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TV]제208화, 신천지의 복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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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3-05 21:59 조회4,6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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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제208화, 신천지의 복마전
https://www.youtube.com/watch?v=GoA-v7tVoA0.
제208화, 신천지의 복마전 (마귀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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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 대구에서 60대 남성 1명 숨져… 40번째 사망자
16:18 “남녘 동포 건강 지키길”… 김정은 응원 친서
15:00 1주일에 1인 2매 ‘마스크 구매 5부제’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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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출판의 의의
[조선과 일본]은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이다. 이씨 성을 가진 27명의 왕들이 조선을 518년 통치했고 그 후 일본이 36년 동안 통치를 할 때까지만 해도 조선은 하나였다. 하지만 소련 공산주의가 개입하면서 조선은 남북으로 갈라졌다. 북조선을 세운 김일성은 거짓 신격화를 수단으로 독재의 전통을 세웠고, 남조선을 세운 이승만은 미국식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을 심었다.
김일성의 신격화는 항일유격전을 핵으로 하며, 항일과 반일은 북조선이 존재하는 한 국가혼이고 종교다. 북조선은 남조선을 흡수하기 위해 해방직후부터 대남공작을 감행했고, 그 결과 남조선에는 김일성 종교를 신봉하는 이른바 빨갱이 세력이 점점 확산돼 왔다. 해방 후 북조선은 문화공작 차원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장악했고, 그 공작물들을 통해 전 국민적 차원에서의 반일감정을 조장하고 세뇌시켜 왔다. 최근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것은 빨갱이의 골수인 문재인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 결과다. 문재인 정권이 반일감정을 조장하고 일본과 각을 세우는 것은 [항일유격정신]이라는 사이비 종교적 신념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를 파괴해 북조선을 이롭게 하자는 남조선 빨갱이들의 집요한 노력의 일환이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건설한 핵심적 생산기반이 조립생산 시스템이고, 그 조립은 일본의 소재와 부품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예로부터 알고 있다. 이런 일본이 멀리 아프리카에 있지 않고 이웃에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 엄청난 논리적 축복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정권은 이 기본 경제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
한일간에는 상호보완의 관계로 언제나 친선을 유지해야 경제와 안보 양측에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악화된 한일관계는 하루 빨리 원상 복구돼야 한다. 정권은 여론에만 굴복한다. 문재인의 이 음모를 저지하는 유일한 원동력은 오로지 국민여론이고, 국민여론은 진실에 대한 학습에 의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책 [조선과 일본]의 내용은 한국국민들에 세뇌되어진 지식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깨우쳐 줄 수 있다. 박진감 있게 편집돼 있기 때문에 내용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온 사람은 발간 이래 5개월 동안 아직 없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 비해 독서가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감성에 의존한다. 이 세상에는 동등한 나라도 없고 동등한 사람도 없다. 상대적 우열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서가 습관화된 국민은 문명적 우등국민이고 독서를 꺼리는 국민은 지배를 받아야 할 열등국민이다. 지금의 한국인과 일본인의 독서량에는 많은 격차가 존재한다. 따라서 일본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에는 내공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자존심이 있다. 이것이 양국 간 선린관계와 발전을 저해시키고 있는 걸림돌이다. 일본국민이라도 이 책을 많이 읽어 선린관계를 모색하는데 과학적 해결책을 찾아내 주기 바란다. 나는 이 책이 그 과학적 해결책을 촉발시킬 수 있는 기초수단인 관찰력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저자 지만원
하모니카 추억
내가 살던 마을 구둔
해방 후 문명의 발톱이 할퀴지 않고
보존된 미개발지역이다
그래서 경기도가 영화마을로 정했다
학교에서 하교하면
작고 맑은 웅덩이에
너나없이 뛰어들어 잠수 수영을 했다
동쪽에는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중앙선 열차가 다녔다
칙칙푹푹
내리막길에서는 흰 연기를
오르막길에서는 검은 연기를 뿜었다
10세가 되면서
나는 그 철로를 많이 걸었다
기차가 오려나
때때로 철로에 귀를 대면서
옥수수 반 토막짜리 하모니카
입에 물고
내쉬고 들이쉬고
혀로 박자까지 치면서
음에 도취되어 걸었다
나이든 형들이
하모니카로 부르는 노래
신라의 달밤
나그네 설움
백마강 달밤. . .
내가 가는 곳마다 메리 도끄
두 마리 개가 따라 다녔다
사과나무 밑에 텐트 치고
영어책을 읽으면
개들은 귀를 쫑긋거렸다
어쩌다 아는척해 주면
즉시 달려와 몸을 부볐다
이리 가면 사과 열매
저리 가면 배 열매
자두와 오얏과 복숭아가 있는
과수원집
가는 곳마다 메리 도끄가 따라다니던
그 시절 그 풍경
내가 지금도 꿈꾸는
목가적 로망이다
은하수의 속삭임
내가 태어난 지구가 얄밉다
시간도 짧게 주고
공간도 좁게 준다
돈은 조금 주고
괴롭히는 사람만 많이 준다
외로운 내 영혼
나무 위에 올랐다
뭔가를 속삭이는
수많은 별들에
귀를 가까이 댔다
은하수 별들이 내 얼굴 위에 쏟아졌다
은가루보다 더 화려하게
저마다 입들을 모아 속삭였다
우리 모두 네 친구야
내 친구?
