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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제228화, 10.26과 5.18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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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4-03 23:02 조회4,3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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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228, 10.265.18은 하나

 

https://www.youtube.com/watch?v=bJomlSsihRc&t=18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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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 10.265.18은 하나

자유당 기호 31

 

  동의대 사태

198953일 부산 동의대 캠퍼스가 폭력에 휩싸였다. 그해 4월 동의대 김창호 교수가 대학이 개입된 입시부정을 폭로하자 학생들은 입시부정의 진상을 밝히라며 시위에 나섰다. 이 시위는 51노동절을 거치면서 당시 시국과 맞물려 점차 과격해졌고 학내에 화염병이 나뒹굴기 시작했다.

 

52, 시위 학생들은 전투경찰 5명을 납치해 중앙도서관에 감금했다. 53일 새벽, 부산시경 기동대 소속 경찰 600여 명이 전경들을 구하기 위해 도서관 7층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계단 입구에 기름통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100여 명의 학생이 경찰을 향해 석유와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졌다. 계단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최동문 경장 등 7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 10명은 중화상을 입었다.

 

경찰은 시위 주동자들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들 중 31명은 특수공무방해치사죄로 징역 2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다. 이것이 부산 동의대 사건이다.

 

민주화운동으로 뒤집은 사람 6

1) 조준희, 2) 김정기 3) 백화종 4) 이우정 5) 김상근 6) 최학래

 

198953, 동의대에서 학생들이 경찰관 7명을 화염병으로 학살한 사건에 대한 사법판결은 1990년에 이루어졌다. 관련학생들 모두인 46명이 최소 2년에서 최고 무기징역까지 받았다. 사법부가 판단한 이 사건을 김대중 시절인 20024월에 행정부가 뒤집었다. 국무총리 산하에 민보상위('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찬성 5, 반대 3, 기권 1명의 다수결로 "동의대 사건 가담자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가담자들이 고의적으로 살인한 것이 아니고, 중대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없었다. 당시의 일반적인 시위방식에 따라 화염병을 사용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경찰관이 사망했다는 결과만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결정문의 핵심이었다.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뒤집는다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또한 이런 결정은 북한에서 파견된 인민위원들이나 내릴 수 있음직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1인당 평균 2,500만원, 많게는 6억을 받았다. 경찰은 군사정권의 개이고, 개를 많이 죽일수록 민주화공로가 크다는 것이다. (학림사건 주모자: 박성현, 5.18민주화운동을 발판으로 하는 학생운동)

 

  한국이 공산화되어가는 근본 이유

 

거물간첩 김용규가 [소리 없는 전쟁]에서 폭로한 그대로 남한의 크고 작은 사건에는 반드시 북한의 공작이 있었다.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들에는 남조선의 역사는 [보수반동]과 김일성을 신봉하는 [진보] 사이에 벌어진 끝없는 [모순 투쟁의 역사]였다고 기록돼 있다. 3.15 부정선거로 코너에 몰린 이승만을 하야하게 만든 4.19도 북한간첩 [이석]의 공작이었고, 426일 이승만을 하야로 몰고 간 것도 북한의 공작이었다. 이처럼 북한의 공작은 살인공작과 정치공작 그리고 남한국민을 세뇌시키기 위한 문화공작으로 이어져 왔다. 지금의 대한민국 역사책은 북한의 조종을 받는 좌익들이 써왔다. 지금 국민이 가지고 있는 역사 상식은 모두 역사 권력과 문화 권력을 장악한 좌익들이 세뇌시킨 것들이다. 우익이 역사를 쓰면 세도를 가진 좌익세력에 탄압당하고, 우익이 영화를 만들면 상영할 영화관을 빌릴 수 없다.

 

기적의 힘으로 나라를 세운 이승만은 친일 독재자로 매도되고, 실업률 30%에 미국의 잉여농산물과 구호품을 받으면서도 끼니를 잇지 못하던 거지의 나라를 경제 10위권 국가로 만들어 준 박정희 대통령도 친일 독재자로 매도된다. 이승만이 남한만의 정부를 세우지 않았다면 김일성 치하로 통일 됐을 것이고, 맥아더가 아니었다면 남한은 1950년에 김일성 치하로 통일 됐을 것이라며 애국적 지도자들과 그들이 세운 이 나라를 증오하도록 세뇌시키는 것이 이 나라 학생들이 받고 있는 역사교육이다. 노무현은 이 나라는 태어나서는 안 될 더러운 나라라고 했다. 국가를 노동자 농민들이 직접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19 이후 박정희가 쿠데타를 하지 않았다면 남한은 장면 정권에 의해 북으로 흡수되었을 텐데 박정희가 이 나라를 부자로 만들어 놓아서 적화 통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며 박정희를 증오한다.

