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TV]제198화, 문재인 이명박과 곧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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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2-20 22:05 조회4,7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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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제198화, 문재인 이명박과 곧 합류
https://www.youtube.com/watch?v=JM47FubSs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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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문재인 이명박과 곧 합류
제197화, 보수의 가치
1) ‘경기 거지같다’ 시장상인 비판 세례
2) 추미애 검사장 회의 무기 연기
3) 윤석열 총장 방문에 광주 '시끌'…진보-보수 '대치'(종합)
4) 우환코로나 고삐 풀어준 문재인 책임지워야(국민 모두가 모두의 적), 문재인 2월 13일 코로나19)에 대해 방역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
대구의 신천지 교회 예배(신천지=새누리) 38명 확진자, 과천 경북 등 , 396명 연락두절
한국 확진자 105명으로 급증, 대구·경북서만 51명 추가 확진
청도 대남병원 무더기 확진…사망자도
신천지(빨강색)= 새누리(빨강색) - 미스터리
5) 이명박 17년 재수감 (김경준, 에리카김) DAS는 이명박 소유
김유찬의 "이명박 리포트"- 범인 해외도피 (李의원의 선거자금 과다지출을 폭로하고 출국한 전비서 김유찬(36)에게 도피자금을 주도록 이명박이 지시한 사실 밝혀짐(1996년 선거법 위반 사건) -400만원 벌금으로 의원직 상실 – 편법의 왕 – 출생의혹, 병역의혹
6) 경제파괴범 문재인의 책임 회피 쇼
김정숙, 정세균. 우한 코로나 확산으로 위축된 자영업자 격려 차원에서 전통시장과 도심 상가 지역을 잇따라 방문. 사전에 짜놓은 각본에 따라 이뤄진 것, 방문 상점을 미리 정해두고 상점에 없는 물건은 미리 준비까지 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비우호적인 상인을 배제했다.
김정숙, 2월 18일 면목동 동원전통종합시장을 방문, 상점 다섯 곳을 돌며 꿀 40㎏, 음성 배, 진도 대파 등 구매
2월 19일 시장 상인들의 말: 김정숙이 방문 나흘 전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직원 2명이 상인회 사무실 찾아, 처음엔 김정숙이 아니라 "박영선 장관이 방문할 예정이라 말해.
중기부 관계자들은 두 차례 시장을 찾아 동선(動線)을 짜고, 방문 점포를 정한 뒤 17일 이 명단을 상인회에 통보. 같은 날 오후에는 해당 점포의 상인들에게 "대파와 생강, 꿀을 준비하라"며 ㎏ 단위까지 정해줬다.
시장에 박영선이 아니라 김정숙이가 온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방문 당일 오전. 상인회장은 "김정숙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새벽부터 일어나 상인들에게 '계란은 던지지 말자' '반갑게 환대하자'고 선동
진천에는 우황바이러스 의심자들 임시 숙소가 있다. 김정숙은 이 과일가게를 방문해 똑같이 "진천 딸기가 있느냐"고 묻고, A씨가 "요즘 진천은 안 들어온다"고 답하자 배를 3만5000원어치 사갔다.
꿀은 '건어물 가게'에서 샀다. 이 가게 상인 B씨는 "(중기부 쪽에서) 한밤중에 전화가 와 '물량을 맞출 수 있게 꿀을 미리 대량으로 준비해 두라'고 하더라"고 했다. 이 가게는 꿀을 주된 상품으로 판매하지 않아, 당시 꿀 1~2통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량으로 꿀을 추가로 들여놓았다. 김정숙이 다녀간 다음 날에도 이 가게 진열장엔 꿀단지 8~9통이 남아 있었다.