친구가 그렇게 많은데
왜 모두 먼 하늘에 가 있대?
입을 오물거리며 모두가 합창했다
야속한 지구가 너무 싫어서
에이
그럼 난 뭐야
카사비앙카를 향하여
서기 2000년
나는
과학의 공간
시스템클럽을 열었다
사람들에 생소한 메뉴접시가 즐비했다
맑은 영혼들 찾아들었다
시스템은 논리
논리를 사랑하는 이들이
사랑방 만들었다
하지만 김대중이 간첩질을 하면서
이 클럽공간은
김대중과 싸우는
살벌한 전투공간이 되었다
최근 이 공간은
소박한 방송공간을 추가했다
아름다운 영혼들이 더 많이 찾아왔다
그리고 곧 클럽의
주인들이 되었다
귀한 이들이 탄 이 시스템버스
아무도 내리지 않도록
소중하게 몰고 싶다
하얀 구름 낮게 드리운 저 언덕
저 아름다운 곳에 지어진
꿈같은 하얀 집
카사비앙카를 향해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집단 총살 사건>
당시 함덕지서는 백주에 공비들로부터 습격을 받아 전소되었다. 함덕지서는 부득이 함덕초등학교 교장관사로 이전했다. 그리고 총살사건을 주도한 2연대 소속의 제3대대는 바로 함덕초등학교에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3대대 본부의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대대장 정 대위, 부관 이 중위, 김 소위 등 소위 2명 등 장교는 불과 5명 이었다.
제3대대장은 북촌마을을 지나다가 공비들로부터 기습을 당해 2명의 부하를 잃게 되자, 평소부터 가져왔던 북촌리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이 한 순간에 폭발했다. 3대대는 즉시 북촌리 사람들을 북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집결시켰다. 그리고 한 군인이 나서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폭도가 군을 습격하고 북촌마을로 도망쳤다. 교전 현장에 폭도가 버리고 간 것들에는 돼지고기 반찬이 있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이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폭도는 이 동네 사람이다. 부락을 포위하고 폭도를 색출할 것이다. 폭도는 자진해서 나와라.”
이렇게 여러 차례 말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에 그 군인은 “군인가족 나와라” “경찰가족 나와라” 명령하여 군인가족과 경찰가족을 일단 추려냈다. 그리고 나중에는 “민보단 가족 나와라” 이렇게 소리쳤다. ‘민보단’은 경찰을 돕는 청장년조직이었다. 이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우- 하고 몰려나갔다. 화가 난 군인은 이들에 발포하여 3명이 사망했다.
군은 나머지 사람들을 1열에 10명씩 4열종대로 세웠다. 이렇게 1차로 40명, 2차로 40명을 운동장 서쪽 밭으로 데려가서 사살했다. 그리고 또 다른 40명을 밭으로 데려가 막 사살하려는 순간 대대부관 이 중위가 차량을 타고 달려와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3대대 부관 이 중위가 제주시에 있는 2연대 본부에서 열린 참모회의에 가 회의를 하는 도중 함병선 연대장이 집단총살 소식을 듣고 이 중위에게 “당장 가서 중지시켜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정부보고서의 주장과 정 반대인 것이다.
<북촌리 희생자는 400명이 아니라 잘 해야 120명>
별도로 분리된 군,경,민보단 가족은 현장에서 방면되지 않고, 몇차례 나누어 함덕 대대본부로 이송됐다. 증언자 한수섭도 여기에 포함되어 대대본부로 이송됐다. 일부는 방면되었지만 30여 명은 여러 날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당시 군에 협조했던 북촌사람이 앞에 나서서 평소 자기와 감정이 안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수사관에게 “저것들 전부 빨갱이들이다”라고 무고하여 그 다음날 30명 정도가 총살되었다. 또한 군은 부락경비를 서는 과정에서 공비와 내통하여 경비를 제대로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3~4명을 더 사살했다.
따라서 한수섭이 그날(1.17) 처음부터 북국민학교에서부터 죽 지켜본 바에 의하면 당시 제3대대에 의해 사살된 사람은 120명선을 넘지 않는다. 북국민학교에서 40명씩 두 차례 80명, 주민 집결과정에서 초소근무를 태만히 했거나 내통한 혐의가 있다는 사람들, 민보단장을 포함하여 4-5명, 민보단 가족 분리과정에서 3명, 함덕 대대본부에서 무고된 사람 30여 명이 전부였다. 400명 집단학살설은 1991년 북한의 박설영이 가장 먼저 주장했다. 그리고 정부보고서가 이 북한의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북촌리는 1·17 사건 이후에도 공비촌>
이 엄청난 사건을 치른 북촌리는 그 후 깨끗하게 정리되었는가? 당시 경찰출신 전정택에 의하면 그렇지가 않다. 북촌리 사건 발생 18일 후인 2월 4일, 제2연대 병력이 무기를 싣고 북촌리 동쪽 일주로에서 또 공비들의 기습을 받아 전멸 당했다. 함덕지서에 근무하는 부원하 순경이 전사했고, 민간인 운전수 1명이 부상을 입었다.