 

이 나라 최악의 적은 북한이기 이전에 바로 북이 남한에 키운 좌경세력이고, 욕심은 많은 반면 능력이 모자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불만을 갖게 된 자생적 좌경세력이다. 조선병, 한국병이라는 것이 있다. 배고픈 병이 아니라 배 아픈 병이다. 이 나라 세금의 90%25%의 잘 사는 사람들이 낸다. 부자들의 혜택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좌익세력은 상위 25%에 해당하는 국민에 대해 배 아파한다. 선진국들에서는 부의 치중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부의 치중 현상이 과학의 결과라는 것을 터득한다. 하지만 [조선 민족]은 조선조 518년 동안 양반의 노예로 살아온 피가 흘러서인지 독서를 하지 않고 과학을 무시하고 문명에 다듬어지지 않아 언행과 사고가 거칠다. 독서와 사색이 생활화 돼있지 않은 사람들의 두뇌는 먼저 세뇌시키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날이 갈수록 이 나라 국민이 점점 더 좌경화되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역사 권력과 영화, 드라마, 서적 등을 생산해 내는 문화 권력이 있고, 이들의 선전-선동 작전에 여과 없이 노출되는 사색 능력 없는 인종이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전개념상 10.265.18은 하나  

 

1979년에 발생한 10.26사건 즉 박정희 시해사건이 없었으면 5.18도 없었다. 김일성은 박정희의 경제개발로 인해 남북한 간의 경제적 위상이 뒤바뀔 것을 극도로 염려하여 1968121, 31(현재 추가로 밝혀진 숫자는 33)의 김신조 살해 팀을 청와대로 보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려 했다. 이에 실패한 김일성은 그해 11월 울진 삼척에 120명이라는 엄청난 특수군(124군부대)을 또 다시 보내 남녀노소 대상을 가리지 않고 람보식으로 인명을 살상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박대통령을 믿다가는 다 죽는다는 정서를 불러일으키려 했다. 이어서 1974년에는 문세광을 저격수로 보내 박대통령을 살해하려다가 실수로 육 여사를 저격했고, 경복궁 파티에서 원격폭탄을 터트려 박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요인 모두를 살해하려다 행사가 취소됨에 따라 무위로 끝나기도 했다. 만일 경복궁 파티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됐더라면 1974년의 경복궁은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의 선례가 되었을 것이다. 이승만은 공작에 의해 제거했고, 박정희와 전두환은 폭탄 테러와 문세광에 의한 저격을 통해 제거하려 했으며, 마지막으로는 최측근인 김재규를 매수하여 제거했다는 것이 저자의 훈련된 직관(Educated Intuition)이다.

 

문세광은 김대중이 1973년 일본에 조직한 한민통이 보낸 자객이었고, 한민통의 한국판 수뇌부에는 계훈제, 함석헌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광주 현장사진들을 해외에 송출한 독일 NDR사의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및 김사복과 연결돼 있었고, 김사복이 소유한 고급 콜택시가 문세광을 국립극장으로 태워갔다. 이처럼 북한과 김대중과 10.265.18은 분리될 수 없는 한 덩어리였다.

 

10.26이 발생하면서부터 정치무대는 김대중이 주도하는 전국적 학생시위가 주도적으로 장악했고, 이에 김대중은 24명을 모아 혁명내각을 구성하고 1980522일을 기해 전국규모의 폭동을 기획하고 이를 정권장악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다 517일 일제히 검거됐다.