2월13일 정세균이 신촌 명물거리를 방문, 몇몇 상인은 지난주 초 서대문구 소상공인회 이사장인 오종환씨로부터 전화 받아, "며칠 뒤 총리님이 가게에 찾아가면 협조해줄 수 있겠느냐"는 '섭외' 전화였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신종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오씨 전화를 받은 상인 C씨는 "신촌이 '차 없는 거리'가 된 다음부터 장사가 안 돼 죽을 맛인데, 총리님께 이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했다가 "그러면 안 된다"며 퇴짜를 맞았다. C씨는 "판 다 짜놓고 정해진 말만 하라는데, 이게 무슨 애로 청취냐"고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20/2020022000066.html
7) 노동당 제1부부장 김성남(제2광수)의 북경방문 (2월 1일)
한 소식통은 "김 부부장의 이번 방중이 중국 측과 최근의 신종 코로나 사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인도적 차원의 의료 물품 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북미 북핵 협상 등 한반도 문제 등도 논의 사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북한은 대중국 봉쇄를 통해 외부인이 북한 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면서 신종 코로나에 대응하고 있으나 장기간 대북 제재와 경제난의 여파로 의료 시설과 의약품이 매우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22장, 제2연대 작전(1948. 12.29-1949. 2.28)
누가 빨갱이인지 모르는 캄캄한 상태에서 제주도 토벌군에 대한 물갈이가 필요했다. 대전에 있던 제2연대가 제주도로 투입됐다.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가 12월 29일 대전에서 제주도로 이동한 것이다. 이때의 공비는 1920년생인 이덕구의 지휘 하에 있었으며 상당수가 사살되고 귀순하여 그 수가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도에 발령됐던 비상계엄령은 1개월 보름만인 12월 31일에 해제됐다. 하지만 이는 너무 성급한 조치였다.제주도 공비는 1개 대대 이상이었으며 암암리에 조직을 확대-강화하고 있었다. 1949년 1월 1일 새벽 진눈깨비가 내리는 시각에 이덕구가 인솔하는 공비 주력이 오동리 화엄사에 주둔하던 제3대대를 포위 기습하였다. 교전 끝에 공비는 10여 구의 시체를 유기하고 도주했으며 제3대대 소속 7명이 전사했다. 제2연대장은 이들을 섬멸하기 위해 1월 4일부터 항공기와 함정의 지원을 받아 토벌작전을 폈지만 지형 미숙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작전 중 연대장은 많은 주민들이 한라산 동굴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소탕작전보다는 선무를 통해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토벌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산사람들의 근거지가 되는 산간마을을 그냥 둘 수 없었다. 함대령의 과감한 조치에 따라 산간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군이 마련해준 수용소로 내려와 살거나 아니면 산속으로 들어가 살아야만 했다. 함대령이 불쌍하게 보았던 사람들이 바로 산간마을에 살다가 공비들에 속아 멋모르고 산속으로 간 사람들이었다.함대령은 이들을 불러 내리기 위해 갱생원(피난민집단수용소)을 설치하고 집중적인 선무활동을 벌였다. 1개월 사이에 1,500여 명이 산에서 내려와 갱생원으로 갔다. 이와 아울러 마을주민을 상대로 홍보했다. 읍면 소재지를 중심으로 면민 대회를 개최하여 공비들의 만행을 소개했고, 새로 도입된 신무기들을 전시하여 공비 가족들로 하여금 공비들이 이런 신무기를 상대로 하여 싸우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갱생원에는 많은 지원과 관심을 쏟았다. 이에 주민들은 군을 신뢰하게 되었고, 이에 비례하여 무장공비들과 산사람들도 줄을 이어 하산했다. 돌아선 주민들의 제보로 인해 2연대는 1월 13일, 남제주군 남원면 의귀리에서 공비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제23장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 작전(1949. 3. 2-5. 15)
제2연대의 효과적인 작전에도 불구하고 무장공비들의 준동은 시들 줄 몰랐다. 이들은 군경의 무기를 탈취하여 경비가 소홀한 부락을 습격하고, 청년들을 납치해다가 공비로 훈련시키면서 공비 세력을 꾸준히 양성했다. 때는 흘러 1948년 9월 5일 부로 국방경비대가 육군본부로 탈바꿈 했다. 육군본부로서는 이런 제주도가 골치덩이였다. 김일성이 남침을 위해 열심히 공격적인 군사력을 기르고 있을 때인 1949년, 남한은 제주도라는 섬 하나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갈 길은 먼데 계속적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제주도 빨치산 유격대에 육군본부라면 당연히 화가 날만 했다. 육본은 녹음이 짙푸르기 전에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해동이 되자마자 소탕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했다. 약칭 ‘제주전투사령부’는 2연대(3개대대), 제주경찰 그리고 대유격전 특수부대인 독립 제1대대로 구성됐다. 