공비들은 총을 모두 가져갔고, 전사한 군인들 및 부원화 순경의 옷을 모두 벗겨 갔고 시신은 불태워 버렸다. 북촌리에서는 1월 17일 뿐만 아니라 그 전에도 또 후에도 공비들의 소굴이었다는 생각을 굳히게 하는 사건들이 이토록 생생하게 이어진 것이다.
<함병선 대령이 집단 총살사건의 원흉이다?>
정부보고서는 1·17 북촌리 대량학살 사건을 함병선과 이승만과 미군정이 주도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들이 북촌리 사건의 원흉이라고 지목하며 책임을 묻고 있지만 이는 허구다.
제2연대장 함병선 대령은 ‘선-선무 후-토벌’전략으로 한라산 공비를 사실상 전멸시킨 주인공이었다. 제주도민들은 2연대의 공적을 높이 찬양하고 기리기 위해 서귀포에 ‘함병선 대령의 공덕비’를 건립했고, 1949년 7월 7일은 도민 전체의 이름으로 한라산에 ‘평정비’를건립했다. 그런데 정부보고서와 좌파들은 함병선 대령을 무차별한 양민학살자로 매도한 것이다.
<오라리 사건>
1948년 5월 1일에 발생한 오라리 사건은 참으로 하찮은 사건이다. 김익렬도 하찮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하찮은 두 개의 존재가 좌익들에는 매우 중요했다. 좌익들이 쓴 책과 정부보고서에는 이 두 존재가 왜곡돼 있고, 크게 부각돼 있다. 4·3 폭동사건를 조작하고 모함하기 위해 이 두 개의 존재를 매우 귀한 소재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여러 자료들과 증언들을 종합하여 정리한 오라리 사건은 이렇다.
제주읍 남동쪽 2㎞ 지점에 오라리 마을이 있다. 오라리 마을은 5개 마을로 되어 있고 주민은 600여 호 3,0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일제 때부터 좌익 활동을 했던 고사규, 박기만, 오팽윤, 송삼백, 이순정 등이 있어 주민들에게 영향을 주어 좌익사상이 강했다. 1948년 4월 29일 폭도들은 오라리 연미마을 대청 부단장 고석종과 대청단장 박두인을 끌고 가서 민오름 나무에 묶었다. 1948년 4월 30일 대청단원 부인인 강공부(23세), 임갑생(23세) 등이 폭도들에게 끌려 가 민오름 나무에 묶였으나 임갑생은 기적적으로 끈을 풀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살았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민오름을 뒤지자 임신부 강공부는 죽어 있었고, 폭도들이 박두인과 고석종은 다른 곳으로 끌고 가서 죽였다. 5월 1일 오전 9시 전날 폭도들에게 비참하게 죽은 임신부 강공부의 장례식이 있었고, 여기에는 대청과 서청원 30여 명이 참석하였다. 장례식을 마친 청년들이 폭도로 인정되는 집 6세대 12채에 불을 지른 후 제주읍으로 갔다.
멀리 떨어진 오름에서 폭도들이 연미마을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5월 1일 12시가 지나 20여 명이 연미마을에 도착하고 보니 대청 청년들은 없고 집 12채가 불타고 있었다. 그러자 폭도들은 순경 김규찬 어머니를 아들이 순경이라는 이유로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 이 일을 신고 받은 경찰 2개 소대가 연미마을에 도착하여 폭도들에게 총을 쏘자 폭도들이 도망을 쳤다. 그런데 고무생(41세)이라는 여자가 경찰이 정지하라고 고함을 치는 데도 도망치자 경찰은 총을 쏘아 사살했다.
<모략을 목적으로 김달삼이 기획한 5·3 사건>
5월 3일 15:00시 경, 한라산에 입산하여 고생을 하고 있던 주민 200~300명 정도가 귀순해 오겠다는 반가운 연락을 해왔다. 미 고문관 드루스 중위가 미군 병사 2명과 9연대 병사 7명을 대동하고 이들 하산주민들을 제주비행장을 향해 인솔하고 있었다. 이 때 정체불명의 무장대 50여 명이 갑자기 나타나 기관총과 카빈총을 난사했다. 몇 명의 귀순자들이 사망했고, 나머지는 모두 산으로 도망을 쳤다. 이 때 미군이 반격에 나서 무장대 5명을 사살하고 몇 명의 부상자를 생포했다.
미군에 생포된 자들 중 한 사람은 자기가 제주경찰서 소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군이 제주 경찰서에 신원을 확인한 결과 그 자의 말은 거짓이었다. 이 자는 경찰에 있다가 입산한 공비로 경찰과 국경 사이를 이간시키기 위해 폭도들이 연극 차원에서 이용한 자였다. 200~300명을 하산시킨 것은 머리 좋은 김달삼이 미군과 경찰 사이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꾸민 고도의 모략극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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