 

육군본부 정보 보고서에 의하면 김일성은 10.26이 발생하자마자 미리 준비한 것처럼 북괴군에 [폭풍작전]을 명령했고, 탈북자들의 일관된 진술에 의하면 북한 특수군은 197911월부터 소규모 단위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태백산맥-지리산맥을 통해 수십 명 단위의 특수군을 광주-전남 지역에 잠입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잠수함을 통해 10여 명씩 침투시켜 광주로 접근하는 해안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며, 그 후로는 공공연히 대형 선박을 통해 전남지역에 대량 침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류병현은 그의 자서전 등을 통해 5.18 직전 전남 해안을 경비하던 육군 및 해군 병력을 전북 변산반도 이북으로 이동시켰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6.25 직전의 군 지휘를 간첩이 했다는 이형근 대장의 10대 불가시의를 연상케 한다. 결론적으로 5.18 직전의 전남 해안은 그야말로 북한에게는 무인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군번 1번 이형근 대장의 회고록 제55-57쪽에는 당시의 한국군을 간첩이 지휘했다는 것을 의심케 하는 10대 불가사의가 기록돼 있다. 그 중에는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 중앙 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교류와 이동이 단행되어, 지형과 병사에 익숙치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게 한 사실, 613일부터 620일에 걸쳐 전후방부대를 대대적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장병들로 하여금 정신을 잃게 한 사실, 611부터 발령됐던 비상경계령을 6.240시에 해제한 사실, 전쟁 하루 전에 전 장병의 50%에게 휴가와, 외출 및 외박을 단행한 사실, 전군의 중령급 이상을 육군본부 장교클럽에 초청해 양주와 댄스파티를 열어 고급장교들의 거의가 다 6.25일 새벽까지 술에 취하게 한 사실, 국군이 파죽지세로 밀리고 있는데도 국군이 북진하고 있다는 허위방송을 하여 군과 국민을 혼란에 빠지게 했고, 한강 나루터에 피란 나온 애국자들을 다시 귀가시켜 인민군 죽창에 찔려 죽게 한 사실, 전방에서 총성이 울리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군을 지휘해야 할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사실들이 기록돼 있다. 그 간첩이 누구였는가에 대해서는 설만 분분하다. 결론적으로 5.18 발발 직전에 합참의장 류병현이 취한 변산반도 조치는 군 지휘부에 꼭꼭 숨어 있다가 6.25 전야의 10대 불가사의를 연출시킨 고위 간첩의 역할을 방불케 한 이적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적진에서 벌이는 무장게릴라 봉기]는 북한의 주특기

  

미국의 소니픽처스 영화제작사가 김정은 암살이 성공했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코미디 영화 [인터뷰]20141223일 개봉하려다 북한으로부터 해킹을 당하고, 이를 상영하면 9.11과 유사한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협박을 받아 극장 상영을 포기했다. 9.11과 유사한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말은 미국 국내에 북한의 테러조직이 준비돼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이하 BI)1219(현지시간) 기밀 해제된 미국방정보본부(DIA)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특수 부대원을 핵발전소와 주요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미국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탈북자나 정보요원이 미국에 제공했거나 전자 감청으로 획득한 정보로 구성된 '()정보보고서'로 알려진 것이라고 BI는 설명했다. 2004913일자의 이 보고서는 북한의 5개 기밀 특수부대는 미국 공격 훈련을 받았으며, 북한 정찰총국은 미국 핵발전소 공격을 위해 요원들을 준비시켰다고 폭로했다.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총국은 약 6만 명의 특수부대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BI는 전했다. 정찰총국은 1968년 청와대 공격 시도,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 등을 감행했다. BI보도에 따르면, 이 문서는 북한 인민무력부는 1990년대 초 적대행위가 발생할 경우 정보원들을 훈련시키고 미국에 침투시켜 핵발전소와 주요 도시를 공격하도록 5개 연락사무소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BIDIA 보고서는 북한이 미국 내 공격을 계획하고 작전 요원들을 파견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정보 문건이라면서 정보공개법( 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얻은 이 보고서 내용은 북한 요원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미국 영화관에 대한 9.11스타일의 테러 공격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BI는 강조했다.”

