 이 책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쓰였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은 일제하에서 훈련된 일본경찰 출신들을 그대로 기용하고 일경(일본 경찰)으로부터 물려받은 고문과 조작의 기술을 그대로 전수받아 민중을 탄압한 독재정권이기 때문에 타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국 이후 전국 각지에서 드러내놓고 준동하던 당시의 빨갱이들을 사냥할 수 있는 유일한 공권력이 경찰이었다. 민병대보다 못한 국경(국방경비대)은 범죄자들의 도피처요 빨갱이들의 정체를 세탁해주는 세탁소에 불과했다. 1946년 1월, 미군정이 1개 중대(중대장 채병덕)를 창설시킨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해방직후의 문맹율은 85%, 공무 행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고, 전문성을 요하는 경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귀했겠는가? 이 현대적 업무는 땅을 파고 지게를 지던 농부나 건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로지 일제하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은 소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경찰에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다.“빨갱이들이 우글거리고 이들이 국가 대세를 잡아 흔드는 다급한 상황에서 경찰들이 열심히 빨갱이를 잘 잡아내고 있다” 인적 자원이 고갈됐던 해방 정국을 천재적으로 이끌어갔던 이승만 대통령의 초인적 능력과 헌신적 노력을 겨우 고졸 출신에 불과한 조갑제라는 애송이가 단지 뒷날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함부로 폄훼하고 비방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이렇게 비방해놓고도 그는 박정희 전기를 써서 주가를 올리고 우익계로부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무서운 붉은 발톱이 감추어져 있다.
2006년 12월 21일의 조갑제 발언이다. "연합사는 해체되고 주한미군도 나가야 하며 한미공조도 타파해야 한다. 북한의 자주성은 평가돼야 한다."2013년 6월 2일의 조갑제 발언이다. “남북한에는 국력차가 존재한다. 미국의 도움 없이도 능히 이길 수 있다. 북한에 연합사가 존재하나? 우리도 연합군 없이 이길 수 있다. 이는 국가관과 용기의 문제다. 우리의 힘으로 북한을 억제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국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스라엘에는 외국 군대 없다. 물어보니 외국군대가 있으면 국민정신이 타락한다고 하더라. 좋은 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의존주의, 사대주의, 비겁주의가 만연해 진다. 어려운 일 생기면 대통령이 미국에 전화 걸어 해결하려 든다. 이는 노예근성이다. 2015년을 사대주의, 노예근성 깨부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한은 자주국방으로 스스로 해결한다. 이는 평가해주어야 한다. 반면 우리는 미국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발톱인가. 그런데 대부분의 우익들은 조갑제의 이런 발톱을 보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조갑제의 발톱은 저자를 향했다. 그의 공격은 저자가 [북한군] 주장을 하고부터 시작됐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조갑제닷컴에는 10명 정도의 무명인들이 비슷한 레퍼토리로 저자를 상종 못할 인간으로 묘사하고 모략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조갑제닷컴은 저자를 공격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런 유언비어들은 5.18때 광주에 나돌던 유언비어들과 유사했다. 저자는 육군사관학교를 1966년 2월에 졸업함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됐다. 그리고 광주에 소재한 포병학교에서 유격훈련과 기초 전술훈련을 받고 양평에서 잠시 복무하다가 사지인 베트남전에 투입됐다. 사지에서 사선을 넘나들던 필자였는데 모 여고 졸업생인 필명 파아란이라는 여성이 조갑제닷컴에 저자를 모해하는 글을 올렸다. 저자가 소위 시절에 전방에서 여고생을 강간했다는 것이다. 전쟁터에 있던 저자가 어떻게 한국 땅 전방에서 강간을 했다는 말인가? 조갑제닷컴 관리자에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흥분하면서 그건 인격 이하의 글이니 즉시 지우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관리자가 조갑제의 허락을 득하려는 순간 조갑제가 지우지 말라 했다. 저자는 즉시 인터넷에 [조갑제에 경고한다]는 제목으로 조갑제의 인격을 거론했다. 물론 파아란이라는 여성은 그 후 이로 인해 법적 처벌을 받았다. 이후 조갑제닷컴에는 유사 흑색선전물이 수십 건 게재됐지만 조갑제는 저자로부터 공개 [경고장]을 받은 후에야 마지못해 지우곤 했다. 파아란, 백기자, 공명정대, 압구정, 대한국인, 운정, 콘사이스, patriot9, equit366 등 10명 내외의 조갑제닷컴 기고자가 처벌을 받았다. 저자는 조갑제닷컴에 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제보를 해주어야 조갑제닷컴에 들어가 내용을 확인한다. 그리고 저자가 조갑제에게 경고장을 날린다. 조갑제가 저자로부터 경고장을 받을 때에는 이미 그 모해의 글들은 뒷 표지로 옮겨지고 난 후라 이미 읽을 사람들이 다 읽고 난 후였다. 교묘한 방법이었다.