사령관에는 유재흥 대령, 참모장은 제2연대장인 함병선 대령으로 하여금 겸임케 했다. 같은 3월 2일, 육본은 또 지리산지구전투사령부(정일권 준장, 6개 대대)와 전남지구전투사령부(원용덕 준장, 6개 대대)를 창설하여 산에서 준동하는 공비들을 소탕하는 작전들을 폈다.‘선-선무 후-토벌’, 제주전투사령부 작전은 함병선 대령의 작전 개념을 그대로 수용했다. 도내의 지도급 청년들이 산으로 들어가 선무공작을 수행했다. 수용소를 추가로 설치하고 여기에 도청과 협조하여 구호미, 의류품을 제공하고 생활자금도 2배로 늘려주었다. 하산한 주민들로 하여금 직접 간접으로 공비들을 설득하게 했고, 경비행기를 이용하여 무수한 선무 삐라를 살포했다. 귀순자들이 갈수록 늘어났다.공비토벌작전은 제2연대를 주축으로 하여 펼쳤고, 해안지역 작전은 경찰이 담당했다. 경찰은 마을마다 ‘민보단’을 편성하여 낮에는 농민을 보호하고 밤에는 공비의 습격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게 했다. 전투사령관은 민관군이 총체적으로 동원되는 유기적인 작전을 위해 이를테면 합동군을 생각해 냈다. 민보단 1개 소대(25명)에 군인 및 경찰 각 1개 분대를 증강시켜 민-경-군 혼성부대를 여러개 만든 것이다.혼성부대들은 교사들, 군청 및 면사무소 직원, 청년단 간부들로 조직되었으며, 1개월간의 기초군사훈련을 거쳐 군사화됐다. 그리고 이들은 공비소탕작전에도 동원됐다. 예를 들어 제2연대 1대대 정수정 상사가 지휘하는 혼성부대는 공비의 아지트를 찾아내 30여명을 생포하고 다수의 무기를 노획했다. 이 팀은 또 생포한 자들 중에서 공비의 세포인 고씨를 전향시켰고, 그 결과 공비두목 이덕구와 김민성(군사부 조직책)의 아지트를 알아냄으로써 지체 없이 급습하는 엄청난 기회를 포착했다. 하지만 이때 이덕구는 공비병력을 이끌고 출동한 상태였기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이들 혼성부대들은 공비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지 않을 수 없었다.제2대 제주도 공비사령관 이덕구! 그는 김달삼의 부하였지만 김달삼 보다 4살 더 위였다. 그는 1948년 9월 15일, 중문면 도순리에 살고 있던 대동청년단원 문두천을 칼로 난자한 것을 기회로 김달삼의 신뢰를 얻었다. 빨치산들은 이를 이덕구의 9·15 사건 이라고 부른다. 이어서 남로당은 11월 7일, 이덕구를 통해 제주경찰서 무기고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여 제2의 4월 3일 폭동을 일으키기로 했다. 하지만 이 비밀회의에 참석했던 남로당 앞잡이 순경 한 사람이 갑자기 마음을 돌려 자백함으로 인해 음모 가담자들이 일거에 일망타진되는 쾌거가 발생했다. 여기에서도 남로당 주요 인물들은 북한과 일본으로 도망을 갔다.곧 세상이 공산화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감언이설로 호언장담하던 허위 선전-선동자들은 모두 도망쳤고, 제주도에 남아 고초를 당한 인생들은 이들에 현혹됐던 무지몽매한 맹종자들이었다. 이들 맹종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야생마처럼 한라산 동굴과 밀림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귀중한 청춘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렸다,이렇게 공산당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 자기 인생뿐만 아니라 온가족의 인생도 망쳐버린 사람은 이른바 지식인들 중에도 있다. 1942년생인 오길남 박사의 경우다. 그는 서울대학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에 독일로 유학가서 윤이상과 송두율의 감언이설에 놀아나 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그 부인과 사랑스런 두 딸을 북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3모녀는 요덕수용소에 갇혀 있고, 오길남은 혼자 탈출하여 매일 술과 회한의 눈물로 26년째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귀순하는 자들이 나날이 증가함에 따라 공비들의 은신처와 무기고들이 연이어 군경에 의해 접수됐다. 특히 한라산 서쪽 6km 지점의 어승생악에 위치한 그들의 비밀병기창이 발각되어 소총 370정과 다수의 실탄 등이 노획됐다. 무기 없는 공비가 점점 늘어나게 된 것이다.이에 육군본부는 공비가 재기 불능상태인 것으로 파악하여 5월 15일부로 제주지구전투사령부를 해체했다. 그리고 5월 20일에는 5개월간의 토벌작전 중 산화한 토벌대 요원 119명에 대한 위령제를 제주읍에서 거행했다. 아울러 제주도민들은 제2연대의 공적을 찬양하고 이를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서귀포에 함병선 대령의 공덕비를 건립했다. 이덕구가 사살된 지 만 1개월이 지난 7월 7일에는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한라산 정상에 평정비를 건립했다.이렇듯 제주도민들로부터 숭앙을 받은 함병선 대령을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과 고건 및 박원순 등 좌파들이 주도한 정부보고서는 ‘최악의 악랄한 살인마요 초토화의 장본인’이라 모함한다. 이 사람들은 비단 함병선과 이승만에 대해서만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6·25 전쟁 때 대한민국을 구해준 미국과 맥아더에 대해서도 증오를 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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