 

  김일성, 모택동(마오쩌등)으로부터 자극받아 특수군 양성-활성화  

 

200874일 연합뉴스 등 여러 보도 매체들에 의하면 1965년 모택동은 김일성에게 남한에 무장게릴라봉기를 일으키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이 내용은 1966년 김일성 어록에 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공개됐다고 한다. 보도들에 의하면 당시 김일성은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무장봉기가 실패한 것을 예로 들면서 거절했지만 김일성은 차츰 대담하게 특수군을 수만 명 단위로 양성하고 사용했고, 해외에 수출해왔다. 1968년의 김신조 사건, 120명을 침투시킨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1983년의 미얀마 사건이 이를 증명한다. 19805.18광주에 위장 침투한 600명의 북한특수군은 이러한 큰 줄거리에 매우 부합한다. 실제로 북한 특수군 신분으로 광주에 왔다가 돌아갔던 가명 김명국이 탈북하여 현재 서울 근교에 살고 있고, 그의 실체가 2013515, 채널A 방송에 의해 확인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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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515일 채널A 방송

 

 

  전두환 회고록과 광주재판

 

전두환 회고록 1,2,3권 총 1,904쪽이 2017.4.3.에 발간되었다. 1(603쪽 분량)10.26으로부터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 시(1980.9.1)까지 현대사 중 가장 역동적이었던 10.26사건, 12.12사건, 5.18사건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묘사했고, 이 내용에 들어있는 팩트들은 모두 저자가 발간한 9권의 책 내용들과 대동소이하게 일치한다. 양쪽 모두 수사기록과 군대 경험을 근거로 하여 쓴 책이라 그러했을 것이다.

 

전두환 회고록은 12.12. 5.18에 대한 역사책으로서의 정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5.18에 대해 크게 네 가지 역사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85년 황석영 이름으로 발간된 넘어 넘어’(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있고, 2008~2016년에 걸쳐 저자가 쓴 9권의 역사책, 2013년 재미학자 김대령 박사가 쓴 1,700여 쪽(4부작)역사로서의 5.18” 그리고 전두환 회고록이다.

 

황석영의 이름으로 발간된 넘어 넘어는 지금까지도 ‘5.18역사의 바이블로 인식되어 30여 년 동안 베스트셀러의 고지를 점령한 채 널리 읽히고 있다. 이제까지 대한민국 국민의 머리에 각인된 5.18은 모두 이 책의 내용들이다. 이 책에는 한국군을 모략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는 반면 팩트들이 거의 없다. 더구나 저자는 2011년에 저작한 솔로몬 앞에 선 5.18”을 통해 황석영의 책이 북한의 대남공작 모략서 두 권을 베껴 쓴 것임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황석영으로부터는 아무런 반발도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주로 수사기록과 당시 일선 공수부대원들의 증언 및 최근의 연구결과들을 총 망라하여 회고록을 썼다. 그는 광주현장에서 발생한 매우 특이한 상황들은 북한군 600명의 활동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해석이 되지 않으니 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래는 전두환 회고록과 저자의 책 내용들이 대동소이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두환 회고록 제1399-406쪽에는 "무기고 습격과 시위대의 무장"이라는 소제목 하에 1980.5.21.자 상황이 매우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검찰기록과 안기부 기록에는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는 38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었다는 사실, 600명의 폭도들이 부대 이동계획을 알아내 가지고 매복해 있다가 정규 사단인 제20사단 차량부대를 습격하고, 그 차량들을 가지고 군납업체인 아시아 자동차 공장에 가서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0여대를 운전했다는 사실이 있다. 이런 일들은 당시의 폭동 일선에 서 있던 업소종업원 일용직노동자 넝마주이, 부랑자 등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도소를 여섯 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공격했고, 8톤 트럭 분의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한 사실 등은 북한 특수군을 연결 짓지 않고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6회에 걸친 교도소 공격을 했는데도 그 중에 유공자가 없다는 사실, 군인복장을 하고 꿇어앉은 광주시민에 총을 겨누고 있는 의도적인 모습, 군수장비와 장갑차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고, 자가용 시대도 아닌 때에 수백 대의 군용트럭, 버스 등을 일시에 몰고 다닐 수 있는 운전자들이 광주에 있었는지, 등 풀리지 않는 의혹들 역시 고도로 훈련된 북한 게릴라군의 개입을 의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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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쪽에서 542쪽에는 “5.18사태의 실체에 관한 논란이라는 중간 제목 하에 앞으로 해명되어야 할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시돼 있다.