조갑제는 일면식도 없는 저자를 왜 이런 식으로 음해하는가? 음해하기 시작한 시기가 결정적인 실마리일 것이다. 2002년 10월, 저자는 [북한군] 발언으로 인해 청와대, 국회, 언론을 장악한 좌익세력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저자가 광주로 끌려갈 때, 조갑제는 월간조선 사장이었다. 2001년 2월부터 김대중은 조중동 등 우익성향의 언론사들을 손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400여 명이 23개 중앙 언론사와 계열 기업을 세무조사한 결과 총 탈루소득액은 1조 3,593억여 원, 탈루 법인세는 5,056억여 원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조선일보사의 방상훈에게 탈세액 63억 원에 50억의 횡령액을 추가했고, 동아일보사의 김병관에게는 42억 원 탈세에 18억 원 횡령을 추가했다. 동아일보 사주 부인이 건물에서 추락해 자살까지 했다.
바로 이 때 김대중 정권은 월간조선을 조선일보로부터 독립시켜 그 회사를 2001.1.3. 조갑제에 맡겼다. 다른 언론사들이 세무조사를 받을 것이라는 소식에 새파랗게 질려 있었던 1월 31일보다 1개월 앞선 시점에서 김대중이 조갑제에 월간조선 편집권을 부여해준 것이다. 이는 김대중과 조갑제가 얼마나 밀접하고 각별했는가를 가늠케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던 것이다. 언론계에서 조갑제가 차지하는 영향력과 위상은 이 시점에서부터 도약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언론계의 황제가 된 것이다. 이렇게 출세한 조갑제가 그와는 일면식도 없는 저자를 어째서 음해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가 김대중의 키드라는 것이고, 김대중이 곧 5.18이라는 점이다. 조갑제가 곧 5.18 호위무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역학적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김대중이 곧 주한미군 철수와 동일시되듯이 조갑제 역시 주한미군 철수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언론 편집권을 가지고 있는 그는 비판을 받아야 할 공적 존재가 출현할 때에 정정당당하게 이름을 내걸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조갑제는 단 한 번도 저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오로지 뒷골목에서 마타도어 수법으로 음해만 했다. 그 음해를 시작한 시점은 저자가 5.18을 북한군과 연계시키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그는 또 위장 망명자 황장엽과 위장 탈북자 장진성의 성가를 올려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한미군 철수도 강력하게 주장했다. 2013년이라면 애국진영 모두가 2015년에 전시작전권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환수될 것을 우려해 천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시기인 2013년에 조갑제는 여러 곳에 다니면서 작전권을 환수하고 주한미군을 내보내야 한다며 날을 세웠고, 채널A와 TV 조선이 열을 올려 [북한군 개입]을 방송할 때 그는 518에는 북한군이 단 한명도 오지 않았다고 열변했다. 그리고 1980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5.18의 성역화에 앞장선 최강의 호위무사가 되어 있다. 이 모두가 수상한 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저자는 물론 많은 인사들이 조갑제에 저자와의 공개토론을 여러 차례 제의했지만 그는 철저하게 외면한다. 저자와 공개적으로 맞서서 논쟁할 팩트가 없고 실력이 없어서일 것이다. 이처럼 좌익들의 활동공간은 앞마당이 아니라 뒷골목이다. 얼굴을 맞대고 공개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뒷공간에서 마타도어식 음해를 한다.
5.18의 진실에 관한 문제는 여느 성격의 공익사안이 아니라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북한군이 광주에 개입했다는 주장에는 아웅산 테러사건으로 인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있는 북한이 앞으로도 우리를 향해 저지를지 모를 테러행위에 대해 쐐기를 박고 국민에게 안보 경각심을 제고시키자는 매우 긍정적인 정신이 잉태해있다. 그러나 “북한군은 절대로 침투하지 않았다, 만일 왔으면 내가 목숨을 내놓겠다”는 식의 주장을 집요하게 업무 삼아 반복하는 행위는 국익에 역행하는 행위다. 2020년 4.15 총선과정에 부정이 끼어들었고, 그래서 개선할 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현 선거 시스템에는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며 개선을 지향하는 국민을 향해 공격적 전투적 언사를 쏟아내는 행위는 개선을 방해하는 반국가 세력이다. 조갑제는 5.18과 선거제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공익사안 모두에서 반공익적 자세를 취해왔다. 이 두 가지 사안에서 조갑제와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언론인들이 정규재, 김진 등이다.
2020. 5. 1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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