 

교도소를 6회씩이나 공격했는데 그 공적을 내세워 5.18유공자가 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문이 가고, 장발에다 군인복장을 하고 시민들을 꿇어앉힌 상태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괴한들은 분명 한국군이 아닌데 위장을 한 광주시민이 어째서 광주시민을 꿇어앉히고 총 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간다. 군 특수장비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장갑차를 4대씩이나 운전하고, 운전수가 귀하던 그 시절에 500대가 넘는 차량들을 운전하는 사람들이 과연 광주의 하층 계급들인가에 대해 의혹이 가고, 참혹하게 훼손된 사신들을 끌고 다니며 이것이 계엄군의 소행이라 한 것은 전형적인 북한의 모략 수법과 일치한다. 연고대생 600명이 존재한다는 설도 많이 떠돌았고, 520일에는 서울대학생 500명이 광주를 지원하기 위해 왔다는 가두방송이 있었고, 2215:08에는 서울대학생 500명에 대한 환영회도 열렸는데 이들의 정체가 북한군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530-531에는 당시 무전교신으로 보아 폭동군중 속에 간첩이 활동하고 있다는 데 대한 의심이 있었지만, 치안이 확보돼 있지 않은 살기어린 폭동 현장에 정보원을 침투시켜 간첩을 색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북한간첩들의 투입 정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증거를 잡지 못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나는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서리를 하고 있었지만, 북한특수군 존재에 대해 파악할 능력이 없었고, 그럴 환경도 아니었다. 경찰력이 모두 소멸된 상태에서 쓰나미처럼 뒤엎는 폭동의 한 중간에 정보요원들을 투입하여 정보활동을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최규하 대통령은 하루 빨리 사태를 정리하고 정상화시키라는 명확한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차후에라도 그 진실을 조사할 여력이 없었다. 당시 군당국은 무전교신을 포착해 북한 간첩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을 색출하기 위해 병력을 투입한다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진행하지 못했던 북한군 존재에 대한 연구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534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저자에 대해 언급했다.

 

"5.18사태 당시 광주 현장에 있던 군 관계자들의 증언이나 진술, 기자 등의 목격담 이외에 관련 자료나 정황 증거 등을 들어 연·고대생으로 알려졌던 600명의 시위대가 북한의 특수군이라는 주장이 몇몇 연구가들에 의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 10여 년간 집중적인 조사와 연구, 출판 활동 등을 통해 5.18광주사태와 관련된 진실을 규명해나가고 있는 지만원 시스템공학 박사는, 광주사태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북한이 특수군을 투입해서 공작한 '폭동'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지만원 박사는 검찰과 국방부의 수사기록, 안기부의 자료, 5.18관련 단체들의 기록물, 북한 측의 관련 문서와 영상자료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그러한 결론을 얻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537쪽에는 진실규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제목 하에 아래 내용이 기술돼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새로운 조사가 시작돼야 한다. 5.18광주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세력의 반국가적 반역사적 반민족 책동을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이 일들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나아가 그 성격을 재조명해볼 수 있는 동력도 시간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것이 안타깝다."

 

아래는 제535쪽 상단에 있는 내용이다.

 

수많은 정황증거들과 황장엽씨, 강명도씨의 증언 등 수많은 증언들이 아니더라도 결정적 남침 기회를 노려 대한민국의 내부 혼란을 획책해온 북한이 폭동사태로 번진 5.18광주사태 때 팔장을 끼고 구경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광주사태의 진실을 밝힌다는 명분 아래 시작된 5.18재판에서 그러한 의문들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 재판은 광주사태에 대한 진실을 철저히 따져보고 그 성격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가 아니었고, 김대중씨를 내란의 주범으로 판단한 1981년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거꾸로 내가 내란을 일으킨 것으로 몰아가려는 목적에만 집착한 드라마였을 뿐이다

 

 [전두환 회고록] 가처분 사건

 

201784일 광주지방법원은 전두환 회고록 33개 부분이 5.18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출판-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33개 부분을 먹칠로 지우고 나머지 부분을 배포하자 광주인들은 또 다시 34개 부분이 허위사실에 해당한다며 제2차 학살을 했다. 그리고 다시 발간하면 책이 걸레가 될 때까지 소송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로써 전두환 회고록 1,2,3권 중 제1권은 사실상 발행이 불가능해졌고, 설사 모두 먹칠을 한 채 발간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부분이 빠져 있는 회고록을 구입할 독자는 드물 것이다. 아래는 전두환 회고록 제1권 중 33개 삭제사항을 요약한 것이다. 아래의 33개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가 빨갱이 세상이 되다 보니 정당한 내용이 마치 점령군의 횡포에 당하듯이 무법천지로 분서갱유 당하는 것이다. 아래 33개 내용을 읽는 독자들은 광주법관들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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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씻김굿의 희생양이다.

2. 광주작전을 내가 지휘했다는 단서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3. 의도적이고 무차별한 사격 없었다

4. 헬기 사격 감행했다는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끔찍한 소설이다.

5. 나의 존재는 광주에 실재하지 않았다

6. “우리국군은 국민의 군대.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적 없다

7. 국군은 시민을 향해 결코 총을 겨누지 않았다.

8. 5.18의 발단과 종결까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9. 그때 나는 중정서리와 보안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그 어느 직책에도 광주에 참견할 요소가 없었다.

10. 아시아 자동차 수백 대 차량과 장갑차 탈취 운전, 북한특수군 냄새가 난다.

11. 지휘계통에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높아도 작전에 간여하지 못한다.

12. 시위대가 군 장갑차에 화염병을 던지고, 불이 붙는 순간 또 다른 장갑차가 군으로 돌진해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3. 헬기 발포 주장은 고의적인 왜곡이다. 목사라는 사람이 왜 가짜 사진까지 가지고 나와 모략하나. 가면을 쓴 사탄이 아닐 수 없다.

14. 헬기의 화기 성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15. 조비오 신부, 피터슨 목사가 성직자 탈 쓰고 파렴치한 거짓말 한다.

16. 험악한 사진들은 언제 누구에 의해 살인됐든지 근거가 없다. 그건 살인기계들이 한 짓이다.

17. 내가 원흉으로 지목된 것은 내가 당시 실권자였고, 이어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8. 교도소 공격은 북한의 개입을 추측케 한다.

19. 계엄군을 모략하기 위해 찍은 사진은 국군도 아니었고, 광주시민도 아니었을 것이다.

20. 기관총, 장갑차 등 특수장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 수백 명의 군용차 운전자들이 다 광주시민일 수 없다.

21. 피살경위를 모르는 참혹한 시체로 심리전을 수행한 것도 전문가들 소행이고, 11공수 63대대와 보병학교 교도대간 오인시격에도 공작이 있었을 것이다.

22. 522일 오전 도청-금남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백 명이 복면을 하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사람들은 연고대생인가 북한 특수군인가 추측들이 많다.

23. 간첩들이 통화는 무전교신들이 많이 포착됐다.

24. 5-600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였고, 복면을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가 밝힐 수 없는 부분이다.

25. 무전감청 결과 현장에는 무수한 간첩이 있었다. 하지만 정체를 밝히기 위해 군을 투입할 입장이 아니었다. 투입하면 내전이 되고, 이는 북한이 바라는 바다.

26. 그래도 공수부대가 작전을 치밀하게 해서 광주를 수복했다. 북한 특수군이 그 때까지 광주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27. 아쉽지만 진상규명은 미완의 과제로 남길 수 밖에 없었다.

28. 5.18을 북한이 저질렀다는 것에 대한 탈북자들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다. 광주에 직접 침투했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29. 북한특수군의 존재는 지만원 박사와 몇몇 연구가들에 의해 많이 연구돼 있다.

30. 6.25에서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수백만 인명의 피해를 무릅쓰고 싸웠듯이 5.18을 진압한 것도 국가전복을 획책한 무장 혁명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정당하고도 불가피한 조치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31. 무엇이 진실인가? 최규하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폭동이었는가. 민주화 폭동인가? 북한특수군의 폭동인가?

32. 지만원과 김대령은 방대한 량의 자료들을 가지고 십 수 년 동안 연구하여 5.18을 북한특수군의 폭동이라는 결론을 냈다. 이 연구결과는 탈북한 북한 고위급 간부들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33. 지만원 박사에 의핸 과학적 영상분석 결과 광주 현장 사진 속 얼굴들이 북한의 고위급 인물들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역사학자들은 왜 침묵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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